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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은 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과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05





2017년은 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과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


2017년은 가톨릭교회나 개신교에서는 역사적인 기념의 해로 기록되는 가운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2017년 5월에 가톨릭교회는 포르투갈 파티마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복되신 동정녀께서 세 명의 어린이 루시아, 프란치스코 그리고 야친타에게 발현하신 사건을 100주년으로 하여서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성비오 10세회에서는 금년 8월에 전 세계 신자들이 파티마에서 모여서 러시아가 성모님께 봉헌될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이들이 성모님께 신심을 드리도록 이를 기념합니다. (공지 사항 및 이곳 목록의 여러글을 참조)

 

개신교에서는 1517년 당시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성당 광장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을 기념하여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인 대축일(저성첨례) 전날인 10월 31일에는 저들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묘하거도 금년에 두 기념이 나란히 놓이게 되어 비교될 것이지만, 이 둘은 각자 그 당시 상황과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2017년 현재 교회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방향감각의 상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의 시작은 근대성이 시작되는 것으로 그때 벌어진 사건은 지금까지 서구 전역에서 종교, 정치, 철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의화(義化)에 대한 교리상의 의미와 인간의 자유의지 범위에 대한 논쟁들과는 별 상관이 없고, 그보다는 당시의 재력을 갖춘 상공인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적 이념이 많이 들어간, 그래서 숨죽이고 지내던 국왕과 제후들의 살아있는 지지 받게 되었습니다.


반박문 게시부터 1520년에 그를 파문한다고 공표한 교황 교서를 불태우기까지 루터는 급진주의자가 되었고, 결국 1520년이 끝나갈 무렵에 루터는 1500년간 세워진 가톨릭교회의 미사 및 교리체계 등 모든 기반을 부수고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세 편의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호소함」에서 루터는 교황 제도를 독일 민족의 자유를 짓밟는 사악하고 부패한 제도라고  비난하였는데, 이 논문에서 그는 “만인 사제설”을 주장함으로써 교황, 사제, 신자 간에 어떠한 구별이 없다는 평등주의 원칙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세례를 통하여 축성되고 사제가 되는 것이니, 교황이나 주교가 기름을 붓고 삭발하고 서품을 축성하며 평신도들과는 다르게 옷을 입는 것은 사람을 위선자 또는 꼭두각시로 만들 뿐 결코 그리스도인을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교계제도와 교회의 권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수도원 생활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직자의 독신제도 철폐, 사제직의 거룩함 철폐, 축일 숫자의 대폭 감소 등을 통해서 사람들이 종교생활보다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하고, 교회법에 의한 계명을 방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되돌아보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재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이질적인 개신교의 정신들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흘러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루터의 두 번째 논문인 「교회의 바빌론 포로」가 1520년에 나왔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성사론(聖事論) 파괴와 미사의 재구성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미사를 마지막 만찬을 재연한 일종의 상징으로서 먹고 마시는 일종의 기념식으로 재구성하여 미사를 파괴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있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재구성된 부니니의 Novus Ordo (새미사 양식) 또한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는 수세기에 걸친 전통(성전), 교황들, 공의회, 교회학자들, 그리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한 사람이 파괴하여 새로운(New) 신학으로 이기려고 하는 운동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가톨릭 전통와의 연속성을 파괴하여 전통은 필요 없다는 오만함이 나옵니다.


1520년에 나온 루터의 마지막 논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자유의 본질, 즉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그 분의 약속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자유에 관해 열광적으로 썼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모든 율법에서 자유롭고 모든 것을 순수한 자유함로부터 자유롭게 행하는 까닭에 구원을 받기 위하여 어떤 행위나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믿음만이 필요하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완전한 자유에 대한 고집스러운 이 논문은 정치적 파장을 초래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출판된 지 불과 4년 만에 이러한 주장에 정치적인 면으로 자극을 받은 비극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처음에 루터는 농민들의 불만에 공감을 표했지만, 그 농민들이 벌인 행위에 충격을 받았고 그리하여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으니, 그 결과 농민 수십만 여명의 죽음을 끝났고 그 이후 이루어진 많은 종교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수많은 종교전쟁의 원인 제공자였습니다.


