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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우리의 이상(理想)- 확실한 승리의 비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9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우리의 이상(理想)


제 4부 기사의 강력한 무기


제2장 확실한 승리의 비밀



성모님의 신하 되기


성모님의 기사는 그가 실제로 위대한 목적을 얻게 되는 어떠한 보증이 있는 걸까? 주저 없이,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세울 수 있는 어떠한 확고한 기반은 있는 걸까? 결국 인간이란 의존할만하지 못하고 그의 이해력이란 너무나 어둡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환상으로 속아 넘어가는가?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 생활에서 뭔가 완전히 잘못되는 있음을 생각하게 되고 세월이 흘러 뚜렷한 무익의 시간이 사실 가장 중요하고 결실 있는 것으로 판명되던가? 반대로, 성공적인 계획, 성취한 행위에 대해 얼마나 자주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웠는가?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성공이라 생각했던 것이 우리를 맹목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분별없이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진흙탕에 빠지도록 하기 위한 악마의 기만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어디서 확실함을 찾을 수 있는가? 

 

오직 유일한 진정한 확실성이 있으니, 이것은 기사가 신앙 안에서 찾는 것이다. 인간의 목적은 천주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니, 이것은 천주님의 뜻을 행함에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천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면 모든 세속적인 일의 변칙성과 의문위에 자신을 끌어올리고 불변과 무한성과 영원하신 천주님의 지혜라는 곳에 확고하게 닻을 내린다.
 

기사의 강력한 무기


성모님의 대의명분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천주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제로 가장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다. 천주님의 뜻을 완벽하게 행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하여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천주께서 더 이상 하실 것이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완벽하게 천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혼에게 무한한 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결국 이것은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만약 다른 완벽한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30년간 주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부와 성 요셉에게 순명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성부의 뜻을 이루셨다. 이에 필요한 특별한 훈련이나 특별한 준비는 없다. 모든 사람은 커다란 기계를 합께 구성하는 많은 ‘바퀴로서 자신의 몫에 양심적으로 행함으로써 성모님의 대의명분에 대해 최대의 기여를 할 수 있다. (Letter to Mugenzai no Sono, December 1, 1940.)

 

어떤 방법으로 천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드러내시나? 우리의 최고 관심사 안에서 모든 영원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위해 천주께서 고안 하신 계획은 무엇인가? 창조의 모든 것이 적용되어 흐르는 원리가 있다. 첫째 원인이신 천주께서는 대개 두 번째 원인의 모든 연관, 즉 천주님을 반영한 투명한 그림을, 그분이 그분의 은총을, 그분의 빛과 그분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를 만드신다. 그분의 (외적) 활동에서 주님이신 천주는 항상 도구를 사용하시길 원하시고, 바꾸어서 이 도구(성모님)가 다른 도구(우리)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도구들이 자세하고도 아름다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게 한다. 우리는 성모님의 이러한 도구들이다. 주님의 모친께서 “주의 종이 여기 있사오니, 그대로 내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처럼 천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지만, 그분은 이 도구들이 주님을 섬기고, 도구들의 의지를 주민께 복종하기 원하신다.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이 말은 항상 우리 입술에 있어야 하니, 왜냐하면 성모님의 의지와 우리 사이에 항상 완전한 조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성모님의 의지‘라고 말할 때, 나는 천주이신 창조주께 존경을 드리는 것이니, 왜냐하면 이런 방법으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천주님의 가장 완벽한 작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내적, 외적 생활을 성모님이 의도하신대로 인도되게끔 놔두자.(Conference, June 13, 1933.)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안전하게 쓸 수 있다:“나는 성모님의 의지를 행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항상 예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시며, 예수님의 뜻은 성부의 뜻과 함께한다. 따라서 성모님의 의지는 성자와 성부의 뜻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더욱이 성모님의 뜻을 인용할 때, 여러분은 천주님의 의지에 대한 사랑 외에도 추가된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란 성모님의 뜻은 너무나 완벽하여 천주님의 뜻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래서 여러분은 천주(성부와 성자)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천주님은 너무나 완벽한 창조물을 만드시고 이 장조물이 딱 맞게 천주의 모친이 되게 하셨다.(Fragment of a book about the Immaculata.)

 

여왕이신 성모님의 뜻을 준행하는 성모기사는 최고의 몫을 선택하였다. 자기의 이기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천주님의 무한한 뜻을 행함은, 성모님의 뜻 안에서 반영된 것인 이 뜻을 행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완벽함, 더 훌륭한 행위는 없다. 그러나 이 의지가 우리 모든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첫째, 계명과 우리 신앙의 계시된 진리 그리고 삶의 거룩한 규칙이 교회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특히 우리를 위한 천주님을 나타내는 이들에게 대한 순명을 통해서이다.

 

흔히 우리는 내적 신속함을 통해 마리아의 소망을 알게 되지만, 이러한 것들이 성모님에서 오는지 혹은 우리 자신의 자기사랑에서 오는 것인지 악마에게서 오는 것인지 거의 확신할 수 없다. 빛의 모습을 가장한 천신의 모습을 한 사탄은 때때로 가장 거룩한 것으로 우리를 기만할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어떤 이에게 유익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는 천주께서 우리의 것이 되길 원치 않으신다. 설령 우리가 환시를 봤고 천주의 모친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지극히 드높은 일을 우리에게 부과할지라도, 어떻게 우리가 그것이 성모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기만이 아닌지, 혹은 악마의 덫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장상에게 순명하는 것이다. (Manuscript Militia Immaculatæ.)

