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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우리의 이상(理想)- 총력봉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13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3부 성모 마리아: 성모기사회의 틀이자 모범


제 4장 총력 봉헌


어떤 이가 생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새로운 생활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심과 의도적인 행위로서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직업을 정하고 고용주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이다. 또는 국가를 선택하고 혼인을 치루면서, 서품을 받거나 신앙고백으로써 이러한 결정을 마무리하는 예이다. 모든 사람은 결혼생활과 가정이 단지 결혼 행위 그 이상으로 구성됨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혼인이란 혼인하려는 이 의도를 마무리하는 엄숙한 행위이며 가정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있다. 배우자의 생활을 통하여 이 엄숙한 행위는 매번, 그리고 매일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실천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약속은 처음에는 뒤처지고 점점 더 뒤로 물러나며 결국 흐릿해지다가 결국 파경이 되고 산산조각날 것이다.


이처럼 성모기사는 마리아께 총력봉헌을 통하여 성모기사회에 들어오고 성모님의 깃발 아래 싸우기 위해 마리아의 부름에 엄숙한 응답을 한다. 개인은 이 어려운 시기에 구명 밧줄로서  천주 모친의 위대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응답하길 원한다.


총력봉헌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굴복행위라기보다는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종류의 ’마리아께 봉헌‘이 있다. 가톨릭신자들은 천주 모친께 드리려고 아이를 축성하거나 또는 첫 영성체 등에 관하여 성모님께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행위들이 있다. 이것은 성모님의 요청을 이루기 위해서이고, 그리하여 성모님이 그들 성모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완전히 거두시고 성모님의 소유가 되게 함이다. 이러한 신심은 합법적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자신을 드리는 기부는 아니다. 성모기사가 모든 면에서 자기 자신을 이제는 자기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산에 대해, 자신의 정체,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진정한 봉헌, 완전한 굴복으로서 자기 자신을 마리아께 드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는 오직 마리아의 의도에 따라 물리적인 재물을 처분할 것이다. 오직 마리아의 소망에 따라 자신의 몸을 쓸 것이다. 물론 그는 마리아가 동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생각, 이상, 애착, 또는 의도적 결정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는 직접 마리아께 드리는 자신의 봉헌경을 작성하였다. 이것을 자주 묵상함으로써, 기사는 마리아께 드리는 신심을 더 잘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여’
우리는 이 제목을 성모님께 드린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이 이름을 자신에게 붙이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자 없는 무염시잉태이다.” 천주님은 영원히 ‘티 없으심’이지만, 그러나 ‘잉태’되지 않는 분이다. 천신들은 ‘하자 없는’ 존재이나, 그들 역시 ‘잉태’되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 역시 ‘무죄’하고 ‘강잉’하나, ‘잉태’되어 지심은 아니니,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천주로서 이전에 존재하시고 그러므로 천주라는 이름이 영원으로부터 주님께 적용되는 것이다. 모세에게 드러낸 그 이름은 “나는 곧 나 (존재자)다.”(출애굽3;14) 항상 존재하신 그분은 존재하기 위해 시작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잉태’ 되지만, 죄로 오염된다. 그러나 성모님은 ‘잉태되고‘ 또한 ’수태‘ 하며 더욱이 ’무염(無染)‘이시다. 이 이름은 많은 신비를 가지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고, 성모님의 ‘무염시태’ 즉,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하자 없음(Immaculata)’에 속한 것이다. 이 이름이 성모님에게 있어야 함이니, 왜냐하면 이것은 성모님의 존재 바로 그 순간부터 성모님이 받은 최초의 은총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최초의 은총은 가장 사랑스런 것이다. 이 이름은 또한 성모님의 생애를 통하여 훌륭함을 가지고 있으니, 성모님은 죄로 물들지 아니한,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시, 성모님은 은총으로 가득 차고 주님은 항상 성모님과 함께 하시며, 천주성자의 모친이 되신 후에도 항상 함께 하신다.


