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잔치

치비타스 제152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2024년 새해를 맞아 주님의 성총을 풍성하게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제 삼 일에 갈릴레아 가나 촌에 혼인 잔치가 있어, 예수의 모친이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문제들도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아 계시더니, 술이 떨어지매 예수의 모친이 저에게 이르되, ‘술이 없다’ 하시니, 예수 이르시되, ‘여인이여, 나와 네게 무슨 간예함이 있나이까?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입니다’. 그 모친이 복사들에게 이르시되, ‘저 너희게 무엇이든지 분부하시는 것을 행하라’ 하시더라. 유데아인의 씻는 풍속대로 거기 돌 항아리 여섯을 두었는데, 각각 두세 동의나 담을러라. 예수 저들에게 이르시되, ‘물로 항아리를 채우라’ 하시매, 가득하게 채운지라, 예수 또 가라사대, ‘즉금은 퍼서 과방에게 보내라’. 저들이 보내었더니, 과방이 물이 술 된 것을 맛보고 어디서 난 줄을 모르되, 물 긷던 복사들은 알더라. 과방이 신랑을 불러 이르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술을 나외어, 객이 이미 취하거든 이에 지차 것을 나외거늘, 그대는 좋은 술을 이제까지 머물러 두었도다’ 하였으니, 이는 예수 갈릴레아 가나 촌에서 첫 번 영적을 행 하사 당신 영광을 나타내시매, 그 제자들이 저를 믿더라.”

우리는 새해에 제일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영적기적을 묵상합시다. 성 요왕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천주이심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요왕복음 2장에서 주님이 천주로서 자연을 다스리는 권능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보이기 위해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영적 기적으로 제자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갈릴레아 가나촌의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① 왜,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일어났을까요? ② 이 기적은 성모님의 어떤 전달(중보)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③ 이 기적은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이와 같은 질문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에 따라 묵상해 봅시다.

⓵ 왜,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일어났을까요?

혼인은 신비로운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성 바오로 종도는 혼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크나 큰 신비니라. 나는 그리스도와 및 교회와의 관계에 비하여 이를 말하노라”(에베소서 5:32)고 말합니다. 신비한 혼인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결합하여 하나의 신비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과 우리의 영혼이 초자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신비한 혼인은 먼저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천주와 결합할 수 있도록 천주께서 먼저 성모님의 태중에서 천주의 말씀과 사람의 본성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천주말씀(즉, 성삼 중 둘째 천주 위격)의 천주의 위격(페르소나)에서 천주성과 인성, 두 본성이 결합되었습니다. 이를 위격적 결합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상존성총으로 이 결합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양의 혼연(婚宴)에 부름을 받은 자는 복된 자라 기록 할지니라”(묵시 19:9).

이 혼인은, 신부(新婦) 즉, 교회가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될 때 완성됩니다. 그 시작은 우리가 받는 성세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천주님과의 혼인 과정입니다. 이 땅에서의 일시적인 삶은 예수님과의 영원한 결합을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성세는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영혼의 ‘약혼(約婚)’을 의미합니다. 성세로 시작된 우리와 천주님과의 관계는 천국에서 완성되고 결정적으로 맺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신랑이십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니라”(요왕 3:29). 제자들 즉, 교회는 영혼을 그리스도와 맺어주는 ‘중매인’입니다. “대저 나 천주의 열애(熱愛)로써 너희를 열애하였느니, 너희를 무구(無垢)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다만 한 사람과 약혼시켰노라”(고후 11:2). 우리가 천국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행복한 일치를 원한다면 성모님을 그곳에 초대해야 합니다. 성모님이 계시면 예수님도 초대받으시고, 제자들도 초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영해와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나 엎디어 영해께 조배 하니라”(마테오  2:11).

⓶ 이 기적은 어떤 성모님의 전달(중보)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우리가 성총으로 그리스도와 결합되는 것은 성모님의 전달하심에 의한 것입니다. 성모님은 모든 성총의 중개자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처럼 성모님은 두 가지 일을 하십니다. 첫째, 마리아는 아들을 위해 전달하십니다. 둘째, 성모님은 종들을 지도하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술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시기 전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정의와 지혜와 애덕(愛德)의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는 쓴맛이 있기 때문에, 포도주는 정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사람의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부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의의 엄격함과 긍휼의 달콤함을 섞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슬픔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나이다”(성영 59:5).

