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희생제사와 이를 통한 구원계획(1) -성신강림 후 제8주일(2024-7-14)

인간창조와 원죄

사랑하는 형제 자매 교우 여러분, 

천주교 신앙의 핵심이요 그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와, 이를 통한 인류 구원 계획에 관한 내용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4주간에 걸쳐 강론을 통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십자가 희생제사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앞서, 오늘은 먼저 천주님의 창조 섭리와, 우리 첫 조상의 원죄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

1. 천주님의 창조 사업 계획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천주께서, 당신의 모상을 그대로 닮은 피조물, 창조물을 지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며, 인간은 전 창조사업의 최종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 중심 자리를 차지합니다.

(1) 인간의 창조 :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천주자녀로서의 창조

그러나 천주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단지 그 본성적인 생명만을 지닌 채로 창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총을 통해 천주님의 생명 수준으로 들어올려지지 않은 자연적 상태. 감각을 인지, 사고와 추론, 자유의지로 결정하는 등의 인간적 활동을 영위하는 생명체)

이 인간의 본성적인 생명을 기반으로 하여, 천주님 본인의 생명을 친히 수여하신 상태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영혼 안에 상주하는 이 천주님의 생명의 성총을, 신학 용어로 '상존 성총, 성화 은총'이라고 합니다.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채로 창조된 인간은, 그 첫 순간부터 천주님의 아들, 창조된 신의 자격으로서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2) 인간의 사회성 (social being)

또한 인간은, 단순히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 창조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자손을 낳아 번성함으로써 인류사회를 구축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에와(이브)가 빚어졌을 때 인류의 첫 혼인 결합이 이뤄졌으며, 부모와 자녀가 이루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인류사회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 공동체로 마련되었습니다.

(3) 인간의 사명 : 천주님의 자녀를 세상에 빚어냄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채로, 또한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던, 인간의 그 존재 목적과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렇게까지 특별한 섭리를 받아 창조되었음을 감안해 볼 때, 그 사명 또한 평범한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사명은, -스스로의 그 어떤 공로나 행적 없이 오직 천주님의 자비와 관대하심으로 받은- 이 소중한 천주님의 생명을 잘 보존하고 ,이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자녀를 세상에 낳고 번성하여, 천주 자녀들의 사회 공동체, 즉 천주 왕국을 이 세상에 이룩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이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을 천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섭리하셨습니다. 인간에게 먼저 계명을 주시어 이를 지키도록 명하신 후, 인간이 자유로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에 순종하는 협력 과정을 통해 그 사명이 완수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셨던 이 계명이 바로 동산 한 가운데에 있는 선악과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이 협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인간이 지니고 있던 천주님의 생명을 공고히 하고 소유하게끔 섭리하셨습니다.

2. 원조의 시험과 타락

이 과정에서 원조를 시험하는 도구로 이용하신 것이 사탄, 뱀이었습니다. 

뱀이 원조를 유혹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이 유혹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공을 쌓게끔 하고, 이와 동시에 사탄에 대한 최종 판결과 단죄를 이행하시려는 것이 천주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안타깝게도 우리의 첫 원조는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선악과 나무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천주님의 말씀을 이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뱀의 유혹, 사탄의 말대로 행동함으로서, 천주님의 계명을 거슬렀을 뿐만 아니라, 시험에도 실패하였으며, 천주님께 반역하는 죄를 저지른 처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원죄로 인한 그 결과와 영향

이 원죄로 인해 원조에게는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요? 우선 아담과 에와는, 이전까지 누리고 있었던 천주님의 생명을 그 즉시 잃어버렸습니다. 상존 성총, 성화 은총을 잃은 채 단순한 인간적 존재로 떨어졌고, 심지어 천주님의 원수가 되는 처지로까지 전락하였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거슬러,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되고자하는 교만을 통해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 이로써 인간은 정의적 차원에서 천주님께 무한한 보상을 드려야하는 입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피조물 중 천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피조물인 인간, 천주님의 자녀 자격으로 창조되었을 정도로 천주님과 가까웠던 인간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신 천주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였기 때문입니다.

- 또한 자발적으로 사탄의 말을 들어 죄를 저지름으로써 사탄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종살이의 시작이라고도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 내부의 모든 기능과 활동들에 무질서와 혼동이 초래되었습니다. 태초 상태에서는 그 모든 기능들이 천주님을 그 으뜸 자리에 둠으로써 모든 것이 조화와 질서 가운데에 있었지만, 죄로 인하여 이 질서는 흐트러졌으며 각 기능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깨짐으로써 무질서하게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망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되었고, 인간은 합리적이고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늘 이 그릇된 욕망을 극복하여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죽음의 운명에 처함

이러한 영향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의 운명입니다. 원죄 이후의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태초 천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천주님의 생명이 잘 보존되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성화 은총에 보태어) 추가로 과성은혜들을 내려주셨는데, 이 과성은혜 중에 한 가지가 죽음으로부터 면제되는 은혜, 즉 불사불멸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원죄 이후 이 은혜는 거두어졌고, 그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로서 육과 영이 분리될 수 있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을 겪은 이후에도 그 영혼은 영원의 벌을 겪게 되었습니다. 인간 영혼 내부에 천주님을 거슬러 저지른 이 죄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가, 무한하신 분이신 천주님을 대상으로 죄를 저지른 결과입니다.

