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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 지상교회군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6-27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 1부  지상 교회 군대에서의 성모기사회(MI)



성모기사회(MI)는 교회내의 운동이다. 지상의 교회를 신전교회(神戰敎會)라 부른다. 왜냐하면 교회는 천주님과 인류 구원의 치명적 적인 사탄과 죄를 거슬러 영원한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전투정신은 지상의 교회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천주님은 하나의 원수, 적의(敵意)를 세우시니, 이 적개심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영원히 지속된다. “너와 여자 사이에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다. 여인은 네 머리를 으깰 것이며 너는 여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세기3;15)


 세상이 두 개로 나뉜,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뉜 후부터 이 두 진영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지속적으로 싸웠다. 선택된 백성들의 전체적인 역사는 많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천주님과 악마의 전쟁이다. 복음서에서는 구세주께서 이러한 기본적인 계명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두 주인을 한꺼번에 섬길 수 없느니라.... 파멸로 이끄는 길이 그 얼마나 넓은가?  구원으로 가는 그 길은 그리도 좁고 간삽한가!“ 예수님을 두고 이르되 ”이 아기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망함도 되고 흥함도 되실 것이요, 또한 거스르는 바탕이 되시리니..“(루까2:34)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거스르는 자라.“


성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관해 자주 그리고 심오하게 글을 썼으며, 또한 그분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사랑의 전달자로서, 에큐메니즘의 선구자로서 흔히 인용되는 분이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리니....”) 이 분은 분명히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의 모순을 가장 예리하게 강조하는 분이다. “세상에 계시고 또 세상이 저로 말미암아 되었으되, 세상이 저를 알지 아니하며, 본당에 오시되 그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고.... 만일 세상이 너를 미워하면 나보다 앞서 나를 미워함이라. 만약 네가 세상에 속한 자라면, 세상은 그에 속한 자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나 너를 세상으로부터 너를 택했노라.” 그분의 첫 번째 서간에서 기본적인 원리를 간결하게 서술하신다.:“너희는 세속과 및 세속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지니라. 누 만일 세속을 사랑한다면 성부에 대한 사랑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리라. 대저 세속에 있는 바 온갖 것, 곧, 육체적 쾌락과 안목의 쾌락(=인색, 정욕)과 생활(=지상생활과 부귀)에 대한 자랑은 성부께로 조차 온 바가 아니라 오직 세속으로부터 조차 오는 것인 연고니라.”(요안 1서2;15-16)


성 바오로와 교회교부들은 다른 교리를 알지 못한다.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주님의 도성과 악마의 도시 사이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전쟁으로서 구원의 역사를 요약한다. 그리스도 왕국이라는 이 기본적인 개념(천주님의 도성)은 예외 없이 모든 성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 때에는 이 전쟁의 강도가 점차 더 강렬해질 것이고, 악마는 점점 더 승리를 구가할 것이며, “심지어 간선된 사람조차도 가능하다면 속아 넘어갈 것”(마테오24:24)이라는 사실에 대해 완전한 만장일치의 견해가 있다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성모님의 주요 발현에서, 특히 라 살렛트와 파티마에서 천주의 모친은 이 전쟁에 대한 최후의 구호를 설명하시면서 충직한 자녀들은 성모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무기를 잡아야 할 것을 요청하신 점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성모님은 이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기 위하여, 그리고 승리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분명히 나타나셨다.


‘결정적인 전쟁’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 이 표현은 천주의 모친께서 루시아 수녀에게 마씀하실 때의 표현 – 작은 군대를 불어 모으는 것은 천국을 기쁘게 하는 것이니, 이 군대는 성모님의 깃발 아래에서 기치를 들어올리고, 마치 강력한 골리앗 앞에선 어린 다윗처럼 적 앞에 이것을 던지는 것이다.


이 작은 전투군대 가운데 하나가 성모기사회(MI)이다. 분명히 이 전쟁이 점차 치열해지기 때문에 주께서는 교회 내 다른 모든 운동처럼 이 전쟁을 깨달은 충직한 이들을 모으시고, 또한 마음 안에 군인으로서의 이러한 이상을 의도적으로 가지게 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적의 가면을 찢어버리며, 적과 맞서 싸우도록 전장에서 선봉에 서게 하신다.


