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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8. 참된 순명과 그릇된 순명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27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18. 참된 순명과 그릇된 순명

18. True and False Obedience

 


  교회 모든 곳을 둘러보아도 무질서, 무규율이 난무하고 있다. 사제 위원회는 자신을 관할하고 있는 주교에게 요구 사항을 보내고, 주교는 교황의 훈계를 무시하며 심지어 공의회의 권고와 결정 사항마저 존중하지 않으며 ‘불순명’이라는 말은 단지 전통을 충실히 지키고 신덕을 굳게 지켜야겠다는 가톨릭인에게만 해당되고 있으며, 그 밖의 사람들은 ‘불순명’이라는 용어가 도대체 어떤 것을 두고 쓰는 말인지를 통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순명은 중대한 문제로서, 교회의 교정권, 그것도 특히 최고위 주교(교황)에 결합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 중 하나다. 우리는 이를 절실히 느끼면서도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제일 현(現) 베드로의 후계자 또는 그 전임자에 속해 있는 자들이 되어 있는 상태다. 여기서 우리라는 사람들은 나 자신과 교회에서 쫓겨난 많은 신자들, 또 프랑스 대혁명 때와 같이 헛간에서 미사를 드리고 읍내와 시골에서 전통에 의거한 교리문답반을 조직하고 있는 사제들을 말한다.


  교황이 종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모든 전임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킨다면, 우리는 교황을 지지한다. 베드로의 후계자를 정의(定義)하자면 이 보고(寶庫)의 수호자인 그는 진정한 베드로의 후계자다. 비오 9세는 Pastor Aeternus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성신이 약속된 것은 당신의 계시에 관하여 새로운 교리를 선포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도로조차 전해 내려오는 계시, 다시 말해서 당신의 도우심을 힘입어 신앙의 보증을 엄격하게 지키고 또 충실하게 설명하게 위해서이다.”


  우리 주님께서 교황, 주교 그리고 사제단에게 권위를 위임하신 것은 주로 신앙을 복사하게 위함이었다. 법령, 제도와 권위를 이용하여 가톨릭 신앙을 멸절시키고 생명을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실질적인 영적(靈的) 낙태 또는 피임에 해당된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천 년 동안 가르쳐진 그대로의 가톨릭 신앙에 일치하는 것은 따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에 반(反)하는 것은 거부한다. 일어난 현실을 보면, 바오로 6세가 교황 재위하는 동안 모든 가톨릭인의 양심과 신앙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성신의 조력을 보장받는 교황, 베드로의 참된 후계자가 그토록 짧은 기간에 교회 역사상 그 어떤 이교(異敎) 창시자도 성공한 유래가 없었던 일, 즉 가장 광범위하게 교회파괴를 어떻게 주도할 수 있었을까? 언젠가는 반드시 이 의문에 관한 답이 주어지리라.


  천주께 서원하기 전 5세기 전반에 군인이던 레랭의 성 빈첸시오(Vincent of Lerins)는 ‘신앙이라는 항구에 피난처를 찾기 전에는 세속이라는 바다에 오래 동안 내쳐진’ 상태임을 인식한 후 신덕도리의 발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종교적 진보란 전혀 없는가? 분명히 말하지만 진보가 있으니, 신앙 문제에 있어서 진전이 있지만 변화는 없는 것으로서, 몇 가지 지극히 필요한 것이 있다. 문제는 교회와 개인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지식, 이해력과 지혜가 충분히 성장하는 가운데 신덕도리의 정체성과 사고의 지속성은 언제나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빈첸시오는 이단의 충격을 겪었던 분으로, 1500년 지난 뒤에도 유효한 행동 규범을 정하셨다. “그러니 교회 중 일부가 공번된 회와 신앙에서 이탈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경우, 가톨릭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병으로 썩어버린 수족을 버리고 멀쩡한 몸체를 택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또한 새로운 전염병이 교회의 작은 부분이 아닌 교회 전체를 한꺼번에 망가뜨리려 할 때에 가톨릭 그리스도인으로서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현혹시키는 새로운 것이 아무리 충동질해도 절대 미혹되지 않게 할 옛날 것에 결합하는 것이니라.”


