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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비타스 제78호 (2013년 9월 15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16

 

 




치비타스 제78호 Editorial

 

아베 마리아!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330년 전 1983년 9월 12일 천주교 역사, 세계역사를 정경(正經)한 승리가 있었습니다.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인 빈(wien, 비엔나)은 이슬람교 오스만 제국에 대치하는 천주교의 동쪽 요충지였습니다.


이전 기독교의 중심지의 하나였던 콘스탄티노플이 공격을 받아 1453년 5월 29일 이슬람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바뀌어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1683년 오스만제국은 이스탄불을 기지로 서방 기독교세계수도 중의 하나인 빈에 큰 공격을 가했습니다(1529년 첫 번째 로 공격을 시도했지만 실패함). 신성 로마제국 황제는 천주교 세계를 외부로부터는 이교인의 공격을 지켜내고 내부로부터 는 이단자들의 공격을 호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당시 신성 로마제국 황제는 레오폴드 1세(Leopold Ⅰ)로  빈에 거주했습니다.


프랑스의 왕 루이14세는 로마황제를 도울 수 있었고,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도 루이14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빈을 방어하는 로마 방위군의 사령관은 폰 슈타렘베르크(Von Starhemberg)지만, 빈은 폴란드의 왕, 얀3세 소비에스키(Jan Ⅲ Sobieski)에 의해 구원 받았습니다.


오스만 제국 대재상 카라 무스타파(Kara Mustafa)는 1682년 5월 13일 오스만 제국 제19대 황제(술탄 무하마드 4세로부터 빈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무하마드 4세는 ‘예언자 깃발’을 카라 무스타파에게 전했습니다. 만약 카라 무스타파가 빈을 손에 넣으면 신성 로마제국에 대한 승리이며 그 영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7월 13일 오스만 제국의 10만 명이 넘는 군대가 빈에 도착했습니다. 14일, 빈을 공격하기 시작해 8월 초에는 빈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레오폴드 1세는 소비에스키에게 빈을 지켜달라는 요청을 하고 7월 22일, 소비에스키는 즉시 자기 군대를 이끌고 바르샤바를 출발했습니다. 소비에스키는 빈 방어가 수도 바르샤바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빈으로 가기위해 남쪽으로 행진하는 도중, 쳉스토호바에서 기도했습니다. 소비에스키는 8월 15일 크라쿠프를 떠나, 다뉴브 강이 있는 투른(Tulln)에서 오스트리아군, 독일군과 집합하기로 했습니다.


8월말에 빈 성벽내의 식량은 바닥이 났습니다. 8월 26일 오스만 군이 빈에게 항복을 요구했고 폰 슈타렘베르크은 결코 항복하지 않았지만  “빈 성벽은 더 이상 오래 갈 수 없다.”고 체념했습니다.  9월4일 오스만 군이 빈 성벽을 화약으로 폭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군은 14일 동안 350㎞를 행진 했습니다.  9월6일 폴란드 군은 드디어 투른에서 오스트리아군과 합류합니다.


오스만 군은 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오스만군은 대재상 카라 무스타파에게 “빈 방어는 이제 절망이다.”라고 보고합니다. 카라 무스타파가 빈 시내에 있는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높은 탑에서 이 극적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 순간, 빈 교외 칼렌베르그 (Kahlenberg) 언덕에서 소비에스키는 빈 거리와 빈을 포위하고 있는 오스만 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9월12일, 즉 성모성탄(9월 8일) 8부내 주일, 이 결정적인 날, 아침 6시5분에 천주교의 연합군이 총공격을 시작합니다. 총 공격전에 그들은 칼렌베르그 언덕에서 미사들 드렸습니다. 이 미사성제는 교황의 무사인 카푸친회 사제 마르코 다비아노(Marco d’aviano) 신부가 했습니다. 후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언덕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소비에스키는 쳉스토호바 성모님에게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슬람군 9만 명과  천주교군 7만 명이 싸웠습니다. 저녁 6시경 소비에스키는 2만 명을 지휘하면서 카라 무스타파 본영의 위치를 파악하고 중앙돌파 합니다. 1시간 정도의 전투로 오스만 군 사령부를 혼란으로 빠뜨립니다. 오스만군은 뿔뿔이 흩어지고 카라 무스타파는 전장에다 1만 5천 병사와 모든 소지품들을 버리고 말 한마리만 가지고 겨우 도망쳤습니다. 천주교군은 1,500명을 손실 당했습니다.


소비에스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던 유명한 말(Veni, Vidi ,Vici)를 모방해서 “우리는 왔다(Venimus). 우리는 보았다(Vidimjs). 천주께서 승리하셨다(Deus Vicit).”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비에스키는 쳉스토호바 성모께 이 승리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유럽의 여러 왕들은 소비에스키와 그의  군대를 축하했고,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는 이 빈 승리를 기념하여 9월 12일을 성모 마리아 거룩한 이름 첨례일로 제정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여!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과 보호 밑에 즐기는 당신의 신자들이 성모께서 착한 전달로 하늘에서 영원한 기쁨에 도달하게 하소서.”


쳉스토호바의 성모여 !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