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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聖) 수의(壽衣)에 대하여 (2017-12-30, 서울, 오후 3시 흑석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1-01




흑석한강동부센트레빌2차 커뮤니티센터에서 공개된 실제크기의 토리노의 성 수의 복사본  




성(聖) 수의(壽衣)에 대하여 (2017-12-30, 서울, 오후 3시 흑석동)

    

2018년 1월 1일(월)에서 1월 7일(주일)까지 한국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교대역 근처)에서 전시합니다.


친애하는 친우 여러분


이 설명회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첫째는, 제가 여러분의 언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새로운 부임지 발령으로 인하여 아시아에서 호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 수의에 관한 많은 나의 문서가 잔뜩 있지만 (부임지 등 여러 일로 인하여) 기억으로만 이 설명회에 대한 자료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내용이 빠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부정확한 것도 있을 겁니다. 이 점에 대해 용서와 이해를 바랍니다.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정보를 드리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1/이것은 성 수의의 복사본입니다.
성 수의는 길이 4. 4 m, 폭1. 1m 의 긴 천 조각인데, 토리노(Turin)에 현재 보관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장할 때 쓴 천이라고 인정하여서 소중히 여깁니다. 비록 정의(定義)된 교리는 아니지만, 교회는 수세기 동안 많이 이 성 수의를 공개하여 신자들의 하여금 존경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실제적인 인정입니다. 몇몇 회의론자(懷疑論者)들은 이것이 과연 진품일까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고한 논거(論據; 논리적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합니다. 반면에 그와는 반대로, 이것이 진품이라는 입증할 만한 확고한 논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 몇 분들이 진본(眞本)을 보셨나요?

이 성 수의의 진본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리노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보관되고 있어서 진본이 일본이나 한국에 오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것이 공개될 때에 (매우 드문 경우 입니다) 토리노에 갈 수 있는 은총이 없는 한, 이곳에서 (이 복사본을) 보는 것은 차선책이 될 것입니다. 음영(negative) (촬영) 모습의 실물 크기와 더불어 실물 크기의 복사본을 여러분이 보고 있습니다. 

성 수의의 천(패치)를 제거한 후에, (나중에 보세요) 이 복사본은 2002년에 진본을 매우 정교하게 전자 촬영해서 만든 것입니다. 보호를 위해 불활성 기체 안에 밀봉되기 전입니다. 이 복사본들은 컴퓨터 테이타 파일로 만든 것인데  해상도(解像度)에 있어서 매우 정밀합니다. 음영부분도 역시 전자 사진촬영 과정을 통하여 같은 컴퓨터 데이타 파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습(이미지)은 이들 복제천 안으로 밀봉되어진 플라스틱 필름 안에 설정된 것입니다. 설명이 끝난 후 여러분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모습의 정밀성을 볼 수 있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2/시각분석
진본을 본 사람에게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이란 …. (진본에서는)  그 (인물의 ) 모습을 보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복사본들이 진본보다 더 보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의 (음영의) 대조(對照)가 컴퓨터 처리과정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첫 번째 것은 이 삼각형들인데, 이 삼각형들은 진본(眞本)에서는 구멍이 난 것으로서 1532년 12월 4일 샹베리(Chambery)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 천은 헝겊(천)을 대고서 솜씨 좋은 수녀님들이 고친 것입니다. 이 상태로 2002년까지 유지 보존 되었습니다. 수의에 관한 많은 옛 모습은 이 헝겊(천)들을 전시한 것입니다. 오늘의 이 복사본은 이러한 헝겊(천)들이 제거된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 수의는 48겹으로 접혔고, 여러분은 화재에 드러난 접힌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 겹층은 안쪽 겹층보다 더 손상이 되어 있습니다. 녹아 내리는 은(silver) 몇 방울이 구석에 떨어졌고 전체를 (구멍이 퍼져) 생기게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불을 끄려다가 생겨난 물자국인 이들 커다란 삼각형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몇 개의 다른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들은 화제로 생긴 것보다 더 오래 된 것입니다. (이 오래된 구멍들은 화재 당시에 있었던 48겹층과는 안 맞고 그래서 이 표시들은 12세기 때부터 있던 기도문 원고(原稿) 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상에서 일어났던 것을 추상해보면, 이 천은 어느 죽은 사람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 천은 판(slab) 위에 놓인 것인데, 죽은 사람의 등이 이 천 위에 누운 것이고 이 천은 머리를 덮고 전신을 덮은 접혀진 것입니다.

얼굴, 가슴, 팔, 손, 다리, 발의 표시를 양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남자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요: 채찍에 맞은 표시, 특히 어깨 쪽에 표시가 있고 심지어는 팔과 다리에도 있습니다. 팔목과 다리에는 못 박힌 자국이 있고 거기서 흘러내린 피 자국이 있습니다. 많은 피가 묻은 옆구리를 찌른 창 자국이 있습니다. 이마와 머리 뒤쪽에는 가시(thorns) 자국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무거운 짐 (십자가)를 진 자국인데, 어깨 위에 있고 그리고 코 근처 뺨 위로 맞은 자국 있습니다. (성 요한이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고위 사제의 한 종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얼굴에 크게 가격하였다)

비록 십자가형이 로마 시대에 흔했더라도 이 모든 상처들을 모두 조합해 볼 때, 많은 이유로 인하여 매우 희귀한 수의입니다. 첫 째, 일반적으로 만약 노예가 사형 선고를 받으면 이 당시 이전에는 (노예에 대한) 채찍질이 없었습니다. 채찍질형이나 십자가 형이든 둘 다 함께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그리스도의 경우,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에서 빼내기 위한 노력으로 채찍형 만을 받게 합니다. 빌라도는 바리세이들의 증오를 만족시키려 했고 채찍만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고집했습니다.

