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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 공의회 정신에 저항하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26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1부 지상 교회 군대에서의 성모기사회(MI)


제4장 세상을 거스르는 싸움: '공의회 정신’에 관하여 전쟁을 선언하기



‘세상’은 세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천주께서 창조하신 우주적인 측면에서의 세상은 ‘그분 손에서 이루어진 작품이자, 발자국이다. 성 아우구스투스는 이것을 모든 것이 천주님에 관해 언급하는 책이라고 부른다.


2. 세상은 또한 영원한 목적지를 향하여 순례지로서 여행하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이다. 고로 천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로서의 세상이다. 영원한 목적을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세상, 수단으로서 그 수단에 관련하여 과업을 해야 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수단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다. 그 싸움은 이미 이곳에서 시작되니, 왜냐하면 원수의 책략이란 분명히 수단을 곡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그 수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수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사람을 사물의 노예로 만든다.


3. 마지막으로, 성 요한이 말한 세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니....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이 의미에서 세상은 천주님을 등 돌린 자들의 왕국이다. 이들은 진리에 대해 전혀 듣기를 거부하며,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천주님을 반대한다. 이와 같은 세상은 유혹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뿐더러, 세상을 거스르는 주님의 전쟁은 생사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성모기사회(MI)가 주로 하는 전쟁인 것이다. 세상에 마음을 열지(aggiornamento-가톨릭의 현대화)않고, 세상에 끊임없이 동정(바오로6세)하지 않으며, 우상에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으며, 천주님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일상적인 일을 공유한다하더라도 이 세상의 ‘가치관’ 갖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최근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상’과 세상의 이상을 대표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이 교회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서, 특히 프리메이슨과 공산주의로 인한 영향으로, 성모기사회(MI)의 모든 공격의 목표가 되었다.


성모기사회가 볼세비키 10월 혁명 전야(前夜)에 섭리되었다는 것은 천주님의 섭리가 아니던가? 프리메이슨 200주년 기념일이 성모기사회 설립 위한 특별한 사례는 아니었던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책에서 교회의 불구대천의 원수를 배우지 않았다. 신부님은 바티칸에서 신성모독적인 행렬을 목격하신 분이다. 그곳 바티칸에서 데모대는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사탄이 바티칸을 지배할 것이고 교황은 그의 종이 되리라.’는 글이 쓰인 깃발을 들고 행진하였다. 신부님은 쓰길, 로마의 프리메이슨이 점점 공개적으로 나타나, 미카엘 대천신이 사탄에 의해 짓밟히고 패배되는 그림이 담긴 저들의 깃발을 바티칸의 창가에 분명히 펄럭이고 다니면서 교황 성하를 욕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을 때, 내게 문뜩 떠오른 생각은 프리메이슨과 사탄의 종과 맞서 싸우는 단체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Memoirs of the Founding of the M.I., 1935.)


프리메이슨(그리고 다른 모든 무신론적 물질주의를 표방하는 단체)의 뚜렷한 근본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교회, 그리스도 그리고 지상의 그리스도 대리자에 대한 끔찍한 증오는 그저 길을 벗어난 개인의 폭발이 아니라 오히려 프리메이슨의 원리에서 나오는 체계적인 행동인 것이다. 즉 모든 종교를 파괴하는 것, 특히 가톨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에 걸쳐있는 이 마피아의 흩어진 세포들은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다소간 보이듯이 하면서 같은 목적을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이름과 목적을 가진 단체의 모든 무리를 이용하는데 이 단체들은 이러한 영향력으로 종교적 무관심과 도덕을 약화를 퍼뜨린다.


특히 오늘날, 성인의 뛰어난 통찰력은 ‘자유사상가들의 친근한 얼굴’을 벗겨 찢어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바티칸을 드나들고 있음을 볼 때, 이런 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저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무엇인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영국 프리메이슨의 고위직에 있는 랍비 모이세 몬테피오레(Rabbi Moses Montefiore)가 1848년 즈음에 발언한 것을 인용한다.“세상의 신문들이 우리 손에 없다면,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프리메이슨의 방법을 설명한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라, 그러면 최근 수십 년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누가 사람들 사이에서 불신의 씨앗을 뿌리는가? 누가 천국의 희망을 빼앗고, 저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쾌락에서 행복을 추구하게 만드는지를? 누가 양심의 목소리를 질식시키는가? 국제법과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자는 누구인가? 저런 모든 것들은 반 성직자 일간지의 작품인 것이다! (“Akcja Katolicka a masoneria” [Catholic Action and Freemasonry],


