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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동, 신뢰, 그리고 기도(2020 - 02 - 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2-09



노동, 신뢰, 그리고 기도(2020 - 02 - 09)

주인이 11시쯤 밖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왜 그대들은 하루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여기에 서 있느냐?
그들이 그 주인에게 이르길,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도밭 주인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도 포도원으로 가라."(마태오 20 장)

“너희들도 포도원에도 가라”라는 구절은 (주님께서) 일(손) 노동에 대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점에 관해 우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몇 가지 생각을 여기에 추가할 것이며, 또한 이는 우리에게 상기시키길,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어야 되며, 그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점이 천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이란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인)을 위한 일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정신)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 일에는 네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a) 원칙적으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이 필요하니, 이는 많은 땀을 흘림으로써 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아담은 들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19).
(b) 게으름(무료함)을 피하기 위해서니 나태함으로부터 많은 악이 오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3 · 29);
(c) 악한 정욕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일이 필요하니, 일은 우리 몸을 차지하고 피곤하게 유지하기 때문입니다.(코린토 후 6.5);
(d)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에페소 4, 28).

신자들로부터 부양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종도(사도)들은 그들 자신의 부양을 위해 손으로 일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바오로 성인은 왜 자신의 손으로 일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i. 그들은 영적인 이유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이 직분을 사용했기 때문에, 거짓 종도들로부터 전교 활동의 기회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ii. 그가 가르침을 전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코린토 후 12. 13);

iii. 나태 상태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테살로니카 후. 3. 8).
(그러나, 바오로 성인은 매일 전교 활동과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세 가지 종류 – 일손 노동, 지적 노동, 영적 노동)이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의 필요한 삶의 일부임을 알 수 있으며, 성 토마스가 노동이 (우리 몸의 유익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유익에도 매우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좋은 습관으로 (때로는 어려울지라도)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영혼과 기도의 구원 :


이제 세상은 식물/작물을 거두는 밭이 아니라 구원이 필요한 영혼의 넓은 추수(秋收) 밭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서에서 추수 밭에 필요한 많은 일꾼이 필요함을 알고, 천주님(추수의 주인)은 항상 영혼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조력자(助力者)들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인 천주님의 뜻입니다. 그분은 완전하게 정의로우시기에 이러저러한 여러 방법으로 구원의 모든 수단을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천주님 께 숨겨져 있는 신비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천주님께 구원의 선물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 알폰수스 데 리고우리(St Alphonsus de Ligouri)는 기도의 필요성과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몇 가지 이로운 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불신하십시오. 이는 종도께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당신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필립피 2:12).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항상 두려움에 휩싸여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힘을 불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주님의 은총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 없이는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 바오로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르길, 우리는 좋은 생각조차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본래 우리 것인 것이나 같이 본 힘으로 무엇이나 생각해 낼 수는 없느니, 우리의 재능은 이 천주께로조차 온 것이니라."(코린토 후 3 : 5). 성신의 도움 없이는, 보상을 받을만하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을 발음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무라도 다만 성신으로 인하여서만 ‘예수는 주님이시라’ 하는 말을 할 수 있느니라."(코린토 전 12 : 3)

심지어 위대한 성도들조차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자기 자신을 불신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성 필립 네리(St. Philip Neri)는 매일 아침 “오, 주님이시여, 오늘 당신의 손으로 필립을 지켜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필립이 주님을 배신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도시를 걸어갈 때 자신의 약점을 생각하면서, 자주 ‘나는 절망이구나, 절망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의 소리를 들은 어느 수사가 ‘저 성인께서는 진정으로 절망이라는 유혹에 빠졌구나’ 믿으면서 자기 자신을 고쳤고 천주 자비 안에서 그가 희망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불신하지만, 천주님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주님을 잃게 되는 참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을 크게 불신하고 천주님에 대해서는 큰 확신을 가지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또한 천주님에 대한 확신을 증가시킵니다. 이는 성 프란치스 데 살레시오(St. Francis de Sales)께서 우리가 자신의 힘을 불신할수록 우리는 천주 자비에 더 많이 신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같은 성인께서 이르시길, 이는 균형이니, 천주님에 대한 신뢰의 규모가 커질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의 규모는 더 내려갑니다.

성 치프리아노(St. Cyprian)는 이르시길, 천주 자비는 고갈되지 않는 샘(泉)라고 말합니다. 가장 큰 신뢰라는 그릇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그 샘으로부터 가장 큰 은총을 얻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위험과 죄 많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천주님의 은총 안에서 인내하는 데 큰 어려움을 눈앞에 놓음으로써 악마가 우리를 겁박할 때마다, 우리가 악마에게 대답하지 않고 눈을 들어 천주님을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선하심 안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지면 그분께서는 모든 공격에 저항할 수 있도록 분명히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내 눈을 들어 산을 보았도다. 그때부터 도우심이 내게 오도다."(성영 120 : 1). 그리고 원수가 우리의 약점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 종도 성 바오로와 함께 "나를 강화시키는 그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필립피 4:13)라고 말합시다. 나 자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천주님을 신뢰합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노출되는 가장 큰 멸망의 위험 가운데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하며,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의 손에 우리 자신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영생을 얻는다는 큰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주님의 어머니에게 우리의 약한 기도를 받아달라고 하고, 주님께서 그 기도를 거부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분의 아들의 보좌에 사랑스럽게 제시하시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패트릭 서머스 신부(아시아 관구 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