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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2. 동지와 동조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3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2. 동지와 동조자

12. Comrades and Fellow-Travellers

 


 한때 잠시 멈추었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자. 그리스도인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생긴 가톨릭)새 종교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모두 못마땅하다. 가톨릭인은 세속화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이고, 혹시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을까 해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종교를 믿어도 모두가 전부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리스도인과 자칭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부처라든지 크리슈나(힌두교의 우상중의 하나)나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경배한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하느님의 백성’의 대등한 구성원이라면서 정해진 대로의 기능만을 해야 할 평신도가 성직자의 일을 물려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평신도가 장례식을 거행하고 병자에게 노자성체를 주는 한편, 성직자는 평신도의 기능인 (평신도 복장을 한 채)공장에서 일을 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며 정치판에도 뛰어든다. 새 교회법(Canon Law)이 이 모든 것을 옹호하고 있으니, 새 교회법은 평신도와 사제의 차이를 무너뜨리고 ‘자격’이라는 이름으로 신식(新式)에 해당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생소한 특권을 평신도에게 부여한다. 평신도 신학자가 가톨릭 대학교의 신학 교수직을 차지하고, 이전에는 성직에 종사하는 이가 맡았던 신심행위의 역할을 일반 신자에게도 일임하는 까닭에, 어떤 성사(聖事)는 평신도가 거행하고 성체를 (손에)분배해 주며 결혼식에서 증인을 대신하기까지 한다.


  또 하느님의 교회가 가톨릭교회에 ‘존재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표현한 것도 읽은 적이 있는데 왜 석연치 않느냐하면, 옛 교리에는 항상 천주님의 교회란 다름 아닌 가톨릭교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의 최근 문구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개신교 및 정교회의 공동체도 똑같이 교회의 일부를 이룬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인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룩하고 오직 하나인 교회를 믿으며(Credo in UNAM sanctam Ecclesiam)가 아닌 것이다.


  새 교회법이 매우 성급하고 혼란스럽게 입안된 상태에서 1983년 1월에 반포된 후에, 같은 해 11월이 되었을 때 세어보니 무려 114번이나 수정이 가해졌다. 이 역시 교회법규가 항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을 당황하게 한 것 중의 하나다.


  신자든 비신자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자녀가 교육을 제대로 받기를 원한다면 틀림없이 실망하는 형편이 되었다. 가톨릭 학교를 살펴보면 이것저것이 마구 뒤섞여 있고, 성(性)교육은 엉뚱한 것을 가르치며, 고학년에서는 종교 교육이 사라졌거니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성향이 있는 교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서부에서 소동의 원인이 된 사건 하나를 보면, 학부형의 압력으로 해임된 교사를 교구청에서 복직시킨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를 “처음부터 내가 모든 분야, 정치, 사회 및 종교 측면에서 좌익임이 드러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모님 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한 학생의 부친이 나를 퇴직시키려 했다. 그 부친의 말에 따르면, 억울하게도 가톨릭 학교에서는 철학과목 교사가 사회주의자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북부에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교구청에서 신임 교장을 발령하여 어느 학교에 근무하도록 했다. 얼마 후에 학부형들은 그가 틀림없이 좌익단체의 활동가이고 환속했으며, 세례도 받지 않은 자녀를 둔 기혼자라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마스 때 그는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단체의 후원을 받아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파티를 주선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이니 선한 의지가 있는 가톨릭인이라한다면 자녀를 굳이 가톨릭 학교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아해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파리 중심부의 한 여학교에서는, 프렌느(Fresnes)에 있는 교도소의 지도신부가 교리문답반에 왔는데 (18세의) 젊은 수감자를 대동했다. 그는 수감자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애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것과 위로의 편지가 얼마나 아쉬운가를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어떤 소녀는 ‘대모’가 되고 싶은 나머지 자기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학부형은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려 했기에 그런 사실을 학부형은 결코 알지 못해야 했다. 젊은이들만의 비밀로 지켜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어느 여교사가 교리문답과 성모경 과정을 자기 반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인해 학부형 단체가 그녀에 대해 불만을 품자 받아들여진 경우가 있었다(전통적으로 교리문답과 교리에 관련된 내용을 가르치는 일은 성직자의 몫이기에). 주교는 그녀가 아주 옳은 행동을 한 것처럼 옹호해 주었다. 주교가 서한을 쓴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로 여겨졌기에 교사잡지에서는 떠들썩한 사건으로 삼아 그것을 재차 게재했다.


