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희생제사와 이를 통한 구원 계획(3) - 성신강림 후 제10주일 (2024- 7- 28)

희생제사(Sacrifice)와 구원(Redemption)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가 인류 구원을 어떻게 이룩하는 지에 대한 주제로 2주 전부터 연속해서 강론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인류의 창조와 원죄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고, 지난 주(둘째 주)에는 십자가 희생제사가 인류의 구원 효과를 이루어 내는 그 방식 중 첫 두 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 첫 방식은 그리스도의 공로였습니다. 이 공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 즉 천주님이시면서 인간이신 본인의 생명을 되찾으셨고,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로 영적으로 결합됨으로써 이 천주님의 생명을 되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가장 중요한 방식이자 기본이 되는 시작점입니다.

- 두 번째 방식은 죄에 대한 대가(atonement)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영벌을 면하고 천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두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 두 가지 방식은 희생제사와, 구원입니다.

3. 희생제사 (Sacrifice)

먼저 희생제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희생제사는 지존하신 천주님을 공경하고 그분께 대한 순종을 표하는 경신례입니다. 이 예식에는 감각을 통해 인지가능한 어떤 사물을 사용합니다. 이 사물의 으스러짐, 또는 희생과정을 통해 천주님께 대한 우리의 공경과 전적인 순종을 표현하는 것이 희생제사입니다. 이 희생제사의 봉헌을 통해 인간은 천주님께 대한 본연의 의무를 하게 되며, 이에 대한 응답으로써 천주님께서는 그분의 성총과 은혜를 내려주시고, 이를 통해 인간은 태초에 그 영혼 안에 주어진 신적 생명을 유지해 나가게 됩니다.

아담의 원죄가 영혼 안에 주어졌던 신적 생명의 소실이라는 문제와, 죄의 문제의 직면이라는 문제점들을 불러왔음을 첫 주 강론에서 알아보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둘째 주 강론에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는 이 두 가지 외에도, 천주께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데 실패했다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선악과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의 준수를 행동으로써 실천/봉헌함을 통해, 천주님의 존엄을 인정하고 그분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행위로서의 희생제사를 바쳤어야 했으나, 아담은 이를 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당신의 생명을 천주께 순명으로써 봉헌하심을 통해- 최고의 희생제사를, 지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희생제사를 천주께 바치셨습니다. 왜 이 제사가 최고의 것일까요? 희생제사가 결국 도모하는 것은 천주님과 피조물 사이의 마땅한 관계를 정립하고 이를 이어가는 것인데, 예수님의 이 십자가상 희생제사는 인류와 천주님의 일치 관계를 최고의 수준으로 이룩한 희생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네 가지 측면에서 좀 더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희생제사를 누구에게 바치는지, 제사를 누가 거행하는지, 제사에서 무엇을 바치는지,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바치는 것인지.

1) 희생제사는 누구에게 바치는 것인가요?  천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를 바치시는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천주이십니다. “나와 성부는 하나이로라” (요왕 10:30). 제사를 바치는 이와 제사를 받는 이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둘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제사를 바치는 이입니다. 희생제사를 바치는 이는 천주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입니다. 이 중재자가, 중재할 그 양자의 입장에 속하는 정도에 따라 그 중재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십자가상의 희생제사는 누가 바친 제사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주님이시면서 또한 사람이시기에 이 양자에 완벽하게 속하십니다.

3) 다음으로, 제사에서 바쳐지는 희생물입니다. 희생제사에서 바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중재의 정도가 또한 결정됩니다. 바치는 봉헌물과 이를 바치는 사람 사이의 일치 정도가 클수록 그 중재의 효과 역시 커집니다. (중재자) 본인에게 더 속하는 것일수록 양 측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이고 더 잘 중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 희생제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바치셨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희생제사를 거행하는 제사장(사제)임과 동시에, 그 제사에서 바쳐진 희생물이셨습니다.

4) 마지막 요소입니다: 천주님께 바쳐진 이 제사는 누구를 위해 바쳐진 것인가요? 바로 인간들입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또한 그들에게 성총을 내려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거행하는 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참 인간이시기에, 여기서도 역시 (제사의 효과를 누리는 이들, 즉 우리 인간들과의) 그 일치 관계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통해, 육을 지닌 인간으로서 이 모든 고통과 죽음을 친히 겪으셨으며, 그로써 천주님께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희생제사를 온 인류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 역시 그분의 이 희생제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미사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 지체의 한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이를 천주께 봉헌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천주님께 대한 인류의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뿐 아니라 그분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4. 구원(Redemption, ‘buying-back’)

다음으로는 그 마지막 방식인 ‘구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빚을 되갚는 개념의 의미입니다. 누군가 어떤 물건이나 돈을 훔쳤을 시에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훔친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는 문제와, 그 훔친 물건/금액을 보상하는 문제입니다. 

