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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방정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16




동방정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정식 명칭은 동방정교회(Orthodox Catholic Church)로서 동서 교회의 분열 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 대주교좌를 중심으로 분리된 그리스도교이다.


서방교회, 즉 로마가톨릭과 비교하여 동방 교회는 銅像(동상)을 제외한 모든 성상 숭배를 반대하고 하위 성직자들의 결혼을 허용하며 성령론에 있어서 서방 교회는 성령(성신)께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주장한 반면, 동방 교회는 성령(성신)께서 "성부에게서만 나오셨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학적, 문화적으로 이슬람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신비주의 성향과 사색적, 철학적이며, 내세적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교리 문제 외에도 기독교 교회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동서 교회의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 동서 교회의 교권 다툼, 즉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분열 전 당시 로마 제국 내에는 로마 총대주교구,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구, 예루살렘 총대주교구,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등 5개의 총대주교구가 있었다. 사실 종교적으로 볼 때에는 복음의 근원지인 예루살렘(야고보)이 속해 있는 동방 종교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가 당시에 전 세계의 정치,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기에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로마로 파견된 이유이다. 로마는 이러한 특권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교구까지 주도하고 주교들을 파견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색깔이 다르게 되어 주도권 싸움이 극렬해지게 되자, 로마의 대주교와 동방 쪽(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파문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 동안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를 버리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비잔티움(현재의 이스탄불)에 천도를 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꾼다. 동방정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예부터 이어져온 로마 동·서방의 언어·문화·정치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로 인해 로마 교황과 로마 황제 간에 정통성 문제로 싸우게 되며, 이때 서로마제국이 멸망해버리자 게르만족들로 인한 기독교 교세는 더욱 확장되었고 반면에 동로마는 세력이 갈수록 위축되었다.


3~4세기 정도에 가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모든 교구는 이슬람의 정복에 의해 사라지게 되고 4~11세기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이던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로마는 야만족의 침입 이후 동로마의 정치적 라이벌인 서방의 신성 로마 제국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에서 교회의 권위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이 동시에 발전했고, 여기서 신학적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로마 교회가 사도 베드로(단수, 1명의 교황)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개념에 입각한 로마 우위론은, 로마·안티오크·콘스탄티노플 등 지역 교회의 중요성(11명의 종도들-복수)이 그 교회들의 수적·정치적 의의에 따라서만 결정될 수 있다는 동방 교회의 관념과 양립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방 정교회란 고대 동로마제국에 자리 잡고 있던 여러 지역교회들이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방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 전례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교회를 통칭하는 말이다.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정교회'라고 부른다. 정교회도 역사를 거치면서 지역에 따라 각기 독립을 선언, 현재는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알바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눠져 있다.


동방교회는 지역의 '독립'적인 교회들의 협의체로, 집단주의(collegiality- 요즘 가톨릭에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나타난 주교단체주의 경향)을 띤다. 그래서 동방교회는 '독립'교회들, 즉 각각의 수장 주교의 치리(治理)를 받는 교회들의 협의체로 콘스탄티노플의 에큐메니컬 총대주교의 우위성은 칭호와 명예에 그친다. 교리에 관한 분쟁을 조정하는 최고의 권위 기관은 에큐메니컬 공의회였다. 정교회는 중앙 집중화된 기구라기보다는 민족 교회들의 친목단체로 발전해왔다.


현재 동방정교회에 속한 교회들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교회, 알렉산드리아 교회(이집트), 안티오크 교회(이 교회의 본부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있음), 예루살렘 교회, 러시아 교회, 그루지야 교회, 세르비아 교회, 루마니아 교회, 키프로스 교회, 그리스 교회, 알바니아 교회, 폴란드 교회, 체코슬로바키아 교회, 미국 교회 등이다. 또한 크레타, 핀란드, 일본에는 '자율적인' 교회들이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정교회 내부에서는 많은 혼란과 행정상의 갈등이 있었다. 특히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관할권이 중복 설정되었으며, 정치적인 의욕이 지나쳐 명시된 교회법적 규약이 없는 교회 조직들이 형성되기도 했다.