  모두 다 어찌된 것인가? 프랑스 정부가 가톨릭 학교를 없애기로 결정하자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떤 형식으로도 전교(傳敎) 활동을 중단함에 따라, 가톨릭 학교는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반대자는 “교육체제에 도움이 될 만한 일 중에서 그대들이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가? 우리도 그대들과 똑같이 하고 있다. 두 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쉽사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도 신앙이 살아있는 교사가 몇 명  있으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교사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되지만 가톨릭 교육은 이제 국가 시책에 따른 학교 교육에 맞닥뜨리는 순간에도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교육-종교 분리주의가 열성적으로 지향하는 바대로 거의 타협한 상태인 것이다. 몇몇 집단이 “우리 학교에 천주님을!”이라고 소리치며 시위했다 하여 스캔들이 되었다고 한다. 주최자들은 비신자 및 심지어는 무신론적인 사회주의자를 비롯하여 종교적인 취지가 없이 동행하는 사람들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자기 언어로 된 세속화된 노래, 슬로건 및 연설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내세웠다.


  우리의 학교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제거하려는 것이 과연 정치에 손을 대는 것일까? 저들이 표명하는 호전적 무신론으로 미루어 볼 때, 가톨릭인들은 교회의 입장이 저들의 이론과는 정 반대라고 여겼는데 참으로 옳은 일이다. 공산주의는 생명의 의미, 나라의 운명 및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에 관하여 전혀 다른 견해를 고수한다. 그에 따라, 1984년 6월 5일자 르몽드(Le Monde)에서 몬시뇰 류스티제(Mgr. Lustiger)가 서면질의에 응답한 것을 읽어보면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인데, 그 방법만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제대로 관측했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가톨릭 학교 문제를 놓고 의회 투표를 실시한 것이 역사적인 기회를 놓쳐 버린 계기가 되었다며 불평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기회란 어린이 교육을 위한 기본 가치기준으로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와 공통된 것 몇 가지를 찾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좌익과 그리스도교의 교리 사이에 공통된 기본 가치기준일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서로 완전히 반대인데....


  하지만 가톨릭인들은 교회 성직자와 공산주의자간의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을 웃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티칸은 소비에트의 지도자는 및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와 같은 테러리스트들까지도 인정해 주었다. 공의회가 공산주의에 대한 비난을 재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풍조가 생긴 것이다. 공의회에 제출된 개요에 공산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제대로 기억하자면)그 효력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는 서한에 무려 450명의 주교들이 서명했다. 그 주교들은 그 이데올로기에 부정적이던 긍정적이건 의미 있는 요소가 들어있지 않더라도 전적으로 거부돼야 한다면서, 이전의 비난과 특히 공산주의는 ‘명백한 악’이라고 선언한 비오 11세의 성명서를 언급하고 있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수정안은 교부들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성청 국무장관은 교부들이 수정안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는 위원회가 시인(是認)하긴 했지만 너무 늦게 접수했다고 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교황의 훈령격(訓令格)이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첨가해설이 들어있는 칙령인 Gaudium et Spes에 딸린 부록으로 끝을 맺는 스캔들을 일으키고 말았다.


  합리화하려고 주교들이 공산주의가 천명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개의치 않고 공산주의와 협력하라고 부추길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성명서를 작성했던가! 마타그린(Matagrin) 주교는 “공산주의자와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고. 각자의 행동에 책임이 있는 성인(成人) 그리스도인의 몫이다.” 라고 했고, 델로메 주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름지기 ‘공산주의자를 비롯하여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편에서 세상의 더 큰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뿌빠르(Poupard) 주교도 같은 어조로 말했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이 건설되고 있는 전 영역에서 정의를 위해 일하려는 선의(善意)를 지닌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고 격려한다.


  어느 교구잡지에 의하면 어느 노동자 사제에 대한 조사(弔辭)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방의회 선거에서 노동계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이의 사제로 있을 수 없었음으로 해서 사회주의 사회를 택한 사람들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힘들었고 원수를 만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그를 대신한 사람이 작은 바오로(Paul)였습니다.” 얼마 전에 한 주교가 본당에서 ‘곤경에 처한 교회를 위한 원조’를 청하지 말라면서 다음과 같이 사제를 설득했다. “내 생각에 이 일은 지나치게 배타적이어서 반공산주의적인 견해로 보이는군.”


