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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는 지루하고 따분해요/The Rosary Seems Boring to me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2-26



묵주기도는 지루하고 따분해요.


질문  묵주기도는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나요?

 

답변 두 가지 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염경 기도와 관상 기도입니다. 염경 기도는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데 우리는 천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의무에 대해 몸을  집중하지 않으면 이를 끝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마음으로  천주께 기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전혀 기도하지 않은 채 보내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외적으로 소리를 내어하는 염경기도는 내적인 관상기도를 발전시키는 탁월한 장치입니다. 로사리오 묵주기도는 저 뛰어난 장치를 제공해 줍니다.


관상기도는 모든 기도의 핵심입니다. 묵주기도의 핵심이지요.  더욱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핵심에는 천주께 대한 커다란 소망, 천주님을 향한 엄청난 갈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는 것이 유익합니다:“내 마음은 당신께 말씀 아뢰고, 내 얼굴은 당신을 찾나이다. 주시여,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성영26:8) 나는 천주를 알고자합니다! “이것이 명백하여 질 때에는 우리가 천주와 비슷할 것을 아노니, 대저 사실대로의 저를 뵈올 것임이니라.  무릇 이러한 희망을 제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는 저 거룩하심과 같이 자기를 또한 거룩하게 하느니라.”(요안 1서 3:2-3) 망덕은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성경의) 덕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덕행들을 ‘신학적(성경의) 덕행’이라 부르는데, 저 덕행들의 목표는 천주님이시고, 저 세 가지가 마음과 천주님과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망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망덕이란 오로지 천주님에 대한 커다란 목마름으로 들어가게 하는 열망을 포함합니다. “천주시여, 당신은 나의 천주시니, 나는 당신을 열심히 찾나이다.”(성영62:2)


여러분들이 성인들의 저작을 읽을 때, 당장 드러나는 특이한 사실 하나는 성인들이 천주님을 향해서 모든 애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인들의 모든 생애는 전적으로 천주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가톨릭 신앙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천주님을 찾는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성부께로 올 자 없느니라.”(요왕 14:6) “이는 저 그리스도를 인하여서 우리 양편의 사람들은 한 가지 성신 안에 성부에게 가까이 갈 수가 있는 연고니라.”(에페소 2:18) “천주는 다만 하나이시며,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역시 다만 하나이시니라. 이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니 ”(티모테오 전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이자 참 사람이시고 우리가 천주님을 찾는 곳은 인간으로서의 그분 안에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길이요, 다른 사람(길)은 없습니다. “다른 어떤 이를 말미암아 구령하지 못하느니, 대저 우리가 마땅히 구령하기 위하여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을 주신 것이 없음이니라.”(종도행전 4:12)


천주성부께서 그분의 성자를 세상에 보냈을 때,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을 직접 보내신 게 아니라 먼저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보내셨고 성모님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보냈으니, 환희의 신비에서 아름답게 이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성모님 안에서 육화되시고(영보고지) 성모님은 그 주님을 품은 채 세례자 요한과 그의 모친에게 가시며(엘리사벳 방문) 목동과 삼왕에게도 보이십니다.(성탄) 그리고 늙은 시메온과 여 선지자 안나에게도 보이십니다.(성전에 드리심).......


만약 성모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신 않으면 매 성모송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나요? 성모송의 전반부에서는 우리가 성모님이 받으신 축복과 가장 위대한 것은 성모님의 태중에서 축복의 열매인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니 만일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받을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요청합니까? ”성모님의 복중에 계신 축복의 열매이신 예수를 달라“고 우리는 거룩한 여왕이신 그분께.... 성모송에서 우리는 요청하고 있습니다.