‘천국과 지상의 여왕‘
가정에서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가능할 때마다 자녀들의 소망을 이루어준다. 하물며 창조주이자 세속 부모의 원형인 천주님이야말로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천주님의 뜻을 지켜가면서 그분의 피조물의 뜻을 이루게 해주실지 않겠는가? 성모님은 모든 면에서 천주님의 뜻으로부터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모든 일에 있어서 성모님은 천주님의 의지, 천주님 자체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모든 권능의 중재자로 부르니, 이는 성모님이 천주님께 영향을 미치고 세상 전반에 영향을 주시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천국과 지상의 여왕이다. 천국에 있는 모든 이들은 성모에게서 오는 사랑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성모님의 여왕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천신 그룹은 천국에서 그 자리를 잃었다.


천주의 모친으로서 성모님은 또한 세상의 여왕이다. 성모님은 여왕으로서 인정받길 원하시고 그리고 - 그것은 성모님의 권리다 - 모든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각 사람의 마음의 여왕으로서 사랑 받고 싶어 하고, 사람들이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 점점 더 ‘죄 없이’ 되길, 그리고서 천주 사랑으로, 예수성심으로 천주님과 일치될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죄인들의 피난처’
천주님은 자비하시니, 무한히 자비로우시나 그분은 반면에 정의로우시고 무한히 정의로우시다. 극히 작은 죄조차 참지 못하시어 그 죄에 대한 완전한 배상을 요구하신다. 예수 성혈의 무한한 자비를 면한 자, 이러한 죄를 씻어낸 자는 하자 없는 (Immaculata - 성모님) 인격 안에서 천주자비를 인격화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인들 심지어 무수한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극히 적은 자비를 베풀어 줄 필요가 없는 죄인일지라도 성모님을 죄인들의 피난처로 부른다. 더욱이, 모든 영혼의 정화는 일단 다시 성모님의 제목인 ‘무염시태’의 확인이며, 그 죄인이 죄에 점점 빠질수록, 성모님의 ‘티 없으신’ 권능은 그 영혼에게 성모님이 눈처럼 하얀 정화(淨化)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빛을 발한다.


‘지극히 사랑스런 모친’
성모님은 우리 전체 초자연적인 생명의 어머니이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고 천주 은총의 어머니이니,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우리의 모친이다. 지극히 사랑스런 어머니이니, 왜냐하면 천주의 모친으로서, 완전히 천주성을 입은 여인, 하자 없으신 여인으로서 지극히 전적으로 자신을 바친 그런 사랑하는 모친은 없기 때문이다.


천주께서 모든 자비의 질서를 위임하시는 분’
가정의 모든 아버지는 자녀를 벌 주려 할 때 엄마가 중재자로서 아버지의 팔을 잡고 말리려 하면 기뻐하게 되니, 그러면 아버지의 벌은 뒤로 미루어지고 자비를 보여주게 된다. 정의의 집행이 이유 없이 뒤로 미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천주님은 우리를 징벌하시지 않으려고 우리에게 영적인 어머니를 주시는데 천주님은 이 성모님의 중재를 결코 거부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정의의 질서를 지켜오지만, 반면에 주님은 성모께 자비의 질서를 명하신다고 한다.


“나는 무가치한 죄인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처럼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죄 없이 이 하루를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불충의 죄를 지면서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무가치’ 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에 있어서 무한한 차이가 있으니, 즉, 말하자면 성모님의 티 없으신 본성과 죄로 오염된 우리 사이에서의 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진리 안에서 성모님께 돌아가거나, 기도를 하거나, 성모님 발아래서 엎드릴 자격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교만한 루시퍼를 본받지 않도록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저는 당신 발아래 엎드려 겸손하게 간청하오니 당신의 재산과 소유물로서 저를 완전히, 철저하게 받아주소서.”


