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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3. 종교의 자유, 주교단체주의 평등, 세계교회주의 박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23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3 종교의 자유, 주교단체주의 평등, 세계교회주의 박애

13. Religious Liberty, Collegial Equality, Ecumenical Fraternity


 

 지옥의 문이 이렇게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교회는 항상 박해, 이단, 세속 권력과의 갈등, 때때로 성직자의 부도덕한 행위, 심지어 간혹 있었던 교황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훼방을 받아왔다. 그러나 공의회 위기는 신앙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기에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지금 마주보고 있는 현대주의는 여느 다른 이단이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복잡해보이니, 이는 모든 이단이 결집돼 있는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박해는 현재 교회의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지만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성직자들 사이에 퍼져있는 방탕한 생활,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생활로 인해 추문(醜聞)을 일으키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고질병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늑대에게 양을 넘기는 품삮군 노릇을 권장하거니와 그러한 성직자를 존경하기도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가 현 상황의 그림을 너무 어둡게 색칠해서 그린다, 너무 불만스럽게 본다,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꼭 필요한 변화인데 그것을 보고 가슴아파하면서 자아도취의 즐거움을 취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2차 바티칸에 열성적이었던 바로 그 교황은, 내가 여러 차례에 걸쳐 비탄했던 (교회의)와해에 대해 언급했었다. 1969년 12월 7일 바오로 6세(Paul Ⅵ)는 “교회는 자멸이랄 수 있는 몹시 걱정스러운 시기, 자기비판이 필요한 시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심각하고 복잡한, 그리고 내부적인 격변과도 같은, 마치 교회가 직접 책망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다음 해 말하길, “아직까지 공의회는 여러 많은 분야에서 평화를 주는게 아니라 머리 아픈 문제를 불러일으켜 교회와 영혼의 내부에 결코 천주님의 왕국이 견고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첨례일인 1972년 6월 29일,  “천주님 성전의 갈라진 틈으로 사탄의 연기가 들어와서 의혹, 불확실성, 의문, 선정성, 불만족 그리고 대결이 표면화되었고.....우리 양심 속에는 의혹이 스며들었다”는 경고성 외침이 계속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갈라진 틈은 어디를 지칭하는가? 그 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라면 말할 수 있다. 그때가 1789년, 이른바 대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프리메이슨과 반가톨릭의 원칙이 수도자들과 주교들의 머리 안으로 들어가는 데 걸린 세월을 계산해 보니 200년은 충분히 되었다. 이 혁명이 현재 실현된 것이니, 이 글을 읽는 혼란스러워하는 가톨릭인들이여, 실제상황인 동시에 혼란의 원인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생각으로는 그런 일이란 절대 있을 수 없고 또 이미 천주님의 영(靈)에 의한 조력을 받는 교회의 본질과는 모순되기에, 현재의 사실이 우리 눈앞에 놓여진 상태로 되어 있어야 그것을 보고 아 진짜로 그런가? 하며 이를 믿게 되는 정도의 상황인 것이다.


  곰(Gaume) 주교는 저 유명한 1877년의 논문에서 대혁명을 의인화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그대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다. 많은 이가 나에 대해 말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있다. 나는 프리메이슨 비밀결사도 아니고, 폭동도 아니며, 군주제를 공화제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왕실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공공질서를 일시적으로 혼란시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코뱅당(Jacobins)의 외침도 아니고 몽테뉴(Montagne)를 향한 열광도 아니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약탈, 방화, 농민법, 단두대, 혼란도 아니다. 나는 마라(Marat),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바베프(Babeuf), 마찌니(Mazzini), 코서스(Kossuth)도 아니다. 그들은 내게서 생겨나온 자식이지 내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작품에 불과할 뿐 내가 아니다. 그들과 그것들은 단지 지나가는 사물에 불과하니 나야말로 영원한 나라다... 나는 인간이 세운 질서가 아닌 모든 질서를 증오하는 자요, 인간이 왕도 신도 아닌 상태로 속해 있는 질서를 증오하는 자다.”


  여기(공의회)에 교회 ‘변화’의 열쇠가 있으니, 그 ‘변화’로써 천주께서 정하신 것을 인간이 만든 것으로 바꿔치기 되었고 인간이 천주님보다도 우선하게 되었다.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고, 만물은 인간으로 부터 비롯되어 인간으로 끝나며 천주가 아닌 인간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이다.