더욱이, 가시관은 특이한 것입니다. 로마시대에 가시관을 쓴 다른 사례를 알지 못합니다. 자 그러면 다시 설명하자면, 대개 십자가형은 다리를 부러뜨립니다. (그리고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사람들의 다리가 부러진 뼈가 있지만) 여기의 다리는 부러진 것이 아니고  꿰뚫린 상태입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은, 나쁜 노예를 처벌하는데 있어서, 대개 십자가형에 처해진 시신은 구덩이에 던져졌지, (이런) 비싼 천으로 싸서 조심스럽게 매장되진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모아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이러한 상처에 딱 들어맞게 죽은 자는 역사에 있어서 알려진 사례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 수의가 진짜 성 수의라는 으뜸가는 중요한 논거입니다.


3/심층 시각 분석: 부활의 증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먼저 붓자국, 색소(안료) 흔적을 이 천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못 찾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 수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성상(성물, 아이콘)” 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상(icon)에 아주 잘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에데사(Edessa)에서 볼 수있고 수의의 역사에 관한 수수께끼의 일부입니다.

둘째로, 성 수의 위에서 (육신의) 부패의 흔적을 찾을 수없습니다. 대개 (세월이 흐르면) 죽은 자의 뼈를 보게 되는데, 반면에 뼈를 감싸는 육신과 천은 완전히 부패합니다. 여기서는 뼈도 없고, 천 안에서 부패 자국도, 그리고 천 위에 누웠던 몸에서의 어떠한 부패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주목할만한 것입니다.

게다가, 천으로 싼 많은 이집트 미이라가 있지만 이 미이라들은 거의 분리할 수 없도록 시신을 매우 단단히 묶었습니다. 여기서는 시신이 없는 천을 보게 되는데, 천은 시신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세째로, 피의 흔적이 매우 자세히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응고되어 찢어진 자국, 피가 천과 몸에 붙어 찢어진 자국이 전혀 없습니다. 저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의사와 간호사들은 말하길, 이것은 부활로써만 오로지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참으로 많고 깊은 상처를 지닌 몸, 무수한 피를 흘린 몸, 못 자국과 가슴이 창으로 열린 저런 커다란 상처들은, 만약에 여러분이 이 상처 둘레에 붕대로 싼다면, 상처의 찢어짐이 없이는 3일 후 그 붕대를 벗길 수 없습니다. 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몸은 이 천에 싸여서 3일 이상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패의 흔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목을 보세요. 뒤쪽으로 확장되고 앞쪽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자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머리 무게로 인해) 앞쪽으로 머리를 숙입니다. 그리고 몸이 등을 대고 누었다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올라가는 사후경직이 있습니다. 3일 후, 부패가 시작될 때 사후경직은 사라지고 머리는 (눕는) 판(板) 쪽으로... 뒤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흔적은 이 성 수의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몸이 이 천 안에서 3일 이상 머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 (또는 천)의 찢어짐이 없이 매장 3일 이후에 천을 그 시신으로부터 온전히 벗겨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부활만이 이 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수의가 진짜 성 수의임을 보여주는 두 번째로 중요한 논거입니다.

4/ 역사
성 수의의 역사는 몇 개의 조각이 분실되었다는 점에서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그래도 꽤 분명하게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유사한 설명이 어느 다른 항목에서 받아드려진다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려는 선입관은 아무리 가장 타당한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이를 거부하게 만듭니다. - 실제로  역시 빠트린 조각이 있는 그런 역사를 가진 다른 많은 유명한 항목들도 있습니다. 

a) 복음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한 천에 대해 언급합니다 마테오, 마가 그리고 루까는 'sindon(리넨)' 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성 예로니모는 라틴어로 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그리스어(“σινδών”)와 심지어 히브리어 (“‎סְדִינִ֔ים ”)의 복사(複寫)이며 산스크리트어 일반적 뿌리를 가지고있습니다. 신돈(리넨)은 일반적으로 값비싼 재료로 된 고급 천을 가르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결혼에 있어 삼손에게 요구한 천으로서 사용됩니다.(판관기14;12-13) 또는 잠언의 책에서 “강한 여성”이 만든 천을 지칭하는데 쓰입니다. “그녀는 고급 리넨을 만들고 팔았으며, 가나안 사람들에게 거들(속 옷)을 전했다”잠언(31:24)

자, 마테오 복음서에 바로 하는 말입니다. 대체로 성 마테오는 오직 몇 가지 핵심적 요점만을 전하면서 복음의 서간을 요약합니다. 그러나 그가 신돈(리넨)을 언급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셉이 시체를 받아 가지고 조촐한 염포(리넨)로 싸되, “(마테오27:59)…. 성 마르코는 더 자세히 전합니다:”요셉은 깨끗한 리넨(염포)를 산 후에 예수를 내리워 염포로 염하여 반석 중에 파 두었던 수두장에 안장하고“(말구15:46)


자, 제가 이렇게, 특히 지금 이곳에 오신 좋으신 여성 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천 조각을 살 때, 여러분은 더러운 천을 사나요? 물론, 아니죠! 그러므로 “깨끗한 천”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성 마테오는 쓸모없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부활 이후에 그 천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다는 점을 암시하지 않는 한…... 성 마테오 복음성서의 저 작은 단어는 간접적인 가르킴이니, 부활 이후에 저 천에 남은 표시는 그 천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묻힌 몸 때문에 모두 생긴 것이라는 점입니다.

