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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성심은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 – 성신강림 후 제 3주일(19- 6-3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04



예수성심은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 – 성신강림 후 제 3주일(2019- 6-30)


“네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죄인이 회개함에 대하여 천주의 천신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지난 금요일은 예수성심 첨례날 이었습니다. 오늘 미사에서는 예수성심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입경부터 영성체 후 축문까지 예수성심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성심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특히 예수성심과 오늘 복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합시다.


그러면 첫째, 예수성심은 무엇입니까? 예수성심 참례날은 3일전인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10일전에는 예수성체 첨례날 이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의 양식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성심 첨례날에는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그 원인에 대해 보이십니다. 이것은 즉,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이었습니다.


1678년, 300년 전에 예수성심께서 성녀 말가리타 마리아 알라코코에게 나타나시고, 당신 심장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인류를 이렇게 사랑하는 내 심장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천주의 심장입니다. 천주의 성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천주성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천주의 말씀의 페레소나에서 천주성과 인간성이 결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성심은 천주성심이요, 동시에 사람의 심장입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심장 뒤에 천주의 사랑이 계십니다.


왜, 천주말씀이, 천주성자가 사람이 되셨습니까? 왜 30년 동안 드러내지 않고 사생활을 하셨습니까? 왜 수난을 받으셨습니까?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왜 그렇게 성혈을 흘리고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까?  이것은 천주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무한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영원한 옛날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무한한 행복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성심은 천주의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천주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의 무 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무라기보다도 천주의 원수였습니다. 천주로부터 도망치고 천주께 악을 행하던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천주께서는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이 예수성심이십니다.


둘째,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성심께서 사랑을 보이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우리 인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우리를 찾아오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부인이 잃어버린 은전 한 닢도 우리입니다. 옛날에 은전은 보통적으로 임금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영혼도 천주의 모습으로써 창조 받았습니다. 그런 은전을, 우리 영혼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빛으로서 찾는 부인은 천주교회의 모습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오늘도 예수성심께서 우리를 찾아계십니다. 우리는 불쌍한 죄인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하고자 하십니다. 만약에 우리를 찾아 얻으시면 너무 기뻐서 잔치를 열겠다고 하십니다. 물론 바리사이파, 위선자, 예수성심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별할 겁니다. 어떻게 죄인이랑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죄인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을 만큼 자비하신 천주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찾아계십니다. 우리가 천주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예수성심의 사랑이 너무 큰 까닭이요, 천주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이것은 대죄를 범한 죄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매일매일의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활 하겠다고 결심을 세우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예수께서 원치 않는 일을 했을까요? 아침기도를 하긴 해도 얼마나 기계적으로 했을까요? 그렇게라도 기도를 하긴 했을까요?아예 하루 종일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우리가 위험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찾아오시지도 못하게 도망가지는 않았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지 못하도록 만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우리는 너무 약해서 혼자서는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우리를 찾지 못하게 도망치곤 했습니다.

 

그렇게 냉담하고 무관심하면서도 만약에 좋은 일을 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항상 계산하고 따지지는 않았을까요? 마음은 아니면서 벌받는 것이 무서워 억지로 좋은 일을 하지는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지는 않았을까요? 또한 우리는 바리사이파적인 태도로 예수님의 그런 사랑을 이해 못하고 구별하지는 않았을까요?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성심께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께서 영원한 사랑이심을 묵상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찾아주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예수성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 이제부터 예수성심께서 슬퍼하시지 않도록 하는 그런 성총을 구합시다.


“네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죄인이 회개함에 대하여 천주의 천신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