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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지자 요나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모습(부활 후 3주일- 2019-05-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13




요나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모습(부활 후 3주일- 2019-05-12)


도입


 여러분은 구약성경이 신약 성경에 대한 고지(告知)와 준비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가 행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음을 압니다. 우리는 부활절 시기에 있으며, 그분의 수난 이후에 죽은 자들로부터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은 구약 성경에 고지되었습니까? 예, 선지자 요나(Jonas)에 의해 예고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친히 그분 자신과 요나 사이에 연결고리를 세우 셨습니다.  "요나가 3일 밤낮에 고래 배속에 있었듯이, 인자(사람의 아들)도 3일 밤낮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마테오 12; 39).


 오늘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수난과 부활 안에서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합시다.

1. 요나의 불순명: 이야기 요약


 요나(Jonas)는 엘리아(Elias)와 엘리사(Eliseus)의 연속성에 있는 참된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엘리아와 엘리사는 이스라엘에서 자기 종족의 회개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일했지만, 그러나 요나는 이교도, 즉 니네베(Ninive-니느웨)에 사는 주민의 회개를 위해, 천주님에 의해 보내진 이였습니다. 왜 천주님은 그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셨습니까? 천주님께 너무나 반항하는 유태인들, 이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여기기 하기 위해서이니, 이방인들이 천주님의 경고와 계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유순함을 보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천주께서 선지자 에제키엘(Ezechiel)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만일 네가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때, 이방인인 그들은 네게 들으려고 할 것이나, 이스라엘의 집은 네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들으려하지 않을 것이 때문이며, 이스라엘의 집은 굳은 이마와 완고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Ez 3; 6).

 요나는 이런 전교(傳敎)사명에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 한 것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요나는 선지자들로부터 이방인들의 회개가 이스라엘 전교의 종말(終末)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여하간 그의 거부함에 대해 힘을 보태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나중에 말했듯이, 요나는 예언하기를, 천주께서 니네베의 백성을 천주님의 애덕으로 용서하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습니다. 도시 파괴에 대한 그의 예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써 그는 그가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바보처럼 보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함으로써 천주님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어떻게 그가 천주님을 피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천주님이 도처에 계신다는 것을 그가 몰랐습니까? 천주께서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그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천주님이 이스라엘 밖에서는 대체로 눈에 띠이게 개입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또한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멀리 도망감으로써, 요나는 천주께서 자기에 반대하여 아무런 일을 하시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는, 천주님께서는 요나의 뜻과는 반대하여 개입하셨습니다. 바다에 큰 폭풍이 왔지만, 요나가 있던 배에만 국한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이 폭풍이 자연적인 폭풍이 아니라 승객 중 한 명의 잘못으로 인한 것임을 신속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요나가 죄가 있는 자임을 알아차렸으며, 그리고 요나는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선원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풍을 저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그에게 정중히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나를 잡아 바다 속으로 던져라. 그러면 바다가  평온해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선원들은 승객 한 명을 바다에 던지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아주 어렵게 노를 저어서 해변에 도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헛되게되니, 폭풍은 너무나 강했습니다. 마침내 요나를 바다에 던져는 것이 천주님의 뜻임을 알게 된 그들은 훌륭한 기도를 행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네게 간청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이 사람의 생명을 죽이지않게 하시고, 무죄한 피가 우리 위에 놓이지 않게 하소서. 오, 주께서는 주님을 기쁘게 해 주신대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요나 1:14) 그들은 요나를 잡고 정중하게 전통을 말하고는 그를 바다 속으로 던지니, 바다는 분노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은 참 천주님을 믿고 그분께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2. 요나의 불순명: 신비한 의미


  이 이야기의 이 부분에서 요나가 어떻게 우리 주 예수님의 형상이었나를 지금 보도록 하겠습니다.요나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는 설교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에게만 그분의 설교를 제한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자기 딸의 치료해달라는 가나안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에서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곳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마테오 15 : 24). 주님은 종도(사도)들에게 이르시길,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 들어가지 말라. 사마리아인들의 성 안으로도 들어가지 말라"(마테오 10 : 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셨고, 예를 들면 그분이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을 때, 그런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과 죽음 이후에 천주의 아들이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아들, 인류의 영예와 영광이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수치스런 낙인(烙印)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멸시받는 인종이 될 것임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래서 유대인에게 개종할 수있는 더 많은 시간과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연장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배 위의 요나는 주님의 사명을 계속하기 위하여 주께서 설립하신 교회의 상징인 성 베드로의 배에 계셨던 예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바다 위에 폭풍이 몰아 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모든 증오와 질투 그리고 끔찍한 박해를 의미합니다. 폭풍을 진정시키고 구원 받기위한 유일한 길은 자기를 바다로 던져야 한다고 요나가 선원들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 죽음의 필요성을 사도들에게 여러 번 말씀 하셨습니다. 선원들이 처음에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를 거부했듯이, 종도들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천주님의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성 베드로는 명백하게 반대했습니다. 마침내 자신들의 죽음의 임박한 위험에 직면해있는 선원들이 자신들에게 강요당한 일에 대해 유죄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천주께 기도하면서 요나를 바다에서 정중하게 내려놓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어야했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위한 천주님의 뜻이었기에 행해진 것이나, 이것은 천주님께 드리는 진지한 존중과 겸손한 기도로 이루워졌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함으로 부끄럽게 다루었고, 그리고 오만하게 그들은 주님의 무죄한 피를 흘린 책임이 자신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떨어지길 호소했습니다.

3. 고래에 의해 삼켜진 요나: 이야기의 요약


 요나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요나가 바다에 버려지자마자, 천주님은 거대한 물고기를 보내 셨고, 거대한 물고기인 고래는 살아있는 요나를 삼키기 위해서라고 성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요나는 천주님의 분명한 기적으로 바다 깊숙한 고래 배 속에서 3일 밤낮 동안 살아있었습니다. 요나는  그 기간에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고, 고래는 이스라엘 해안에서 요나를 토해냄으로써, 그가 가서 니네베 백성에게 설교하기 위해 천주께서 주신 전교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4. 고래에 의해 삼켜진 요나: 신비한 의미


 고래 배 속에 있는 요나의 이 체류는 우리 주 예수님의 장사(葬事)와 부활에 대한 고지였습니다. "요나가 3일 밤낮 동안 고래의 배 속에 있었듯이, 사람의 아들도 3일 밤낮 땅 속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궁금해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3일 낮과 3일 밤이 아니고, 단지 약 36시간 동안이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은 이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이 부분의 하나를 가지고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이 유대인에겐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그날 중 단지 몇시간이었던 것을 “하루”로 부르거나, 또는 실제상 단지 밤 몇시간을 “하루 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 금요일의 마지막 시간 동안, 그리고 자정까지 밤 동안 무덤에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첫날과 첫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토요일 온 전체 기간에 무덤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둘째 날과 둘째 날이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일요일 아침의 밤 마지막 몇시간과 그날의 첫 몇시간 동안 무덤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3째 밤과 제 3의 날이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에게 가서 설교하고 그들의 죄를 위해 보속과 희생을 바치라고 가르치는 요나는 그분의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구속의 열매를  적용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결론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 예수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니네베 사람들은 이 세대와 함께 심판 속에서 일어날 것이고, 그것을 정죄할 것이라. 그들은 요나의 설교에 대해 보속을 행했도다. 그리고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자를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주의깊게 귀 기울여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을 바칩시다. 천주께서 니네베 사람들을 살려주신 것처럼, 그분의 자비로 우리를 구원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셨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드모르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