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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막시밀리안 콜베에 관하여 - 성모무염시잉모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15


성 막시밀리안 콜베에 관하여


성모무염시잉모태


‘무염시잉모태’란 말은 성모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주 분명하게, 본질적으로 성모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는 말이다.


만약 일반적인 인간의 말이 천주님의 일들을 표현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이 이런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 사물보다 분명히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더 아름다움 그리고 더 고귀하거나 심지어 지극히 예민한 마음에로의 지식을 이끌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을 예비하셨느니라.”(코린토 전2:9)는 이 사례에 꼭 들어맞는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과 언어의 능력 정도에서 최소한 성모님에 관한 사실 안에서 생각하고 토론하고 쓰고 읽을 수 있으리요?


무염시잉모태인 당신은 누구이신가요?

시작도 없는 천주님도 아니고, 무로부터 직접 창조된 천사도 아니며,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도 아니고, 아담으로부터 나온 이브도 아니며, 말씀으로부터 육화된 것도 아닌, 시대를 통해 존재했으며 잉태하기보다는 잉태된 그 무엇.... 이브의 자녀들은 잉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그들은 보다 정확하게 임신된 것이라 불리는 것이 정확하지만 너는 그들 모두와는 다르니, 왜냐하면 그들은 원죄로 오염되었지만 그러나 너 홀로 티 없으신 잉태이시로다.


천주님 밖에서 무엇이 있던 간에, 이는 다 천주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전적으로, 그리고 모두 천주님을 존중하고 그 자체 밖으로 운행하며 그 자체 내부에서 창조주를 닮음이 있다. 이런 닮음이 없는 창조되지 않은 것은 없으니,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제 1의 원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창조된 사물을 의미하는 말들은 오직 불완전하고 제한적이며 아날로그 방식으로써 천주님의 완벽성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들은 (저들이 의미하는 다양한 피조물이듯이) 천주님의 속성이란 다소간 먼 거리의 메아리이다.


이에 대해 예외인 개념은? 이는 불가능하니, 왜냐하면 여기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성부 성자를 낳으시고, 성신은 성부와 성자에 앞서 운행하신다. 이 몇 마디 안에는 성 삼위 일체의 생명의 신비와 피조물 안에서의 모든 완벽성을 담아내니, 이는 오직 다양한 메아리, 이러한 첫째가는 가장 아름다운 신비의 다채로운 음조에서 나오는 영광스런 찬미가이다.


피조물의 어휘로부터 취한 단어들이 우리를 섬기게 하도록 하자. 비록 이러한 것들이 매우 불완전한 단어임을 항상 기억해야 함에도,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부는 누구이신가? 그분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기에 시대에서 시대에 항상 낳으심은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는 누구이신가? 항상 그리고 시대에서 시대로 낳으심을 받으심은 성부로부터이다.


그리고 성신은 누구이신가?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열매이다. 창조된 사랑의 열매는 창조된 잉태이다. 그러므로 성신은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잉태, 우주에서 모든 생명의 잉태의 모범이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는 낳으심을 받고 성신은 잉태되도다. 이것이 저들의 본질이니, 서로 다르며 일치하도다. 그러나 성 삼위는 같은 본성에 의해 일치한다. 천주성이라는 본질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성신은 지극히 거룩하신 잉태, 무한히 거룩하고 티 없으시도다.