제1장 군대 대(對) 평화주의


우리는 단지 성모님의 자녀가 아니라 기사이기도 하다. 기사의 의무는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전보다는 이 전쟁이 우리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다. 확실한 용어로써 외치는 “신이 없다”는 주장으로 인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진리가 공격받고 있다. 불신과 비도덕의 명분을 부르짓는 선동적인 무리들과 혁명가들은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 대부분이 유대인들이다) 이교도의 관습과 볼세비키 구호를 잔뜩 들먹이며 거주지 담벼락과 공장지대를 기어오르고 있으며, 혐오스럽고 역겨운 벌레처럼 오지 마을까지 자신들의 그 길을 확장하면서 자기들의 혁명구호를 시골지역으로 퍼뜨리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교회에 대한 신앙과 신뢰를 뿌리 뽑으려 한다. 그러면 우리가 성모님의 기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우리 측 입장을 꾸준히 그리고 단호하게 주장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주 안에서, 그분의 티 없으신 모친의 군대 안에서 인지, 또는 사탄의 깃발 아래서, 반란과 왜곡과 타락 그리고 천주께 증오를 외쳐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화해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길,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대적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려 하지 않는 자는 흩뜨리는 자이다.”성모기사인 우리는 결심을 해야 한다.(“Rycerz Niepokalanej” (henceforth: RN), 5 (1933), pp. 131-132.)


이는 아마도 이 모든 것이 현대의 정신세계에 비추어보아 얼마나 모순인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오늘날 평화주의는 교회 내부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모두는 형제요, 자매이다. 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저들은 외친다. 평화가 제일 우선이고 으뜸인 표어다. 그러나 그로인해  ‘천주님의 평화’를 들먹이며 ‘적개심으로 무장된 것을 내려놓기’위해 간교하게온갖 노력을 다해 혼란으로 빠뜨린다. 천주님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고 저들은 주장한다, 다르게 믿고, 그들을 받아드리며, 저들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저들과 함께 일하는 이들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이 뒤따르게 된다.모든 사람들은 다 좋은 의지를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평화와 행복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이유이다. 이 점은 적들이 그들의 갈라진 혀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호가 교회의 도덕적인 적들에 의해 수세기 동안 사용되어왔다는 사실은 별도로, 이와 같은 선언은 영혼을 거슬러 범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적들은 공격하고 있다. 우리 장군은 무기를 내려놓고, 심지어 적을 보고 친구라 부르며 포옹한다. 그러면서 적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뒤에서 찌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의 위기다. 이 위기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영혼들을 사탄의 노예로 만든다.


 이것을 반대하는 것이 작은 성모기사(MI)이다. 그 자체로 보면 터무니없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성모님은 뱀을 짓밟은 여인이요, 전쟁 대열에서 군대조직으로서 두려운 존재이며, (앗시리아 장군인) 홀로페른(Holoferne)의 머리를 자른 새로운 유딧이시며, 사탄의 머리를 부수는 놀라운 약속을 받으신 유일한 여인이시다. 성모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이기시는 분이시다: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가 ‘홀로 모든 이단을 정복하신’ 여인, 또한 현대의 무신론이라는 히드라 괴물을 대항하여 우리를 도우시려는 여인의 깃발 아래에서 서 있다. (Ibid.)


 오늘날의 가톨릭은 이러한 전투정신이 가득차야 하니, 그래야 저들이 풍미가 없고 인공적인 향기를 품는 현대세계에서 멸망할 것이다. 적은 보이지 않게, 잡힐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이동하기 때문에 분명히 아주 위험하다. 속삭이는 바람처럼 사람들을 감싸고, 강력한 벽을 통해 스며드는 물결과 같이 멋지고 그럴듯해 보이는 구호인 ‘균형’을 들고 나오며, 친근하고, 자상하며, 매력적이고, 유쾌하며, 동정적인 감성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이것이야 말로 적들이 오늘날 사용하는 독이다. 이에 대해 전쟁을 선언하는 것은 널리 퍼져있고 치명적인 적이 위험을 알 수 있게 된 명백한 공격자들을 다루는 것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어렵다.


 이 전쟁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적의 책략은 무엇이고 어떤 무기이며 그래서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이것은 전쟁이며 실제로 끝없는 생사에 관한 전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신해야 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 있을지어다. 대저 이는 너희의 원수 마귀가 마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잡아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님이니라.”(베르로 전5:8-9)

 