  바오로 6세는 공의회를 마무리하는 연설에서 그러한 방식의 방향 전환을 묘사하였다. “이미 독성적이고도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그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냈고 어떤 면으로는 공의회를 무시했으니. 인간이 되신 천주님의 종교는 천주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종교에 마주쳤다.” 그는 곧이어 덧붙여 말하길, ‘그 동안 그렇듯 끔찍한 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무런 충돌도,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공의회는 “온 인류에 대한 한없는 동정심”을 표명한다고 하면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는데, 그 의무란 두 가지 태도 사이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꼬집어 지적해 주는 것이다. 마감 연설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일상생활 속에 주입하도록 독려하는 것 같았다. “최고이신 존재의 초월성을 부인하고 우리의 신 인본주의를 인정하게 된 현대 인본주의자들은 적어도 그 이점(利點)에 대해 공의회에 감사해야하니, 이는 다름 아닌 우리도 인간의 문명에 찬성하도다.”


  그 후에 바오로 6세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들어보았더니, 그러한 주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선한 까닭에 질서와 공동선, 이성을 향하게 되고 있나니”(1970년 11월 14일,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그리스도교 문화와 민주주의에는 공통된 기본 원칙이 있으니, 천주성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존중........ 인간의 완전한 진보가 그것이다”(1970년 11월 20일 마닐라에서). 민주주의란 본질적으로 세속 체제라서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특성, 즉 속량 받은 천주님의 자녀라는 특징을 경시하기에, 위에서 연설한 것과 같이 비교하는 것을 보고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 보는 인간의 진보와 신자가 아닌 이가 보는 인간의 진보는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거듭될 때마다 주교 메시지는 점점 더 세속화되고 있다. 1970년 12월 3일 시드니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나서 너무나 놀라 펄쩍 뛰었다. “고립은 이제 용납할 수 없다. 인류를 고도로 결속시켜서 세계적으로 단일화된 형제적 공동체를 설립할 때가 되었다.” 만인에게 평화라고 하지만, 이제는 “나 너희에게 평화함을 끼쳐주며 내 평화함을 너희에게 주되 내가 너희에게 주기를 세속이 줌과 같지 아니하노니(요왕 14:27)”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자들이 이해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땅을 하늘에 일치시키는 결합이 깨진 것 같지 않은지.


 “우리는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책임이 국민에게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권력은 다수에게서, 즉 국민에게서 비롯된다.”(1970년 1월 1일, 바오로 6세).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위로조차 네게 주심이 없으면 네가 나를 대하야 아무 권도 없으리니(요왕 19:11).” 비록 투표과정을 거쳐서 지도자를 뽑는다 해도 권력은 천주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다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빌라도는 이교국(異敎國)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천주 성부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교회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어이없게도 새 교회법(Canon Law)은 권력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이렇듯이 권력을 공동으로 행사하게 만드는 경향은 현재 설립되어 있는 협의기구, 즉 종교회의, 주교단회의,, 사제단회의, 사목회, 로마위원회, 전국위원회, 기타 등등을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거니와 수도회에도 이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교정권을 민주화시켜서 이전에 부여되었던 교황 및 주교 고유의 교정권의 효험이 무너져 내렸으니, 이는 영혼을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의사가 병에 걸려서 어디로 갈 줄 모르는 수백만 영혼에게 어떠한 신뢰도 못주게 되어서 극도로 위험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는 수많은 신학관련 위원회에서 담당하는데, 위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방법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으니, 해답을 전혀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여러 분야의 회합 처리과정이 어떠한가를 읽어만 봐도 교정권 연합이란 단지 통치를 마비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주님께서 양떼를 돌보라고 가르치신 것은 단체가 아닌 개인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었다. 종도들은 우리 주님의 지시에 순명했으며 20세기가 될 때까지는 그렇게 했다. 요즈음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또한 공동체를 연합한다고 한다. 결과는 분명해졌다. 모든 게 뒤집어지는 까닭에 이제 신자들은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모르게 되었다.


  공산주의자, 개신교와 진보주의 언론에 의해 널리 퍼진 ‘주교단체주의’라고 하는 구호에 이끌려 교정권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니, 당연히 그 뒤를 이어 정부가 민주화되었다.