정교회에서는 교회를 여러 규준들 및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증언된 원리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현대의 정교회 신학은 주교직이 성직 중에서 으뜸이며, 따라서 주교 자신이 관할하는 공동체(교구)에서 주교보다 더 높은 권위가 하느님에 의해 제정된 바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지역 교회나 주교는 따로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각각의 지역 공동체 생활은 현재와 과거에 다른 지역 교회들이 누려왔던 교회 생활과 같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동일성과 연속성은 주교 서품 의식에서 표현된다.


어떤 주교도 그의 동료들과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즉, 주교공의회('주교회의' 시노드)의 일원이 아니고서는 주교로 임명될 수도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도 없다. 니케아 공의회 (325년,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법령들은 오늘날까지도 정교회에서 유효함) 이후, 로마 제국의 각 지역은 새로운 주교를 임명하는 완전히 독립된 단위였으며, 교회법상 최고 법정인 그 지방 고유의 주교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 정교회에서 이 기능은 각 독립 교회의 주교회 의장이 맡았으며, 일반적으로 '수도 대주교'(metropolitan)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 기능은 '총 대주교'(patriarch)라고 불리기도 하는 지방 수석 대주교(local primate)가 수행한다. 그는 또한 대주교(archbishop:혹은 metropolitan)로 불리기도 하며 이 칭호는 영예로운 것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독립 교회 주교회의의 관할 지역은 국경선과 일치하며(중동 지역에는 예외가 많음), 서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외국 정교회들은(디아스포라) 보통 모 교회(母 敎會)에 소속되며 그 주교회의의 지배를 받는다. 이 디아스포라들은 모교회의 권위 아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체제로 인해 정교회의 관할권이 교회법과 무관하게 중복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는 모두 인종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중세기에서 유래한 몇 가지 요인들(예를 들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로 인해 오늘날 정교회 안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했다. 그 결과 민족 문화와 종교의 일체화도 나타나게 되었다. 민족 문화와 종교의 일체화는 정치적 조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의 생존을 돕는 때도 있었으나, 선교의 확장을 방해하고 교인들의 그리스도교적 일체감을 가로막기도 했다.


성직자와 평신도


정교회에서는 교회 생활의 기본 원칙으로서 영성체와 친교를 강조했기 때문에 성직주의(clericalism)가 발달하지 못했다. 평신도를 주교 선출에 참여하게 했던 초기 교회의 관행은 동방 교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위직 성직자들, 예컨대 사제들과 보제(補祭)들은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자이다. 정교회의 현대 교회법은 한번만 결혼하고 배우자가 과부나 이혼녀가 아닐 것을 전제로 결혼한 남자에게 보제직 및 사제직 임명을 허용하고 있다. 보제와 사제는 서품을 받은 후에는 결혼할 수 없다.


주교들은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들이나 홀아비가 된 사제들 가운데서 선출된다. 결혼하지 않은 주교를 요구하는 규칙은 수사들이 성직 사회의 엘리트를 대표했던 6세기에 제정되었다. 오늘날 정교회에서는 수사의 수효가 줄었기 때문에 일부 지역 교회에서는 새로운 주교 후보자를 찾기 어렵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정교회의 평신도들은 최소한 부분적이나마 주교 선출에 참여하도록 허용되는 것 이외에도 교회 행정과 신학 교육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에서는 거의 모든 직업 신학자들이 평신도들이고 평신도들이 설교자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전례의 역할


정교회의 예배는 신학적으로 풍부한 내용과 영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다양하기 때문에 정교회의 연속성과 일체성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중동과 발칸 반도를 지배했던 여러 세기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에 종교적 지식과 경험의 유일한 원천이던 예배 때문이었다.


신자 회중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 교회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은 동방 그리스도교인들 경험의 기본적인 표현이다. 이 개념이 없으면 주교가 전례에서 교사와 대사제로서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정교회 교회 구조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신성한 삶에 참여한다는 개인적인 경험도 공동체의 연속적인 예배 행동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동방 교회의 전례가 항상 인간의 정서적·지적·미학적 능력에 호소하는 총체적인  매우 다양한 모델과 상징이 포함되어 있으며, 공식적인 신학적 진술과 신체적인 지각 및 몸짓(예컨대, 음악적인 분향, 부복 자세), 시각 예술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을 교육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6~9세기 비잔틴 교회는 다마스쿠스의 요한네스처럼 뛰어난 시인들의 찬송가 저술로 작곡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근대에 들어와 찬송가 저술은 대체로 이전 시대 시인들이 수립한 양식을 따랐으나, 질적으로 이 모델들과 맞먹는 찬송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성악은 언제나 카펠라(cappella)이며, 서구화한 미국 교구에서만 약간의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성만찬 전례


