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희생제사와 이를 통한 구원 계획(4) - 성신강림 후 제11주일 (2024- 8- 4)

십자가 희생제사의 재현과 영속화 - 미사의 희생제사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2주간 강론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 희생제사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총 4가지 방식을 알아보았는데요, 공로에 의한 생명의 획득, 죄의 대가를 치룸, 천주께 희생제사를 봉헌함, 그리고 빚의 되갚음 이렇게 네 가지였습니다.

1. 온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 희생제사의 과제 : 영속화 & 모든 곳에 전파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하셨습니다만, 천주님의 구원 사업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류에게 그 효과가 전달되고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류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에 연결되고 이를 참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지 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몇 가지 곤란한 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온 세상 모든 곳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이, 또한 모든 시대를 거쳐 살아가는 그 모든 영혼들이 갈바리아 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 순간에 동시에 모일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이 단 한 번의 희생제사에 그들이 참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을 지닌 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할 방도가 필요할 텐데요, 우선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아우를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이 십자가 희생제사가 이 땅의 수많은 지역들과, 서로 다른 시대/세대에 전달될 수 있는 그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바로 이 희생제사를 재현할 수 있는 어떤 예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예식을 각 지역과 각 세대를 거듭하여 거행함으로써 십자가 희생제사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또 많은 영혼들에게 그 효과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희생제사를 영속화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이 예식이 무엇일까요? 바로 미사의 희생제사입니다. 수난에 들어가시기 하루 전인 성 목요일 저녁에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 하시면서 이를 제정하셨습니다.

2. 미사의 희생제사 : 십자가 희생제사의 실제적 재현

그러나 제정된 예식이 있다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미사의 예식이 십자가 희생제사의 영속화/재현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 희생제사와의 밀접한 연결이 필요합니다. 이 연결은, 단지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정도의 예식으로서의 연결로는 부족합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미사를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제사’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기념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사를 지금 이 순간 여기서 거행하는 것이, 이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행하셨던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실질적인 재현이 될 수 있게 하는 그 연결고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연결고리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먼저 희생제사에서 중요한 요소들에 대해 되짚어봅시다.

- 희생제사는 감각적으로 인지가능한 어떤 사물의 희생과정(으스러짐)을 천주께 봉헌함으로써, 그분의 지존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순종을 표현하는 경신례라는 것을 지난 주 강론에서 알아보았습니다. 

- 희생제사를 거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제사를 바쳐올리는 사제와, 제사에서 바쳐올려지는 희생예물입니다. 십자가 희생제사는 이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일치된 제사임을 이미 알아보았습니다. 그 사제도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희생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미사가 십자가 희생제사의 재현으로서 거행되기 위해서는 미사를 봉헌하는 이와 미사에서 바쳐지는 희생예물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하셨던 것이 무엇일까요?

- 우선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님 당신의 모든 생명을 넘기셨습니다. 이 축성된 빵과 포도주, 성체와 성혈이 미사에서 바쳐지는 희생예물입니다. 이 희생예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십자가 희생제사에서 희생예물로 바쳐졌던 것 역시 예수님 당신의 생명이었습니다.

-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사제로 서품하셨습니다. 이 서품받은 사도들이, 지상에서의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서, 미사의 희생제사를 거행하는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확장판으로서 그들을 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사 중 성변화 축성 기도문에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니라.” 하지 않고, 

“이는 내 몸이니라, 내 피이니라.” 하는 것입니다. 

성변화 축성 그 순간에 직접 예수님께서 사제의 입술을 통해 친히 성변화를 이룩하시는 것입니다.

서품받은 사제와 성체성사를 통해, 미사의 예식은 희생제사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만족할 뿐 아니라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재현까지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의 ‘희생제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제가 거행하는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또한 그 효과를 얻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미사와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 미사의 구조 & 미사 참례 태도

십자가 희생제사를 재현하는 수단으로서 미사의 예식을 지금까지 알아보았는데요, 

강론을 맺기 전에 이 미사의 구조와 미사를 참례하는 태도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 먼저 미사의 구조입니다. 

