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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성신강림 후 제 8주일 (2018-07-1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5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성신강림 후 제 8주일(2018-07-15)


서론


성경이나 영적인 책의 저자의 글에서 자주, "천주님 자녀의 자유"에 반대되는 "죄의 노예"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인간의 자유 개념에 대해 몇 마디 말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성경에서 쓰인 이러한 표현을 이해하도록 도우며,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영적인 전투라고 부르는 것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천주님 계획안에서의 인간의 자유


천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천주님의 절대적인 행복 안에서 누리게끔 하실 목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결과는 2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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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결심한다는 것이고, 행복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바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궁극적으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합니다. 심지어 미친 일을 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그 미친 일을 할 때에 행복을 찾거나, 행복을 찾고자하기 때문에 그 미친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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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결과는 사람이 천주님 밖에서는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각형 모양의 물체는 같은 크기의 삼각형 모양의 구멍 외에는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인간이 천주님 밖에서는 인간의 행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의 고백록 말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 천주여, 당신을 떠나서는 어떠한 휴식을 찾을 수 없도록 당신은 우리의 마음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주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그 보답으로 우리가 그분을 사랑해주길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천주님께서는 사랑의 응답을 주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주님은 사람을 그 자신의 형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조 하셨으며, 즉 사람에게 그분을 알기위한 지성을 주셨고, 그분을 사랑하는 의지와 선택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분을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필요성 때문에 아니라 선택에 의해 사랑하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인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천주님의 놀라운 영광을 숨기셨습니다. 천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너무나 달콤하여서 우리가 천주님을 보면 그 매력에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는 계시와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만,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신 거울 속에서만 천주님을 압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천주님에 의해 어찌할 수없이 매력을 느끼지 아니하여, 자발적으로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래서 천국에 가기에 합당할 공로를 쌓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자유에 관해서 말할 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심리적 자유와 도덕적 자유를 구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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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자유"란 우리가 이 행동이나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이킹을 하거나 집에 머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 차를 사용하거나 버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은 심리적 자유를 잃은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거나, 이 행동이나 저 행동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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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자유"는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무엇이 옳은 것인가, 즉 천주님의 계명에 따라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훔치거나 훔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천주님은 분명히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의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천주님의 계명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따라서 나는 다른 이의 것을 훔치는 생각을 거부한다." 이것은 우리의 선한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천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덕적인 자유입니다.

 이제 이 강론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도덕적인 자유, 즉 무엇이 도덕인지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즉 천주님의 계명에 의해 무엇이 도덕인지, 그리고 무엇이 비도덕적인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원죄와 우리의 도덕적 자유


 마르틴 루터는 우리의 도덕적인 자유는 원죄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래서 (인간이 완전히 부패하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옳은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패에 빠진 인간은)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만약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므로 천주님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따라서) 천주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처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루터는 인간을 본능을 따를 수밖에 없는 동물의 수준까지 끌어 내렸습니다.

 진실은, 원죄가 우리의 능력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무지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그와 반대로 우리는 오류를 쉽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주 이상하고도, 때때로 어떤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가르침을 믿는 그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항상 놀랄만한 일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악의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보다 악한 일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혹으로 인해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수성은 약점과 강한 정욕에 의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약하고, 그러면서 항상 쾌락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원죄는 우리의 능력에 상처를 주었지만, 우리의 도덕적 자유 그 자체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선한 것을 선택하고, 악한 것을 거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된 대로 우리의 지성과 의지, 감수성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우리가 악덕이라고 부르는 나쁜 습관을 거듭할 때, 우리의 도덕적 자유의 사용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악덕은 진정한 노예가 되기 위해 뭔가 잘못을 저지르는 더 큰 능력입니다. 우리가 거의 저항할 수없는 충동입니다. 매일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컴퓨터에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데 익숙한 한 청년에게 한 주일 동안만 그것을 멈추도록 요청하십시오. 그것을 막기 위해 불순한 자기 학대에 중독된 누군가에게 물어보십시오. 그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의무를 지연시키는 데에 익숙한 사람에게 시간을 잘 맞추어달라고 부탁하십시오. 타인에 대해 대개 험담을 하는 이에게 그 험담을 막도록 부탁하십시오. 등등... 그리고 여러분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 나쁜 것을 정말로 멈추고 싶을지라도, 그들은 이것을 거의 관리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습관은 진정한 노예입니다, 적든 많든, 심각하던지 아니던지 영혼에 어느 정도 뿌리가 깊던 안 깊던... 노예지만 노예는 모두 똑같습니다. 반복적인 악습은 무엇이 옳은지 선택할 우리의 도덕적 자유를 상실하게끔 만듭니다.


은총의 필요성


 사실, 원죄(Original Sin) 이후로, 인간은 모든 죄를 항상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잃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너무 약해져서, 그대로 놔두어서, 오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쓸모없다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고, 우리 자신을 고쳐야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천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성총과 그분의 도움을 주시기 때문에, 천주님의 성총으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천주님의 성총은 우리를 인간의 존엄성으로 들어가게 우리를 회복시키며, 악을 거부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회복시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죄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그에게 영적인 건강과 도덕적 자유를 회복시킨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성화의 은총을 통해 우리가 천주께 더 일치하면 할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유혹에 저항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천주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더 무관심합니다. 성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천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최악의 범주에 속한 노예들, 저들의 열정에 매인 노예, 야망에 묶인 노예, 사람들이 저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노예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자유로운 척하며,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합니다.

결론


자, 만약 여러분이 도덕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즉, 옳은 것을 선택하고, 악한 것을 자발적으로 거부 할 수 있는 능력을 이해한다면,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의 자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에 의해 퍼진 자유에 관한 잘못된 정의입니다. 소위(所謂 - 이른바) 이 자유는 실제로 인간이 천주님으로부터 독립해야한다는 것을 구실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   인간의 자유란 천국으로 갈 공로를 쌓기 위해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단입니다. 걸작을 만들기 위해 조각가의 손에 있는 도구인 조각칼처럼 인간의 자유도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기 위한 우리 손 안에 있는 도구입니다.


■   만약 우리의 자유가 도구와 같다면,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부모인 여러분은 자녀에게 주는 교육의 주된 목적이 자녀들이 조금씩 저들의 자유를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하게끔 가르치는 것이니, 무엇이 옳고, 정직하며, 아름답고, 공정하고, 거룩한가를 선택하도록 훈련시키고, 자녀들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게하고, 그와 반면에 악의적인 것, 부정직하고, 추악하고, 불공정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거부함으로써, 자녀들이 통제되지 않는 열정의 노예로 이끄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  이제 젊은이들인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이었을 때, 여러분은 부모님께 순종했고 따랐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성장해서 여러분의 자유나,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신앙에 관한 훌륭한 훈련, 가족의 가치, 공손함, 훌륭한 사회생활 등등이 이제는 여러분의 개인적인 결정과 선택이 되어야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개인적이고, 친밀하며, 확신이 있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제안한 사기성이 있는 기쁨에 빠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영원한 불행에 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다고 증명할 그러한 개인적인 선택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하자 없는 마리아 성심이여, 우리가 인간의 자유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항상 도우소서. 아멘.


Fr. Etienue Demorn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