  공산당의 목적이 정의와 자유의 실현이라 주장하면서, 완전히 잘못된 관념 속에서 그럴 싸한 핑계를 찾아내고서 그런 식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니 당혹스럽다. 그 점에 관한 비오 9세(Pius Ⅸ)의 표현을 상기해야 한다. “신자로서 지금의 음모를 획책하고 있는 자들로 인하여 미혹된다면, 즉 그들과 공모하여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사악한 체제를 돕는 데 동의한다면, 진노의 날에 자기 위로 무너질 복수의 탑을 쌓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런 공모로는 아무런 현세적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비참함과 앙화만을 더할 것이다.”


  1849년, 즉 거의 140년 전에 이루어진 그 경고의 정확성을 알려면 공산주의에 정복당한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상황을 살펴보면 오류목록(Syllabus: 교황 비오 9세와 비오 10세가 지적한 이단서의 표)에 관한 한, 교황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는데도 환상은 언제나처럼 밝고 막강한 채 그대로 있다.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국인 폴란드조차 이제는 목자들이 가톨릭 신앙과 영혼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는 것, 그리고 어떤 희생이든지 감수해야 하는 것을 가장 귀중히 여겨야 함에도 이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신경 써서 회피하려는 문제는 모스크바와의 관계 악화인데, 그런 태도에 완강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모스크바가 폴란드 국민을 훨씬 더 완전한 노예상태로 전락시킬 것이다.


  플로리디(Floridi) 신부는 바티칸의 동방 정책 중 타협 정책의 결과가 어떤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주: Rev, A. U. Floridi, 모스크바와 바티칸(Moscow and the Vatican), Editions France Empire). “모스크바의 총 대주교권에 딸린 주교들처럼 카사롤리(Casaroli) 추기경에 의해 성성된 체코슬로바키아 주교들이 정권의 공동협력자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헝가리의 각 교구에 주교를 배치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행운이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헝가리 공산당 제1서기인 동시에 ‘교황청과 헝가리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 있어서 제일 주동자 및 권위자’인 야노스 카다르(Janos Kadar)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교황은 그런 정상화를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음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가란 ‘평화사제단’을 교회의 요직에 앉힌 것이었다. 실제로 가톨릭인들은, 민첸티(Mindszenty) 추기경의 후계자인 라슬로 레카이(Laszlo Lekai) 추기경이 가톨릭인과 마르크스주의자간의 대화를 진일보시키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듣고 나서는 망연자실해 했다. 공산주의에 대해 명백한 악이라고 규정하면서 비오 11세(Pius Ⅺ)는 “또 그리스도교 문명을 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와 협력하려는 그 어떤 동기도 인정하면 안 된다”라고 덧붙이지 않았던가.


  앞서 일일이 나열한 것과 더불어 교회의 가르침이 터무니없이 이탈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 바티칸은 현대주의자들이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세속적인 자들이 점령해 버렸으니, 그들은 세상을 구하려면 교회의 신성한 설립자(예수)께서 제정하신 것에서 찾기 보다는 인간 및 외교적 책략 안에서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민첸티 추기경을 언급했지만, 민첸티 추기경처럼 공산주의에 대항한 순교자들로서 특히 베란(Beran), 스테피나츠(Stepinac), 비친스키(Wyszinski)와 슬리피(Sliipyj) 같은 모든 영웅적인 추기경들은 현재 바티칸의 외교정책에 있어서 난처한 문젯거리인 동시에 그 외교정책에 대한 소리 없는 질책이라고 해야 하니, 바티칸은 주님 문제에 있어서 깨어있지 못하고 방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1980년 4월 독일 주교단 회의에 의한 선언문과 1981년 2월의 신앙성성에 의한 명백한 선언문이 있었음에도, 프리메이슨 결사(Freemasonry)와도 같은 접촉이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도 새 교회법(Canon Law)은 그것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제재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바티칸이 유태인 문화교육촉진협회결사단(B'nai B'rith)을 받아들였던 것과 파리 대주교가 최근에 프리메이슨 롯지의 총본부장(Grand Master)과 상봉하여 회담했다는 것을 가톨릭인들은 최근에 알았다. 한편 어떤 성직자는 그런 사탄의 회당(Synagogue)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합시키려고까지 하고 있다.


  그들은 그 밖의 모든 것에 관하여 이르기를, “전에는 교파에 관한 비난이 정당화되었는지 모르지만 프리메이슨에 대한 형제애는 과거하고는 다르다”라면서 가톨릭인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저들이 일을 어떻게 진행시키고 있는지 보라. 이탈리아 P2 롯지의 스캔들은 신자들의 머리에 아직도 생생하다. 프랑스에서 가톨릭 민간교육을 반대하는 국법을 보면, 그 무엇보다도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 결사(Grand Orient Freemasonry)가 공화국의 대통령 및 정부와 내각장관 소속의 부속기관에 압력을 넣어 마침내 ‘통합국민 교육보험(National education service)'을 실현시키려고 작용한 것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행동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르몽드(Le Monde) 같은 신문은 그들의 책동에 대해 정식으로 논평했으며 그들의 계획 및 전략이 잡지로 발행되어 왔다.


