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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 악마, 죄, 지옥에 대항하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06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1부 지상 교회 군대에서의 성모기사회(MI)


제2장  악마, 죄 그리고 지옥에 대항하여


 성모기사회(MI) 전쟁은 주로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우리가 투쟁해야할 주적은 누구인가?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에게 있어서 이 질문에는 의문이나 주저함이 없다. 모든 성인과 함께 콜베 신부님은 이 전쟁은 특히 영혼을 낚아채는 사탄으로부터 영혼을 구하고, 대담하게 죄와 맞서 싸워서 사탄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소리 높여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곳이 영원한 행복이냐 영원한 저주이냐 라는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악마는 강력한 적수이며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할 정도로 중대하다.


 성서 이르길:“여인은 네 머리를 부술 것이며, 너는 여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나타나는 곳마다, 영혼이 성모님에게 다가갈 때마다, 성모님의 발꿈치에서 잠복한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해선 안 된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조심해야 하며, 특히 기도를 많이, 잘하도록 해야 하지만 어떤 것에 놀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경멸감을 가지고 사탄을 내려다보아야 하며 가치가 없는 존재이니 아무런 연관도 갖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천주께 불충했기에, 우리가 그와 관련 맺어야할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너무나 교만한 사탄은 무엇보다도 경멸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만한 사람은 경멸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사탄을 개처럼 취급하자. 짖을 때, 짖게 놔두고, 우리의 길만 그저 가도록 하자. (Conference,1936년 6월 23일)


 순수 영(靈)의 존재인 악마는 간교(奸巧)하며, 그의 지성은 우리보다 훨씬, 훨씬 더 예민하지만 천주님과 성모님의 성총의 도움으로 우리가 악마보다 더, 훨씬 더 강력하다. (Conference, 1938년11월20일) 악마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죄에 떨어지면, 천주님은 우리 몸에서 나오고 사탄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 대개, 사람이 대죄에 즉각 떨어지지 않는다. 대체로 사소한 것에 있어서 태만한 가운데 시작된다.


 이러한 태만은 은총의 유입을 줄여, 그 영혼이 약해지고 천주께 대한 헌신이 줄어든다. 악마는 영혼을 천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세속적인 물건에 애착을 갖게끔 의도한다. 그러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평화 속에 속은 영혼을 떠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영혼에게 아주 희미한 생각만을 제시하여 절망으로 빠뜨린다. 사제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이런 영혼들은 두 손을 들고 말하길, “우리가 구원받기는 다 틀렸어.” 이것이 악마적 간교다. 사탄은 먼저 영혼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그리고서는 더 이상 용서는 없다고 한다. (Conference, 1937년 6월 12일)


그렇지만 모든 죄 가운데 최악은 교만이다:
원죄를 통하여 인간은 이기적이 되고 교만과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찼다. 자기 사랑은 인간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사람이 약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죄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빛이 필요하다. (Conference, 1937년 7월 32일)


 “천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아를 경멸하는 것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천주님을 경멸하는 것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사랑 자체는 가장 높은 영역으로 이끌려 세상을 경멸하니, 세상은 천주님의 성총을 얻는데 있어서 커다란 방해다.(Meditation, 1918년 1월28일)


 죄의 결과 –지옥- 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지옥이 얼마나 몸서리치는 것이고 심각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엄청난 위험이 우리를 협박하니, 그러므로 우리는 밤낮으로 경계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 점에 있어서 성모기사회(MI) 설립자는 지옥의 고통과 지옥의 끔찍한 두려움으로 우리를 경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지옥)의 불가피성과 지속성에 대해서 반박할 수 없는 논리력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범죄란 그가 저지른 대상의 존엄성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게 측정된다. 길에서 일하는 청소부의 뺨을 때리는 것도 범죄이다. 만약 시장에게 뺨을 때리면, 심지어 일국의 대통령에게 그러하면 그의 죄는 훨씬 중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최고 존엄자인, 이름 하여 천주께 죄를 범하면 그 죄는 무한히 큰 것이다. 이러한 죄에 대한 보상은 예수의 고통이라는 무한한 공로인 보속의 성사를 통한다. 자신을 천주이자 사람이신 성혈에 대해 내키지 않으려는 사람은 유한한 존재로서 그의 생애로서는 무한한 배상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죄를 갚기 위해서는 죽은 후에도 배상하여야 하니 즉 무한히, 영원히 지옥에서 배상해야한다. 이것은 건전한 이성이 요구하는 바이다. (RN 5 (1926), p. 291.)


