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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비타스 제79호(2013년 10월 13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16

 

 


치비타스 제79호 Editotial

 

아베 마리아!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남 이태리 아퀴노의 영주(領主)의 7 째 마지막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롬바디아 귀족가계이며 어머니는 노르만 계 귀족출신이었습니다.


성 토마스는 1231년 6세 때 몬테카지노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위탁되어  14세까지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239년 14세 때 몬테카지노를 떠나서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1243년 18세 때 도미니코회에 입회합니다.


1245년 도미니코회 장상이 성 토마스를 파리로 보냈습니다. 당시 파리 대학은 박학한 대성 알베르토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성 토마스는 1252년 27세 때 파리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1256년 신학자로서의 최고 학위인 마지스테르(Magister)를 받았습니다. 1259년 34세에 이태리로 가서 9년동안 머물렀습니다. 1268년 11월 갑자기 파리로 가라는 명을 받습니다. 1272년 다시 장상의 명에 의해 이태리로 갑니다.


1273년 12월 6일 성 니콜라 성당에서 미사를 바치고 있을 때 갑자기 저작(著作)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하길 “이제 못한다.”고 했습니다. 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리용 공의회에 성 토마스를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리용으로 가는 도중  병이 되서 포싸노바(Fossanova)에 있는 성 마리아 수도원(베네딕토회)에서 마지막 1개월을 보냈습니다.


수도원장이 성체를 모시고 성 토마스는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흠숭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영하나이다. 나는 철야해서 배우고,  고통하며, 강론하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다 당신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 했나이다.” 그리고 3일후 죽습니다. 1274년 3월 7일,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성 토마스가 49년의 인생에서 쓴 작품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신학대전(Summa Theologida)입니다. 성 토마스는 이 책속에,  천주께서 계시는 것을 증명합니다.


(1) 이 세상에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한 사실입니다. (2) 그런데 뭔가 움직이는 것이 타자한테 움직임을  받고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물은 불로서 열을 받고 따뜻하게 됩니다. 즉  현실적으로 따뜻한 것이  따뜻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적 상태에 있는) 물을 움직입니다. 똑같은 것이, 즉 현실적으로 따뜻하고 또 동시에 가능성적으로 따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그와 똑같은 관점으로, 또 같은 방법으로 움직이고, 움직임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3)그런데 움직임을 주는 타자는 또 다른 타자로 움직임을 받아야 하고 이 타자도 또 다른 타자한테 움직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계열(系列)은 무한히 갈 수 없습니다. (4) 그러므로 아무것, 누구을 위하여 움직임을 받지 않는 그러나 움직임을 주는 제1 동자(動者)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제1동자를 천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체는 3차원적 한정된 공간을 가지고 감각에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물체는 움직임을 받지 않으면 타자에게 움직임을 줄 수 없습니다. 요왕복음(3:24)에서 “천주는 신(spiritus)”이라고 합니다. 천주는 물체가 아닙니다. 천주께서 맨 처음, 맨 먼저 계시는 자이시기 때문에 제1유(有) 이시며 항상 현실태(現實態)에 있습니다. 즉 천주는 가능태(可能態)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천주께서 이미 완성된 자, 가장 고귀한 자, 물체를 초월한 자이십니다.  천주는 질료(質料)와 형상(形相)이 합하여 계시는 자가 아닙니다.


천주께서 순수한 현실태이시기 때문에 어떤 가능태도 없습니다. 그러나 질료는 가능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는 즉 그 본질(本質)이며 그 본성(本性)입니다. 천주는 즉 그 천주성이십니다. 천주는  복합(複合)이 없습니다. 많다와 적다와 같이 양적(量的) 부분의 복합이 없습니다. 천주께서는 그 본질도, 존재도 동일합니다. 천주께서는 아무 원인도 없는 제1원인이시며 모든 뜻으로 단순하십니다.  또 천주는 이 세상을 초월하시고 이 세상과의 복합에 안 들어가십니다. 천주께서 만물의 제1원인이시며 세상에 있는 모든 완전성의 제1원인이시기 때문에 최고선(最高善) 이십니다.