(3) 원죄의 전파 : 모든 인간들에게 전해짐

이 원죄의 문제는 아담과 에와에게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연관된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천주님께서 첫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단순히 개인적 인간 존재로 창조되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아담은 그 이후에 이어질 모든 인간들의 머리요 첫 근원으로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아담이 인간에게 주어졌던 태초의 그 사명을 잘 수행해내었다면, 온 인류의 수장으로서의 그 자격으로 인하여, 자신의 그 행위와 공로가 전 인류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사실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 즉 모든 인류는 천주님의 자녀로서 천주님 생명을 누리게 되는 은혜를 손쉽게 입었을 것입니다.

같은 논리가 원죄에도 적용이 됩니다. 인류의 대표, 수장으로서 저지른 이 원죄는, 모든 후손들에게 세를 거듭하여 내려감으로써 전 인류가 죄의 영향과 지배 아래에 속하게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구원사업의 섭리 (다음 주 강론의 예고)

참으로 처참한 상황입니다. 온 인류가 천주님과의 단절된 상태, 심지어는 천주님의 원수로서의 처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단절된 관계 사이를 이어줄 다리, 교량이 필요하지만, 인간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이 상태를 벗어나게 할 자격을 지닌 이가 없습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이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일개 피조물이며, 천주님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단한 상황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천주님께서 친히 제2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리스도 친히 사람이 되시고 둘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셨으며, 이 모든 문제 상황을 해결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이 구원사업의 섭리는, 창조사업의 섭리보다도 더 위대한 자비의 섭리입니다. 이 구원사업과 관련된 내용들은 다음 주 강론에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천주님의 창조계획과 원조의 타락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 우선, 인간이 천주님의 사업에 동참하고 그 공로를 쌓음으로써 천주님의 생명을 영원히 누리는 보상을 받게끔 하셨던 천주님의 크신 사랑의 섭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특징 (남자와 여자로 창조됨)과, 그 둘 사이의 혼인 결합을 살펴보았습니다.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자녀를 그 열매로서 맺어내는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이들은 필수적인 조건들입니다.

또한 가족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상의 천주 왕국의 실현'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가족은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입니다.

2) 다음으로, 원죄와 인류의 타락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원죄의 결과로 인해 천주님의 생명을 잃었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으며, 영원한 벌까지 맞게 되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였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해 봅시다. 우리의 근원과 관련된 이 중요한 내용들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단지 지식을 아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이로부터 영적 열매들을 거두어 들인다면 우리가 더 나은 영성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세상과 마귀의 공격과 그 전략을 명확히 인지하는 열매를 거두어 들일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교회의 가르침대로의 혼인관계와 그 결합, 이를 바탕으로 한 가족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을, 세상과 마귀의 세력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자명한 현실입니다. 이혼, 피임, 낙태, 동성애와 동성혼의 허용 등 명백한 죄들이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들입니다.

두 번째 열매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들어볼 수 있습다. 천주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살면서 많은 유혹과 시련을 마주하다 보면 자주 고립감을 느끼며 실망하여 주저앉기 쉽상입니다만,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단순한 개인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는, 여러분이 속한 가족과 그 공동체 속에서 또 하나의 시작점으로서, 천주님께서 이룩하시고자 하는 영혼구원 사업의 소중한 도구인 것입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과 역할들이 분명히 있으며, 우리는 이들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지막 열매로는, 진실된 통회와 천주께 대한 깊은 감사입니다. 죄가 얼마나 비참하고 심각한 것인지, 그로 인한 영향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인지함으로써,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통회를 통해 변화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성화 은총, 이 소중하고 귀중한 천주님의 생명에 대해서 깊이깊이 천주께 감사를 드림은 물론이요, 우리의 이 겸손된 감사의 태도를 기반으로 천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는 영성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주님께서 당신 모상으로 친히 아름답게 지어주신 태초의 인간 상태로의 회복을 위해,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천주 자녀로서 마땅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모든 영혼들이 천주께로 되돌아오고 온 인류가 구원되는 그 기쁨의 날을 기대하며, 곧 이어지게 될 미사를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천주님께 봉헌합시다.

"천주께서 당신 모습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도다. ... 그들을 사내와 계집으로 창조하셨도다..." (창세 1:27).

"천주 야훼께서 땅에서의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내어, 그 콧구멍에 살리는 넋을 불어넣으시니, 이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느니라" (창세 2:7).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