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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20. 모든 시대의(영원한) 미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17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20. 모든 시대의(영원한) 미사

20. The Mass of All Time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놀랄 만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갈등의 중심이 미사인데도, 논란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 미사가 문제화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침묵은 이른바 성 비오 5세의 미사양식이라는 것이 완전히 공인되었음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가톨릭인들은 아주 편안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 이 (전통)미사는 금지되지도 않았거니와 금지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그 전통미사는 성 비오 5세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고 “미사경본을 고대의 규율 그리고 교부들의 예식에 일치하도록 복원시킨” 것으로, 1570년 7월 14일 성 비오 5세가 서명한 교서 Quo Primum으로써 완전하게 보증되는 까닭이다.


 “장상, 까논, 지도신부 그리고 모든 다른 직책의 사제 또는 모든 수도회 소속의 수도자일지라도 우리가 누리는 것과 다른 형태의 미사를 봉헌하지 못한다고 정하는 바이다. 마찬가지로 이 미사경본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며, 현재의 규약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못하는 동시에 영원토록 유효함은 물론 법규의 효력을 지녀야 함을 명하고 선언하노라........아무라도 감히 (그런 변경을) 행하려 한다면, 전능하신 천주와 종도 성 베드로 및 바오로의 진노를 면치 못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니.”


  교황으로서 영속적인 특전을 철회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정식 법령에 의거해야 한다. 1969년 4월 3일의 교황령(Apostolic Constitution) Missale Romanum에서는 이른바 바오로 6세의 미사(Mass of Paul Ⅵ)라는 것을 인가했으나, 특별히 트리덴틴 미사(Tridentine)를 금지한다고 성문화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타비아니(Ottaviani) 추기경이 1971년에 “내가 아는 한 트리덴틴 양식(Tridentine Rite)은 폐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스위스 주교총회(Plenary Assembly of the Swiss Bishops)에서 아담(Adam) 주교는 교황령 Missale Romanum이 있으니, 특전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 비오 5세의 양식에 따라 거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주장했으나, 어떤 용어가 그런 금지를 의미하는지 말해 달라고 하자 철회해야 했다.


  사제가 전통 미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로 인하여 징계를 받거나 파문까지 당한다 하더라도 그 판결문은 당연히 절대 무효다. 성 비오 5세는 그 거룩한 미사를 성전(聖典)으로 승인했으니, 교황이라고 해서 그런 정전(正典)승인을 없앤다면 그것은 성인(聖人)으로 승인한 것을 무효화하는 것보다도 더 심한 행위에 해당된다. 우리는 그 미사를 거행할 수 있고 신자는 완전한 평화 가운데 그 전통미사에 참례할 수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 미사를 보존 하는 것이 신앙을 보존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미사 문제에 관하여 수년간 침묵을 지킨 후에 드디어 가톨릭인을 옥죄었던 형틀을 느슨하게 해주었다. 1984년 10월 3일 성 비오 5세의 양식을 요구하는 신자를 위하여 예부성성(Congregation for Divine Worship, 주: 교회의 예전, 시복, 시성에 관한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의 서한으로써 전통 미사를 다시 ‘인가’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 끝날 때까지 자유로이 누릴 수 있노라고 이미 허가받은 상태인 권리를 특전이라 형태로 받아 누려야 한다는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주: 특전이란 허가되지 않은 것을 예외적으로 일부 허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래서 이미 허가되어 있는 것은 특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런 초기 단계의 제스처.......다른 제스처가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가 있고 나서는, 트리덴틴 미사를 향한 부당한 의혹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혼란에 빠져서 그 전통미사에 참례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주저하는 가톨릭인의 양심은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1976년 7월 22일 저들이 나에게 내린 성직수행 금지령을 살펴보자. 그것은 6월 29일 에콘(Ecne)에서 행한 서품식의 뒤를 이은 것으로서, 로마로부터 나의 활동을 중지할 것과 사제서품 계획을 진행시키지 말라고 설득하는 온갖 비난, 애원, 명령 그리고 위협 등을 3개월 동안이나 받았다. 서품식이 있기 직전인 마지막 며칠 전에는 쓸모없는 전언 그리고 대표단 파견이 있었는데, 저들은 과연 뭐라고 말했는가?


