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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신교 목사가 처음 참례한 미사에서 체험한 것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21



개신교 목사가 처음 참례한 미사에서 체험한 것


그 당시에 나는 개신교 목사였다. 나는 미사를 경험하기 위해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평복차림으로 밀워키의 한 가톨릭 성당에 살금살금 들어갔다. 그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그 호기심이 건전하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초대 그리스도 신자들의 성서를 연구했었고, "예식" "성찬식" "봉헌"에 관한 수많은 가르침을 찾아냈었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위한 성서, 다른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성서는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라고 부르는 그 사건 없이는 이해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미사 예식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으므로 직접 가서 보는 학문적 체험이라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무릎을 꿇지도 않겠고 어떤 종류의 우상 숭배에도 가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숨듯이 성당 안의 맨 끝줄 장궤 의자에 앉았다. 내 앞에는 여러 연령층의 남녀 신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이 기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과 무릎 굽혀 절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 종이 울렸다. 사제가 옆문에서 나와 제단으로 갈 때 모두가 일어났다. 나는 망설였지만 계속 앉아 있었다. 나는 복음 중심적인 칼빈주의자로서 "미사는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신성 모독으로 종교 의식"이라고 배웠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관찰자로 있기로 했다. 나는 내 성서를 옆에 펼쳐놓고서 앉아 있었다.


말씀에 흠뻑 젖어들다


그러나 나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내 성서를 보지 않았다. 성서는 내 앞에, "미사의 말씀 안에!" 있었다. 첫 번째 말씀은 이사야서였고 두 번째 말씀은 시편이었다. 또 하나는 바오로 서간이었다. 이 말씀들은 나를 압도했다. 나는 모든 것을 중지시키고 싶었고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도 될까요? 정말 엄청나군요!"


그러나 나는 관찰자의 역할을 충실히 지켰다. 나는 사제가 성체 성혈의 성찬 제정과 축성 기도문을 말하는 것을 들을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것은 나의 몸 ... 이것은 나의 피의 잔이니... " 나는 내 모든 의혹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사제가 흰 성체를 높이 들어 올렸을 때 나는 내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나의 주님, 나의 천주님, 당신은 참으로 성체 안에 계시나이다!" 라는 기도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말씀은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감격보다도 더 큰 감격이었다. 그리고 그 감격은 신자들이 일제히 "천주님의 어린양(Agnus Dei) ... 천주님의 어린양 ... 천주님의 어린양 ..."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더욱 커졌다. 사제는 "보라 천주님의 어린 양..." 이라고 화답하며 성체를 들어올렸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천주님의 어린 양" 이라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되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성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내가 요한 묵시록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22장으로 이루어진 요한 묵시록 속에서 예수님은 스물여덟 번 이상 어린 양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 속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늘의 옥좌 앞에 서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어린 양으로 찬미되고 흠숭받으신다. 거기에 대해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잔치인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분향


다음날 나는 다시 미사에 갔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다시 찾아갈 때마다 나는 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성서에서 더 많이 찾아냈다. 어두운 성당 안에서 천사와 하늘에 계신 성인들이 천주님을 섬기는 것을 묘사한 요한 묵시록만큼 나에게 그 모습을 그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책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를 이 성당 안에서 보고 있었다. 축제의 옷을 입고 있는 사제와 제단과 "거룩하시도다(Sanctus),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라고 노래 부르며 모여 있는 회중을 ... 나는 분향 연기를 보았으며 천사들과 성인들의 중재기도를 들었다. 나는 알렐루야를 함께 불렀다. 내 스스로 천주님을 섬기는 미사 전례 안에 점점 더 끌려 들어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도 여전히 맨 끝줄에 성서를 펼쳐놓고 앉았다. 나는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예식에 참여해야 할지, 묵시록 안에서 보여 지는 예식을 관찰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미사와 묵시록이 동일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대 교회를 연구하고 싶은 새로운 열정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초대 주교들, 교부들이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을 "발견" 했다. 교부들은 전례를 이해하는 열쇠로 묵시록을, 묵시록을 이해하는 열쇠로 전례를 연구했다.


그러자 그리스도 신자이며 학자였던 내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서의 묵시록이, 내게 가장 수수께끼로 보였던 그 책이 이제는 내 신앙의 본질적인 기초를 다져주었다. 다시 말해서 천주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표시하는 천주님과의 유대 관계인 계약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또한 가장 큰 신성 모독으로 보였던 미사가 이제는 천주님의 계약을 확증하는 사건으로 보였다. "이것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이 모든 깨달음에 나는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오랫동안 나는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 나는 그 책이 일종의 암호화된 메시지라고 생각했었다. 세상 종말과 천국에서의 전례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메시지라고.


그러나 나는 2주간 동안 매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이렇게 부르짖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들어보십시오. 당신들이 지금 있는 곳이 요한 묵시록의 어디쯤인지를 알려주겠습니다. 요한 묵시록 4장 8절을 열어보십시오. 당신들은 바로 지금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내가 빼앗긴 공로


"바로 지금 하늘나라에!" 교부들은 이 사실이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그 사실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사와 요한 묵시록 사이의 관계를 "재발견" 한 것은 나의 공로라고 확신했다.


 미사에 관한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하며 나그네들인 우리가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전례를 미리 맛본다. 그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와 참다운 성막의 사제로서 천주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주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친교에 참여하기를 바라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전례 헌장 8항)


그런데 이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말인가? 아니면 미사에 대한 말인가? 아니면 묵시록에 대한 말인가? 이것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빨리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원했으나 개종할 때 흔히 빠질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신중히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개종한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지나친 열정과 상상력의 산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 공의회의 엄숙한 가르침이었다. 후에 나는 완고한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신학자들도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 중의 한 명인 레오나르도 톰슨은 이렇게 썼다. "미사 중에 행해지는 전례의 말씀을 듣고 있음은 묵시록을 읽고 있는 것과 같다. ... 미사 전례문은 묵시록과의 일치에 분명한 역할을 한다."


바로 미사 전례의 장면들은 이 특별한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톰슨이 썼듯이 전례의 형식은 요한 묵시록이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미사 전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환시보다 더욱 중요한 어떤 것"을 밝혀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