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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 지도자 신부의 편지 11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13



         성모기사회 지도자 신부의 편지 11호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여러분


예수성심의 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일치된 성심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께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신비에 들어갈수록 천국의 평화가 우리 마음에 부어질 것이고, 모든 시련과 고난에서 우리를 강하고 확고하게 만들 것입니다.


또한 이 편지를 새로이 만든 POWERPOINT PRESENTATION ABOUT THE MILITIA IMMACULATAE에 링크할 것입니다. 이 프리젠테이션을 사용하여 성 막시밀리안(S. Maximilian Kolbe)과 성모기사회(Militia Immaculatae)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들도 성모기사회(MI)의 본질과 기사들이 가지는 종도적 사업에 대해 동기를 가지게 합니다.


http://share.militia-immaculatae.asia/index.php/s/xYILFVdgBN2Gw7e

 

링크를 여는 데 문제가 있으면, 여러분은 제게 글을 쓸 수 있으며, 그러면 제가 직접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거룩하신 예수성심성월이 되기를 기원하며, 성비오10세회(SSPX)가 행하는 다음 달 다가오는 총회(총장선거)에 대한 열렬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전통의식의 성모기사회가 성비오10세회의 관리와 보호 하에 설립된 것은 성모님(Immaculata)의 의지였습니다. 우리는 열렬한 기도와 희생에 대해서 빚지고 있는 데, 특히 그 당시는 SSPX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Maximilian Kolbe)신부님의 회의와 저서에서 가장 깊이 고려된 사항들 가운데에는 예수와 마리아의 일치의 신비이고, 정확하게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에 대한 신비가 언급되어야합니다. 이 신비에 대한 성 요한 외드(St. John Eudes)의 유명한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주님 친히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한 것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예수와 마리아는 참으로 매우 친밀하게 서로 묶여있어서, 예수를 보는 모든 사람은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마리아를 사랑한다. 예수님을 공경하는 모든 사람은 마리아를 공경한다."


우리 거룩한 창시자[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의 삶의 모든 것은 사랑의 신비에 관한 것입니다! 성신과의 결합 덕분에 우리의 성모성심은 사랑의 정점입니다. "성신께서 성모님과 일치하면 사랑은 이 두 존재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둘 중 첫 번째인 성신은 성 삼위의 전체 사랑이 됩니다. 두 번째인 마리아(Mary)는 창조에 대한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이 결합에서 하늘은 땅과 결합하고, 하늘의 모든 것이 온 땅과 결합되며, 창조되지 않은 모든 사랑이 창조된 모든 사랑과 결합됩니다. 사랑의 정점입니다.“ 가장 거룩하신 성 삼위의 사랑은 성모님(Immaculata) 존재 그 깊이 안에서 성모님 마음에서 전적이고도 풍성하게 나타났으니, 왜냐하면 그 성심은 가장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이 있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원천 안에서 충만합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 때문에, 성신은 마리아의 신비에서 천주께 대한 성모님의 사랑을 말하고, 특히 성모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그분의 어머니께 대한 아들의 사랑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모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소중한 보화는 이 마음들이 서로를 위한 사랑의 광대함이며, 이것은 정확하게 예수님과 마리아의 결합한 마음에 대한 헌신의 가장 깊은 목적입니다. 성 요한 외드(Saint John Eudes)는 이 결합의 기적을 지적하면서 마리아를 새로운 언약의 성궤(聖櫃) [역자 주: 십계명,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들어있다. 이는 천주님의 말씀, 사제직, 성체를 의미하는데, 성궤(ark)는 방주(方舟)라는 뜻도 있음]로 제시했습니다. "마리아의 성심은 모세의 성궤로 표현되었다. 특히 그 성궤는 파괴할 수 없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천신들의 여왕이신 하자 없는 성심은 어떤 죄악에 의해서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았다. 둘째, 안팎으로 순금에 의해 장식된 성궤로서 꾸며진 아름다운 사랑의 모친의 성심은 항상 사랑의 황금에 의해 간과되었다. 즉, 천주님의 눈 안에서 이지, 사람의 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성궤 안에 천주님의 십계명의 판이 들어있는 것처럼, 성신께서는 우리 구세주께서 황금의 편지로 하늘에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모든 거룩한 계명을 성모님 안에 기록하셨다. 네 번째로, 성궤 안에는 천주께서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을 광야에서 기르도록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하신 만나가 있는 것 같이, 예수님 모친의 마음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아들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었다. 가장 귀중하고 달콤한 만나와 같이 그것은 또한 우리를 먹이고 영혼에 생명을 주는 하늘로부터 가져온 생명과 신성한 진리의 모든 말씀을 담고 있다. 천주님의 유일한 아들,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 저는 천상의 모친이라는 사랑의 성심을 드리오니, 이는 모든 마음을 능가하는 더 귀하고 아름답도다. 오, 예수의 모친이신 마리아여, 저는 당신에게 당신의 삶과 기쁨이신 사랑하는 아들의 가장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을 드리나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신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성심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마리아의 하자 없는 성심의 영광을 생각한 이후, 우리가 함께 합류합니다.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교 예술은 두 성심을 나란히 배치할 때에 이를 나타냅니다.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고 성화하게 하는, 자비롭게 부어주시는 두 성심과 두 강(江)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 모두가 사랑의 본질인 "한 영혼과 한 마음"을 말하게 하는 두 결합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예술은 예를 들어 성모님(MI)의 엠블럼과 같이 서로 얽혀있는 두 개의 성심을 배치 할 때 이를 나타냅니다. 두 근원(성심)은 각 인간의 마음으로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강으로 녹아있고, 천주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서 우리 안에 들어와 정화하고 변화시키며 흡수하길 청원하는 성심입니다.


