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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근에 있었던 교황님의 초교파적인 선언은 무엇인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1



최근에 있었던 교황님의 초교파적인 선언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룩함에 대한 사도적 권고의 초교파적 충격이 있었다.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도적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오늘날의 세상에서 거룩함으로 부르심에 관하여” 에 서명하였다. 이 문헌은 4월 9일 바티칸에서 발행되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마르셀로 피구에로아의 기사에서 즉시 이 문헌의 초교파적 충격에 주목했다. 진정, 이 교황 문헌은 선언하고 있다.


“거룩함은 교회의 가장 매력적인 얼굴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바깥에서도 매우 다른 맥락에서, 성신(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돕는 그분 현존의 표지들’을 세우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나시고 피를 흘리셨음에 대한 증언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개신교의 공통된 유산’임을 상기시킨다. 2000년 대희년에 콜로세움에서 있었던 감동적인 초교파적 기념행사에서 그는 치명자(순교자)들은 ‘모든 분열의 이유들보다 더 강력하게 호소하는 유산’이라고 언급했다. (§9)”


위 언급은 마치 가톨릭 교회 밖에도 거룩함이 있으며, 따라서 비 가톨릭인들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치명자(순교자)로 죽을 때 교회들 혹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간 분열의 원인을 짚어내는 것은 속좁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신적 은총이 가시적인 가톨릭 교회 밖까지도 성화하고, 영혼들을 참으로 영웅적 덕행인 치명(순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우리는 오직 천국에서만 우리는 천주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가르치셨던 구원의 정규적인 틀 밖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멈춘다면, 개신교나 정교회에 결여된 것들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들이 거룩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고 있다고 암시하게 된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오류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우선, 교리적 오류는 도덕적 혼란을 낳는다. 가톨릭교회만이 여전히 특별히 혼인의 경우, 자연법의 원칙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르치고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가톨릭교회만이 온전하게 출산에 대한 자연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비 자연적 결합, 이혼, 낙태, 산아제한 등을 단죄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가톨릭교회 밖에도 거룩함이 있다면, 이것은 단지 특별한 경우, 예외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그의 글에서 거룩함은 고독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141)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성화의 모든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는 유일한 공동체다. 따라서 이런 예외는 기적이다. 물론 우리는 기적을 믿지만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심오한 이유가 있다. 거룩함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안에서 아는 구세주와의 깊고 친밀한 관계를 암시한다. 이와 같은 친밀한 관계 안에 거짓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1950년대 산부인과 병동에서, 모든 신생아들에게 예방접종이 실시되었다. 불행하게도, 의료진들은 각 신생아의 신원을 잊어버렸다. 가족들에게 아기를 되돌려줄 때 간호사들의 혼돈이 어떠했을까! 누군가가 “각 어머니에게 1명씩 돌아가는 한 본인의 아이인지는 상관없다!”라고 말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우정 - 모성애는 더더욱 - 진실을 요구하며 비슷한 것이나 속임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일 한 영혼의 예수께 대한 친밀함이 참되다면, 자연스럽게 예수께서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싶게 되며,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를 것이다. 이 열성이 존 헨리 뉴먼 (John Henry Newman)처럼 성공회인을 교회 교부들의 저서를 철저하게 탐구한 후에 천주교로 개종하게끔 이끌었다.


교회 밖에는 진리가 없다


이런 조건에서, 교의적으로 거룩함이 진리, 또는 거짓에 있는가, 그리고 거룩함이 교회의 신성한 법규를 준수하는가는 논외다. 그러나 교황님이 형제적 애덕을 참된 거룩함의 특성이라고 주장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화화된 거룩함인 영지주의라고 언급한 주지주의와는 다른(2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알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거룩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형제적 애덕이 누군가의 이웃에게 섬세한 친절(144문단 “사소한 일들”)의 실천이나 더 큰 물질적, 인간적인 도움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형제적 애덕은 가장 중요한 영적 선익들을 줄 수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 안에 있다. 구세주를 아는 것보다 어떤 더 좋은 것을 우리의 이웃에게 줄 수 있겠는가? 오직 교황 문헌의 맨 끝인 170 문단에서 영적 식별이 언급된다. 이것은 “죽지 않는 생명의 원천으로, 영생으로 이끄는 하나이신 참 천주와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요왕(요한) 17,3 참조) 인도합니다.”


다시 말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번도 신적이며 초자연적인 신앙, 가톨릭 신앙 없이는 참되고 진정한 애덕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룩함’은 묵상과 기도를 포함하는 반면, (§29, 147) - 전례에 대한 이끌림은 조심성 있다 하더라도 (§57,106) - 교회 박사들의 거룩함을 무시하고 있다. 성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나 천주와 또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 저의 재림하실 것과 그의 나라를 의지하여 그대에게 간절히 권고하노니, 그대는 말씀을 전파하며, 기회의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항구히 그를 보호할지니라. 인내와 지혜를 다하여 (저들을) 훈계하며 책망하며 권고하라. 대저 때가 오매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직 귀가 소긋하여 자기 원욕을 따라 각각 스승을 연해 고르며, 또한 진리에 대하여는 귀를 돌이키나 허망한 말에는 기울이리라.” (2티모 4,1-4)


성 바오로를 불타오르게 한 진리를 향한 열망은 결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도 권고에서 견책한 신 - 영지주의의 지식적 오만이 아니었다.(2장) 이는 영혼을 위하는 바오로 사도의 열성에서 온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열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구세주께서 온 교회를 성 베드로에게 맡기려 하실 때, 그분께서 세 번이나 물으셨던 질문은 “너는 내 어린양들과 양들을 사랑하느냐?”가 아니었다. 그분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요안의 아들 시몬아 너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나냐?” (요왕(요한) 21,15)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거룩함은 성 바오로의 말씀으로 정리될 수 있다. “원컨대 인내와 안위의 천주 너희를 그리스도 예수의 (성의를) 따라 합심케 하사, 써,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신 천주를 현양케 하실지어다.” (로마 15,5-6)


오직 이 정신이 교황님이 필요로 하는, 때때로 감동적인 개념인, 참으로 가톨릭적인 자비일 수 있다.


Sources: FSSPX-MG / ORLF / FSSPX.News – 5/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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