  삼천(주: 예수승천 첨례일 전 3일간)기도의 도문을 보면 교회는 다음의 기도를 가르친다. “교종(아무)와 성회의 모든 품위를 인의(仁義)에 보존하시기를 구하오니, 주는 우리를 들으소서.” 이는 그 같은 재앙이 일어나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억지로 약화시키는 법령이나 판결이란 게 전혀 없다. 아무튼 신자는 어린 시절의 교리문답과 일치하는 신앙을 방해하는 것은 그게 어떤 것이든지 저항할 권리가 있으며 또 저항해야만 한다. 자신의 신앙이 타락할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명령에 마주치면 우선 불순명할 의무가 있다.


 순명하지 않으면서까지 성전(聖傳)을 지킬 의무가 있는 이유는 공의회 이후의 변혁과 그 풍조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교회 그리고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제멋대로 변화된 교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천주 성자는 자유주의자가 행한 변혁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이나 나는 교황청 사절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우리 주님의 사회적 왕국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여러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게 한 말 그대로다.


  나는 그런 종교에 속한 사람이 아니며 새로운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매번 교정권(치교권)에 의한 해석을 희생시키면서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예절, 사제, 신앙, 교리문답과 가톨릭 신자, 유데아교도, 개신교와 성공회교도들이 만든, 즉 종교일치에 바탕을 둔 (에큐메니칼) 공동번역 성서, 십인십색인 종교는 자유주의 종교이며 현대주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에큐메니칼한 성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이미 천주의 성서가 있는데, 천주의 말씀에 사람의 말을 섞어놓을 권한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내가 어렸을 적에는 교회 어디서든지 같은 신앙, 같은 성사 그리고 같은 미사성제가 있었다. 그 당시에 교회도 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로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계 전반에 걸쳐서 천주님께 기도드리는 방식이 똑같았는데, 자유주의 및 현대주의의 새 종교가 분열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런 혼란이 둥지를 틀고 나니, 성 가정(주: 예수 마리아 요셉을 본받은 가족 모두가 가톨릭 신자인 가정)은 분열되고 만다. 이제 그들은 같은 미사에 참례하지도 않으며 같은 책을 읽지도 않는다. 사제는 더 이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자신의 장상이 강요하는 것에 무조건 순명함에 따라, 서품을 받는 순간에 반 현대주의를 맹세했던 서약을 깨뜨리면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신앙을 어느 정도 잃거나,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만 들지 않을 뿐, 실제에 있어서는 항명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가 얼마나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인가! 많은 사제가 때가 되기도 전에 비탄에 차서 죽고 말았다.