잘못에 대한 용서의 문제는 이미 두 번째 주일 강론에서 ‘죄에 대한 대가(Atonement)’라는 주제 안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럼 이제는 그 빚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아담을 통해 저질러진 인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천주님께서는 인류가 그 죄의 영향 아래 처하게 되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이 영향들 중 하나가 바로 사탄의 영향 아래에서 이 세상 삶을 헤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죄로 말미암아 인류가 떠안게 된 그 빚으로써, 천주께서 내리신 정의의 판결에 따른 결정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사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천주님께 그 빚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빚을 다 갚기 전에는 그 빚을 갚을 의무에 종속된 신분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때로는 본인의 재산의 일부를 압류당하기도 할 정도로 자유를 구속당한 채 삶을 살아갑니다.

인류가 죄로서 잃었던 것(즉, 손해를 끼쳤던 것)은 다름아닌 천주님의 생명이었습니다. 이를 되갚아야만 최종적으로 구원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에 실패할 시, 우리의 생명을 포함한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은 천주님의 정의의 손길 아래 놓인 채, 우리는 영원한 벌을 피해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천주께 빚진 우리 인류는 어떻게 이 빚을 되갚을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 이를 지불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입니다.

- 피는 생명체가 지니는 생명을 나타내는 그 상징이면서, 동시에 또한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요소입니다. 피흘림의 행위는 생명의 봉헌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약시대에 동물들의 피흘림, 희생제물의 피흘림이 희생제사의 부분으로서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 제사예식들은 신약 시대 희생제사의 전조요 상징으로서 제정되고 거행된 점에서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제사와 연결이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당신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다 쏟아내심으로써 우리가 지니고 있던 빚, 구원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그 빚을 갚으셨습니다. 이로써 인류는 사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구원을 얻어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습니다. 앞선 강론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만, 그리스도의 성혈에 의한 그 구원의 효과를 인류가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지체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피는 그 생명체 내부에서만 흐릅니다. 생명체의 지체가 되지 않고서는, 이 피의 순환을 통해 주어지는 그 생명을 누릴 수 없고, 또 그 생명 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그분의 성혈의 효과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예시로서, 미사 기도문 중 포도주를 성혈로 변화시키는 성변화 기도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곧 내 피의 잔이니라. ... 너희 많은 이를 위하여 죄 사하기로 흘릴 바니라.’

여기서 ‘모든’이라는 단어 대신 ‘많은’이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께로 결합하여 구원될 수많은 인류 영혼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은 맞지만, 모든 영혼들이 별다른 노력없이 자동적으로 구원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단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공로에 의지하기만 하면 구원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주장은 얼핏 보기에, 천주께 대한 믿음을 중시하고 영혼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처럼 보이는 진술문이지만, 그 잘못된 인식을 통해 개인의 영혼 구원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불경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이 ‘희생제사’와 ‘빚의 되갚음’의 방식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희생제사를 통해 인간은 천주님의 존엄을 인정하고 전적인 순명을 표현하는 그 본연의 의무를 이행합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류는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한 처지로 지내왔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제사를 통해 천주님께 최고의 희생제사를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진 빚을 갚고 구원될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당신의 성혈을 남김없이 흘리셨으며, 우리가 이에 참여하고 그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분의 지체로 일치되어야 함을 또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성혈에 대한 우리의 깊은 사랑과 신심을 통해 천주님께 깊은 감사를 바쳐 올리면서, 그리스도의 보혈에 봉헌된 이 7월을 잘 마무리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으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은 단 한 번의 행위였지만, 이 하나의 행위 안에는 참으로 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 죽음의 공로로써 천주생명을 얻으셨으며, 죄의 대가를 치르셨고, 최상의 희생제사를 바쳐올리셨으며, 우리의 빚을 지불하셨습니다. 천주님의 이 오묘하신 지혜와 크신 자비에 깊은 감사를 올려드리면서, 십자가 희생제사의 삶을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자녀로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항상 목적으로 두고, 죄에 대한 통회와 보속의 정신으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합시다. 천주님께 마땅한 흠숭을 올리는 마음으로,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자세로 주어진 의무와 일들을 충실히 이행하며, 세상 모든 것과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이 해방되어 오직 천주님께만 전적으로 속하는 천주님의 종, 천주님의 자녀로서 우리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주어진 각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갑시다.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