최고선은 피조물에게 공통적으로 말하는 ‘선’에 그냥 ‘최고’를 붙인 것이 아닙니다. 천주께서 ‘최고선’이시다. 라고 말할 때의 ‘선’은 일반적인 선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세상의 ‘선’을 초월한 완전한 ‘선’, 모든 선을 무한히 초월한 ‘선’인 동시에 모든 선을 자기 속에 가지는 ‘선’입니다. 천주께서 그리고 천주 그 만이 본질로서 선이십니다.


천주의 본질(本質)은 우리 시각(視覺)을 위하여도 또 다른 감각을 위해여도, 육체의 눈(目(眼))을 위하여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능력들은 물체적인 것을 초월하여 그 이상으로 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는 비(非)물체적이시고 감각을 위하여도, 상상을 위하여도 볼 수 없고 다만 지성으로 다만 지성을 위하여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어떤 진리는 ‘이해한다.’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천주로부터 영광의 빛을 받아 사람들을 보고 “지금 우리가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살고 있다.’ ‘생활하고 있다.’ 라고  믿지 말고 그냥 보고 있는 뜻이  부활 후에 천주는 어디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다스리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도 , 천신들도 창조를 받은 지성은  천주께서 그 성총으로, 그 영광의 빛으로써 당신을 피조지성에게 결합하시지 않으면 천주를 본질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는 즉 가시적(可視的)인 삶을 떠나지 않으면 천주를 본질로 볼 수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구약의 최대한 예언자 모세와 신약에 최대한 종도 바오로에게는 기적 중의 기적으로 천주를 본질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아있는 우리는 인간지성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왕성한 천주이시지만 또 천주께서 아무 결여(缺如)도 부족(不足)도 없지만 우리는 천주를 결여(缺如)와 제거(除去)라는 방법으로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은 볼 수 있는 피조물의 세계만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피조물에 의하여 표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주는 비물체적이시고 무한하시며 또 이 세상의 것이 아니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또 ‘천주는 분할(分割) 받을 수 없다.’ 즉 불가합(不可合) 하십니다. 하나이시며, 최고도로 계시는 자이시며 어떤 방법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능적으로도 분할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최고도로 하나이십니다.


성 토마스는 천주께서 지성이신 것, 천주의 의지(意志), 천주의 사랑, 천주의 정의와 자비, 능력 등등 그 고찰을 계속합니다. 성 토마스는 삼위일체이신 천주에 관한 문답에 들어가기 전에 천주의 하나인 본질을  천주의 지복을 고찰합니다(제1부 제26문).


지복이란 (beatitudo) 인간에게 마지막 목적이며 이것이 천주를 지성적으로 보는 것(Visio Dei)입니다. 그러나 천주를 보는 것은 ‘천주’란 ‘것’을 대상적으로  저렇게 놓고 저것을  바라보고 즐긴다란 것이 아닙니다. 천주는 결코 인식의 대상이 안 되십니다.  천주를 본다란 것은 천주로부터 새로운 전재(천주의 생명이라고 도 말할 수 있다)를 받아, 불림을 받고 천주 생명 속에 들어가서 어떤 방법으로 (모든 창조물을 초월한 천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런 상태에 있는 피조물이 천주의 지복함에 참여(參與)하기 때문에 지복합니다.


지복 속에 험한 모든 바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천주의 지복 속에 전체적으로 왕성하게 다 있습니다. 천주의 지복은 당신(천주)과 모든 것에 관한 게속된 가장 확실한 관상(觀相)을 가지고 온 세상의 통치권을 가집니다. 당신과 모든 것의 관한 즐거움과, 모든 뜻으로 만족함과 전능함과 만물의 왕으로서 지배함과 온 피조물로부터 찬미 받음을 가지십니다.


영광이 부와 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또 이제와 무궁세에 있어지어다.
매괴의 성모여 우리도 성 토마스처럼 천주를 잘 알고,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는 성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