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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 '빛의 신비'에 대하여... 과연 옳은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04



묵주기도 '빛의 신비'에 대하여... 과연 옳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위 25년 첫날 2002년 10월 1일 교서 '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반포하여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하였다.


Q 묵주기도 중 ‘빛의 신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요.
A 묵주의 기원은 중세시대에 흔히 있었던 교부들의 성영(시편)을 암송했던 관습에서 왔는데 당시에 150편의 성영을 읽지 못했던 문맹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회에서 이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성영의 숫자를 늘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묵주기도에서 신비의 수를 증가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신경(信經)에는 환희, 고통 그리고 영광스런 신비가 언급되어있지만, 빛의 신비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마리아 동신께로서 나심을 믿으며 본시오 빌라도 벼슬에 있을 때에 난을 받으사...’ 이렇게 직접 들어가지, 빛남의 표현은 없습니다. 그래서 환희와 고통 그리고 영광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신비를 갖게 만들지만, 반면에 빛의 신비는 다소 분산되는 느낌을 줍니다 (빛의 신비로 대체되어 십자가에 초점 맞추는 것이 감소되고 임시적인 그리스도 왕국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더욱이 153번의 성모송(10x15+3-묵주기도 초기의 세 번)은 신성한 수입니다. 실제로 물고기를 잡는 두 번째 기적 때에, 성 요한은 잡은 물고기인 그 ‘많은 물고기’ 수가 153마리(요왕21:11절)였던 것을 언급한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설명하기를 이 물고기는 간선된 자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간선된 자가 꼭 153명이 아니라 153에 의해 내포된 간선된 (많은) 이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기본적으로 현대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바꾸려고 있습니다. 저들은 변치 않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으려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빛의 신비를 덧붙여서 묵주기도조차 바꾸려 합니다. 성인들의  세대들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영혼들은 묵주 15단으로 자신들을 성화시켰지만, 현대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질도 더 좋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변화하는 정신자세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기도하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른 것 같이 너희는 내 표양을 따르라.”(코린토 전11:1) 말하자면, 우리가 받은 거룩함의 모범을 전달해야합니다. "저것이 더 낫겠다....."하는 척하면서 변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언급된 빛의 신비는 ‘150’번의 성모송 안에서 ‘대안’으로서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을 알아야합니다. 예를 들어 네 번째 환희 신비로서 이집트로 피신하는 것에 대한 또는 다섯 번째 환희의 신비로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탁월하신 전통사제이신 토마스 갈멜 신부님은 묵주기도에 관한 작은 책을 쓰셨는데 그분은 ‘15개의 신비’에 대한 관습을 존중하면서 이와 같은 묵상을 제안 하셨습니다.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