b) 에데사(Edessa): 성 수의에 대한 다음 역사상 있던 참조는 에뎃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역사가 우리에게 이르길,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성상(icon,성물)”이 있다 합니다. 저 표현은 우리가 토리노에 이 성 수의가 있음을 알고 있듯이 성 수의에 딱 들어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수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눈으로는 그 안에 그림의 어떤 표시를 찾아볼 수 없거니와, 심지어 현미경으로도 어떠한 그림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의는 그때 당시에 겹쳐져있었고, 겹친 위 부분으로서 겨우 얼굴만이 보였으며, 아름다운 틀 안에 놓인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성상(성물)”은 많은 다른 성상(성물)을 만들기 위한 모형으로서 생각되고, 그리고 초상화 연구에 의하여 저 성물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시대 이전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수염이 없는 단발 머리의 젊은 로마인으로서 이해했지만, 그러나 나중에는 수의에서 나온 것처럼 장발과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체계적으로 그려진 우리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성물”으로 부터 복사된 이러한 성상들은 또한 이르테면 매우 큰 눈을 가진 이상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런 성상들은 화가들이 사진의 음영, 빛의 역전, 그리고 수의 위에 있는 어두운 부분의 영향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자, 우리는 역사에서 저 당시에 아마 관련되어 있을 수의(壽衣) 천을 오늘 보게 되는데 실제로, 아래 부분을 보세요. 두 개의 뚜렷한 실종된 직사각형이 두 개의 아래 쪽 구석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저 쪽의 전체를 따라 긴 솔기(이음매)를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수의 쪽에다 꿰맨 추가 조각 천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나중의 겹보다는 앞서서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것이 수의의 새로운 폭과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언제, 그리고 왜 저 조각이 첨가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이것이 없으면 그 얼굴은 중심을 벗어(off center)납니다. 이 추가적인 천 조각이 있게 되면, 그러면 얼굴은 적절하게 수의의 중앙에, 폭 방향으로, 그래서 이것이 에데사(Edessa) 그곳에서 드러났던 아름다운 틀에 딱 맞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볼 수 있듯이, 아이콘(성상, 성물)이 (예수님의) 수의라고 인정할 만한 세 가지 강력한 논거가 있습니다: 1/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성상”이라는 이름 그 자체이고, 2/초상화에 관한 이 성상의 영향력, 그리고 3/중앙 모습에까지 이르는 수의 한쪽 면에 덧붙인 천의 추가적인 끈, 4/에뎃사 지역으로부터 온 꽃가루의 현존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성 수의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나중에 보죠)

저 이름 하에서 에데사(Edessa)에 있는 이 성 수의가 있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보다 분명하게 쓰여진 문서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저것에 대한 주장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주장이 절대적으로 확고한 증거임을 주장하지 않고도, 그래도 저 주장들은 분명히 단순한 침묵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입니다.

추가적인 띠가 첨가된 것을 주목하세요 - 아마도 성 수의의 폭 위에 나온 얼굴의 모습 중앙에 댄 것 같은데 - 이는 이 수의가 예수님의 진짜 수의라는 논거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 모습을 다시 중심 잡으려고 한 조각을 캔바스에 추가시킨거죠? 더욱이, 이것은 너비에 해당되기도 하고 길이에도 해당됩니다. 뒤면의 뒤꿈치를 보세요: 천이 발끝을 벗어나 제법 몇 센티미터 확장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천의 앞쪽 면의 발끝을 보세요. 그리고 못자국이 어디에 있는지 보세요 - 상당히 분명한 것은.... 발가락은 천으로 덮혀있진 않았습니다. 화가는 양쪽 면에 철저히 상당히 긴 모습을, 그리고 발가락은 뺀 채로 두었나요? 화가는 다리를 오히려 짧게하고 온 몸 그림을 보여주면서 발가락은 생략 안했죠! 그래서 중심이 되어지는 이러한 작은 빠뜨림은 이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확고히 하는 논거가 됩니다.

c) 콘스탄틴노플. 그리고 그리스도를 매장한 천이 10세기 경부터 12세기 끝까지 콘스탄틴노플에 있었다는 역사상의 증거가 있습니다. 944년 그 천은 에뎃사(Edessa)에서 얻어서 콘스탄틴노플(Constantinople)로 간 것인데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의 부주교 그레고리가 행한 강론은 분명하게 리넨 위에 있는 전신(全身)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언급하는 황후의 보물 목록이 있습니다. 1204년 콘스탄틴노풀이 약탈되기 전에 어느 기사(騎士)의 열렬한 증언은 이것을 기리고 싶어하는 어느 특정한 교회에서 매주 금요일 날 이것이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사는 또한 언급하길, 그 성 수의는 도시의 약탈 이후 더 이상 안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알고 있듯이 그 화가가 성 수의를 봤던 것을 지적하는 몇 가지 뚜렷한 요소를 지닌 “기도문 원고(原稿)”가 있습니다. 특히 그 화가는 자기 손의 오직 네 손가락 만을 사용하여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습니다. 비록 그의 시야 각도가 엄지를 표현했어야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 수의 위에 있는 엄지는 다른 손가락 안에 숨어 있고, 그래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 수의 위에 어떤 엄지도 안 보인다고 해서 마치 그 화가는 그리스도가 엄지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리고 콘스탄틴노플 약탈 이후 교황으로부터 (들은) 황제가 주장한 유물 목록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저것은 어떤 역사상의 확실성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그 이상으로 많은 다섯 가지 역사상의 증거를 메꾸어 줍니다. 

