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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성심을 보라 – 성신강림 후 제3주일(2023. 6.1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7-19


내 성심을 보라 – 성신강림 후 제3주일(2023. 6.18)


“한 죄인의 회개함에 대하여 천주의 천신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지난 금요일은 예수성심 참례 날이었습니다. 예수성심 참례 날의 핵심은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천주성자께서, 무한히 위대하신 창조주,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각각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무한한 사랑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써 우리를 계속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둘째 핵심은 그런 위대한 사랑 앞에서 인류는 대부분 무관심과 냉담으로써 대답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해 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핵심은 이런 사실을 아는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랑으로써 대답하기를 원하고, 인류의 무관심과 냉담과 만행을 보속하고 갚기 위해 우리는 사랑과 희생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성심 첨례 날의 핵심을 묵상했는데, 오늘 복음을 본다면 이것이야 말로 예수성심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복음입니다. 양 99마리를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신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찾으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보면,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천주께서 사람이 되시고 우리 찾아 이 땅에서 오신 것, 왜 천주께서 사람이 되셨을까요. 왜 천주께서 우리랑 함께 생활하셨을까요? 천주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왜 천주의 성혈을 다 흘리시고 고통 받으셨을까요? 왜, 죄인인 우리를 찾으셨을까요? 모두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신 일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착한 목자로서 우리를 얻기 위하여 모든 고통을 다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주께서 우리와 더불어 계시기를 원하시고 성체성사가 되시고, 빵이 되시고 감실 속에 세상 마지막까지 온 세상에 동시에 계십니다. 왜, 천주께서 빵이 되셨을까요? 우리의 양식이 되셨을까요? 그런 필요성이 있었을까요? 의무가 있었을까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셨을까요? 유일한 이유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체성사로 계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수많은 모욕을 받으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저지르는 그 많은 모독과 불경을 받으면서도 ‘못 견디겠다. 그만두겠다.’라고 하시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우리와 더불어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용서를 주시고, 우리에게 많은 성총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코코에게 예수께서 300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성심을 보라.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 비우고 소모한, 내 성심을 보라. 그러나 인류의 대부분은  배은망덕, 경멸 , 불경, 신성모독 그리고 무관심과 냉담으로 대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그런 위대한 사랑이 우리의 무관심과 냉담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지막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결심을 세워야 할까요. 우리도 잃어버린 양의 한 마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모든 천신을 두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무관심 그리고 냉담은 무엇일까요. 만약에 우리가 ‘예 예수님, 알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내일에 다 잊어버린다면 이것이 참된 감사를 바치는 것일까요? 이것은 주님의 사랑을 그냥 관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성체성사를 보고난 다음, 다 잊어버리고 우리 생활을 고치지 않는다면, 매일 기도도 하지 않고 생활 한다면 이것야말로 냉담으로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시지 잘 생각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합시다. 예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가 계속 냉담한 죄의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거룩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더라도 성녀 막달레나 마리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베드로처럼, 천주교 신자를 박해하고 있었던 바오로처럼, 나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죄의 생활과 냉담한 생활을 보냈더라도 이제부터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파티마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슬프셨던 천주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왜 주님이 슬프셨을까요? 하늘에서 왜 행복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 벌로서 받아야 모든 괴로움을 생각하시고 슬픈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이 너무나 슬프셨기 때문에 성모님도 슬프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성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제부터 좋은 결심을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사랑하는 생활을 시작합시다. 이것을 위하여 성모께 특별한 성총을 구합시다.  

“한 죄인의 회개함에 대하여 천주의 천신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