 

순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안전과 성공을 위해서, 강요에나, 혹은 자연스런 이유로 인해 어떤 이에게 부하가 될 수 있다. 또한 단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순명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모든 순명은 성모님께 헌신하려는 갈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모님에 대한 순수한 순명은 사랑에서 오는 고상한 행위, 엄마에 대한 아기의 사랑, 주님께 대한 종이 지닌 사랑,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사랑이니, 다시 말해서 초자연적인 순명이다.


즐거워서, 타당하기에, 지혜롭고, 또는 그 자체 거룩해서(예를 들어, 기도하라는 명령)가 아니라, 오히려 그 명령이 장상의 뜻이고 이에 따라 성모님의 뜻이며,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천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명령을 수행한다. 이러한 자세가 없이는 그는 성모님 손 안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 나는 공개적으로 선언하는데 – 아무리 영적인 서적을 많이 읽었더라도, 묵주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였다하더라도, 그가 이룬 행실이 많다하더라도 사탄 손 안에 있는 도구인 것이다. (Letter to Fr. Florian Koziura, May 30, 1931.)
 
초자연적인 순명 안에서 그가 과연 진정으로 천주님을 사랑하는가를 증명한다. 결국 사랑은 뜻을 준행하는 가운데 있으니, 성모님이 행하신 것처럼 순명 안에서 천주님의 의지에 순응하는 것이고, 이에 복종하는 것이다. 실제로 천주님의 모친은 천주님을 몹시 기쁘게 하셨으니 왜냐하면 성모님은 아주 작은 일에도 천주님의 뜻에 결코 불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하는 성모기사, 실천하는 성모기사 정신은 이러한 거룩한 순명으로 구성된다. (Letter to Br. X, April 18, 1934.)

 

주님이 우리에게 설정해 주신 당신의 도구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권위의 목소리를 통해 천주님의 뜻에 이러한 충직하고, 활기차며, 즉각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성 막시밀리안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니, 우리가 그분의 말씀하시는 것에 자주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모범을 자주보기 때문이다. 콜베 신부님은 자주 기억에 남을 만한 사례를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어린 초보자 시절에 로마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을 때이다. 처음에는 몸이 좋지 않아서 그가 과업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장상에게 말씀드릴 때였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생각한 이후 장상에게 다시 가서 신참자인 자기가 말한 모든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장상의 뜻에 따라 그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장상 신부가 나의 이유를 듣고 이에 따라 행동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성모기사회(MI)가 존재했을까? 나에포칼라나우(Niepokalanów)가 오늘날 존재할까? 천주님의 눈길 안에서 왜 이리 순명이 중요한지 알겠는가? (“Zagroda Niepokalanej” 1 (1932), p. 64.)


그러나 우리는 순명이 어떤 영적인 게으름, 의무에 있어서 방기하거나 생각 없이 따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성인이란, 만약 그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끊임없이 충동될 수밖에 없는 마음나간 옛날 정신에만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다. 성인이란 모험적이고, 역동적이며 선도적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과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에 대한 모든 계획과 특징을 가진 자동차처럼 되어야한다. 자동차는 운전수에 의해 가동되지만, 그 자체 움직인다. 운전수는 단지 시동을 걸고 기어를 바꾸고 연료를 주입하고 멈추던지 등의 일을 한다. 자동차는 운전수가 원할 때에 달리고, 천천히 가야하면 천천히. 빨라야 하면 빠르게, 왼쪽으로 갈려면 왼쪽으로 가는 등... 최상의 상태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는 자신이 이런 방법으로 인도되게끔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각자는 자기 기반 위에서 자동차처럼 앞서 나가야한다. 그 누구도 뒤에서 자동차를 밀 수 없다. 스스로 간다. 성모님이 우리를 이곳에 일하게끔 부르실 때,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에너지, 모든 열정, 능력을 이곳에 쏟아야 한다. 쉬라고 하면 쉬고 레크레이션하라고 하면 레크레이션 하면 된다. 이와 같은 영혼,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영혼은 성모님의 대의명분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 (Conference, June 16, 19)

 

우리의 사업은 성모기사회(M.I) 증명서에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우리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서, 영혼을 구령하기 위해서 우리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생각, 지혜를 장상들에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오직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해야 하니, 우리는 내부적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평정심을 가지고 권위에 대한 결정을 순명하면서 받아드려야 한다. (Letter to his brother, January 14, 1927.)

 

마지막으로 성인은 순명에 대한 거짓된 이해를 경고한다. 초자연적인 순명은 항상 천주께 복종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장상에게 순명할 때, 장상이 천주님의 권위 안에서 천주님의 입장과 몫을 감당할 적에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항상 천주께 순명한다. 그러나 장상 역시 제한적이다.


장상이 무엇이던 간에 의심의 여지없이 비록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죄가 될 만한 것을 명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장상은 천주님을 대표할 수 없거니와, 우리는 그의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Letter to his brother, April 21)

 

만약 세속적인 권위가 신앙이나 도덕률에 심지어 아주 적은 정도로 반대되는 것을 명령한다면, 아랫사람은 ‘사람에게 순명하기보다는 천주께 순명’해야 하고 교회가 명령하는 신성불가침적인 불변의 가르침을 행해야 한다. 이 경우 아랫사람은 분명히 순명을 거부해야 한다. 실제에 있어서 장상이 행하는 심각한 불순명을 저항하고 완벽한 방법으로 순명의 덕행을 실천한다. 심지어 부당한 박해와 자기 명성에 흠이 가는 시도는 그로 하여금 천주께 순명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