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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 안에서 걸으라 - 성 목요일 (2023-04-0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10


예수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 안에서 걸으라 - 성 목요일 (2023-04-06)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晩餐)에서의 긴 담화(談話)에서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주는 새로운 계명을 주노니, 곧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마치 내가 너희를 사랑했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할지라. 너희가 만일 서로 사랑하면, 모든 이가 이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요한복음 13:34-35). 성 토마스는 이것이 공포의 법칙과 반대되는 새로운 계명인, 사랑의 계명이라고 설명합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유익하고, 지혜의 시작이지만, 그러나 사랑의 계명이 더 낫습니다. 구약의 계명 바로 그 목적은 (신약의) 새로운 계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두려움에서 계명을 실천하나, 사랑에서 우러나와 계명을 실천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설령 천주님이 죄인을 벌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사랑은 여전히 계명에 순종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가지를 원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 천주님의 거룩한 뜻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이미 사랑의 계명은 아니었다고.... (그러나) 실제로 신명기에는 "너는 너의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해 너의 천주를 사랑하라"(신명기 6: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웃에 대해서는 이미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수를 추구(追求)하지 말고, 동포를 원망하ㄷ지 말라. 너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레위기 19:18).
 
심지어 바리세인조차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교법 학사 하나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스승이여, 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 가라사대, “교법에 무엇이라 쓰여 있으며, 또 어떻게 읽었느뇨?” 그는 대답하되, “너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모든 힘과, 모든 뜻으로, 상주 네 천주를  사랑하고, 또 네게 가까운 자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저에게 이르시되, “너 바로 대답하였으니, 이대로 행하라. (그러면) 곧 살리라."(루까 10:25-28).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그 계명을 들었고, 그 계명을 지적으로 알았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속적인 재물과 사회적 위치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계명은 로마군대의 성지(예루살렘) 점령과 함께 그들이 볼 수 있는 세속적인 형벌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눈을 뜨지 않고 천주님의 계명, 사랑의 계명을 계속 무시했습니다.
 
정말로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동일하신 천주, 그때 이미 사랑이신 같은 천주, 사랑의 계명, 자비의 계명을 주신 동일한 천주이십니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선지자 등 구약성경의 위대한 성인들이 이해했지만, 많은 이들은 떠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새로운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기도합시다.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노니, 곧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마치 내가 너희를 사랑했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할지라.”(요왕 13:34).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나요? 그분은 조금 전에 같은 담화에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느니"(요한복음 1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성체성사를 제정(制定)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바, 내 몸이니."(코린토 전 11:24) 그리고 "이것은 새로 언약하는 내 피니, 많은 이를 위하여 죄 사하기로 흘릴 바니라."(마테오 26:28)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처럼) 그들을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진정한 선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바칠 준비를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는 것,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 담화의 첫머리에 요한은 이르길, "파스카 첨례날 전에 예수 이 세상을 떠나 성부(聖父)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알으시고, 세상(世上)에 있는 그 제자(弟子)를 이미 사랑하셨고, 또 끝까지 사랑하셨느니라"(요한복음 13:1)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그분은 끝까지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이나 자신을 그분의 종도들에게 바쳤습니다. 처음에는 성체성사에서, 그 다음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두 번이나 그분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고 완전히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체성사에서 진정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몸, 피, 영혼, 천주성 전체를 받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랑을 섬김에 있어 천주님의 전능하신 힘의 효과인 이 경이로운 성체성사에서 우리 각자에게 완전히 자기 자신을 주십니다: 오직 천주님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모든 것을 바치십니다. 그분의 온 몸이 상처(傷處)를 입었고, 그분의 모든 성혈을 흘렸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의 종도들에게 명령하신 사랑의 기준, 모범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기심을 가질 여지도 없고, 미온적일 여지도 없고, 주저할 여지도 없습니다: "네 온전한 마음과 네 온전한 영신(靈神)과 네 온전한 힘으로 네 주 천주를 사랑하라."(말구 12:30)와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랑했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요왕 13:34). 에페소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너희는) 사랑 안에 거닐을지니라."(에페소5:1-2)하신 성 바오로는 이 위대한 계명의 올바른 모방자입니다.
 
이 사랑의 최고의 덕행은 바로 거룩함의 본질에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인들을 활기차게 하는 큰 힘(미덕과 덕행)이었습니다. 성인들은 최대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거룩한 덕행을 행하기 위해 매우 조심스러웠고, 성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이라함은 이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니라."(요안 1서 3:11) "친애하는 자들아,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대저 사랑은 천주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인 연고이며, 또한 무릇 사랑하는 자는 천주께 낳음을 받았고 천주를 인식하는 연고니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천주를 알지 못하느니, 대저 천주는 사랑이신 연고니라. 우리에게 대한 천주의 사랑은 천주 우리를 당신 독생성자로 인하여 살리시고자 저를 세상에 보내신 여기에 나타났느니라. 사랑이란 이런 것이니라. 곧 우리가 천주를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천주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에 당신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제(贖祭)로 보내신 것이니라. 친애하는 자들아, 천주 우리를 사랑하심이 이와 같으신즉, 우리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여야 하느니라. 어느 때를 물론하고 아무도 천주를 보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천주(天主)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전하니라."(요안1서 4:7-12)고 끊임없이 되새김니다.  
 
이 새 계명을 주신 후에, 위에서 여러분이 들은 대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서로 사랑한다면 모든 이가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요왕 13:3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기 한국에 있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적용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실하고 깊은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위하여 서로 섬기며, 여러분이 돕는 이웃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많은 이교도들이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거룩함과 참된 사랑의 본보기로 이교도들이 주께로 개종되기를 바라십니다. "너희가 만일 서로 사랑한다면, 모든 이가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라."(요왕 13:35).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본보기는 개종을 향한 많은 이교도들의 마음을 끄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여러분이 쉽게 볼 수 있듯이 이 사랑은 모든 덕행의 패턴, 즉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코린토 전 2:2)을 생각하는 신앙 생활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주간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항상 눈앞에 있다면, 여러분이 끊임없이 주의 수난을 기억한다면, 여러분은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은 천주님의 은총을 통해 주님을 모방하고, 무엇보다도 천주님과 천주님을 위하여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할 힘을 찾을 것입니다.
 
성 예로니모(St Jerome)는 이르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하고 다정한 이웃뿐만 아니라, 완고한 사람조차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때, 주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라"(마테오 5:44)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전함, 사랑의 완전함을 명령하시는 것이며, 이에 대해 주께서 가장 먼저 모범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주님의 도움으로, 그분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온전히 사시고 통치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미사에 참례하고, 친생명 활동에 참여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특히 신앙의 진실에서) 교육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천주님의 계명에 대한 모든 충실한 실천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가족 기도로 인내심과 겸손, 상호 도움과 신앙의 진정한 삶을 사는 참 사랑의 모범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딱 한가지 소망, 사랑의 실천으로써 예수님께서 우리 안과 우리 주변을 통치하시길 바라는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완벽한 사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