미사는 크게 2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예비신자들을 위한 미사 부분과 

2) 신자들을 위한 미사 부분입니다. 

- 1) 이 두 부분 중 첫 부분(예비신자들을 위한 미사)은 우리가 미사를 잘 참례하고 거행하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겸손되이 죄인의 신분임을 인지하고 통회의 마음으로 고죄경을 바치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준비합니다. 

- 2) 두 번째 부분인 ‘신자들을 위한 미사 부분’이 실질적인 희생제사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초기 교회 때에는 세례받지 않은 신자들을 이 부분부터는 참석하지 못하도록 성당 바깥으로 보내었습니다. 세례의 인호가 없어서, 희생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바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을 위한 미사 부분’은 또 다시 2 부분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데요, 

① 성변화 축성이 일어나는 희생제사 부분과, 

② 제사를 바친 후 그 열매에 참여하는 영성체 부분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영성체 이전에 반드시 희생제사 부분이 선행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희생제사에서 바쳐진 예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즉,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주께 희생제사를 바쳐야 합니다. 희생제사와 영성체 둘 중에서 더 선행하는 것, 더 중요한 것은 희생제사 부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헌경(Offertory)이 이미 시작된 이후에 성당에 늦게 도착한 경우에는 영성체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미사의 각 부분들 중에서 미사의 유효성을 결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3가지 부분(제헌경, 성변화 축성경, 사제의 영성체) 중 하나인 제헌경에 참여하지 못하였기에 희생제사의 봉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다음으로 미사를 참례하는 태도와 영성체 준비에 관한 내용입니다.

-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미사는 십자가 희생제사의 재현이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제요 희생제물로서 거행하시는 희생제사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를 참례하는 데 있어서 우리 자신을 마땅하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특히 미사 중 공경과 흠숭의 태도로 집중하여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지향과 일치하여 한 마음으로 참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지향은 천주 성부의 영광과 모든 인류의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지향도 이에 더불어 함께 봉헌하시면 되겠습니다.

- 영성체 관련해서는 더욱 신경써서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시는 분이 다름아닌 천주님,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아직 사함받지 못한 대죄 상태에 있다면 영성체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예수님께 다시금 극심한 수난과 죽음의 고통을 안겨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를 용서받아야지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대죄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성체를 먼저 한 후 미사 끝나고 고해성사 보겠다”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 교우분들의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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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 자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십자가 희생제사를 영속화하는 그 수단으로서 미사의 희생제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십자가상 희생제사에 많은 영혼들이 참여하고 그로써 구원의 효과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영혼구원 사업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룩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 미사의 희생제사를 제정하셨습니다. 미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소중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이 미사에 모든 이들의 구원이 달려있습니다. 미사가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재현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있어도,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가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다.”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자주 기억하면서 미사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우리가 미사에 참여할 때 우리의 삶을 희생제물로서 미사의 희생제물과 합하여 봉헌합니다. 미사가 참으로 미사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제요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미사 때 바치는 우리의 희생제물 -즉 우리의 삶- 역시 모든 면에서 예수님의 것과 같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구원의 사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당신의 십자가 희생제사를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나가게 해줄 영혼들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그 영혼들입니다. 

무수한 밀알이 빻아지고 으스러져 한 덩어리의 빵으로 새롭게 남으로서 생명의 양식이 되듯, 

수많은 포도알들이 으깨어지고 하나된 그 액이 포도주가 됨으로서, 서로 간의 마음을 열고 일치를 도모하는 생명의 음료가 되듯이, 

주어진 순간마다의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서 애타게 바라시는 희생제물로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위해서 봉헌합시다. 이것이야말로 미사의 희생제사를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미사를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으심이니라.” (갈라 2:20)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