우주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행동, 행동의 평형과 반작용, 존재와 회귀,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분열과 일치를 조우한다. 그리고 분열은 항상 일치를 위해 존재하며 창의적이다. 이것은 피조물의 행위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모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일치는 사랑이요, 창의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천주님의 행위란 밖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천주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즉, 분리처럼 보인다. 차례가 되어 피조물들은 천주께서 이들에게 주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천주님과 유사해지고 천주께로 회귀한다. 또한 이성적인 피조물들은 의식적으로 사랑하며 이 사랑으로 일치되어 점점 천주께로 다가가고 천주께로 돌아간다. 이 사랑.... 천주성으로 완전히 가득 찬 피조물은 어떠한 죄의 오물도 섞이지 않은 성모님이시니, 그분은 천주님의 의지로 오는 것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표현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성모님은 성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성신과 일치되나 어느 면에서는 사랑이라는 이 말은 피조물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이 일치는 어떠한가? 성신의 본질과 성모님의 본질이 함께 어우러지는 첫째이자 으뜸인 내적인 일치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신은 성모님의 존재 바로 그 순간부터 항상 그리고 영원히 성모님 안에 거하시고, 성모님 안에서 사신다. 성모님 안에서 성신의 이러한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성신 친히 성모님 안에서 사랑이고, 이것은 천주 친히 사랑으로 인한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며,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사랑이며, 비옥한 사랑인 잉태이다. 창조된 유사성의 영역에서 가장 가까운 일치는 사랑의 일치이다.


성경은 이르시길, 두 개의 의지가 한 몸에 있고, 예수 강조하시니: “그러므로 그들은 둘이 아니요, 하나이니라.”(마테오19;60) 비교할 수 없는 보다 견고한 방법으로, 보다 내적으로, 보다 본질적으로 성신은 성모님의 영혼 안에서, 성모님의 본질 안에서 사시고 성모님을 비옥하게 하신다. 게다가 성모님의 존재 바로 그 순간부터 성모님의 모든 존재에 이르기까지 이는 영원한 것이다. 이 영원한 무염시잉모태는 성모님의 영혼이 활짝 꽃피운 것이요, 성모무염시잉모태는 천주생명을 티 없이 잉태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동정이신 성모님의 태중은 주님을 위해 보존이 되고 주님 안에서 제 때에 잉태하고 –마치 모든 물질이 때가 되면 생겨나듯이- 천주이자 사람이신 천주님의 생명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성부께로 귀환은 창조의 귀환에 대해 동등한 운동이자 반대인 운동이다. 창조에 있어서 성자와 성신을 통하여 성부께로 나오며 성신을 통하여 성육신이 되는 성자는 성모님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시고 주님을 통하여 사랑은 성부께로 회귀한다. 그리고 성 삼위와 교직(交織)이 된 성모님은 성모님의 존재 바로 그 첫 순간부터 그리고 영원히 성 삼위 완성에로 이른다.


성신과 성모님 일치 안에서 사랑은 두 존재를 일치시키면서 그 중 하나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모든 사랑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조물의 모든 사랑이며 그래서 저 일치 안에서 천국은 지상과 일치한다. 온 천국과 온 세상, 모든 영원한 사랑과 모든 창조된 사랑이다. 이것이 사랑의 정점이다.


그리고 루르드의 성모님은 하자 없는 잉태로 불리는 것이 아닌, 베르나르트 성녀 친히 진술하듯이, 성모님은 바로 이 시간에 야생 장미 숲 아래에서 기적의 메달에서 보이는 성모님의 자세를 취하셨다. 나의 세 번째 질문이 있자, 성모님의 얼굴은 매우 심각해졌고 그와 동시에 매우 겸손하시면서 기도 자세로 팔을 모으셨다. 그 후 팔을 펼치고서는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니: Qué soy ér Immaculada Councepsiou! (나는 무염시잉모태로다) 
  

창조의 질서 안에서 만약 사랑받는 신부가 사랑받는 신랑의 이름을 받으면, 신부는 신랑에게 속하기 때문에, 신부는 신랑과 일치를 하며 그와 비슷해지고 신랑과 일치 안에서 성분을 주는 생명이 되고 성신의 이름을 다 많아 닮으랴. 티 없으신 잉태는 성모님의 이름이요, 모든 초자연적인 질서 안에서 기름진 사랑으로 인해 그 안에서 주께서 거하신다.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
니에포칼라나우, 1941년 2월 1일, 체포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