이에 대해 유일한 반응이 하나있으니, 적극적인 저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이룰 때가 바로 지금이다. 변화의 첫 단계는 나쁜 신문을 적극적으로 사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신문사를 키우는 것이다. 만약 수백반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러한 반 성직자 기관지와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더라면, 무신론을 표방하는 신문은 그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타락에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러한 악한 표양에 대한 책임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쓰레기 신문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가톨릭 신자인 우리는 이걸 구독하여 저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주교 Zwerger가 1884년에 제대로 말했다: “반 성직자 신문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가톨릭교회와 전쟁을 하는 것이고 저들을 가톨릭 신자라고 부를 수 없다.”(Ibid., p. 24.)


이러한 말들은 오늘날 성모기사의 마음에 새겨야 되니, 왜냐하면 적절치 못한 출판물들은 심지어 (바티칸의)고위 성직자들에게도 흔한 것이 되어있고, 또한 더 나쁜 것은 텔레비전, 수많은 나쁜 영화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제 불능의 인터넷 이용이라는 질병 등, 이러한 것들은 흔히 불행히도 최악의 쓰레기로 뒹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을 뒤엎으려하는 악마적 물결’(파타마의 루시아 수녀가 프엔테 신부에게 한 말 (1957년)을 저지하려는 교회 고위성직자로부터 오는 동일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와는 반대로, 주교들이 세상의 평화와 복락을 명분으로 프리메이슨의 놀라운 업적을 칭찬하고 있다. 세상의 이러한 일들을 주의 깊게 관심을 돌려볼 때, 우리 성인들의 (세속과 영합하지 않았던)건전한 목소리와 얼마나 다른가?


시온 의정서, 즉 프리메이슨의 진정한 지도력에 관하여 저들은 이렇게 기술한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무형의 힘을 전복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놀라운 힘이 우리의 힘이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우리들의 프리메이슨들은 실제적인 목적을 감추고 이러한 힘의 행사 계획과 찾을 장소는 사람들에게 결코 알려지지 않게 할 것이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께 다행스럽게도, 무형의 힘조차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 내가 말하건대,”여러분께 다행스럽게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놀라울 정도의 뚜렷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천주님과 성모님께 충직하게 섬기고 있는 특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러분을 전복할 수 있고 여러분을 내려다 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우리의 힘을 믿는가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우리는 군대다. 우리 지도자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각자 모두를 알고 있고, 행동 모두를 보고 있으며, 모든 말을 듣고 있으며, ...심지어는 주의(注意)에서 벗어난 생각 하나도 빠트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말을 숨기거나 안보이게 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


그래도 악화된 것 (또는 실제적으로 여러분한테 나아진 것도 있다)이 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제약 안에 놓여있기에 여러분이 오직 이러한 운동함으로써 우리의 지도자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분의 현명한 목적을 얻도록 한다.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자비는 참으로 자비로운 것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우리 지도자가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상상해봤는가? 주님은 너를 몹시 사랑하시고 네가 지옥으로 떨어지길 원치 않으시며 너의 위치를 반성하도록 기다리신다...그리고 가능한 한 주님의 군대에 들어오길 원하신다. 그 시간은 각각 여러분한테  올 것이다. 너무나 빨리... 그리고 이젠 늦을 것이다! 너의 지도자 이름이 뭔지 아는가? 성모님, 죄인들의 피난처, 멸망의 지겨운 뱀의 머리를 부수는 파괴자. 그러면 어디서, 성모님의 모습에서 안보이게 탈출할 수 있는가? 어떤 행위, 무슨 말, 어떤 계획이 성모님으로부터 숨길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는가?


여러분 모두는 세상의 먼지다! 여러분은 천주님의 손으로부터 매순간 모든 여러분의 보물과 함께 여러분의 삶을 받지 않는가? 의로우신 천주께서 여러분을 밟아 먼지로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보라, 우리의 지도자이신 성모님은 자비를 베풀 목적으로 여러분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여러분이 정신 차리도록 하신다. 그러나 곧 날이 밝으면, 그리고 영원히 눈을 감을 것이고..그리고서... 만약 여러분이 살아있는 동안 천주님과 의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 그 날은 끔찍할 것이다! 그러면 후회, 양심의 가책, 눈물, 회한은 더 이상 쓸모가 없으리라. (RN 5 (1926), pp. 289-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