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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종실기(10) - 악선전(惡宣傳)에서 반동(反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0-04


개종실기(10) - 악선전(惡宣傳)에서 반동(反動)


배정효(裵正孝)


나는 금년 당 67세로써 42세에 장로교에 입교하여 참교로 알고 열심(熱心)신봉하였다. 한번은 진해(鎭海邑)읍 경화동예배당에서 강상언(姜相彥) 목사의 강론을 들으니, 「천주교라는 교가 있는데 이전 로마 구교요, 그 교는 우상을 숭배하고 술 먹고 담배를 피우고 주색잡기 등 마음대로 죄를 짓고는 신부 앞에 가서 돈만 주면 죄를 사하여준다 하니, 그렇게 해서야 천당 갈 수 있느냐?」고 하면서 특별히 비평을 하므로 본인이 그 목사에게 「그러면 천주교에도 성경책이 있느냐?」하고 물으니,


「성경은 있으되, 주일마다 절수만 한 조목씩 빼어주고 거룩한 성경을 교인들에게는 주지 않고 신부만 가진다.」하기에 본인이 말하기를, 「천주교인도 사람이요, 우리도 사람인데, 다 같은 사람으로서 성경말씀에 위반되어서야 어찌 구령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의심이 나서 천주교인을 만나 질문을 해보겠다하니, 「무슨 말씀이요, 내가 다 아는데 물어볼 필요가 없소.」하였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인을 꼭 만나기를 원하다가 어떤 길에서 천주교인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분은 척당(戚黨)인 이명선(李命善) 요셉 씨요, 또 한 분은 마산본당(馬山本堂) 목세영(睦世永) 신부님 아래 전교회장인 이(李) 마리아 여사였다. 10리 동안 걸어오면서 토론하다가 갈림길(岐路)에서 남은 말을 토론하고 있을 때 목사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말하기를, 「배정효(裵正孝) 형님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만 갑시다.」하기로, 본인이 「여기 있는 이가 천주교인인데 질문합니다.」하니, 목사 말이 「캐물을 필요가 없으니 같이 갑시다.」하나 「목사님은 먼저가시요.」하고 남은 말을 마친 후에 책 네 권을 얻어 와서 보니, 한 권은 「사사성경(四史聖經)」이요, 한 권은 「천주교 요리문답(天主敎 要理問答)」이요, 한 권은 「진교사패(眞敎四牌)」요, 한 권은 「루터실전」이었다.


 이 책들을 읽어보기 위하여 두 주일이나 교회에 나아가지 않고 책만 읽고 있으니, 장로교회에서 야단이 났다. 우리교회의 열렬한 신자가 배정효가 만약 천주교회로 개종한다면 다른 교우도 또 끌 모양이니 낭패 났다고 하여, 전도 갔던 웅변가 배명진(裵明珍) 장로를 70리의 먼 길도 불구하고 전화로 부르고 안(安) 장로와 열렬한 강(姜) 목사 등 3인이 함께 와서 토론이 일어났다. 저녁식사 후에 다시 토론이 일어났다. 


(甲은 본인, 乙은 장로교인)
甲v.「목사님, 예수께서 당신 교회를 만세(萬世) 반석(盤石) 위에 세우셨다니, 어떤 교가 최초에 세우신 참교(敎)입니까?
乙v.「우리 예수장로교가 먼저 섰습니다.」
甲v.「전일(前日)에 천주교에서 성경을 위반한고로 루터가 이 예수교를 새로  따로 세웠다하더니 여기서는 목사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까?」
乙 「아니오, 우리 장로교가 먼저 섰습니다.」
甲v「목사님,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마귀는 거짓말의 아비라 하였으니, 목사님이 감언이설을 하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乙 목사가 기가 막혀 아무대답이 없다.
甲 「그리고 요왕복음 10장 1절에 문에로 말미암아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하셨으니, 루터는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간 자가 아닙니까?」
乙i`(내심은 양심에 가책이 되나 횡설수설하면서)
  「천주교는 우상숭배교이다. 무엇이든지 나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하셨는데 절(寺刹)과 같이 부처(佛像)를 만들어 놓고 절을 하니 그래서야 천당못갑니다.」
甲,(「장로교에서는 성경만 믿는다 하니, 성경에 강생 후 1500년 동안은 믿어도 천당 못가고 1500년 후 루터라는 이가 나서 천주의 뜻대로 천당 갈 것이라고 기록된 성경구절이 있습니까?
乙(··················?)
甲「예수께서는 최초부터 공심판 때까지 예언하신 말씀이니 변치 못할 말씀이요, 내가 이 두 교회의 교리를 연구 판단한 후라야 결정할 모양이니 나를 권하지 마시오, 이 일에는 안면도 인정도 금전도 다 소용없고 영혼생명의 중대한 문제이니 다시 나를 찾지 마시오.」
  (토론을 마치고 나니 새벽 3시였다. 그러니 10시간 동안이나 쟁론하였다.)


더욱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하여 마산(馬山) 목세영(睦世永) 신부님께 3차례나 걸어 다니면서 40리 길을 3개월간이나 왕래하여 자세히 상고(詳考)한 후에 천주교회로 귀정(歸正)하여 영세 입교하니 때는 갑술(甲戌)년 즉 1934년 3월이었다.
 

입교한지 3년 만에 회장 직무를 맡기니, 농촌 무식꾼이라 이행키 어렵다하나 대구 안세화(安世華) 주교께서 회장 임명서를 내리셨으므로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니, 당시 교우의 수는 불과 20여 인이었다.


12년 후부터 열심한 회장이 새로 나고, 해방 후에 본당이 되어 지금은 교우 수가 1,000여 명이나 되니, 씨가 옥토에 떨어져 70배나 된 셈이니 천주께 무한히 감사하는 바이다.



배정효(裵正孝)1888년 2월 9일생


본 적: 경남 창원군(昌原郡) 진해읍(鎭海邑) 석동23서
주 소: 경남 창원군(昌原郡) 진해읍(鎭海邑) 익선동20


1922년~1931년 일본 동경에서 노동생활(勞動生活)
1929년 1월 장로교에 입교(入敎)
1934년 3월 천주교에 개종입교(改宗入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