포도주는 또한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성영 103:15). 이런 점에서 포도주는 지혜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통한 묵상은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함께 하는 것에는 쓴맛이 없다”(지혜 8:16). 포도주는 취하게 합니다. “친구여, 마셔라, 그리고 취하라, 사랑하는 자여”(아가 5:1). 이런 점에서 포도주는 자비의 상징입니다.

정의의 포도주는 정의가 불완전했던 구약에서는 다 떨어지고 없어졌습니다. “대저 나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 의덕이 학자들과 바리서이의 의덕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테오 5:20). 지혜의 포도주 역시 구약에서는 다 떨어지고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은 숨겨져 있고 상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당한 이 모든 것은 다 예견된 전표로서, 세대의 완료기(完了期)에 달한 우리에게 경계함이 되기 위하여 기록된 것”(고전 10:11)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지혜를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대개 저들을 교훈하시되 권능을 가진 자와 같이 하시고 학자들과 바리서이와 같이 아니 하심이러라”(마테오 7:29).

그런데 성 베르나르도에 따르면, 이 포도주는 이 세상의 정신과 같다고도 합니다. 사람의 이성을 명료하게 하는 대신에 잠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구약에서 애덕의 포도주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려움으로만 주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두려움의 물을 사랑의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대저 너희가 받은 신은 다시 무서워하여야 할 노예 지위의 신이 아니고 오직 의자의 성신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압바, 곧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도다”(로마 8:15). “대저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注入)되었느니라”(로마 5:5).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로 항아리를 채우라”고 하신 말씀은 기적의 재료를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무(無)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새로운 교리를 세우시기 위해서도 아니고, 옛 가르침을 부정하시기 위해서도 아닌, 옛 가르침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교법이나 혹 선지자의 기록한 바를 폐하러 온 줄로 여기지 말라,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오직 완전케 하러 왔노라”(마테오 5:17). 즉, 구약의 선지자로 예표 되고 약속된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고 드러난 것입니다.

“저들이.. 가득하게 채운지라.”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기적의 은총을 받을 자들의 협조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총을 풍성히 주시고자 하지만, 우리에게 그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종들은 가득 채웠습니다.  

유데아인들은 씻는 풍속대로 거기에 돌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씻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몸의 감각은 성세의 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통회의 눈물의 물로 온전히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통회(회개)의 물과 지상으로부터의 이탈의 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위로와 사랑의 포도주로 바꾸어 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

⓷ 이 기적은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돌 항아리에 물이 가득차자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주님은 “즉금 퍼서 과방에게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방이 포도주를 시음한 후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평범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최고한 포도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술을 나외어, 객이 이미 취하거든 이에 지차 것을 나외거늘, 그대는 좋은 술을 이제까지 머물러 두었도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와인을 왜 지금까지 남겨 두었습니까? 왜 처음에 맛없는 저급한 포도주를 내놓았습니까?’라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비로운 의미에서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는 사람은 개종 초기에는 성인처럼 영적인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육적인 삶으로 빠져드는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맛있는 포도주를 먼저 내어주시지 않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대개 멸망하는 데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또 그 길이 너그러우매 그리로 들어가는 자 많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어떻게 좁고 또 그 길이 간삽한고” (마테오 7:14). 그러나 신앙과 가르침이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신앙생활은 더 편안해지고, 사람은 더 큰 달콤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라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고통과 십자가의 고난을 겪지만, 나중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는 통곡 체읍할 것이요, 세속은 즐거워하리니, 너희는 근심하나, 그러나 너희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리라” (요왕 16:20). “현시의 고난은 우리에게 주실 것으로 나타날 장래의 영광에 비할 바이 못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노라”(로마서 8:18).

미사에서의 마지막의 영성체는 말하자면 우리의 ‘가나의 혼인’의 일부입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혼인잔치를 위한 준비입니다. 주님은 매우 관대하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결혼한 부부는 아마도 예수님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조금밖에 제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답으로 그보다 수천 배나 더 좋은 것을 주님은 주셨습니다. 찬물을 한 가득이라도 주면 보답을 잃지 않겠다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천국의 행복을,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주님을 닮아 영원히 주님과 일치하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매일 제대 위에서 빵을 당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그것은 마침내 우리를 천주님과 같이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기 위함입니다. 하늘에 영적 혼인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성체성사 때 우리의 마음을 열렬하고 관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성모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영혼이 좋은 포도주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시다. 얼음처럼 차갑고 냉담한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도록 우리의 영적 기적을 기구 합시다.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