천주님과 일치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일치입니다. 죄를 파괴하는 구속이 필요했고 구속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저 구속으로부터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일치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통고의 신비 전체인데 이는 십자가 아래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리아와 몇 명의 거룩한 종도 그리고 여인들과 함께 예수와 일치시킵니다. 고통은 보든 살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칠 것입니다. 고통에 대해서 유일하고도 만족스런 대답이 십자가입니다. 갈보리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도둑의 낭비에 불과한 십자가, 회개하는 도둑의 속죄의 십자가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도둑은 자기의 죄에 대해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고통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예전의 죄에 독성죄를 더 첨가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을 낭비하고 더 크고도 끝없는 징벌을 준비합니다. 회개하는 도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정당한 벌을 받아드리며 그리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니, 그 도둑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의 기도를 능가하는 많은 것을 받습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죄 없는 양(베드로 전 1;19, 헤브레야 9:14)으로서 자신으로 제헌함으로써 세상을 구속하시는 ‘아버지의 일‘(루까2:49)을 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로운 천주라면 무죄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허락하진 않을꺼야...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분명히 천주님은 정의로우시기 때문에 엄청난 보상을 주지 않고, 심지어 온 세상을 구속하지 않고는 죄 없는 이들이 고통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실꺼야! 자, 우리 주님은 무죄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에게만 영혼들을 구속하는 정의에 있기 때문이니, 그분의 인성 안에서 고통 받으신 그분의 천주서이이라는 무한한 고귀하심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성모님은 또한 죄 없으시고 그래서 새 아담에 어울리는 새 에와(이브)로서 구속의 신비에 연관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 유스티노, 성 이레네우스가 주장한 주제입니다)


자, 우리는 죄가 있습니다. 원죄를 지고 있고 각 개인의 죄가 따로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많은 죄가 있거나 적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는 도둑처럼 우리의 고통을 먼저 받아드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우리 고통을 일치시키면서 우리 죄를 보속하는 가운데 그 고통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고통을 더 받는데 그리고 이것은 어떤 성인의 경우에는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욥의 경우에는 받을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위대한 구속의 신비 안에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자주 표현하십니다: “믿기에 합당한 말씀이니,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죽으면 또한 한가지로 살 것이요.”(티모테오 후 2;1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저와 함께 살리라.”(로마 6:8)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로마 8:17) 그리고 베드로 성인은 이르시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그만큼 기뻐할지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저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때 또한 즐거워하며 용약하기를 위함이니라.”(베드로 전 4;13)


참으로 통고의 신비는 끝이 아닙니다. 고통의 신비는 우리를 영광의 신비로 이끕니다. 우리 눈 앞에서 최종 목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행에 대한 보상이 있고, 그리스도 희생과 일치에 대한 커다란 보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그곳에서만 우리가 완전하게 ‘천주로서의 그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환희와 통고의 신비 모두를 통한 영혼의 커다란 갈망입니다. 그래서 영광의 신비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영생에 도달하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커다란 용기와 힘을 줍니다. 먼저 이것은 그리스도 몸 안에서 그리고 나서 성모님 안에서 그리고 나서 우리 안에서 분명한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거룩한 묵주기도는 우리 생애를 통하여 우리와 동행하며 그리고 이것은 그분의 기쁨과 고통과 영광의 신비 안에서 주님을 따라가면서 천주님께 대한,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커다란 갈망의 표현이고 마리아와 함께 우리를 영생을 누리는 천국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니 이 묵주기도는 따분하거나 지루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The Rosary Seems Boring to me

Q  when we pray the rosary, does not it seems boring at times?


A There are two kinds of prayer: vocal prayer and mental prayer.Vocal prayer is necessary for humans, because we are not angels, and therefore, unless we get our body attentive to our duty, we end up not doing it. Those who claim that “they pray to God in their heart only” end up most of the time by not praying at all. On the contrary, the external prayer is an excellent setting to develop the internal, mental prayer. The Rosary provides that excellent setting.


The mental prayer is the heart of all prayers; it is the heart of the rosary. To better understand that, it is useful to remember that at the heart of prayer there is a great desire for God, an immense thirst for God: “My heart hath said to thee: My face hath sought thee: thy face, O Lord, will I still seek” (Ps. 26:8). I want to see God! “We know, that, when he shall appear, we shall be like to him: because we shall see him as he is. And every one that hath this hope in him, sanctifieth himself, as he also is holy” (1 Jn. 3:2-3). The virtue of hope is one of the three theological virtues: faith, hope and charity. These virtues are called “theological” because their object is God himself, they unite the mind with God. Hope is very important (and sometimes forgotten). Hope includes this longing that only grows into an immense thirst for God: “O God, my God, to thee do I watch at break of day. For thee my soul hath thirsted” (Ps. 62:2)