  저들은 교황의 통치권 및 주교의 통치권을 장로교 단체와 연합하였고 본당 사제의 통치권을 평신도 협의회와 연합하였으니, 전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위원회, 교회회의, 정기회의 등등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새 교회법 조항이라는 것이 온통 그러한 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 교황에 대해서는 주교단체(College of Bishops)의 대표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이러한 교리는 주교단체가 교회의 최고권을 행사하면서 계속 교황을 관섭하여 작성한 공의회 문헌 Lumen Genitum에서 제안된 상태다. 이러한 것은 나아지기 위한 변화가 아니다. 그러 이중적인 패권(霸權)은 교회의 가르침 및 교정권을 반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의 및 교황 레오 13세(Leo ⅩⅢ)의 칙서 Satis Cognitum에도 반한다. 최고권은 교황에게만 있고, 교황은 그가 스스로 적당하다고 여기는 정도까지만 그리고 오직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최고권을 행사한다. 전 세계를 망라하여 판단하는 권한은 교황에게만 있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는 최고위 주교(교황)의 자유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것을 (교회 내)진정한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면 변화에는 반드시 실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변혁의 영향을 모두 받은 첫 교황이다. 그가 주교회의의 압력을 받고 있기 바람에 결정사항을 재고했던 선례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네덜란드 교리문답(Dutch Catechism)은 추기경위원회에서 요구한 교정도 없이 밀라노를 담당하는 대주교의 인쇄허가(imprimatur)를 얻어냈다. 캐나다 교리문답(Canadian Catechism)도 똑같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로마에서는 “주교회의와 맞서 싸우자면 어쩌자는 것이냐?”라는 어느 권력자의 말을 들었다. 프랑스의 주교회의가 교리문답과 관련하여 독립을 이루려고 책동을 부렸다는 것도 있다.


 신작 도서들은 거의 모든 점에서 전통 교리문답에 관한 교황의 권고(Apostolic Exhortation Catechesi Tradendae)을 거스르고 있다. 1982년 파리 지역의 주교들에 의한 ad limina 방문(주교들이 5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교황을 알현하는 것)은 교황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교리문답을 바로 당사자인 그 교황으로 하여금 비준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방문을 끝내면서 요한 바오로 2세가 알현을 윤허했는데 그것은 기뻐 넘치는 주교들이 자기 나라로 귀환하여 무척 해로운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 온갖 화해의 표시가 들어 있었다. 파리와 리용(Lyons)에서 강연하던 중에 랏징거(Ratzinger - 주: 후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됨) 추기경은, 프랑스 주교들이 새로운 교리와 정책을 도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공한 것에는 배서하지 않는 것이 로마의 입장이라고 분명하게 밝혔지만, 신앙의 보고(寶庫)의 수호자인 역대 교황들이 지금까지 항상 해 왔던 대로 사안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단죄에 필요한 훈령을 발행하지 말고 제안과 조언하는 만으로 가볍게 다루어 진행하라는 압력이 가해지니까 교황청은 후퇴하고 말았다.


  이에 의해 권한이 증대된 것처럼 보이는 주교들은 솔직히 자기 교구의 운영을 마비시키는 주교단체주의의 희생물인 것이다.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주교들 자신이 이 문제에 관해서 불평에 불평을 반복하는데, 뭔가 느끼게 되는 불만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주교는 많은 사례의 운영회에서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간혹 승인을 얻기 위한 의결사항을 교황청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에 맞서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무원에서 회의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그 결정사항을 발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모든 사제 및 신자들이 알게 되고, 뉴스 매체는 요점만 발표한다. 주교 자신의 의견이 운영회의 의견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주교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다수에 직면해 있다는 그 운영회에 호소할 정도로 그런 결정에 실제로 반대할 주교가 과연 있을까?


  주교단체주의의 포로가 되고 나면, 주교는 일일이 자문단체의 간섭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가장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조차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공의회 직후 우리 공동체를 계속해서 방문하러 다니던 당시에, 브라질 어느 교구의 주교가 기차역에 있는 나에게 정중하게 다가왔다. “당신을 주교관으로 모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소신학교에 방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를 직접 데리고 갔다. 그 곳은 아주 어수선했다. 복도, 계단에는, 어디든지 청년과 소녀들로 온통 붐비고 있었다. “저 젊은이들은 신학생인가요?”라고 내가 물었다. “맙소사, 우리 신학교에 이런 젊은이들이 있다니, 정말이지, 기분이 영 좋지 않은데요. 그런데 앞으로 주교회의(Bishops' Conference)는, 연합 가톨릭 단체(Catholic Action) 회의를 우리 집에서 열어야 한다고 결정했거든요. 해서 일주일 동안 그 회의가 이곳에 있답니다. 이를 어쩌죠? 다른 이들과 똑같이 할 수밖에 없어서요.”


