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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의 성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사-예수성탄 자정미사(12-2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02



천주의 성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사- 예수성탄 자정미사(2017-12-25)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탄 참례 날입니다.


“놀라지 말라. 만민이 다 즐거워할 바 큰 기쁨을 너희게 고하노니, 대저 구세주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오늘 다위 읍내에 탄생하시니라. 너희들이 이 표로 알 터이니 포대기로 싸 구유에 누인 영해를 너희가 얻어 보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200년 전 베들레헴의 목동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자 우리 성당까지 와서 포대기로 싸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기 위하여 자정 미사에 참례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저는 형제 여러분에게 같이 2가지의 묵상을 제안합니다. 첫째는 망부활 미사때와 같은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탄생하시는가?  오늘 왜 그렇게 나타나시는가?  둘째는 예수님의 그런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오늘 밤, 천주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천주는 사랑이시며, 영원한 사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성 알폰소에 따르면 “천주가 사랑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단지 이야기로 생각하며 믿지 않기 때문에  천주께서 '사람들이 나를 믿고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보이겠다.’고 천주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주의 사랑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천주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기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천주의 사랑입니다. 미사경문에서  성 바오로의 서간경을 보십시오. 성 바오로께서 오늘의 핵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구세주 천주의 성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사” , 너무나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오늘 둘째미사에서도 또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우리의 구세주이신 천주의 관후하심과 인애하심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셨나니” 맞습니다. 천주께서 당신이 누구이신지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셋째(낮)미사의 서간경에서도 성 바오로께서 말씀십니다. “천주께서 옛적에는 많은 방법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조들에게 말씀하셨으나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는 성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나니.”


예, 그렇습니다. 천주께서 말없이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천주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당신이 어떤 분인지 가르칩니다. 천주께서 사랑이요, 우리에게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구유로 가서, 예수 그리스께로 가서 목동들과 함께 믿읍시다. 천주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신앙이 약한 우리를 도와주십사하고 기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구유로 가서 흠숭하고 감사드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길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희망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신 첫날부터 우리를 위하여 너무나 험한 것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당신께서 대신 다 받으셨습니다. 첫날부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집도 없었고, 침대도 없었고, 추운 밤에 난방기도 없이 너무 가난하게 탄생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이기 위해 당신이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천주의 그런 사랑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궁에서 태어나셔야 하며 필요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부터 거부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얼마나 반대적으로 생활할까요? ‘새로운 것을 원한다. 새 휴대폰 필요 한다. 친구가 새 자동차 가지고 있는데 나는 없다. 나는 이것을 필요로 하는데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쁜 것을 해도 된다고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우리는 물질적으로 많은 불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모든 불편을 다 견디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께 얼마나 감사드려야 할까요? 우리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따라가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뉴스를 본다면 유명해지기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면 아무것이나 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불평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사람한테 그렇게 잘했는데도 감사도 없다.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 왜, 회사 사장님은 나에게 힘든 일만 시키느냐? 나는 부장으로 승진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불평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거부를 당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조용히 견디셨습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도 다 천주님의 뜻에 순명하고 관대하게 인내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 같으면 ‘천주의 어머니입니다. 왜 모르세요? 구세주의 어머니를 왜 모르십니까? 집이 없으면 안 됩니다.’ 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모님도 성 요셉도 겸손하게 욕을 받으시고 인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를 용서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보이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말구유로 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결심을 세워야 할까요? 천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흠숭하며, 모든 것을 천주께 희망하여 예수님 사랑에 사랑으로써 대답하십니다. 만약에 우리 주께서 처음부터 고통을 받으신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괴로움을 바칩시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내합시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구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