When you read the writings of the Saints, one thing you remark right away is that they were all tending towards God: their whole life is wholly directed towards Him. Recently I was reading some work of St Anselm: same thing, same thirst for God.
Now – and this is absolutely fundamental to our Catholic Faith: there is ONE WAY to find God, and that is in our Lord Jesus Christ.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to the Father, but by me” (Jn. 14:6). “For by him we have access both in one Spirit to the Father” (Eph. 2:18).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of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 (1 Tim. 2:5): our Lord Jesus Christ is true God and true man, it is in Him as a man that we find God: hence He is the way and there is no other.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to men, whereby we must be saved”(Acts 4:12)


Now when God the Father sent His Son into the world, He did not give Him directly to everybody, but He gave Him first to the Blessed Virgin Mary, and through her to others, as the joyful mysteries beautifully show: He was incarnated in her (Annunciation), and she brought Him to John the Baptist and his mother Elisabeth (Visitation), she gave him to the shepherds and the Magi (Nativity), to the old man Simeon and the prophetess Anna (Presentation)…


And what do we ask in each Hail Mary if not that she gives us Jesus? In the first half of the Hail Mary, we see the blessings she received, and the greatest is Jesus, the blessed fruit of her womb; in the second half, we ask her to “pray for us”, to ask what if not that we may receive Jesus? “Give us Jesus, the blessed fruit of thy womb,” do we say in the Hail Holy Queen.

 

Now the great obstacle to union with God is sin; therefore, there was need of Redemption, to destroy sin, and Redemption is through the Cross of Jesus. In order to benefit from that Redemption, we ought to be united with Jesus crucified, and this is the whole of the sorrowful mysteries, which culminate at the foot of the Cross, where we united ourselves with Jesus with Mary and the few holy disciples there. Suffering is an important part of everyone’s life: no one can escape it; it will hit everyone at one time. The only adequate answer to suffering is the Cross.


There are three crosses on Calvary: the wasted cross of the impenitent thief, the expiating cross of the penitent thief and the redeeming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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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enitent thief does not recognise his guilt, wants to get rid of his sufferings and does not fear to add the sin of blasphemy to his previous sins: he wastes his sufferings on earth and prepares himself for greater and unending chastisement.


The penitent thief acknowledges his guilt and accepts the just punishment, and prays for mercy, which He receives much beyond his prayers in a marvellous way.


The Innocent Christ is “in the business of His Father” (Luke 2:49), the Redemption of the World, offering Himself as the Immaculate Lamb (1 Pet. 1:19, Heb. 9:14) for the redemption of souls. Some people say: if there were a just God, He would not let the innocent suffer. But we should say: precisely because God is just, He would not let the innocent suffer without giving an overwhelming compensation, even the Redemption of the whole world! Now our Lord is Innocence itself, and to Him alone is due in justice the Redemption of souls, because of the infinite dignity of His Divine Person who suffered in His human nature. Our Lady is, b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also Immaculate, and thus associated in the mystery of Redemption as the new Eve to the New Adam (a theme we find in the very early Church: St Justin, St Irenaeus).


Now we are not innocent: we had original sin, and each had personal sins, some more some less. So, we must first accept our sufferings like the penitent thief, and offer them in expiation of our sins uniting them with those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sometimes we suffer more, and this is quite visible in some saints, like Job, who really suffer more than what they deserved: the more is in order to participate in the great mystery of redemption.

St Paul expresses that many times: “A faithful saying: for if we be dead with him, we shall live also with him” (2 Tim. 2:11). “If we be dea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shall live also together with Christ:” (Rom. 6:8). “If we suffer with him, that we may be also glorified with him” (Rom. 8:17). And St Peter says: “if you partake of the sufferings of Christ, rejoice that when his glory shall be revealed, you may also be glad with exceeding joy” (1 Pet. 4:13).

 

Indeed, the sorrowful mysteries are not the end, but they lead us to the glorious mysteries. It is very important to keep the ultimate goal in front our eyes: there is a reward for virtue, there is a tremendous reward for union with Christ’s Sacrifice. It leads us to that eternal life, in which alone we can fully “see God as He is”, which is the great longing of the soul all through the joyful and sorrowful mysteries. So, the glorious mysteries give us great encouragement and strengthen us to carry our Cross with Christ in order to reach this eternal life with Christ. First it is manifest in Christ’s own body, and then in our Lady, and then in us.


As you can see, the holy Rosary accompany us throughout our life, and is the expression of our great thirst for God, for Christ, following Him in His joyful, sorrowful and glorious mysteries, thus leading us with Mary into eternal Life! This is not boring at all.

 

Yours sincerely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