1521년 칙령에 의해 마르틴 루터 신부의 이단은 공식적으로 단죄되었습니다. 그가 이단자이며 그의 주장은 이단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항의 성명을 낸 루터의 지지자인 저들은 "프로테스탄트(저항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의 인쇄술의 큰 도움을 받은 루터는 팸플릿, 소책자, 논문, 책 등 교회에 맞서 제멋대로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목각화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교회를 대 탕녀 바빌론으로 묘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의 핵심은 어떤 외부의 도움 없이 저마다 성경을 제각각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오직 성경만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각자가 해석하고 중구난방 주장을 하니,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문제가 항상 남습니다. 그 결과 루터 이후 본격적으로 많은 개신교파들이 생겨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수 만개의 개신교 종파가 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르게 성경을 ‘자기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의 많은 이들, 심지어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개신교를 공개적으로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도, 심지어 불교에도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거짓된 교회일치주의(에큐메니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는 이단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계속 이단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톨릭 신자라면 언제나 전력으로 개신교 정신에, 가톨릭교회 내에 침투한 개신교 정신에 저항해야 합니다.


티 없으신 성모님의 파티마 메시지(1917년)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은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1917년에 일어났는데, 그 당시는 근대 19세기의 물질주의, 세속주의, 무신론, 공산주의 사상의 태동 등 이러한 사상의 재앙적인 영향들이 이 세상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던 혼란의 시기였으며 제 1차 세계대전의 시기였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은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재앙적인 사상, 교회 및 신앙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새로운 차원의 타락과 최종적으로는 무신론, 물질주의로 무장한 공산주의가 태동되었으니, 성모님은 이러한 사상을 가리켜 (러시아의) “오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파티마의 메시지들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죄와 지옥에 관한 것입니다. 죄와 심판의 개념을 혐오하는 현대주의에 맞서서 복되신 어머니께서는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지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의 무서운 환시를 보여주셨습니다. 파티마의 아이들에게 은총과 자비를 말씀해 주셨지만, 아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섭게 경고하시며 보속과 기도, 고해성사를 요청하셨습니다.


(교황청에서 거짓으로 발표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제 3의 비밀은 공의회 이후 현재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앙의 상실, 교회의 방향감각의 상실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따라서 복되신 어머니께서는 모든 이들이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을 가질 것과 묵주 기도, 첫 토요일 신심, 교황 및 전 세계 주교들에 의한 성모님께 대한 러시아 봉헌을 요청하셨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충직한 신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셨습니다.


2017년에 가톨릭교회가 생각해야 할 일들


마르틴 루터의 주장을 되돌아보면 오늘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0년대) 이후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흐름과 유사하니, 이른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공의회의 가르침들이 현 가톨릭교회에  교묘하게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고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부니니와 6명의 개신교 목사들의 개입으로 의한 미사의 형식과 내용의 변질,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내세운 주교단체주의, 주관적 상대주의, 가톨릭교회 및 교황 권위와 교계제도에 대한 불신, 세속국가 권력의 강화, 신자들의 세속주의 경향, 전통에 대한 철저한 외면과 멸시, 그리고 사제독신제의 위기, 일부 수녀들의 신품성사 요구, 전통적인 혼인 및 가족제도의 위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사제들은 현대주의, 자유주의에 기초하여 부활을 포함한 성경 속의 여러 기적들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위대한 개혁가(?)라고 하는 루터의 생각이 트리엔트 공의회(16세기)에서 거부된 지 4반세기 만에 가톨릭교회에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루터를 추종하는 개신교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길이 옳다고 여기고 가톨릭교회를 부정하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는 저들 개신교인들에게 스스로 빈틈을 보여주면서 자체적으로 와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톨릭 신앙의 본질과 마르틴 루터의 근대적 개신교 신앙의 본질은 서로 공존할 수가 없거니와 우리가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개신교 신자일 수가 없습니다. 바티칸 공의회(1960년대) 이후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교회는 이전에 없었던 신앙의 상실이라는 비극과 자멸(바오로 6세), 침몰되고 있는 배(베네딕토 16세)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옛 전통신앙으로 현 세상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저들이 구원이 되게끔 하고, (변질되지 않은) 미사와 성사를 베풀어 천주님의 성총이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데이야르 드 샤르댕, 칼 라너 그리고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주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사제들에 의해 이끌린다면, 만일 분열과 혼란,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사명과 목적을 파괴하는 암적인 요소들의 방해를 받아 가톨릭교회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전통유산(성전)을 지키지 못한다면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본질로, 옛 신앙으로, 본래의 그리스도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가톨릭교회가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의 가르침을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켰습니다.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천주님의 심판이 그분의 자비와 함께 실재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잘못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의 상실, 현대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을 기억은 하되,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황들처럼 루터를 위대한 개혁가로 칭송하거나 이를 기념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