기사와 황제의 두 증언은 유명한 “콘스탄틴노플 약탈” 기간에 저 도시로부터 성 수의가 다른 많은 유물과 함께 강탈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워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면 기사들이 십자군에 대한 황제의 지원부족으로 인하여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런 기사들은 분명하게 위협하는 무슬림 이웃에 대항하여 황제를 돕고 있었으나 황제는 기사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기사들은 잘못 반응하여 도시를 약탈하였습니다. 황제는 교황에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교황은 도시 약탈을 심하게 견책했습니다. 그리고 분실된 유물들이 반환되길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성 수의를 포함하여 많은 유물들이 반환되지 않았습니다.

d) Lirey, 리레이(Lirey)는 프랑스 샴페인에 있습니다. 1350년경, 성 수의가 프랑스 어느 기사의 후손 가정에서 나타납니다 그의 후손들은 순례를 위하여 가지고 가는 것 허락을 요청했는데, 먼저 어느 성 수의가 제출되다가 그리고 취소되고나서 다시 제출 됩니다. 그래서 약 150년이라는 침묵의 기간이 있습니다. 그래도 분실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이것을 매우 쉽사리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도둑은 반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상속인들이 반환이 요구된다는 두려움이 없을때서야 비로소 이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반대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 이것을 그렸다는 화가를  그가 찾았다고 주장하는 주교의 문서는 이것이 중세시대로부터 온 가짜였다는 증거로서 흔히 제시되고 있다 합니다만, 그러나 그 문서 자체는 성 수의 위에 어떠한 그림도 없다는 확고한 물증을 세운 현대과학에 의하여 반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의의 진본을 공격하는 문서가 그 자체로서 명백히 거짓이기 때문에, 어찌 성 수의의 적들이 증거로서 이와 같은 거짓말을 제시할 수 있는지요?

e) 챔버리(Chambery). 이후에 사보이(Savoy) 공작이 이 수의를 얻고서 챔버리로 이동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1532년 12월 4일에 이것이 보존되고 있었던 성당에서 일어난 화재로 고통받은 곳입니다. 나중에 사보이 공작은 그가 친히 토리노(Turin)에 성당을 세워 그가 그 성 수의를 옮기려고 했지만, 챔버리의 법률은 이처럼 대단한 유물이 도시 밖을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에서 실마리를 찾았는데 그가 찾던 경우였습니다.

f) 토리노(Turin)으로 이전(1578년) 성 찰스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는 그때 당시에 밀라노(Milan)의 주교였습니다. 대 역병이 밀라노에서 일어났는데, 그 주교는 죽어가는 이들에게 직접 성사(聖事)를 베풀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주님께 자기 도시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만약 천주께서 자기 도시를 살려주신다면 성 수의가 있는 곳으로 순례를 하겠다는 맹서를 하는데 그의 청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 주교는 그 순례를 떠났습니다. 토리노는 알프스의 한 쪽 편에 있고 챔버리는 그 반대 편에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몽블랑 아래를 지나는 터널이 없었습니다. 알프스 산맥들은 해발 4000m 가 넘습니다. 그래서 그 산맥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넘어가는 그 길은 흔히 해발 2000m가 넘었고 가난한 주교의 건강도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리노의 공작이 알프스 반대편으로 성 수의를 가져가게 하는 챔버리의 법률을 요청하였습니다. 성 찰스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는 토리노에서 이 수의를 경배하고 소중히 모셨습니다.... 그리고 사보이(Savoy) 공작은 토리노에서 이 성 수의를 보관했습니다.

샴페인에서, 챔버리에서, 그리고 토리노에서 성 수의는 항상 신자들의 경배 대상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유물을 기리기 위하여 축일이 제정되었습니다. 전시회 하는 날, 성 수의는 네 명의 주교와 한 명의 추기경이 들었습니다. 그 주교들 가운데 한분이 성 프란치스 살레시오 (혹은 성 찰스 보로메오? 확실히 모르겠네요) 저 성인께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묵상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눈물 일부가 수의 위로 떨어졌습니다. 추기경이 성인에게 말합니다. “진정하시오. 각하.” 그러나 성인께서는 대답하길, “만약 주님이자 주인이신 분이 나를 위하여 저 수의 위에 그분의 성혈을 흘리길 기꺼이 하셨다면, 내가 주님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프랑스 혁명 기간동안, 나폴레옹의 군대가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했습니다. 성 수의는 그래서 강탈을 피하기 위하여 숨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피에모(Piemont)에서 혁명사상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18세기 후반에 오직 소수의 공개적인 전시(展示)만이 있었고 그리고 19세기에는 5회 이하에 그쳤습니다.

g) 최초의 사진촬영(1898년). 19세기 끝 무렵, 피에모에서 신앙을 되살리기 위하여 주교는 대대적인 공적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합니다. 저 전시회에서 훌륭한 아마츄어 사진작가인 세콘드 피아(Second Pia)는 수의를 사진촬영하겠다는 요청을 부탁합니다. 그가 사진의 음영부분을 인화(印畵)했을 때 발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교한테 달려가서 말하길, “보세요!” … 거의 2000년이 다 되어서 최초로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이는” 것입니다. 음영 사진술 방법은 이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 숨겨진 모습은 1850년 이상 (안 보이는 상태로) 있었던 것이고 “과학주의”와 회의주의(懷疑主義)라는 우리 시대를 위해서 천주님에 의해 예비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은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보라! 과학 자체는 (과학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수의가 진짜임을 보여주는 가장 간단하고도 위대한 증거입니다: 어떻게 위조범이 해부적인 오류가 없이 사진술 발명이 있기 전 500년 이상 된 것을, 사진술만으로 오직 볼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모습을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과학이 500년 지나서 발견하게 될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모릅니다! 이런 놀라운 과학으로서만 겨우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인공물을 우리는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더욱이, 성 수의 믿기를 거부하는 일부 현대의 과학자들은 “가짜 수의”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했지요. 그들이 시도한 어느 것도 성 수의가 갖고 있는 모습의 특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성 수의의 특징은 물감, 색소도 없고, 완벽한 사진술 특성을 지니며, 심지어 3차원(입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과학의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 과학자들이 성 수의의 완벽함에 거의 가까운 어떤 것을 만들 수 없다면, 어떻게 위조범이 500년 전에 그렇게 위조할 수 있을까요? 이는 분명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성 수의는 위조가 아닙니다.