 요즘은 이 주제가 금기시되고 있다. 오직 들을 수 있는 견해란 모든 인간은 결국 영원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은 지옥이 없다... 텅 비거나 혹은 최소한 세상 종말 때에 빌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두꺼운 책을 썼다. 저런 견해라면 지옥이란 중세시대의 반응에 대한 상상력이라든지 또는 단지 심오한 심리학적 인간의 필요사안이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 원수와 맞서 싸우는 것을 논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결과적으로 가톨릭 신자의 대다수는 이런 생각을 이끌고 있는 목자들과 함께 싸움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고 적을 친구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죄 속에 사는 것은 정상적인 어떤 것이 되었으며, 심리적적으로 균형 잡힌 어떤 것이며, 오늘날에는 허용될 수 있는 것이며 바람직한 것이 되었다. 여러분의 양심을 일깨울 경고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면 근본주의자나 과격주의자로서 그들은 무시되고 낙인찍힐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저런 죄의 끔찍함을 발견할 때, 지옥과 악마는 참으로 존재하니, 그러면 저런 원수는 전략을 바꾸지 않았나? 일생을 엄청난 모든 환상 가운데 소진한 후에 깨우치는 그 슬픔은 어찌할까? 대부분 흔히 너무 늦은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에 성모기사회(MI)에 특별한 책무가 있으니, 첫째, 보편적 구원이라는 거짓말에 한 순간도 영향 받지 말 것이며, 역시 다른 사람도 일깨우고, 저들의 환상에 대한 끔찍한 결괴에 대해 각성시키자. 이 임무에서 천주의 모친은 우리의 조력자로 오시어, 성모님이 파티마의 세 어린이에게 지옥의 불바다를 보여주셨으니,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티 없으신 성심에 대한 신심을 통하여 사탄과 죄에 맞서 싸우자.


 성모기사회가 먼저 자기 마음속에서 전쟁터를 찾게 되고 그가 반드시 ‘육신을 거슬러 싸우는 싸움’, 육욕, 유감이니 이것은 결코 줄지 않는 것이다. 이를 앎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고 낙담하지 아니하며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죄에 떨어지면, 우울한 슬픔에 빠지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더러운 교만이다. 그와 반면에, 위대한 사랑과 마음의 평화로서 곧바로 일어서고 계속 전진하지! 완전한 사랑(통회)의 행실로 죄에 떨어진 것을 고치자. (Conference, April 17, 1934.)



 유감에 굴복하는 불행을 갖게 되면, 즉각 성모님께 여러분을 맡겨 용서를 청하자: “오, 지극히 사랑하옵는 어머니여, 저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예수께 용서를 빕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모님과 예수님께 가장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 드리도록 다음 행동을 이행하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이루어지는 놀라운 사랑으로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확신이 들것이다. 다음번 고해 때 이와 같은 죄에 떨어짐을 인식하자 그러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Sketches for the book, You belong to Her!, in: P. J. Domański, Co dzień ze św. Maksymilianem, Niepokalanów 1994, p. 138.) 죄의 상태에서 일 분도 머물지 않고 즉각 천주께 죄의 용서를 빌자.(Spiritual exercises, 1912.)


 더욱이, 성인들께서 우리에게 반복하여 가르치듯이, 천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우리도 타인을 용서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한 우리의 ‘첫 번째 사랑’[묵시로2:4]으로, 진정한 열정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무관심을 던져버리자.


 죄의 유혹에 실수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모든 유혹이 죄는 아니다. 설령 유감이 오랫동안 지속되더라도, 결코 죄는 아니다. 반면에, 영혼이 유혹(유감)에 저항하면, 공로를 얻는다. 유감에 대항하여 싸우는 방법은 의심이나 신경, 걱정으로 인해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무척 평화롭게 성모님께 집중하고 여기에 염려해선 안 된다. 단순히 아무런 시간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일에 몰두하여 매진하는 것이 낫다.(Conference, August 16, 1936.)


 여러분 안에서 선과 악을 느낀다면 놀라지 말라. 악한 것 모두는 너에게 오는 것이며, 선한 것 모두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님의 손길에서부터 쏟아져 나온다.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악이 모두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안과 밖에서 우리 자신을 알게끔 성모님은 우리가 그 악의 일부만을 알게 하신다. 우리의 약함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 평화 속에서 싸워야 한다. 성모님에게 모든 신뢰를 맡기자. 그러면 성모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신뢰 안에서 무조건 성모님의 뜻에 굴복하고 평화 속에 싸우자. 그러면 모든 약함이 훨씬 훌륭한 선으로 변화될 것이다. (형제 수사에게 보낸 편지: P. J. Domański, Co dzień…, p. 135.)


 마지막으로, 우리는 죄의 기회를 피해야 한다. 성 베드로는 죄를 지었으니, 왜냐하면 그는 올리브 동산에서 기도를 아니 하였고, 예수의 적들과 함께 모닥불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죄의 기회를 피하고. 나쁜 동료들을 피하며, 기도를 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한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Meditation, 1918년3월16일)


 죄의 기회를 피하는 은총을 등한시하면, 죄를 극복할 승리의 은총을 받지 못할 것이다.(Meditation, 1919년 10월 15일)


그래서 성모기사회 첫 번째 생활규칙은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단호히] 첫 시작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려는 열정으로 모든 사악한 행위를 보상하는 데 있어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증진시키거나 어떠한 방법을 도모할 것이다. 생활의 규칙은 성모님을 통한 천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Rule of Life, 19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