  고위층에서 공공연한 박해의 희생물로 삼기에, 여느 사제가 전통적인 성무(聖務)를 계속한다는 이유로 본당을 포기하고 떠나라고 강요받는 이는 얼마나 더 많았는지...... 여러 해 동안 목자를 강제로 빼앗기고 있던 신자들의 지지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 두 본당을 맡고 있던 사제가 다음과 같이 이임사를 신자들에게 하는 것을 직접 본 일이 있다. “.......에 관하여 인터뷰하는 중에 주교가 나에게 새 종교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하라는 최후통첩을 했고, 나는 이 문제를 피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사제직의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영원한 교회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 의지와는 달리 억지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사제로서 순직(純直)하고 그 무엇보다도 명예를 지키자면, 꼭 집어 말하면, (미사라는)극히 신성한 문제에 충직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주와 신자들 그리고 특히 여러분에게 내가 드리는 충성심과 사랑의 증거인 동시에, 바로 그 점에 관하여 세상 끝 날에 같은 (신앙의) 보고(寶庫)를 위임받은 모든 이와 함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실제로 브라질의 캄포스(Campos) 교구에서는 카스트로 마이어(Castro-Mayer) 주교가 (교회의)변화를 따르지 않자, 모든 성직자가 교회에서 쫓겨났는데, 그 이유는 최근까지 거기서 드렸던 영원한 미사를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경건성에도 분열은 영향을 미친다. 발데마른(Val-de-Marne) 교구에서는 경찰을 시켜서 여러 해 동안 사제를 빼앗긴 교회에서 묵주기도를 암송하던 가톨릭 신자 25명을 추방했다. 메츠(Metz) 교구에서는 주교들이 공산주의자인 시장을 끌어들여 전통을 지키는 단체에게 임대해주었던 건물 임차권을 박탈하게 했다. 캐나다에서는 신자 6명이 재판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그 재판은 국법으로써 그런 종류의 문제를 다루게 허용된 것으로서, 그 죄목은 장궤(주: 무릎을 꿇음)한 상태에서 영성체를 해야겠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안티고니시(Antigonish)의 주교가 “종교행위의 질서와 존엄성을 의도적으로 어지럽힌다”는 혐의로 그들을 고소했던 것이다. 재판은 그 ‘훼방꾼들(?)에게 6개월 동안의 조건부 방면을 언도했다! 주교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천주대전에서 장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년 샤르뜨르(Chartres) 성당을 순례한 청년들은, 대성당에서는 성 비오 5세의 미사를 드리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에 대성당 정원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주 후 가서 보니, 그 성당 문은 깔멜회 수녀였던 사람들이 춤판을 벌이면서 심령 연주회를 연다고 활짝 열려 있었다.


  두 종교가 서로 부딪치고 있다. 우리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란 단지 순명과 불순명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면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제시된 것, 저들이 우리보고 행하라고 권장하는 것, 우리가 행하지 않는다 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순명이라는 허울을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 교황이라도 우리보고 신앙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지키는 것을 택하여, 이천 년 동안 교회가 대대로 가르쳐 온 것을 지킬 뿐이다. 위기는 심각하고 극도로 조직화되고 직접적인데, 이 같은 증거로 볼 때, 사실을 말하자면, 조종자는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라고 믿을 만하다. 왜냐하면 사탄의 교묘한 재주는 가톨릭인들로 하여금 순명이라는 미명하에 온전한 성전(聖傳)에 불순명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수도회의 ‘현대화’로 인하여 전형적인 사례가 마련되었다. 순명에 의존한다 하면서, 수도자 그리고 수녀들이 설립자들의 법령과 회헌을 지키겠다 라고 서원해야 할 것을 서약의 정도에서 그쳐 그 비중을 축소시키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불순명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의 순명은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아무리 합법적인 권위일지라도 비난받을 행동과 악행을 행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 법이다. 아무도 수도 서원을 단순한 서약으로 바꾸게 하지 못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우리를 개신교 또는 현대주의자가 되게 하지 못한다. 빼놓지 않고 늘 참고자료로 보게 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cquinas)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우리 주께서 명하신 ‘형제적 교정’이 장상에 대해서도 행해질 수 있는지를 묻기에 이른다. 아주 적절하게 구별한 후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신앙상의 문제일 때에는 장상에게 형제애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 문제에 더욱 단호했더라면 점차 이단화(異端化)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6세기 초에 영국인들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종류의 경험을 했으나 종교분열로써 시작했다는 점이 달랐다. 다른 점에서는 모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즉, 생각할 만한 요소가 있다. “영국 국교회주의”라는 이름을 채택한 새 종교는 미사, 개별고백과 사제의 독신제도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헨리 8세는 자기 백성을 로마로부터 분리시켰다는 엄청난 책임이 있지만 자신에게 제출된 법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1년 후 한 법령으로써 영어를 사용하여 미사를 거행해도 좋다는 인가가 내려졌다. 행렬이 금지되었고 제헌경이 없는 ‘영성체 의식’, 즉 새로운 형태의 의식을 강요했다. 그리스도인을 안심시키려고 또 다른 법령으로써 일체의 변화를 금했지만, 세 번째 법령으로는 사제들에게 교회에 있는 성상(聖像)과 성모상을 치우라고 하였다. 신성한 예술품을 상인들에게 마구 팔아치웠으니,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골동품상과 벼룩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았다.


