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의 그 참된 본질 - 봉재 후 제3주일(2025-3-23)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재의 수요일 이후로 우리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자기절제와 고행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며, 이를 통해 다가오는 부활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에로 태어남을 준비합니다.

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를, 각 주일의 복음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요.

오늘 사순 제3주일 복음 말씀은 막상 읽었을 때는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일화들이 함께 제시된 것 같고, 더구나 사순시기와는 무슨 연관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 복음 말씀을 크게 2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어 보겠습니다.

  1) 벙어리 치유 : 원조가 지은 원죄로 인해 인류가 겪는 영향에 대한 치유의 상징적인 사건

예수님께서 벙어리를 치유하십니다만, 성경에서는 ‘마귀를 쫓아내었는데 그 마귀가 벙어리 마귀이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마 사건은, 예수님께서는 인류 공동체의 ‘벙어리’ 상태를 치유하는 것을 시작하셨음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천주님의 계명을 받은 후 이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천주께 대한 순종과 흠숭을) 말과 행동으로써 고백해야(표현해야) 했습니다만, 이에 실패하였습니다. 대신, 뱀(사탄)의 말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천주님의 계명, 천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벙어리 행세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는 천주 말씀에 대해 ‘벙어리’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의 유무에 따라 벙어리이냐 아니냐를 구분 짓습니다.

언어는 인간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개인적 존재일 뿐 아니라 또한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언어의 구사 없이도 개인의 육신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성적 사고와 판단, 자유의지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 등이 불가능함에 따라 (개인적 차워에서도) 참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우며, 더구나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불가능으로 인해 사회적인 생명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인간은 언어를 통해 참다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지며, 그 참다운 인간 생명(사회적 생명 포함)에 더 충만하게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천주 생명에 참여함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불림받은 우리는, 천주님의 말을 배우고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혼인잔치 초대 비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다. 혼인예복을 갖추지 않고 잔치에 온 이에게 천주님께서 “어찌하여 혼인예복도 없이 들어왔느냐?”하고 질문하셨을 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합니다. 이로 인해 그는 단죄받아 추방됩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오늘 복음의 벙어리 부마자를 구마하신 기적은, 천주님의 말씀에 벙어리가 된 인류에 대한 치유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 군중과의 대화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께서 군중들과 대화하시는 부분입니다.

자, 이제 이 치유 사건을 큰 틀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군중의 당연한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바로, 천주님의 권능을 인지하며 그분께 대한 찬미와 흠숭의 고백이 이어지는 것이 마땅하겠죠. 그러나 군중이 고백하여야 할 이 순간에, 또 다른 장애물(마귀의 유혹)이 등장합니다. 군중의 이 고백이 나오지 못하도록 바리사이들이 개입한 것이죠.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비뚫어진 시각과 태도를 통해서 군중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바리사이들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마귀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짚어주시는 데요. 천주님의 생명에 (인류가) 온전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단지 마귀를 쫓아낸 상태로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천주님께 대한 고백을 통해) 스스로를 천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마귀가 나간 뒤 정돈된 것 보고 더 악한 일곱이 들어옴을 말씀하신 부분이 되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자연 속에서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자연(Nature)은 진공 상태를 싫어합니다 (‘Nature abhors vacuum’). 순식간에 공기 등의 물질이 그 진공을 채우려 합니다. 우리의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을 깨끗이 씻고 정화하는 것이 종착지가 아닙니다. 천주님으로 우리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시, 기껏 깨끗이 비워놓은 공간이 순식간에 예전의 악습으로 다시 채워져 버릴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복음 전체 주제와 연관지어) 군중의 차원에서 다시 이 상황을 바라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반박함으로써, 군중 측면(사회적 측면)에서 (군중이 천주님께 대한 고백의 말을 하는 것에 대한) 그 장애물 제거하셨습니다. 사회공동체 차원에서의 마귀의 유혹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바로 군중의 고백입니다 (장애물이 제거 되었으므로), 천주께 대한 고백을 비로소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군중 속의 한 여인을 통해서 그 고백이 이뤄집니다: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을 먹이신 젖은 복되도소이다.”

천주님께 바치는 첫 고백, “옹알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의 이 “옹알이” 를, 천주님 언어에 맞갖도록, 더 분명한 말이 되도록 교정해 주십니다:

“천주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더욱 진복자니라.”

즉, 군중의 이 여인은 예수님의 육신을 낳은 어머니를 칭송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에서, 영적인 방식으로, 우리 각자가 당신의 어머니이자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그 (영적) 차원에서 누리는 복됨(천주 생명에 참여하는 복됨)이 더욱 복되고 충만한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이죠.

이는 단지 그 군중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시기 극기와 고행 실천 중에 그 참된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고행을 능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거나, 자기만족에 젖어 있으라고 주어진 시기가 아닙니다. 교만의 유혹에 주의해야 합니다. 사순시기는 우리 자신을 비우기 위한 시기, 천주 생명을 담는 맞갖은 그릇을 되기 위한 준비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준비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도구인 고행과 극기가, 도리어 우리 자신을 교만으로 가득차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사순시기 고행의 목적은, 천주님으로 우리 자신을 채울 수 있게 하는 것, 벙어리 상태를 벗어나 천주님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천주님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 애덕(Charity)의 언어입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생각, 말, 행동 역시 이 사랑의 언어가 되도록 사순시기를 잘 보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점을 꼭 명심했으면 합니다.

참으로 복된 생명, 가장 행복한 수준의 삶은, 천주님의 말씀의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분의 말씀 자체가 되는 것,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 즉 그분 말씀의 살아있는 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때로는 이런 유혹이 들 수 있겠습니다:

'나는 성모님이 아닌데 어떻게 그분처럼 지극한 행복을 누리려나,

 거룩한 삶, 어려운 극기와 고행은 성인 같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실천하겠나,'

'나는 사제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닌데 이 정도 수준이면 되겠지.'

이는 단연코 옳지 않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우리 각자에게서 오히려 더 큰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이 점 명심해야 합니다.

많은 어려움과 방해 속에서도, 필요한 힘과 용기를 천주님께 끊임없이 간절히 청하며, 남은 사순시기를 충실히 보냅시다. 

하루에 한 단어씩, 천주님의 언어, 그분의 말씀을 새롭게 배워나감으로써, 그분께서 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때, 우리의 고백으로 그분을 맞갖게 환영할 수 있도록, 주어진 매 순간의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 주여,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을 먹이신 젖은 복되도소이다.”

“아멘, 나 과연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천주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더욱 진복자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