이러한 말로 성모께 우리를 받아주시도록 요청하고 탄원한다. 모든 면에서 성모님의 자녀로서, 성모님의 사랑의 노예로서, 종으로서 그리고 도구로서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가능한 한 모든 방법에서 누구나 고안하고 공식화 할 수 있는 모든 이름 (합법적 주장) 아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모님의 재산과 소유물로서 이를 행하는데, 성모님은 자유롭게 처분하실 수 있고 고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완전한 파멸로 이끌 수 있다.

당신을 기뻐하게끔 저를 쓰세요: 나의 영혼, 나의 몸의 모든 기능, 나의 모든 생활, 나의 죽음과 나의 영원을.”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넘긴다: 우리 영혼 모두의 권능, 이해, 의지, 그리고 기억 우리 신체에 붙는 모든 힘을 따라... 즉 모든 감각과 에너지, 우리 전 생활의 건강과 질병 등을.. 모든 즐겁고 불쾌하며 무관심한 작은 사건 등을 성모님께 드린다. 우리의 죽음을 성모님께 드리고 언제, 어디서, 무엇이던 간에 서둘러 만나게 되는 것이나 심지어 우리의 모든 영혼조차도... 실제로 우리가 지금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함으로 성모님에게 속하길 기대할 때 분명해진다. 그래서 성모님이 결국 훨씬 더 완벽하게, 그리고 모든 면에서 우리를 그분께 속하게끔 허용하시도록 우리의 갈망과 탄원을 표현한다.


성모님의 성상(聖像)과 그림에서 우리는 성모님 발아래서 지구를 감싸고 있는 뱀의 모습을 본다. 반면에 성모님은 발로 뱀의 머리를 으깨고 있다. 죄로 인해 흙을 먹는 사탄은 죄로써 이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더럽히려 한다. 뱀은 항상 죄 없으신 성모님을 증오하며, 성모님의 발꿈치를, 즉 성모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을 공격하고 이 전쟁에서 영혼이 성모님에게 오는 점에 있어서 성모님은 항상 뱀의 머리를 부순다. 만약 성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불행한 영혼 안에 있는 교만한 뱀의 머리를 짓밟는 도구로서 우리는 성모님이 우리를 쓰시도록 요청한다. 성서는 인용된 위 구절에 한 가지 더 첨가하고 있으니, “너는 여인의 발꿈치에 숨어 기다리리라.”(창세기3;15) 실제로 사악한 적(악마)은 최소한 그들 마음속에서 성모님을 욕하도록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한 이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숨어서 기다린다. 그러나 신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영혼들 안에서 그 사탄의 노력은 항상 훨씬 부끄러운 패배로서 끝난다. 그래서 더 격렬하고 어찌할 수 없는 분노로 외친다. “너 홀로 이 세상에서 모든 이단을 정복하였다.”


이 말들은 교회가 위치한 성청(聖聽)에 있는 사제들의 성모님에 관한 기도에서 나온 것이다. 교회는 ‘이단’이라 말하지 ‘이단자들’이라 하지 않고 있으니, 왜냐하면 성모님은 이단자들을 사랑하시고 이단의 오류로부터 저들을 자유롭게 하고자 매우 신속한 사랑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간에 예외를 두지 않고 교회는 ‘모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홀로’는 성모님 홀로만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천주님에게 있어서 모든 그분의 보물, 회두와 성화의 은총을 포함하여 다 성모님에게 속해있다.

‘세계 전역을 통하여’:

이 지구 먼 곳도 포함된다. 이 점에 관해 봉헌경에서 우리는 성모님께 간청하여 우리를 이용해 이 세상을 휘감고 있는 수많은 이단이라는 뱀의 온 몸통을 파괴하도록 청원을 드린다. “저를 당신의 하자 없고 자비로운 손안에 있는 도구로 만드시어, 당신을 섬기게 하시고 너무나 많이 떨어져 나가는 이들과 미온적인 사람들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이 당신께 대한 공경심을 증진시키려 하나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떨어져 나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삶의 뜻조차 알지 못하고 진정으로 선하신 유일하신 분인 천주님 보다는 여러 가지 허무한 세속물건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탁월하신 사랑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이 영혼들 안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스며들고 증가되길 갈망하며 우리가 성모님의 도구와 자비로운 손길이 되도록 간청한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결코 우리가 성모님을 거역하는 것을 허용 안 하시고, 만약 우리가 성모님께 순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재촉하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성심의 자비로운 통치가 점차 더 널리 확장될 것이다.”