  영성체 의식을 보면, 주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주신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제 현존에 관한 신덕도리를 위반했다는 것을 지적한 주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자국어로 번역된 고죄경(Confiteor)은 거행자와 신자가 동시에 암송하여 사죄경을 대신했다. 미사는 식사 또는 친교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영민한 주교들은 평화와 일치를 유지한다면서 결국 새 공과책(기도서)을 받아들였다. 그와 똑같은 이유로 2차 바티칸 공의회(1960년대) 이후의 교회는 우리에게 새 미사 Novus Ordo를 강요한다. 16세기에 영국의 주교들은 미사가 ‘기념!’이라고 주장했었다. 끊임없는 선전을 통해 신자들의 정신에 루터파의 견해가 도입되었다. 강론을 하는 자들은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했다.


  그 기간에 교황은 ‘로마 주교’로만 언급되었다. 이제 그는 아버지가 아니고 다른 주교들의 형제 격이었으니, 영국의 경우에는 자칭 국교의 수장으로 삼은 영국 국왕의 형제인 셈이었다. 크랜머(Cranmer) 기도서는 그리스식 전례 일부와 루터식 전례 일부가 서로 뒤섞여 작성되었다. 전례 변경을 위한 콘실리움(Concilium: 전례위원회)에 대한 전문가로서 6명의 프로테스탄트 ‘참관자’가 동참해서 이루어진 이른바 바오로 6세의 미사라는 것을 입안한 몬시뇰 부그니니(Mgr. Bugnini)를 어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기도서는 “통상적으로 미사라고 일컬어지는 만찬과 성찬식....”이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이는 1981년 루르드 성체대회에 의해 재편된 새 미사경본의 총론(Institutio Generlais)가운데 저 악명 높은 제7조에서 “주의 만찬, 다시 말해서 미사라고 하는”이라고 했던 것을 예시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신성함의 붕괴도 성공회 혁명의 일부를 완성했다. 현대식 성체성사에서처럼 전문(Canon)에 들어있는 경문은 우렁찬 소리로 염해야 했다.


  주교들은 “왕국의 내적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기도서를 인가해 주기도 했다. 계속해서 ‘옛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은 그 이상의 죄목으로 수감되고 또한 수입의 감소로부터 시작해서 완전 해임에 이르기까지의 제재를 받았다. 오늘날, 전통주의 사제를 감옥에 가두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셈이다.


  목사가 인도했던 튜더 왕조의 영국은 시대의 역사적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구실로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단으로 빠졌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계 전체를 보면,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위험에 놓여 있다. 특정 시대에 처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위험은 차라리 더 작은 위험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정작 교리신학 또는 윤리신학, 교회법 혹은 교회사의 흔적조차 없는 새 교리문답, 실험 심리학과 사회학 속에서 길러진 어린이, 청년 신학생들이 옳지도 않으며 주입돼도 좋다고 허가된 개신교식 새 관념을 다루는 신앙 안에서 교육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종교(로마 가톨릭)는 앞으로 어찌될 것인가?


  유혹에 빠져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한다 해도 그것에 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래저래 말하는 사람은 주교이다! 보라, 이 문서는 교리문답 위원회 어떠어떠한 다른 공식 위원회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 식으로 하면 살아남아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신앙을 잃어버리기만 할 뿐, 그런 식으로 반응할 권한이 없다.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그러나 우리라든가 혹은 하늘로부터 나린 천신이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 저주를 받을지로다.” 참된 순명의 비결은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