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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구속하고자 사람이 되신 천주성자 - 망 예수성탄(2017-12-2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1-05




우리를 구속(救贖)하고자 사람이 되신 천주성자 - 망 예수성탄(2017-12-24)



오늘 너희는 주께서 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아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드디어 오늘 몇 시간 후면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오늘 너희는 주께서 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아리라”고 초입경으로 우리는 노래했습니다. 오늘 미사에서 두 번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러면 첫째 우리는 주께서 왜 우리에게 오시는지를 묵상합시다. 둘째 주께서 성 요셉과 성모님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오신다는 것을 묵상합시다. 셋째 주께서 성 요셉과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오신다는 것을 묵상하고 마지막에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그러면 왜, 주님이 왜 우리에게 오십니까? 왜냐하면 천주는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애덕이시기 때문입니다. 종도 성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주는 사랑이시다.” 천주의 모든 내적인 생명, 삼위일체의 생명도 사랑의 일이지만 그 밖의 외적으로 하신 모든 일, 창조도 사랑의 일이십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을 더 크게 하기 위해 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이상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진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사랑으로써 창조하신다는 것은 오히려, 다만 당신이 가지신 무한한 행복, 무한한 선, 무한한 완성, 무한한 즐거움, 무한한 존재를 피조물인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원한 사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고 무로부터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연적인 생명과 초자연적인 생명을 주셨습니다. 천주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입장을 천주의 입장까지 올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천주의 자녀로서, 양자로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에와가 이것을 다 파괴했습니다. 천주의 사랑의 계율을 무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께서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주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외아들을 주신 것,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이상 무엇을 더 줄 수 있겠습니까?


천주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 거처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구속(救贖)하고자 사람이 되신 천주성자, Qui propter nos hómines et propter nostram salútem” Credo(신경)에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죄보다 더 큰 악은 없습니다. 죄보다 더 불쌍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보속하도록, 우리가 받아야 할 악을 대신  받기 위해 사람이 되신 천주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가 주께 바쳐야 할 사랑은 어떻게 해도 다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유 위에 사랑해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게 무한한 사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천주께서 성 요셉과 성모님을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모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과 성 요셉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가난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부유하고 행복하며 즐겁게 보인다면 ‘어서 오십시오’라며 환영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성모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천주의 모친, 위대하신 천주의 거룩하신 어머니이신,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천주를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된 여자, 뱀의 머리를 파괴하는 약속된 여자, 인류가 기대하고 있었던 구세주의 어머니, 우리를 위하여 천주의 나심을 주시는 어머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오지 말라고 거부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성모님과 성 요셉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다면 전 유데아가 환영하고 가장  좋은 방을 준비하여 ‘ 어서 오십시오. 모든 것은 성모님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구세주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외관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가난하고 초라한 노동자의 아기를 임신한 여인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많이 우리 마음에 방문하시고 노크하시면서 ‘마음을 열어라. 내가 너의 마음에 가고 싶다. 너의 마음에 태어나고 싶다. 받아들이라,’ 성모님과 성 요셉도 그렇게 우리에게 부탁하고 방문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거부했을까요? 왜냐하면 행복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고생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거부했습니다.


만약에 성모님과 성 요셉이 유 튜브,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다면 거부할까요? 의무와 숙제와 기도생활과 주일미사 가자고 오시기 때문에, 재미없기 때문에 거부했습니다. 예수께서 얼마나 큰 선물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거부했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보다 ‘다른 할 일 있다. 모바일 보겠다. 다른 사람들과 놀고 싶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셋째는 그래도 우리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때때로 받긴 했어도 말구유와 같았습니다. 너무 더럽고, 추하며 소와 말 등 동물만 가득한, 침대도 없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고 많은 노력을 하여 동물들은 다 치우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예수님만 내 마음을 사용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특별한 손님으로 방문했는데 그 나라의 수석들은 국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친구처럼 대한다면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하물며 천주께서 사람이 되시고 우리 마음에 오시는데 친구처럼도 하지 않고, 애정 없이 버림을 준다면 천신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주께서 그렇게 너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지 않을까요? 만약에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특별한 손님으로 방문한다면 그 나라에서 오직 그 대통령만을 위한 대접, 국빈으로서 아주 정중히 맞이한다면 그 대통령의 국민들은 얼마나 기쁠까요?


사실, 우리 마음은 말구유처럼 가난하고 초라하며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애, 동물들, 피조물들을 다 버리고 깨끗하고 정갈히 해서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 것으로 쓰십시오.‘라고 한다면 비록 말구유 같다고 하더라도  천신들은 기뻐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러면 우리는 마지막에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요? “오늘 너희는 우리 주께서 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아리라.” 오늘 주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의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누가 오시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오시는 분은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주의 주시오. 우리의 창조주시오. 사람이 되신 천주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천주이십니다.


그런 분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우리는 죄를 통회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피조물에 대한 애착, 죄에 대한 애착, 주님에 대해 반대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가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즐거움을 받으시고 우리 마음을 강복하실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말구유를 깨끗하게 하도록 성 요셉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성 요셉께서 말구유를 깨끗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혼자서는 못하지만 성모님이 도와주신다면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너희는 주께서 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아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