5/과학
이 최초의 사진술에 나타난 모습은 과학계에 충격의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프랑스 과학학술회원인 이브 들라쥬(Yves Delage, 의학자 겸 동물학자, 1886~1908) 박사는 –회의(懷疑)적인 자료를 모아서- 토리노로 갔습니다. 그는 이 거룩한 사진이나 성상(성물)을 비웃곤 했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여서 항상 그 안의 해부적인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의사가 아닙니다....) 그는 성 수의를 분석했지만 실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성 수의가 지니고 있는 의학적 그리고 일반 과학적 설득력을 주장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싼 진짜 성 수의라는 자신의 견해가 담긴 수의에 관한 논문을 파리에 있는 학술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논문은 학술회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그는 그 학술회원들에게 대해 역겨움을 받아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성 수의는 과학계에 과제로 남아서 출발하였고, 오늘날에도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성 수의는 이브 들라쥬와 같은 의학박사에 의해 최초로 분석되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 한명인 (훌륭한 가톨릭 신자) 폴 비뇽(Paul Vignon)은 수의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수의에 관한 과학인 “리넨학(Sindonology)을 세운 설립자입니다. 수의가 앞과 뒤로 신체의 이중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치수가 반드시 맞아야 하고 또한 일치하니 꽤나 분명합니다. 화가/위조자가 이루어 내기 위해 힘든 시간을 가진 것은 공로입니다.

성 수의를 연구한 또 다른 유명한 박사는 “외과 의사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책의 저자인 바흐베(Barbet) 박사입니다. (이것은 불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갈보리에서의 의사”(A Doctor at Calvary)입니다)

의학계의 다른 박사들도 철저하게 수의를 연구하였고, 이 성 수의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로베르트 버클린(Robert Bucklin), 프레드릭 즈기베(Frederick Zugibe)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b) STURP(토리노 수의연구계획): 1988년, 토리노로 수의 이전(移轉) 400주년 기념을 위하여 공개적인 전시(展示)가 있도록 결정이 되었습니다. 3백 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있었는데,  전시(展示)시간을 늘려야만 했습니다. 에콘(Ecône)에 있는 모든 신학생들이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갔습니다. 그때 제가 이 성 수의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저는 이 수의에 대해 (직감적으로) 첫 눈에 반했습니다! 그 때에 미국 과학자 일행이 직접 단체를 만들어 그 단체를 STURP(토리노 수의연구계획)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 수의를 분석할 허락을 요청했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만져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대체 불가능한 유물이 파손될 어떠한 실험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과학자들은 말했습니다:”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아니예요. 별과 같은 거예요. 우리는 볼 수는 있지만, 그러나 만질 수는 없어요. 그래도 우리가 별을 연구할 방법이 있으니, 특히 분광학(分光學) 방법이 있습니다.” 즉 빛에 의하여 반사되는 그 빛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과학자들에게 5일을 주었습니다. 과학자들은 3톤이나 되는 과학장비를 가져왔습니다.

처음에는, 과학자들은 이게 가짜임을 분석하기가 매우 쉽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 살려볼 때 그 수의 위에 어떠한 색소(물감)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매우 강렬한 흥미를 보였고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1분 1초를 쓰기로 했습니다. 3번 이전을 했고 그들에게 할당된 모든 120 시간 동안 활동했습니다. 과학잡지에 몇년 걸쳐서 자기들의 결론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을 요약합니다:”지금까지 우리가 결론 내리는 것은 그 수의에 나타난 모습은 채찍과 십자가형을 받은 한 남성의 진짜 인간의 모습이지 어느 화가의 작품이 아니다. 피의 혈흔은 헤모글로빈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혈청 알부민에 대해 양성 반응을 보인다. 이 모습은 진행되고 있는 신비이고, 아마도 이번 과학자 단체나 또는 미래의 과힉자 단체에 의해 심층적인 화학적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로 남께 될 것이다.”

c) STURP 회원인 존 P.  잭슨(John P. Jackson) 물리학자는 화성에 있는 산(山) 입방체로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다 주는 3차원 (입체) 기술을 사용했는데, 그 기술은 수의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모습도, 심지어 사진으로 찍히지 않은 그려진 모습도 음영 때문에 그와 같은 만족스런 결과를 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심지어 더 높은 해상도를 가지고 수의로 부터 3차원의 정교함을 얻은 이탈리아 교수인 지오바니 탐부렐리(Giovanni Tamburelli)에 의해 확인된 것입니다. 

d) 직물 전문가들: 함부르그의 직물 전문가인 메히틸드 플루어리-렘브레그(Mechthild Flury-Lemberg)에 따르면, 천에 있는 솔기(이음매)는 사해(Dead Sea) 근처의 마사다(Masada) 요새에서 발견되는 1세기경의 직조물(織造物)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벨기에의 고헨 직물기술연구소 길버트 래(Gilbert Raes)의 평가에 의하면 직조되는 모양인 3:1의 능직(綾織- 낱줄과 씨줄이 서로 몇 올씩 건너뛰어 무늬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나타나게 옷감을 짜는 방식)은 1세기 시리아의 디자인으로 꾸준히 나오는 형태랍니다. 플루어리-렘브레그(Mechthild Flury-Lemberg)는 말했습니다:”토리노 수의에 쓰인 리넨 천은 1세기에 고급품을 생산하는 직물 노동자의 작품으로서 그 기원을 뒤집을 만한 어떠한 직조(織造)나 바느질 기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e) 꽃과 꽃가루에 관한 어느 전문가는 설령 꽃의 일부 종류들은 넓은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그 꽃가루가 항상 우리가 생각하듯이 자세한 것을 나타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꽃가루의 소재(所在)에 관한 위 역사를 확인 시켜주는 수의에 묻은 온갖 종류의 꽃가루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꽃가루는 엄격한 증거는 못되지만, 다른 과학 자료를  입증해줍니다.