정교회 예배에서는 2가지 성찬 전례가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른바 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전례와 위대한 성 바실리우스의 전례가 그것이다. 이 두 전례는 9세기에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으나 위대한 성 바실리우스의 전례에서 사용되는 성찬 '규준'의 표현은 4세기에 성 바실리우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와 성 바실리우스의 전례는 성찬 규준의 텍스트만 다를 뿐 중세기에 확립된 전례의 전반적인 구조는 동일하다.


성사 의식


현대 정교회 교리문답서들과 교본들은 모두 교회가 7성사(Mysteria)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례, 견진, 성체, 신품, 고백, 성유(중세기 서방 교회의 '극단적인 도유(塗油) 성사'), 결혼 성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성사에 관한 텍스트인 전례서(Euchologion:기도서)나 교부 전통은 공식적으로 성사의 수효를 제한하지 않는다.


동방정교회에서 각 성사 의식은 주교나 그 대리인이 인도하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기도이며,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해석한다. 하느님의 응답은 교회에 성령을 보내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다고 본다. 성사의 이 두 측면은 마술과 율법주의를 모두 배제한다. 여기에는 성령이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그들의 응답을 요청한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교회의 성사에서 하느님의 일에 인간이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협력'(cooperation) 또는 '공동 작업'(synergy)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참여로써 성 육신의 목표가 이루어진다.


건축과 성상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 이래로 동방정교회는 다양한 교회 건축 양식을 발전시켜 왔다. 주된 모델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6세기에 완성한 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고전적인 바실리카 꼭대기에 거대한 돔을 세웠는데, 이는 하늘나라가 임재하는 것, 즉 성찬 의식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상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현대 정교회 교회들에서 교회 본당과 성소를 분리하는 성상 칸막이는 상당히 후대에 발전된 것이다. 843년 성상 파괴론에 맞서 정교회가 승리를 거둔 이후 성상의 항구적인 계시 역할이 새롭게 강조되었다. 성상 칸막이는 전례에서 제단 앞의 커튼을 여닫는 행위와 더불어 성찬 의식의 신비스럽고 '종말론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신비가 '비밀'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찬 전례를 통해 하느님이 인간이 되었을 때 이미 계시된 신성한 생명과 앞으로 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다른 점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가 분열한 때는 연대적으로 북유럽과 동유럽에서 선교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던 때와 일치한다.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는 다 같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팽창에 기여했으나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서방 교회는 새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라틴어 전례를 따르도록 하여 라틴어를 그리스도교 문명의 유일한 매체가 되게 했고, 교회의 통일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반면 동방 교회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성서와 전례를 개종한 민족의 모국어로 번역한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슬라브 민족들의 토착 문화와 통합되었고, 세계의 정교회는 중앙 집중화한 기구라기보다는 민족 교회들의 친목단체로 발전했다.


피렌체 에큐메니컬 공의회(1439)가 실패한 이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일치를 회복하려는 공식적인 노력은 없었다. 그러나 영국성공회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특히 19세기 이래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교인과 신학자들이 중심이 된 몇몇 비공식 협의체는 동방정교회와 영국성공회의 '앵글로 가톨릭'파 사이의 상호 이해를 촉진시켰다.


정교회는 처음부터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했고, 그 대표들은 금세기 초부터 실천과 관련된 '삶과 노동회의', 신학과 관련된 '신앙과 직제회의'에 참여했다. 특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공식 회원 교회의 범위를 넘어 더 넓게 확대되었다. 공의회 정신 준수 원칙과 1960년대에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간의 여러 차례 회의에서 교황이 동방정교회 총대주교와 동등한 자격으로 공식석상에 나선 것은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인데.......... (퍼온 글)


결론: 동상(성상)숭배 및 성직자 결혼 허용, 그리고 지역적(민족적) 특성 및 내부교권파벌로 인한 분열됨은 개신교의 특성을 ..... 또한 교리상의 몇가지 차이와 집단주의(주교단체주의) 그리고  전례에서의 자국어 사용 및 그릇된 에큐메니즘 운동에 참여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