예수성심은 인간을 위한 천주님의 사랑이다.

주님의 왕국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이 사랑의 통치다. 구세주는 우리에게 이 사랑을 구유 안에서,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성체 안에서 그리고 또한 당신의 모친을 우리의 어머니로서 주심으로써 보여주신다. 영혼 안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스며들게 하고 증가시켜 성모님을 위해 그 영혼을 얻는 것은 예수의 모친을 위해 영혼을 정복하는 것이니, 영혼에서 성모님의 천주성자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당신께서 들어가시는 무슨 장소이던 간에, 회두와 성화의 은총이 임하기 청하시어 오로지 당신의 손을 통하여 모든 은총이 예수성심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하게 하소서.”


성모님은 강력한 중재자이다.

모든 회두와 성화는 은총의 작업이지만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다. 그러므로 성모님 홀로 무엇이든 간에 모든 은총을 청원하고 얻을 수 있다. 기적의 메달 발현 기간에 성 가타리나 라브레(St. Catherine Labouré)는 성모님의 손가락에 있는 고귀한 반지에서 나오는 광선을 보았다. 이 광선은 은총을 바라는 이들에게 주시는 성모님께서 너그러이 주시는 은총을 뜻한다. 라티스본(Ratisbonne)은 자신의 환시에서 은총의 광선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오,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제가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그대의 적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누가 성모님의 원수인가? 도처에 있는 모든 것, 천주님에게로 가는 않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 지옥의 뱀으로부터 오는 것, 모든 거짓말, 모든 우리의 악과 죄이다. 뱀에 대항할 힘을 달라고 성모님께 간청하자. 결국 그것은 모든 신심, 기도 그리고 복된 성사가 있는 이유다. 천주님을 보다 강력하게 사랑하고 일치를 통하여, 실제로 천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천주님에게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할 힘을 받아야 한다. 천주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적에 우리는 천주로부터 나온 것처럼 우리는 천주께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이 점을 말하고 있으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행위가 있으면 말하자면, 천주 작업의 메아리로서 이와 동등하게 반응이 있음을 안다. 천주께로 되돌아오는 (반응) 길에서 의지는 어려움과 역경을 만나게 되니 이 고난들은 그를 위해 그의 갈망을 더 강화하도록 천주께서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에게 있어서 이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하며 모든 힘의 원천이신, 그리고 그분이 지으신 피조물을 온갖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주님에게 진정으로 다가오길 바라시는 주님으로부터 이 힘을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이 피조물, 즉,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은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떨어지기도 하고 다치게 될 때, 자비로우신 성부께서는 이와 같은 불행을 보는 것을 참지 못하신다, 성부는 독생 성자를 보내시니, 성자께서는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분명하고 안전한 길을 보여주신다. 성혈로써 그분은 오물과 상처를 치료하신다. 그러나 영혼이 공격 받은 천주님의 정의에서 나오는 그 두려움으로 인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천주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구체화하신 성신의 정배이신 성모님, 그분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자, 흠결이 전혀 없으신 분, 모든 인류의 딸, 아담의 자녀에게 있어서 언니인 마리아를 보낸다. 천주께서는 성모님이 영혼에 베푸는 모든 천주 자비를 책임지게끔 하신다. 그분은 성모님을 성자께서 공로를 세우신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 임명하시니, 은총의 모친이요, 은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 영혼들의 어머니이다. (봉헌경에 관한 해설, in: Fr. Władysław Kluz, OCD, Czlowiek XX wieku…, op. cit., vol. II, pp. 183-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