6/탄소동위원소14로 입증하는 날짜??
그 천의 (제조) 날짜를 알아내기 위해 탄소동위원소날짜를 사용한 첫 제안은 거부되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에 (1960년대) 너무나 귀중한 이 대체할 수 없는 유물의 커다란 조각이 파괴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기술이 향상되고 작은 표본만이 요구되어서 탄소 실험이 다시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6년 9월 29일, 이 실험에 대한 의정서가 받아드려졌습니다. 이와 같은 의정서는 실험결과의 신뢰성을 보증하기 위하여 그 실험을 수행하는 데에 참여하여 동의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마련된 것입니다. 1986년의 이 의정서는 6가지 요점이 들어 있습니다:

1/두 가지 탄소실험이 있게 되는 데 하나는 새로운 방법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래된 방법이다.
2/7번의 실험이 있을 것이다.
3/”제어(통제) 표본”으로서 기원 (그리고 날짜)이 알려진 두 개의 다른 천이 있게 될 것이다.
4/블라인드 테스트(맹시험盲試驗)이 있을 것인즉, 세 개의 천(수의+2개 샘플)은 어떤 천이 어느 실험관에 담긴지 알지 못한 상태로 실험이 진행되는 숫자가 적힌 실험관에 있게 된다.
5/실험들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그래서 그 실험들이 자기들의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쪽의 실험결과를 알지 못하도록 한다.
 6/토리노의 대주교와 고등학술원회장이 참여하는 영국박물관의 합동감찰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 동의된 이 규칙들은 깨졌습니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오직 세 개의 실험실에서, 1/3이 의심이 가는 제어 (통제)표본을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 없이 진행되었는데, 나머지 두 개의 실험이 끝난 후 한 달간 이 실험을 행하여 그 결과에 접근한 한 실험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술원회장은 그 실험의 감찰로부터 배제되었습니다. 단지 한 개나 또는 두 개가 아닌 이 모든 규칙들이 이미 깨졌다는 사실은 결과의 신뢰성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던져줍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매우 큰 소리로 떠들었는데 그러나 나중에 - 왜냐하면 그 결과가 자기들이 바라는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을 묵살하고 결과를 받아드렸습니다.

동의한 날짜인 1988년 4월 21일, 수의의 3조각이 잘려서 무게를 재고 난 후 다른 두 개의 제어 표본과 함께 영국 박물관의 타이트(Tite) 박사에게, 그리고 1/3이 프랑스에서 온 비알(G. Vial) 박사에게 갑니다. 잘라내고 무게를 단 이 모든 활동들은 적절하게 비디오 촬영이 되었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서 타이트 박사와 토리노의 대주교는 성물 보관대 옆으로 가서 이것이 추가적인 것이고 분명하게 앞을 미리 내다 볼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봉투 안에 넣어둔 네 번째 샘플인 숫자가 적힌 철제 보관함에 이것들을 넣습니다! 옆의 성물 보관대가 촬영되지 않았고 비디오 기록도 안 되었다는 점에서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서 그들은 모든 나머지를 가지고 가서 실험실의 대표자들에게 보관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천이 각 보관통에 있다고 말했으니, 블라인드 테스트를 요하는 의정서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큰 의문: 만약 그들이 어떤 천이 어떤 보관통에 담겨있는지를 실험실에 말하는 것이라면, 왜 그리고서 보관통에 이 천들을 넣으려고 옆 성물 보관대로 가나요? 이것은 너무나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서 아리조나의 투손(Tucson) 실험실과 스위스의 취리히(Zürich) 실험실은 실험을 했습니다. - 그리고 그 결과는 14세기 후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 수의가 14세기 중반에 리레이(Lirey)에서 이미 존재했었다는 역사상의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실험결과는 너무 늦은 시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옥스퍼드의 실험실은 한 달 후에 실험을 했는데, 나머지 두 개보다 약 100년 앞선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를 함께 놓음으로써, 그들은 알려진 전시회보다 조금 이른 1325년이 중반쯤 되게끔 단지 좀 더  시기 범위를 넓게 잡아서 A.D 1260-1390으로 잡았습니다.

그 실험의 바로 그 보고서에는 사기(속임수)가 있습니다. 그 시험 결과는 Naturemagazine, Vol. 337, No. 6208, pp. 611-615,(1989년 2월 16일자)에 발간되었는데, 다음에 나오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shroud.com/nature.htm



그 속임수는 반올림으로 이루어져서 보편적으로 채택된 과학적 표준이 거부될 결과를 사람들이 받아드리게끔합니다.   표 2에서 데이터의 요약은 수의의 카이 제곱 값이 자유도가 2이면서 자유도가 6.4로 5 %까지 유의성을 반올림 하고있음을 나타냅니다. 자, 만약에 여러분이 직접 계산을 한다면, 유의성이 4.07% 이지 5%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반올림은 속임수(사기)이니, 왜냐하면 어떤 과학 실험이 결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하는 한계점이 5 %이기 때문입니다!


비전문가의 용어에 있어서: (마땅히) 다시 행해져야만 하는 실험에서 뭔가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결과에 의존 할 수 없습니다! 그 유의성이 적절히 계산된다면, 그 자체로 부과하는 결론은 탄소 연대 측정 실험에 의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드리도록 하기 위하여 그 유의성을 반올림하여 올리는 것은 사기(속임수)입니다.

과학 계산기를 가진 사람이 확인할 수있는 사기 사실을 감안할 때 동일한 실험에서 다른 사기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그 실험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주 흔히 많은 사람들이 선험적으로 배제하는 한가지 설명은 실험에서의 사기의 설명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에 관한 가장 가능성있는 설명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가능한 해결책을 나열 해 보겠습니다.