  프리메이슨 결사가 항상 어떠하였는지를 굳이 지적해야 하는가? 그랜드 오리엔트의 총본부장이었던 고(故) 자크 미테랑(Jaques Mitterand)은 1969년 라디오를 통해 “우리 롯지에는 언제나 주교와 사제들이 있었다”고 인정하였고 다음과 같이 신앙 선언했다. “제대 위의 하느님을 사람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 루치펠의 죄악이라면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인본주의자들은 그 같은 죄를 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738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처음으로 프리메이슨을 파문시켰던 것에 대한 불평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1982년에 조르주 마르끄(Georges Marcou) 총 본부장은 “그것은 최고 권위자인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다”라고 했다. 그가 재선되었을 당시 관심사의 중심에는 국민건강보험제도(National Health Service)의 보조를 받는 낙태가 있었는데, “여성의 경제적 평등은 이번 단계에 달려있다”고 했다.


  프리메이슨은 이미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 있는 상태다. 1976년에는 전례변혁의 핵심인물이었던 몬시뇰 부그니니(Mgr. Bugnini)가 프리메이슨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또 확신하시만, 전례변혁의 핵심인물은 부그니니 뿐만이 아니다. 성직자 및 신자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여서 가장 큰 비밀을 감싸고 있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짐에 따라 교회의 세속 원수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자크 미테랑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교회 안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변한 상태이며 사제의 독신제도 및 산아제한과 같이 가장 시급한 질문에 대한 교황의 대답이 교회 내부에서 격렬하게 논의되고 있다. 최고위 주교의 말이 주교에 의해서, 사제에 의해서, 신자에 의해서 의문시되고 있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에 대해 말하자면, 신앙에 의문을 품고 있는 자는 이미 드러난 프리메이슨이라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양식을 만든 마르소돔(Mr. Marsaudon)은 또 다른 사람으로서, 그는 공의회 동안에 배양된 에큐메니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톨릭인,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길이 다 천주께로 통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함은 물론 혁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자유사상이 우리 프리메이슨의 롯지에서 비롯되어 성 베드로 성전의 돔 위로 유유히 퍼져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의문을 도와주는 문헌을 한번 더 인용하지면, 그 문헌 중 식스(Six) 신부와 리케(Riquet) 신부가 주장한 접근 편을 보면 어떤 쪽이 다른 쪽을 이기려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다음은 1968년 11월 12월의 주제인 인본주의(Humanism)에 대한 프리메이슨의 논평에서 발췌한 것이다.


  “금방 무너질 주요기둥 중에서도 100년 전에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화시켰다고 믿을 수 있는 것으로 교리상의 권한을 거론하는 바, 그 권한에는 회칙 Humane Vitae를 발행한 후에 여러 차례의 합동공격이 있었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무류성(無謬性)이 부여되어 있다. 성체성사의 실제현존하심은 교회가 중세풍의 미사에 부여한 것인데, 이것은 다른 종파 교도간의 성찬식 및 가톨릭 사제와 개신교 성직자의 공동거행을 통하여 점차로 사라질 것이다. 신품성사의 제정에서 비롯된 사제의 신성성은 자유선택의 특성과 현세적 특성이 강조된 역할이 밀어낼 것이고, 교계와 하급 성직자간의 차별은 모든 민주주의에서와 같이 밑으로부터 상층부를 향한 역동적인 활동에 굴복하고 말 것이며, 성사의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격과 고해의  존재 이유, 즉 그 자체가 성서적 비관론의 후계자인 눈에 가시 같은 중세 철학으로부터 물려받으니 우리 문명에서 가장 시대착오적인 관념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 죄가 점차로 소멸될 것이다.”


  프리메이슨이 교회의 앞날에 얼마나 관심 있어 하는지 여러분들은 알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회를 파괴시키기 위해서다. 가톨릭인이라면 한다면 마녀가 자장가를 불러주어서 아무리 잠들게 하려고 시도해도 깨어있어야 한다. 그 모든 파괴력은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프리메이슨 결사는 자유주의 철학이라고 자칭하는데, 그 궁극적인 모양은 사회주의다. 그 완전한 모습은 우리 주께서 사용하신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지옥의 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