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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막시밀리안 콜베에 관하여 -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19



성막시밀리안 콜베에 관하여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의 Zduńska Wola에서 줄리안과 마리안네 콜베 가정에서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성모몽소승천축일인 바로 그날 성세를 받고 레이몬드라는 이름을 받았다.

 

양부모는 베를 짜는 직조공이었고, 돈 문제로 인해 Łódź로 그 다음에는 Pabianice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레이몬드의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고 중년부인으로서 다른 일도 하였다. 줄리안과 마리안네 콜베는 성 프란치스코회 제 3회원이었다.

 

세 아들은 (첫째는 프란치스코, 둘째 레이몬드, 막내 죠셉)은 집에서 배웠다.

 

레이몬드는 특히 총명했고 쾌활한 기질을 타고났다.

 

그는 나쁜 행동에 대해 엄마로부터 자주 꾸중을 들었다. 어느 날 엄마는 슬프고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들아, 무엇을 할 것이냐?” 어머니의 질문은 너무나 인상 깊은 것이어서 10살의 소년의 마음은 천주님의 모친더러 자기에게 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서히 소년은 진지해지고 기도를 자주 시작하였다. 아들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엄마는 감지하셨고,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을 원하지 않았고 마침내 이야기하기를, “성당 안 성모님 그림 앞에서 기도하는 동안, 성모님은 제게 팔을 내밀었어요, 성모님은 두 개의 왕관을 쓰셨는데, 하나는 붉은 것(순교)이고 나머지는 하얀 것(동정)이었어요. 제게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했는데, 저는 두 개를 다 원했어요.”


그 다음 전환점이 1907년에 Lvov에서 오신 Peregrym Haczela 라는 프란치스코회 신부가 제안한 교구의 전교(傳敎)가 있는 동안에 왔다. 그 신부님은 레이몬드를 격려하고 나이든 수사인 프란치스코 수사가 Lwów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소 신학교에 들어가라 하였다. 레이몬드는 과학에서 뛰어났다. 수학과 물리학으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이미 우주여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었다. 수와 물리법칙으로서 현재 과학이 보여 주는 그런 증거들을 보여주는 데까지 진전이 있었다. 그가 1915년에 보여준 것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었다. 그때 그는 행성 사이 우주공간으로 나가는 우주선의 그림을 스케치 하였는데, 그런 설계는 3단 로켓을 띄우는 원리였다.

 

그가 성모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소 신학교 공부시절이었다. Lvov 대성당에서 성모님의 기적의 성화 (the miraculous picture of the Gracious Divine Mother) 앞에서 서원을 하였다. 그곳은 요한 캐시미르 바사 왕(king John Casimir Vasa)이 성모님을 폴란드의 여왕으로서 폴란드의 왕위직을 성모님께 바쳤던 곳이었다. 막시밀리안 신부는 그래서 자신의 서원을 썼는데; 나의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고 제대를 지배하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 성모님을 위해 싸울 것을 맹서하였다. 어떻게? 알진 못했으나, 전투무기를 상상하였다“ 그러나 사제로서는 이루기 불가능하다고 깨달고, 그러므로 영적인 성소를 포기하면서 군인이 되길 원하였다. 그의 수사 프란치스코는 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둘은 신학교를 떠나 어머니를 방문하고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천주님의 종이 되려고 헌신하려던 참이었다. 레이몬드는 신학에 남아야한다는 것이 천주님의 섭리라는 점을 이해하였다.

 

1910년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을 택하면서 프란치스코회 수련수사가 되길 요청하였고, 1912년 크라카우(Cracau)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몇 달 후 로마에 있는 국제 세라핌 대학(The International Seraphic College)으로 갔고 1916년에는 그레고리안 대학(The Gregorianum” Universty)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년 후 아직도 부제였지만 성모기사회(MI/Militia Immaculata)를 설립하였다.

 

1918년 4월 28일 신품성사를 받았다. 로마에 있는 안드레야 성당(S. Andrea delle Fratte)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1919년 폴란드로 귀환하였다. 폴란드는 막 독립하였을 때인데, 그는 자신을 위해, 영적인 형제들과 모든 인류를 위해 오로지 하나의 독립체, 마리아의 기사가 되길 원했다!

 

성모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성모님을 좋아하기 위하여, 성모님이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시도록, 우리의 전부가 되시도록, 성모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사시도록, 성모님이 우리 마음과 함께 천주님을 사랑하고 모든 영원을 위해 성모님께 우리가 절대적으로 속해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이상(理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