1 /성 수의는 실제 날짜가 AD 1260-1390 에서부터 시작된 중세의 위조품이다. 하지만 그러면, "21 세기에서 사용 가능한 가장 앞선 기술로도 수의의 모습에 관한 복사를 제작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중세 시기의 위조자에 의해서 저 수의가 어떻게 만들어져 집행(제작)되어질 수 있었을까?"(물리학 자 Paolo Di Lazzaro)

2 /성 수의는 진짜이지만 탄소 연대 측정은 신뢰할 수 없다: 이 방법의 신뢰성이 낮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특히 광범위하게 잘못 될 수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과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3 /결과를 왜곡한 곰팡이(균)의 코팅이 있다: 이제 천에 대한 계산된 날짜를 너무 많이 변경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그러한 곰팡이(균)가 필요할 것이며 STURP에 의한 현미경 검사를 할 적에 이러한 균류가 관찰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

4 /어떤 이들은 중세기에 언젠가 이루어진 "완벽히 보이지 않는 솔기(이음매) 수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제안: 그러나 그러한 "완벽한 솔기"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현미경으로는 보일 것입니다!

5 /화재가 탄소 함량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절단(된 부분)은 화재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지역에서 온 것으로 날짜를 많이 변경하지는 않습니다.

6/마지막 선택: 3개의 실험실에서 측정된 천이 수의의 천이 아니라, 옆방에서, 군중의 눈을 피하고 비디오 녹화도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옷감으로, 중세기에 기원을 둔 다른 천으로 교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죄가 입증된 사람이 자신의 증언을 고백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러한 사기(속임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를 재현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쉽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네 번째 표본의 존재를 설명 할 것입니다. 사실 네 번째 견본은 툴루즈(Toulouse)의 주교인 성 루이(St. Louis)의 대처에서 나온 것이고 비알(G. Vial)한테서 온 타이트(Tite) 박사가 물었습니다. 그 천은 정확히 "원하는 범위"였습니다: "문체의 세부 사항과 역사적인 증거라는 바탕 위에 그 대처는 AD 1290 - 1310 (필립 4세Phillipe IV 왕의 통치기간) 기간으로 날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비알(G. Vial)은 프랑스 우체국의 파업으로 인해서 이것을 타이트(Tite) 박사에게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보내는 것은 매우 신뢰할 수 없으므로, 그는 그 자신이 직접 가져 오기로 결정했고, 그리고 그날 타이트(Tite) 박사는 비록 또 다른 표본을 가져 왔지만, 그는 그것을 사용하도록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그 타이트 박사는 14 세기 초반에 나온 중세기의 천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이트 박사(Dr Tite)가 14세기 후반에 나온 중세기 천을 가져와서 "테베(Thebes)에서 나온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2세기 초기의 광고 미이라"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의 친구가 아니라 다른 이집트의 귀족)의 옷감으로 사용하고 건네주어, 옆 방의 수의와 함께 교환했다면, 모든 것이 쉽게 딱 들어 맞습니다. 또한 이것은 세 번째 샘플에 대한 결과를 설명합니다: 중년의 나이는 AD 37-44 년이며, 이는 그리스도 (나이)와 매우 가깝습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약 70 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귀하는 70 년이나 된 천에 귀족을 묻지 않았습니다!

타이트(Tite) 박사가 실험 보고서에서 한 가지 사기를 범했음을 고려해보면, 실험 자체 내에서 왜 또 다른 사기 행위를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의 사기 사실은 두 번째 (사기) 가능성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해결책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을 채택해야 합니다 : 성 수의에 대한 탄소 14 연대 측정 실험은 그 자체가 사기이며 성 수의가 사기는 아닙니다!

1 년이 지난 후 옥스퍼드 연구소의 홀 교수(Prof. Hall)에게 백만 파운드의 영국 돈이 주어졌음을 주목하십시오. 홀 교수의 성 수의에 관한 탄소 연대 측정 결과는 타이트 박사(Dr. Tite)가 장악한 그 대학의 새로운 고고학회장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주님을 판) 유다가 받은 은(silver) 30냥(세겔)이 (오늘날에는) 1,000,000 파운드로 성장했습니다!

7/ 탄소날짜 실험 이후에 계속된 연구
어느 섬유 전문가는 천의 표백이 8세기 이전의 고대 방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많은 최근의 방법은 직조(織造) 후에 큰 욕조를 사용하여 천 전체를 표백합니다. 고대 방법은 직조하기 전에 더 작은 욕조를 이용하고 실을 표백합니다. 각각의 욕조가 항상 다른 욕조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고대의 방법에서는 실이 균일하게 표백되어 있지 않고 일부 실들은 다른 실보다 더 어둡습니다. 최근의 방법에서는 한꺼번에 전체 천을 표백하기 때문에 균일하게 표백됩니다.  육안으로 관찰해도 - 심지어 이 사본에서도 - 표백이 고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으므로, 그래서 오래된 방법임을 지적합니다. 천은 8세기 보다 앞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성 수의에 대한 탄소 -14 를 이용한 방법은 올바른 날짜를 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동위원소 탄소-14에 의한 날짜 확인의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고 또한 자기들의 연구와 분석을 계속하면서, 탄소-14가 밝힌  공식 결과와는 맞지 않는 날짜를 주장하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최근의 모든 연구들을 면밀하게 따르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우리가 수행된 연구의 일부 몇가지와 관련하여 (결론 내리는 데에 있어서) 어떤 신중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한 방향으로 쉽사리 쓸려가고 (충분한 이유없이 성 수의의 진짜임을 부정합니다…) 또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습니다 (역시 충분한 이유 없이 진짜임을 편들어 특정한 명제를 주장합니다…)

어떤 특정한 주장에 관하여 특정한 수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티베리우스 케사르(Tiberius Caesar) 시대의 동전이었던 동전이 눈(eye) 위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닮은 점도 있지만, 그러나 저는 이것을 당시의 동전이라고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닮은 점의 몇 가지가 그런 단언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눈 위에 동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합법적인 의견이지만, 그러나 절대적인 확실성은 아닙니다. 꽃, 비문(碑文) 등등 꽤나 많은 다른 비슷한 것들도 역시 마찬가지 해당됩니다. 그것들은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분명함과는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문들은 이 성 수의가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묘사하는 모든 상처를 가진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과는 매우 다릅니다: 확실성으로서 이를 생각하게 될지 모를 호의적인 측면에서 이 사실은 참으로 많은 주장을 가집니다. 만약에 사람이 이 확실성을 부정한다면, 진짜로서 이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의문을 두어야 하는 상당히 많은 다른 이른바 "과학적 사실"이 있게 될 것입니다!


