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 > Q&A

제목 새미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인가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18





변형된  새미사



질문 미사경본에 있는 정확한 말을 따라하고, 허튼 것 (또는 동작) 안하고. 가능한 한 거룩하게 미사를 드릴지라도 새미사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답변 만약 사제가 새미사에서 ‘미사경본의 정확한 언어를 따라하고, 허튼 말 안하고 가능한 한 거룩하게 미사를 드리면’ 그 미사는 분명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새미사의 라틴어 미사경본의 원문을 살펴보면, 많이 빠트린 부분, 표현이 억압된 부분, 특정한 진리를 감추고 있는 부분을 알게 되게 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제헌경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하자 없는 희생(예수 그리스도)’을 사용했는데, 그 대신에 저들은 오직 ‘지상이 열매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낸 일’ 만을 단지 제헌합니다. 저들이 제헌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도무지 없고 오직 자연적인 물건만을 드리는 것이니, 천주의 어린 양이신 완벽한 희생과 비교해볼 때, 이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2/전통적인 전문(全文)에는 십자성호(十字聖號)가 25번을 담고 있지만, 새 전문(‘성체기도’)에는 오직 1번만 성호경을 합니다. 전문에서의 십자성호 95%가 제거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성호 표시가 있는 건가요? 왜냐하면 미사의 희생제사는 우리 제대(祭臺) 위에서 진행되고 제헌되는 십자가의 희생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십자가의 표시(성호)로 그 희생제를 지향합니다. (“hostiam puram, hostiam sanctam, hostiam immaculatam… the pure victim, the holy victim, the immaculate victim…”) 이러한 모든 십자성호는 십자가와 미사와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자, 현대의 새미사에서는 “그가 강복하시니”라는 말을 할 때 딱 한번만 남아 있는데, 이것은 성화(聖畫)를 축성할 때 보게 되는 것처럼 일반적인 축복에 불과합니다. 그 차이가 엄청난 것입니다!


3/전통미사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제대 위에 현존하시자 마자 사제가 장괘(무릎꿇기)하고, 심지어 신자들에 의해 현양되도록 사제가 성체(또는 성작)를 들어올리기 전에 주님께서는 제대에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장괘는 사제가 “in persona Christi” 라고 발음할 적에 그리스도 말씀의 권능에 의해서 주님의 실재현존에 대한 믿음의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제는 성체를 들어올리고, 그리고 나서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새미사에는 오직 두 번의 장괘가 남아있는데 – 만약 (실제현존이) 이루어진다면 - ‘빵 안에서’(장괘와 어우러져...오직 그때뿐인지라....그러나 이것은 가톨릭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현존을 다소간 믿고 있는 어떤 개신교(루터파)인에게는 허용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존’은 신자들의 (오로지) 믿음에 의해 실현되는 것, 전체 회중들에 의해서이지 사제 혼자의 권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미사(The Novus Ordo)는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용납이 안 되는 첫 번째 장괘는 억압되어 있고, 몇몇 개신교에 의해 받아드려질 수도 있는 두 번째 장괘 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전통미사에서는 일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한 제물로 현존해 계시면, 사제가 성체(성작)을 만지기 전과 후로 장괘를 하는데 전부 열 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새미사(각각 거양 후 1번, 그리고 영성체 전1번)에서는 오직 세 번만 남아있으니(그들이 지금도 하고 있다면), 이는 장괘의 70%가 억압된 것입니다. 


5/거의 대부분 그 누구도 듣고자 하지 않을 때, ‘바람직하지 못한’ 기도(?)들이 제거되거나 또는 주중에다가 놓았습니다. 그래서 장림(將臨) 두 번째 주일 경우, 전통적인 미사에는 영성체후 기도가, “천주 우리더러 세속 일은 경히 여기고, 천상의 선을 귀히 사랑하라 가르치시니..” 합니다. 이 기도는 현대주의자들이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 기도(성심첨례축일 때 다시 발견됩니다)는 흔히 제거 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저들이 싫어하는 독서가 있게 되면, 매년 하는 것이 아니라 매 3년마다 겨우 독서를 하거나 잘라냅니다. 전통적인 성체축일의 독서(코린토 전11:23-29)를 겨우 매 3년마다 1번씩 하고 있으며 마지막 세 구절이 없어졌습니다: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되리라. 그런즉 사람은 자기를 살펴본 후에 비로소 이 면병에서 먹고 이 잔에서 마실지니라. 대저 합당치 않게 주의 몸을 (다른 음식과) 분별치 아니코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임이니라.”(코린토 전11:27-29)

 

 현대주의자들은 심판, 파문(저주) 같은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 구절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구절은 오늘날 훨씬 더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새미사를 행하고 있는 많은 교구에서는 규칙적으로 고해를 하지 않고 있고, 합당치 못한 영성체를 하고 있으며, 성체모독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중첩되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요? 이러한 구절은 성체성사에서 우리 주님의 실제현존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입니다!


 새미사의 결핍과 태만(제대석이 선택 사항으로 된 것 등)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결핍이 원본, 심지어 라틴어 미사 원본에도 있습니다. 새미사를 준비하는... 그 일을 수행하는 위원회에 참여하여 도와준 6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그 위원회의 가톨릭 성직자들을 뒤로 하고 앞줄에다가 저 개신교 목사들을 세우고 저들의 발언 말미에 저들과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그 사진은 프랑스 주교들이 발행하는 ‘가톨릭 기록물 Documentation Catholique’ 맨 앞장에 나와 있습니다.



새미사를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만든 바오로 6세 교황

 성비오10세회에서는 새미사가 준비된 바에 따라서 새로운 신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새미사의 모든 변화는 다른 신학, 다른 신앙, 옳지 않은...가톨릭이 아닌 신앙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새미사를 말하는 모든 사제가 이 새로운 신학에 동의하거나 또는 이단이다 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미사는 나쁜 전례(典禮)를 가지고 있으며,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고 은총으로 가는 데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은총은 잘 준비되고 참된 신심으로 어우러진 이들에게 조금씩 주어집니다. 새미사에서의 은총은 전통미사에서 이루어지는 것만큼 널리, 풍성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새미사에 나가는 신자들은 존경심의 결여, 장괘 부족... 등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손으로 영성체하는 악한 표양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는 매우 나쁜 것 입니다. 실제현존에 대한 신앙을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의 헌신을 파괴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 ‘선한’사제들 조차 -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거부할 용기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훌륭한 사제라면, 손으로 받는 영성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대부분 비전통적입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교회가 ‘우리에게 전승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교회 초창기에 잠시 동안 영성체가 손으로 행해졌다면, 그 같은 신앙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당시의) 전례행위 자체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분은 말씀하십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를 경배와 현양을 하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닐뿐더러, 내가 그렇게 하질 않으면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분의 가르침은 주님께 드리는 경배의 결핍에 대한 죄가 있음을 말합니다!!! 아우구스투스 성인은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빙자하는 이들은 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존경심, 신앙 그리고 헌신 등에 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겁니다!

 

 성 치쁘리아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보다 150년전 이전- 영성체는 순교(치명)를 위한 준비라고 가르쳤습니다! 죄를 짓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했던, 주님의 몸과 성혈을 받은 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영성체를 받은 후에 그들이 받았던 저 예수를 위해 죽고자 하려 합니까? 만약 저들이 진정으로 믿는다면, 성체 안에, 신성한 면병 안에, 그 성체가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 몸과 성혈, 온전한 예수, 자신의 생명을 주고자 하셨던 그분에게 어찌 저들이 손으로 받는 그런 방식으로 주님을 다룰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한’ 사제들은 전통미사로 돌아와야 합니다!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