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성모송에 관하여- 성신 강림 후 제 22주일( 2019-11-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10



성모송에 관하여- 성신강림 후 제 22주일(2019-11-10)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성모송 기도를 자주 합니다. 이 성모송은 매우 위대한 기도이지만, 이 빈번한 반복으로 인해, 우리는 기계적인 반복으로 우리 주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비난했던 것을 받을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입술로 나를 존중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나와 멀어져 있노라”(마테오 15; 8). 우리가 성모송을 하는 동안 우리의 신심을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서, 저는 시토 수도회(Cistercian)의 영적 스승이신 성 예로니모(Jerôme)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성모송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1부: 대천사 가브리엘의 마리아에 대한 말씀


기도의 첫 부분은 성모영보 대축일에 대천신 가브리엘(Archangel Gabriel)이 사용한 단어(성모송“Hail Mary”)으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하례함으로써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 인사를 마친 후에, 혼자기도 할 때 마리아께 집중할 시간을 우리에게 주기위해 잠시 순간을 멈추어야합니다. 실제로, 그 기도에는 두 사람이 참여합니다: 성모님과 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그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에게 인사하고 대화를 계속하기 전에 그가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까지 기다립니다. 동정 마리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총이 가득하신”: 성 베르나르(St Bernard)는 이르시길, “천주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재물을 충만하게 마리아에게 두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모든 은총은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

마리아 안에서의 이 충만한 성총은 모든 영적인 부요(富饒)뿐만 아니라 모든 희망과 기쁨과 힘이 축복받은 성모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회서(Ecclesiasticus)의 이 구절이 축복받으신 성모 마리아께 적용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공정한 사랑과 두려움과 지식과 거룩한 희망의 어머니이다. 나에게는 길과 진리의 모든 은총이 있고, 나에게는 생명과 덕행의 모든 희망이 있다.”(집회서 24; 24). 우리는 마리아께 기도할 때 그분 성총의 충만함과 접촉하여, 이 성총을 통하여 우리가 필요한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 너와 한가지로 계시니”: 이 말씀은 또한 “주님과 함께하는 너(성모)”와의 상관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이 마리아와 함께 계시다면 마리아는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리아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반드시 예수와 함께 있으며, 마리아의 존재는 연결의 고리입니다! 축복받으신 성모님이 마치 예수님께로 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저들의 기도에서 성모님을 제외시키고자하는 개신교의 가르침이 성경에 얼마나 터무니없고 모순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의 신성하신 주님과 연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확하게 복되신 성모 마리아와 연합 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2부 : 성 엘리자베스(St Elizabeth)의 마리아에 대한 말씀


대천신 가브리엘의 간결하지만 의미 있는 말을 반복한 이후, 성 엘리자베스가 성신의 영감을 받아, “여인 중에 너 총복을 받으시며”라는 말로 우리가 기도를 계속합니다. 모든 인간과 모든 천신들 가운데서, 복되신 성모 마리아는 특히 천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편애 때문에 천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위엄 안에서 마리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우리는 성모님이 모든 여성들 가운데 복되시다고 언급합니다. 마리아는 진정 여자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주요 특징은 무엇입니까? 집안에서 사랑의 존재가 되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사람들이 집에서 편하게 느끼게 하고, 봉사하고 사랑받을 권리만을 요구합니다. 모든 여성들보다 다르지 않은 마리아는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하신 존재입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부드럽게 사랑하시고 우리가 영원한 고향(천국)에 도달하도록 우리 각자에게 완벽하게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그 대가로, 성모님은 단지 자식으로서의 우리의 사랑을 요구합니다.


“네 복중에 나신 예수 또한 총복을 받아 계시도소이다”. 아이는 보통 어머니에게는 모든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심지어 남편까지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제한된 관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은 우리에 대한 그녀의 모성의 기초입니다. 성모님의 모성의 보살핌은 예수로부터 우리 모두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실제로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분의 어머니와 성 요한(St John)으로 놀랍게 대체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의 아들을 보십시오”, “네 어머니를 보아라”: 그 순간 우리는 마리아의 자녀, 성모님 태중 속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리아의 자녀가 됨을 인정하는 한, 예수님만 복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도 축복도 받습니다.