8/ 신앙의 빛 안에서의 성 수의
과학은 유용합니다. 과학은 신앙의 문 앞에 영혼을 가져다 주지만, 그러나 과학 그 자체로는 신앙으로 들어가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 수의에 대한 현대 과학의 분석에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성 수의 위에 나온 모습(이미지)가 빛과 관련된 특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진 음영의 속성; 3차원 입체의 특성; 히로시마에서의 방사선에 의해 야기된 이미지와 유사하게 섬유의 표층 산화 등의 속성입니다. 마치 이미지가 매우 강력하고 짧은 섬광에 의해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어두운 무덤에서! 그것은 바로 부활을 즉시 생각하게 합니다. 불행하게도 과학은 의지대로 복제되지 않기 때문에 부활을 실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성 요한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보라, 천주님의 고양(어린 양) 이로다!"고 지적한 것처럼 과학은 그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 안드레야와 성 요한이 예수를 따르다가 주님께서 돌이키사 그들에게 이르시길, “무엇을 찾느냐?” 저들이 예수께 이르되, “랍비여, 어디 거처하시나이까?”  “와서 보라.”(요왕1:38-39) 와서 보라. 우리는 성 수의 앞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와서 여러분들을 위하여 보세요! 성 수의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묵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눈은 감았고, 주님의 입은 수의 위에서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와서 자기를 보는 모든 영혼들에게 참으로 감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일찍이 400년 전에 선지자 즈카리아가 선언하였습니다:”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의 영과 기도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은 그들이 찌른  나를 바라볼 것이요,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獨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리고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張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즈카리아12:10)


“내 마음은 당신께 말씀 아뢰고, 내 얼굴은 당신을 찾나이다.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성영26:8-9)

”너희는 주를 찾으라 그러면 힘을 얻을 것이요:그이의 얼굴을 항상 찾을지어다.”  (성영104:4)

“너휘는 야훼를 만날 수 있을 때 그이를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이사야55:6)

많은 위대한 고대인들 가운데, 우리는 때로는 그들의 생애 기간에 만들어진 성상(성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그 누구도 실제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는 그분의 바로 그 그림(사진)을 확실하게 가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150 년 전 훨씬 전에 살았던 위대한 인물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일한 것입니다.

”어둠움에로조차 빛이 비칠지어다하고 말씀하신 천주께서는 천주의 영광에 대한 인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게 하시기 위하여 빛을 우리 마음 속에도 빛나게 하셨도다.“(코린토 후4:6)

이러한 말씀의 진리를 수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사, 우리 사이에 거처하신지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매, 곧 성부의 독생성자의 당연한 영광이요, 또 성총과 진리가 충만하시더라.“(요왕1:14) 천주성자를 보내신 천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요왕3:16) 그리고 우리와 살기 위해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의 구령을 위하여 죽으십니다: ”당신 친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 주신 자시니,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않으리요?“(로마8:32) 이 모든 것을 수의 안에서 봅니다 .


”내 손과 발을 보라, 곧 이 나로다. 만져보고 또 살펴보라. 대저 너희가 나의 살과 뼈가 있음을 보거니와, 영은 (몸과 뼈가) 다 없느니라.“(루까24:39) “손과 늑방을 저들에게 보이시니,  문제들이 이에 주를 뵈옵고 즐거워하는지라.“(요왕20::20)

”다음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가 손가락으로 여기를 짚어보며, 내 손을 살펴보고, 네 손을 들어 내 늑방에 넣어 보아 의심치 말고 오직 믿으라 하시니,“(요왕20:2) 우리는 수의에 대해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하나 하나를 바라보는 동안에, 성 이냐시오와 함께 우리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고통을 당하심은 나를 위하여 하신 것이다.” 바오로 성인 말씀하시듯, “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되신 천주의 아들께 대한 신앙 안에 사는“(갈라타2;20) 것입니다.

“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사랑 안에 거닐을지니라.“(에페소5;1-2) 주님을 닮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 지극히 거룩한 모습을 묵상하는 것보다 주님을 바라보는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보는 우리들은 다 이 (우러러봄으) 로써 항상 더욱 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化)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 만약 우리가 영광스런 우리 주님과 영원히 그 닮음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통받으신 주님과 더불어 그 고통 닮음을 견디어야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길, “성신이 친히 우리가 천주의 의자임을 우리 정신과 한 가지로 증언하시는 도다. 의자(義者)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 (로마:16-18)

우리는 또한 수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며,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 는 십자가 아래에서 이것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우리 성모님은 주님의 시신을 씻어서 우리가 이루 말할 수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슬픔과 사랑으로  이 천 위에 주님을 뉘었습니다. 마리아의 눈을 통한 예수님의 수난을 바라 보는 것, 이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성 수의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지만, 그분의 몸의 실체는 거기에 없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성체 성사에서는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의 몸과 성혈와 영혼과 천주성의 실체가 완전하고 실질적으로 그곳에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우월성을 지닌 성체성사는 그야말로 수의를 능가합니다. 그리고 미사에서는, 모든 그분의 고통의 모습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제헌하셨던 그리스도의 바로 그 희생이고, 그리고 이 희생제사는 진정으로 제대(祭臺) 위에서 제헌되는 것입니다.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