  교황이나 주교나 천주님의 권리로 인한 이들에게 부여된 권한은 계속 주도권을 끌어 모으는 단체(주교단체)를 위해서 이쪽으로 모아져 왔다. 어떤 이는, 주교회의가 최근의 것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비오 10세(Pius Ⅹ)가 주교회의를 인정한 것은 금세기 초(20세기 초)였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 거룩한 교황은 주교회의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짐(교황)은 이 주교들의 모임이 모든 종교 및 전 지역에 천주의 왕국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하노라. 거룩한 것을 수호하는 주교들이 이 주교 모임을 통하여 각자의 지력을 한데 모을 때마다, 자기 백성의 요구를 더 잘 이해해서 최적의 처방을 골라내고 그들을 단합시키는 결속력이 강화돼야 하나니.”


  결국 그들은 과학자 협회가 이런 저런 실험실에서 무슨 실험이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기네 구성원들에 관하여 그들을 묶어놓아서 독재적인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지체들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의회처럼 주교회의는 활동하기에, 프랑스 주교단의 상임회의는 그 집행기구에 해당된다. 주교는 교구를 다스리도록 교황에 의해 임명되는 종도들의 후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널리 쓰이는 용어인 공화국의 장관 혹은 행정관쯤이라고나 해야 더 맞는 것이다.


  그러한 집회에서 투표하는 것을 보면, 투표권자 수가 너무 많아서 루르드(Lourdes)에서는 전광 판 투표시스템을 설치해야 할 정도이니 그리고는 마침내 당파를 만들고 만다.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은, 한 가지가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도 있음을 뜻한다. 당파는 분열을 의미한다. 정규 정부가 제 기능을 하는 데 있어서 자문을 구하기 위한 투표에 종속되면 무력해지는 법이다. 결국 기관 전체가 그 고통을 겪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주교단체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효력이 상당해 약해졌고 그 때문에 애석하게도 개인보다는 단체가 더 성신의 활동을 방해하는 훼방꾼 역할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편적으로 보면 누가 나서서 말을 하지 안 해도 사람들은 신뢰가 간다 생각되면 행동하고 말하는 법이다. 단체회합에서 결정은 다수결로 한다. 그런데 다수라고 해서 전부 진리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주교단체주의가 이루어진지 20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듯이, 그리고 경험하지 않았어도 예상할 수 있듯이 수가 많다고 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 어느 우화 작가가 ‘쓸 데 없이 여러 차례 열린 총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 투표로써 결정사항을 정당화시키는 정치체제를 굳이 본뜰 필요가 있었을까? 천주의 왕국을 번성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엄청난 이점(利點)이 교회에 있지 않은가! 교회 지도자들은 임명된다. 모든 여론을 수렴시켜야 하고, 공동성명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하고 그러고도 결코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다! 선출 위원회 및 대책회의 명목으로 열리는 위원회와 소위원회에 참가한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양새이니! 에츠가라이(Etchgaray) 주교는 루르드에서 1978년의 집회를 마감하던 때에 “이제 우리는 어떤 길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라고 했다.


  드디어 교회는 공산주의, 이단, 부도덕에 대해 싸우는 힘이 상당히 약해지고 말았다. 이는 교회반대자들이 원하던 것이고 또 그러한 이유로 공의회가 열리던 때에, 그리고는 그 후에 교회를 민주주의의 길로 몰고 가고자 무척 애를 쓴 것이다.


  조심하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슬로건에 의해서 대혁명의 정신이 교회에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자유’, 이는 일찍이 언급한 바 있는 종교의 자유로서, (참 교회의)권리를 (타 종교)오류에 내어주는 것이다. ‘평등’, 주교단체주의인 동시에 개인권, 천주님의 권위, 교황권, 주교의 권위를 파괴시키는 것으로서, 간략히 말해 (민주주의 요소라는)다수결의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박애’는 에큐메니즘으로써 표현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이 세 가지 단어가 (교회의)법과 예언서가 되어 버렸다. 드디어 현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던 바를 성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