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희생제사외 이를 통한 구원 계획(2) - 성신강림 후 제9주일(2024- 7- 21)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인류의 천주생명 획득과 죄에 대한 보상

친애하는 형제 자매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한 인류 구원 계획’에 관한 배경 내용으로서, 인간의 창조와 원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인간은 창조된 첫 순간부터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천주님의 자녀로서 창조되었고인간의 사명은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천주 자녀를 세상에 낳고 번성함으로써 천주 왕국을 이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죄로 인하여 이 계획이 좌절되었고, 천주님의 원수가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십자가 희생제사가 어떤 방식(by which mode)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는 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인류의 천주생명 획득’(by mode of merit)과, ‘죄에 대한 보상’(by mode of atonement) 이렇게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 : 천주 생명의 획득

(1)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한 천주 생명의 획득

예수님께서는 갖은 고문과 수난을 거치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초점을 예수님과 천주님 사이의 관계로 맞추어 상황을 조명해 봅시다. 먼저, 예수님의 입장을 바라봅시다.

단 하나의 죄도 없으신, 온전히 결백하신 분께서 갖은 고문과 수난으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정의에 어긋나는 부당한 처우를 당하신 것이죠. 다음으로, 이를 대하시는 천주님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주님께서는 온 우주와 만물을 주관하시는 심판관이시기에,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할 시 이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십니다. 심판관이 인간일 경우에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됩니다. 

부당하게 잃은 재산을 회복하도록 명령하거나, 범죄에 대한 처벌 등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가 부당하게 그 생명을 잃었을 경우에는 이에 대한 회복의 조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모든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정의를 위해 본인의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에게, 잃었던 그 생명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천주 왕국의 진리를 가르치셨던 진복 팔단에서도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의를 위하여 군난을 받는 자는 진복자로다.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요.” (성 마테오 5:1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 죽음을 맞이하심으로써 그 죽음으로 잃어버린 본인의 생명을 되찾을 공로를 쌓으셨고, 이에 대하여 천주님께서는 만유의 주관자요 정의를 집행하는 최고 심판관으로서, 불의하게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께 그의 생명을 회복하시는 정의의 섭리를 펼치셨습니다.

(2) 획득한 천주 생명이 인류에게 전파됨 : 그리스도의 신비(Mystical Body of Christ)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시다. 불의하게 죽음 당하신 예수님께 그 생명이 다시 주어지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만, 죽음의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인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엄격한 정의에 입각해서 바라본다면, 인류는 여전히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어 보입니다. 생명을 되찾을 공로를 쌓은 것은 예수님이셨지, 죄 중에 있던 인류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 주 강론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상기해 봅시다. 

아담은 인류의 첫 조상으로, 모든 인간의 머리로서 창조되었고, 그로 인하여 원죄의 결과가 모든 인류에게 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로 새 인류의 머리/수장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행위, 십자가상 죽음의 이 행위 역시, 영적으로 쇄신될 새 인류의 대표로서 거행되었기에, 그 공로의 효과가 새 인류 모든 이에게 전해지는 것이 가능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공로의 효과가 우리에게 전해지려면, 이를 위한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아담과 예수님의 머리/수장으로서의 자격(headship)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전파된 방식은 육적인 방식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자손 생성 과정을 통해 각 후손은 아담에게 육적인 차원에서 연결되어, 아담을 머리로 하는 인류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결합되는 방식은 영적인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인 유기체에 각 영혼이 결합됨으로써, 그리스도가 누리는 이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생명은 십자가 죽음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되찾으신 당신 본인의 생명(단순한 인간적 생명이 아닌 천주님의 생명)입니다. 아담이 잃었던 상존 성총/성화 은총을 영혼이 다시금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상태에 처한 각 영혼이 천주님의 생명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합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영적으로 결합되어, 천주 생명을 지닌 새로운 인류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렇게 그리스도께 결합되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세례성사입니다. 이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써 천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이 가톨릭 교회,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가톨릭 교회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

을 온 세상과 온 세대에 걸쳐 이어가고자 하신 것입니다. 

2.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룸 (atonement)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의 공로 관점에서, 십자가 희생제사가 인류 구원을 어떻게 이룩하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 두 번째 방식은 ‘죄에 대한 보속/보상’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천주님께 가해진 불경을 기워 갚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본인의 생명을 천주께 바치셨습니다. 이 봉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천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최고의 봉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천주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순명으로써 바치셨을 뿐 아니라, 가장 참혹한 수난을 겪으심을 통해 봉헌하셨습니다. 또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창조된 만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가치가 있는 최고의 보물, 최고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값비싼 재물도 인간의 생명과는 비교될 수 없고, 예수님의 생명은 한 점의 죄도 없이 결백하고 가장 거룩한 이의 생명이었으며, 또한 사람인 동시에 천주님이셨던 분의 생명이기에 그러합니다. 

당신의 이 고귀한 생명을 천주께 바치심으로써, 인간이 끼쳤던 모독과 불경의 정도를 훨씬 뛰어 넘어 천주님께 그 보상을 바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의 그 효과를 어떻게 인류가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개념이 여기서도 중요하게 적용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이 속죄와 보상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 결합되어야만 합니다.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간이 천주님의 원수 신분으로 머물러 있게 되지만, 그리스도께 결합된 후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의 한 일원/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속죄에 참여하고 그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천주님과 화해한 신분으로 그분과의 교류를 다시 할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도 죄의 사함을 받음으로써 영벌의 처지에서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맞게 된 영벌이라는 영원한 비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 자매 교우 여러분, 인류 구원 계획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와 관련하여, 이 제사가 구원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룩하는 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 이 방식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방식은 바로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의 이 공로는, 인류에게 태초에 주어졌던 천주생명을 아담의 원죄로 잃었던 우리에게, 도저히 이를 다시 얻거나 되찾을 방법이 없었던 절망적 상태에 있던 인류에게, 희망의 새로운 시작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영생을 얻어누릴 그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로의 효과가 인류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각 영혼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반드시 결합되어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새 인류 공동체에 합류되지 않고서는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자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몇 가지 오류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동등한 지위를 지니며, 각자가 믿는 서로 다른 종교를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Pluralism)와, ‘그리스도의 강생하심 자체만으로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었으며, 그 구원의 효과를 누려 모두가 구원된다’고 하는 보편구원론(Universalism)이 대표적인 예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할 오류들로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교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결합되지 않고서는 구원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2) 두 번째 방식으로, 죄에 대한 보상을 알아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천주께 바치셨던 당신의 생명은, 천주님을 흡족하게 해 드린 최상의 봉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속죄를 바치셨으며, 인류 역시 이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세례성사를 통해 천주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난 이들은, 원죄는 물론이고 세례 이전까지 본인이 지은 모든 죄와 그 보속들을 전부 사함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희생제사에 대한 이 이해를 바탕으로, 천주님께 대한 더 진실되고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천주교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이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천주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이 없이는 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극히 자비하신 천주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활케 하셨으며, 너희는 성총으로 인하여 구원되었느니라.” (에페 2:5)

“그리스도는 그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든 것의 시작이 되시니 ... 이는 만사에 있어 저 첫째가 되시기 위하심이니라.” (콜로새 1:18)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