 성모기사회(MI)의 법령 바로 첫 문장이 이 전쟁을 강조한다: ‘여인이 네 머리를 부술 것이다!“(창세기3;15) 물론 이것은 천국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고 오직 지옥을 대적하는 전쟁 선언이며, 이것이 성모기사회(MI)의 생활을 결정해야한다. 더욱이 콜베 성인은 이 운동을 ’군대‘라 부르는데, 이는 기사로 번역될 수 있거나, 군대로 번역되어 이로 인하여 기사는 평범한 보병이 아니라 오히려 말하자면 엘리트 군인인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 콜베 신부님의 시복식 과정은 1960년 3월 16일 제기되었다. 1969년 1월 30일, 성직자성성은 콜베 신부님의 영웅적인 덕행에 대해 교령을 승인하고 그분의 중재로 돌려지는 기적에 관한 교령이 1971년 1월 4일에 있었고, 1971년 10월 17일, 복자로 선포되었으며 1982년 10월 10일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성인 인정과는 모순되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품에 관하여는 다음을 보라)
 

 이 전투 정신은 분명히 성모님의 군대 깃발 아래 매우 짧은 기간에 등록된 영감 받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것이다. 천주님의 교회의 적들에 의해 행해진 강력한 행위에 직면하여 우리가 어찌 게으른 상태로 있을까? 그저 단지 불평이나 하고 눈물이나 흘려야 하는가? 아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해서 설명해야할 뿐만 아니라, 천주님은 또한 우리가 행할 수 있었으나 실패한 이러한 모든 선한 일들을 셈하실 것이다. 우리 각자 하나 하나에 의존하는 것은 최전선에 서 있는 진지한 의무이고 적의 공격을 물리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흔히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잘 조직화된 다른 쪽은 무척 강력하고 부유하고 .....” 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한 개인주의 성향은 분명히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잊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주 안에서 내가 능히 못할 것이 있는가?”(RN 2 (1923), p. 4.)


 그리고 다음과 같은 표현들: 기사도, 전쟁, 방어, 승리하는 영혼, 적 파괴, 탄약과 무기, 적절한 무기 배치 등.... 설립자의 저작 안으로 돌아가 보면 지속적으로 상기되는 것이 있는데, 마치 그 성인께서 우리 시대의 위험을 예견하시듯이...그리스도의 문명이 잠에 빠져서 악마와 함께 평화가 선포된듯하다.


기사, 기사도, 전쟁: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전쟁과 같은 소리가 나니, 왜냐하면 실제 전쟁이기 때문이다! 어느 전쟁도 총, 폭탄, 탱크 그리고 독가스 없이는 수행되지 않는다. 그래도 실제 전쟁이다.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기도다.(RN 3 (1924), pp. 217-218.)


 우리는 우리의 완고함을 극복해야하고, 이 방어적인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천주님과 신앙을 대적하는 프리메이슨과 자유사상가들이 추구하는 싸움은 인간들을 신성함을 파괴하는 기본적인 동물과 야만인이 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도 허용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싸워야 한다. 물론 우리 자신과 이웃들이 이교도화 되지 않도록 방어하며, 또한 성모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통치하시도록, 그리스도의 왕국이 저들에게 오도록 해야 한다.(RN 5 (1933), p. 132.)


 그러나 이 싸움은 모험적인 측면으로서 이해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 싸움은 우리의 모든 힘을 요구하는 총력전이다. 이 싸움은 적이 패배되지 않는 한 경계도 끝도 보이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 거주하는 우리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서, 이 싸움에서는 중간적 타협이 없는 것이다. 기사는 반드시 가장 높은 이상으로 영속적으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성모님께서 가능한 한 빨리, 온 세상의 여왕이 되시고 모든 각 영혼들과 세상 모든 국가의 여왕이 되시도록, 예외 없이 모든 개인의 마음이 성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 기사의 이상이다.(RN 4 (1925), pp. 101-102.)


 평범, 게으름 그리고 냉담은 기사에게 있어서 낯선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는 퍼져 가는 악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고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하여 악을 증오하고 모든 기회마다, 모든 장소에서, 매 시간에  영혼에 독극물을 넣는 모든 종류의 악을 잡아낸다.(RN 4 (1925), pp. 25-27.) 한마디로 말해서, 성모님의 기사는 성모님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승리하고자 싸우는 사람이다! (1939년 원고原稿)


 그분은 모든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며, 모든 이를 위해 고통 받는다. 모든 이가 잘되기를 바라고 모든 이가 행복하길 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그리 원하시기에! 천주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성모님께 입으로, 정화된 마음으로 기도로써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든 간에 행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많은 영혼들이 성모님을 통하여 승리하도록, 저들이 악의 쇠사슬로부터 자유가 되도록, 그리고 그들이 행복해지도록 한다... 그리고 그는 홀로 어느 날 승리를 맛볼 것이다.(RN 3 (1924), p.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