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비오10세회

Home > 한국성비오10세회 > 성당회보

제목 치비타스 제39호(2010년 6월 27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04
첨부파일 치비다스 제39호.hwp

 


치비타스 제39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기구하신 기도는 이것입니다. “성부여! 너 내게 주신 자들로 하여금 나 있는 곳에 나와 한가지로 있기를, 나 원하옴은 저들로 하여금 너 내게 주신바 영광을 보게 하려 하옴이니(요왕 17:24).”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우리도 한가지로 있기를 그리스도께서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가지로 있을 수 있도록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 구원에 방해가 된) 차용증서(借用證書)를 무효하게 하사, 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포기(抛棄) 하셨느니라(골로새 2:14).”


우리는 악마의 노예였는데 이 운명의 증서를 그리스도께서 잡아떼어 비틀어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천주성부와 화목케 하셨습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이 아기에 속하고 있었던 우리를 노예상태로부터 해방 시켰습니다.


성부여! 너 네게 주신 자들로 하여금
나 있는 곳에 나와 한가지로 있기를.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역시 다만 하나이시니라. 이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니 저는 당신의 모든 이를 위하여 구원의 값으로 자헌하셨도다(디모테오 전 2:5∼6).” 우리는 천주의 원수였습니다. 우리는 천당의 가독(家督))을 박탈(剝奪)당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주성자가 사람이 되시고 천주고양으로서 당신을 희생 받쳤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바) 저의 성혈로써 만물을 화해케 하사, 저로 인하여 땅에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당신과 더불어 합치하게 하심이(골로새 1:20).” “대저 천주성의 풍부하심은 다 저 안에 실체적으로 계심일새니라(골로새 2: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중재자로서 천주와 사람, 하늘과 땅에 있었던 깊어진 무한한 간격을 합하셨습니다. 대사제(Pontifex)로서 다리(Pontem)를 만드셨습니다(fecit). “멀리 있었던 너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지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가까이 있는 자가 되었느니라(에페소 2:13).” 이러므로 “우리는 저(그리스도) 안에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저에게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믿음을 가지고(천주에게) 가까이 가느니라(에페소 3:12).”


예수 성심께서는 수난 전에 당신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후는 나 너희를 종이라 일컫지 아니리니 대저 종은 그 상전이 하는 바를 아지 못함이요, 나 너희를 벗이라 일컫노니 대저 내가 내 성부께 들은바 모든 것을 너희게 알게 하였음일새니라(요왕 15:15).”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우리를 ‘형제’라 일컬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길 “오직 내 제형들에게 가서 이르되(요왕 20:17)” 라고 하셨습니다. 성 바오로가 말씀하시길 “그리스도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수치로 여기지 아니하여(헤브레아 2: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벗이고 형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우입니다. 성 바오로께서는 “예수께서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신 천주의 아들(갈라타 2:20)”이라 하셨습니다. 예수성심께서 ‘우리’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형이십니다. “예수성심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왕13:1).” 나를 ‘끝까지’ 즉 사랑의 극한(極限)까지 사랑하십니다.


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를 이렇게 사무치게 사랑하시는 예수성심, 이런 예수성심을  우리가 어떻게 구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정성을 다해 신뢰를 가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이 자비하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가까이 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예수성심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하나만 요구 하십니다. 연구가 아니라, 돈이 아니라, 고업(苦業)이 아니라 밤새도록 기도함도 아니라, 영웅적인 행위도 아니라 이 모든 것 전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만을 구하십니다. “너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나냐? 나를 사랑하나냐(요왕 21:15∼16).” “네 온전한 마음과 네 온전한 영신과 네 온전한 힘으로 네 주 천주를 사랑하라 함이라(말구 12:30) “천주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니 적어도 너는 나를 사랑해라 (L'amour n'est pas aimé..., toi, du moins, aime-moi)!”  우리가 천주에게서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천주의 정의(正義)가 우리로부터 사랑을 요구합니다.


예수성심께서 성 말가리타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계속 말씀 하실 겁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신 이 성심을 보라! 성심의 답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로서 냉담과 무례, 불경 망은, 경멸,  모독을 받고 있다 (Voici ce Coeur qui a tant aimé les hommes et qui en retour ne reçoit de la plupart que froideur, irrévérences, ingratitudes, mépris et sacrilèges).”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대저 나 가끔 너희들에게 말하였음과 같이 이제 다시 나 울며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 되어 거닐으는 자 많으리라. 그들의 최후는 멸망이이로다(필립비 3:17〜9).” 성 바오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 합니다. “저들의 마음에는 가리우는 것이 놓여져 있느니라(코린토 후 3:15).”
성 바오로와 더불어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 나 그리스도의 유화(宥和)와  양순함을 가져 너희에게 권면하노라(고린토 후 10:1).” 예수 성심을 사랑합시다. “천주를 사랑하는 영혼은 천주 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볍게(輕蔑) 한다(준주성범 2:50).” “사랑이 많은 이가 일도 많이 한다(준주성범 1: 15).”


“나 설령 사람과 천신의 온갖 언어의 특은을 가져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을진대, 울리는 구리(銅)나 소리 나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또 나 설령 건설적인 설교의 특은을 가지고, 모든 신비를 알고 온갖 인식을 가질지라도, 또 나 설령 산을 옮길 만한 신앙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을진대 아무것도 아니로다. 또한 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내 몸을 불사름에 붙인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을진대 내게 아무 유익도 없으리라(코린토 전 13:1〜3).”


우리는 ‘모든 마음의 임금, 모든 위로의 샘, 향함이신 예수 성심’을 사랑합시다. 살레시오 성 프란체스코는 예수성심을 ‘진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진주, “값진 진주(마테오 13:46)”, 예수성심과 한가지로 있으십시다.


성부여! 너 네게 주신 자들로 하여금 나 있는 곳에 나와 한가지로 있기를!
성부여! 나 원하옴은 저들로 하여금 너 내게 주신바 영광을 보게 하려 하옴이니!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