제 3부 : 마리아에게 대한 교회의 말씀


이제 대천신 가브리엘과 성 엘리자베스의 인사말과 찬미를 마리아께 반복한 후, 교회는 성모송(Hail Mary)을 이어 가며, 모든 특권의 기초인 축복받으신 성모님의 위대한 칭호인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언급합니다. 모든 마리아론(Mariology) 또는 복되신 동정녀의 특권에 대한 학문은 이 제목인 “천주님의 모친” 안에 있습니다. 성모님은 천주께서 그녀를 원죄 없이 잉태하셨고, 어떤 개인적인 죄로부터도 보호 받으셨고, 예수님의 탄생 이전과 도중과 이후에도 동정녀로서 우리 주님의 고결하신 동반자가 되셨기 때문이고, 구속 사업에서 우리 주 예수의 친밀한 친구이시고, 죽음의 부패로부터 보호되어서 하늘로 승천하신 것으로 추정되며, 이제는 모든 은총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천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마리아가 신성(神性)의 경계에 이르게 합니다. 그 누구도 성모님보다 천주님께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까지 성모송에서 우리는 축복받으신 성모님에 대한 찬미의 연속성을 다루었으며 그분의 위대한 힘의 이유를 언급했습니다. 주님은 항상 성모님과 함께 계십니다. 성모님은 모든 여성들 가운데 축복을 받은 분입니다. 구세주 예수는 그분의 아들입니다. 성모님은 천주님의 모친입니다. 이러한 직함(職銜)으로 인해 마리아(Mary)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어떠한 은총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받는다는 확신이 넘쳐나면서, 마리아께 겸손한 요청을 제시 할 수 있습니다.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빌으소서.”라고. 여기서 우리는 놀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청하는 이 요청은 너무 짧고 너무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긴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성령운동파와 비교해보십시오. 실제로, 모든 것은 마리아께 대한 이 간단한 청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 실제로, 복되신 동정녀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때, 성모님은 천주님의 뜻을 경애하고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천주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은총을 주실 것을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천주께서 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때, 항상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구하고 얻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사항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 여기서 다시 묵주기도를 할 때, 잠시 멈추십시오. 왜냐하면 복되신 성모님께서 이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천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필요한 모든 은총을 얻어주시기에, 믿음과 소망과 애덕 안에서 성장하도로, 여러분의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이러저러한 유혹에 저항하고, 이러저러한 시련에 용기 있게 맞서 싸우도록 그런 은총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그 특정한 순간에 어머니의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빨리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죽을 때에". 우리는 선한 죽음의 은총을 얻기 위해, 다시 말해서 은총의 상태에서 죽도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다시 간구합니다. 이 은총은 우리 삶의 모든 공로를 입증하는 은총이며, 그것은 우리에 대항한 악마의 패배를 봉인(封印)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우리 존재의 가장 중요한 은총입니다.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한 권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위대한 성인조차도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천주님의 순수한 선물입니다. 천주의 모친이자 우리의 어머니께 탄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가 마리아께 밀착된다면, 성모님은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 존재의 결정적 순간인 죽음시기에 성모님은 분명히 우리를 저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해야 합니다.

예로니모 신부님이 마리아의 보호에 대한 그분의 확신을 표명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상에서의 나의 긴 여행기간 동안 내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숨 쉬는 그 순간에 이 짧은 순간에 성모님의 망토 끝자락 속에 나를 감싸달라고 탄원하고, 그 후로 그 문을 통해 지나감을 확신하며, 나는 갑자기 나타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은 나의 웃음을, 웃고 또 웃는 아기의 웃음소리인 나의 웃음을 들을 것이니, 왜냐하면 그분의 모친 덕분에 그분이 모든 것에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말로 표현하기에 참으로 소박한 성모송의 이 기도는 그 의미가 매우 심오합니다. 성모송을 반복하는 데에 있어서 결코 지치지 않도록 합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침략하는 지루함을 느낄 때, 각 문장에 나오는 기도의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그것은 우리의 신심을 소생시키고, 우리의 기도는 기도가 되게,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진정하고도 신뢰가 있으며 누군가와의 사랑스런 대화, 진정하고도 살아있으며 매우 집중하는 기도가 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친근하게 다가갑시다.


드모르네 신부(S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