        통고의 신비는 이런 면에서 위대한 빛이다


그들 각각은 차례로 이들 성심과 성총의 강을 드러내는 데, 이는 새 아담과 새 이브의모든 상처, 하나의 고통과 수난으로부터 마음과 새 상처와 새 아담의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모든 상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성모성심은 주께서 그분의 몸에 수난 받은 모든 것을 반복하고 나타내셨습니다.


게세마넷 정원에서의 거의 무한한 그리스도의 고뇌는 죄가 무엇인지와 관련이 있으니,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죄와는 절대적으로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죄의 공포에 대해 지식을 가졌던 유일한 한 사람이 있으니, 왜냐하면 성모님의 하자 없으심(immaculateness) 또한 죄악과는 절대적으로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를 지불하기 위해 모든 악의 잔을 마셨을 때, 성모님도 주님과 함께 마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세주와 공동 구세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뇌의 수난이라는 피 방울이 땅에 떨어지듯이, 성모님의 통고의 수난은 눈물로 표현되는데, 이는 눈에서 나오는 것보다 성심으로부터 흔들려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물은 여전히 ​​떨어지고, 사람들이 죄가 있는 한 계속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라 살렛트(La Salette), 시라쿠사(Syracuse), 아키타(Akita) 등에서 보여 지는 성모님의 눈물의 무게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채찍질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분의 육체가 부서지는 것에 참여하며, 성모님의 영적 채찍질은 성모님의 하자 없으심(immaculateness)과 정결에 대한 암살을 하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은 엄청난 인내로 이러한 모욕과 신성모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사람들이 만든 신성모독에 대한 보상을 하고,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정화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가시관으로 행한 대관식은 우리의 교만함에 대한 속죄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하신 성심은 일반적으로 가시관에 둘러싸인 것으로 묘사되며, 성모님의 하자 없으신 성심은 흰 장미의 화환에 그려져 있습니다. 1929년 6월 13일 투이(Tuy)에서 루시아 자매에게 성모님의 마지막 계시가 있을 때, 루시아는 성 삼위일체에 대한 유명한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옆에 계시는 마리의 하자 없는 성심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오른팔 아래서 우리의 사랑하는 성모님이 하자 없는 성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모습은 손에 칼과 핑크가 없지만 가시 왕관과 불길로 둘러싸여 있는 성모 성심을 죄고 있는 파티마의 성모님이었어요,).“ 이 환시는 그분들의 마음이 참으로 얼마나 많이 일치하고 동일한지를 보여줍니다. 성모님의 성심이 그리스도의 가시왕관으로 찔린다면,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으로 쓰는 잔혹한 순간에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고통당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성심 안에서 주님과 함께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여전한 ​​죄 때문에 그분들의 고통이 계속됩니다. 그 심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난보다 적지만, 성모님 자신보다도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의 고통을 경험하는 모든 선한 어머니에 의해 확인하게 됩니다.


완전히 결합된 이 성심의 표시 아래서, 우리는 또한 십자가의 길(聖路善功 14처)의 각 처(處)를 고려해야합니다. 이번에는 주님은 성모님이 그와 함께 영적으로 만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 4처에서 그분들은 서로 마주 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두 성심, 가장 사랑하는 마음, 가장 헌신적인 성심들이 만났습니다. 우리의 죄 많은 마음은 마치 그들 가운데서, 그들 사이에 있으며, 마치 저분들의 끊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마리아를 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바라볼 때, 성모님은 주님을 바라봅니다. 마치 우리 각자가 "저기를 봐라. 너를 위한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이 두 강에서 흘러나오는 활기차고도 상쾌한 물이 우리 영혼의 사막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두 성심은 우리를 갈보리의 정상까지 데려갑니다. 우리가 창으로 찔린 주님의 가슴을 볼 때,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압니다. 그리고 제 13처에서 우리는 7개의 칼로써 찔린 성모성심을 볼 때, 성모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성모 기사 여러분, 성모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로서 성모님을 알리고 사랑하게하기 위해 이 사랑의 신비 안으로 여러분 자신과 가족, 친척, 지인을 소개하는 중요한 임무를 이해하십시오! 모든 마음을 예수성심에 두기 위해, 주님은 진심으로 성모님의 헌신적인 자녀, 노예, 기사로 삼을 수 있도록 그들을 어머니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등하게 모든 영혼의 마음을 마리아의 성심에 두어, 성모님이 그들의 마음을 성모성심과 함께 예수님께 선물할 수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이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혼자서 우리 주님의 숭고한 요구에 대답 할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다오!“


이 가장 거룩하신 두 성심의 비밀 속에 숨으면 아무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과 가슴은 일치된 성심들과 일치되었기에, 우리의 마음은 이미 영원한 지역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는 이미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부들은 자주 마리아를 "천주님의 천국"으로 지칭합니다. 성 요한 외드(John Eudes)는 성모성심을 천주님이 계신 천국보다 훨씬 더 현존하는 "천국 가운데의 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모님은 성모님의 존엄과 영광 속에서 하늘이 지상을 뛰어 넘듯이, 하늘보다 높은 천주님의 엄청난 걸작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모든 천국과 모든 완전함, 모든 성인들의 온전함과 사랑은 성모님이라는 “천국 중의 천국”이라는 것에 비해 겨우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고향을 이곳에서 찾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시련과 고난이 저분들의 진실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천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성장하고 더 나은 기사가 되기 위해, 즉, 성모님이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도록 돕기 위해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2018년 예수성심축일에,
칼 슈텔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