 새 양식을 받아들이고 새미사를 거행함으로써 교황청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복원하라고 여섯 차례나 요구했다. 저들은 몬시뇰 한 사람을 보내기까지 하여 나를 끼워 넣은 상태에서 새 양식에 의한 예식을 거행하려 애썼고, 6월 29일에 새로 태어나는 사제를 위해 기도하려고 모인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바오로 6세의 미사를 드린다면 로마와 나 사이의 모든 것이 순탄하리라고 약속하면서 내 손에 새 미사경본을 쥐어 주었다.


  이것은 저들이 내가 사제서품식을 전혀 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행하기는 하되, 새 전례에 준하여 행하게 하려고 한 것을 의미한다. 로마와 에콘 사이에서 일어난 각본 모두가 미사를 문제로 삼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음이 분명하며 지금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서품식 미사의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혹시라도 내일 우리를 비난하는 글이 신문에 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서품식의 결과로요. 나에게는 금지령이 내리고, 이제 막 태어난 젊은 사제들에게는 이론상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어 미사성제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이에 나는 성 비오 5세께 호소하는 바입니다.”


  어떤 가톨릭인들은 내가 성직수행 금지령을 무시한다 해서 괴로움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서품식을 거행하지 못하도록 금지 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 단체가 박해받고 신학교가 폐교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박해와 폐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불의 그리고 불법하게 결정된 것이니 즉, 교회법상으로 보면 그로써 내려진 조치가 내용과 형식 둘 양쪽에서 여러 가지 결격 사유, 그 중에서도 특히 행정법에 관하여 저자(著者)가 ‘권력의 남용,’ 말하자면 사용해야 할 목적에 어긋나게 권력을 사용하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금지령을 받아들이자면 처음부터 모두 다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우리는 한 번도 심리(審理)를 받아보지 못하고 변호할 기회도 없었으며,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경고나 서면으로 된 집행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항소 한번 제대로 못해본 채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첫 판결을 거부하면 다른 판결을 거부하지 말라는 이유가 없으니, 다른 판결은 첫 판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무효하게 되면 그 뒤에 오는 것도 무효하게 되는 법이다. 이따금 또 다른 의문이 신자 및 사제들에게로 향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르몽드(Le Monde)지의 대표가 언론 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당신은 고립돼 있습니다. 혼자서 교황 그리고 모든 주교에 맞선 채 말입니다. 당신의 싸움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아니, 나는 혼자가 아니오. 나에게는 온전한 성전(聖傳)이 있고 세상에는 교회가 있다고 또한 많은 주교들이 마음속으로는 우리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 카스트로 마이어 주교가 나와 함께 서명하여 교황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는데 그렇게 하고 난 지금은 교회가 개신교화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공식 선언한 우리 두 사람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많은 사제가 있다. 다음으로는 매년 40명 정도의 사제를 새로이 충원해 주는 우리 신학교, 250명의 우리 신학생들, 30명의 우리 수사, 60명의 우리 수녀, 30명의 우리 노동 수사, 개원하여 발전하고 있는 수도원 및 깔멜회, 우리에게로 모여드는 신자들이 있다.


  또한 진리는 결코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니,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진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나 혼자이고 내 신학생 모두가 나를 떠난다 해도, 모든 여론이 나를 저버린다 해도, 나에 관한 한 전혀 상관없다. 신경, 교리문답, 천국에서 뽑힌 이를 성화(聖化)하게 하는 성전에 결속되어 반드시 내 영혼을 구하고 싶을 심정이다. 우리는 여론을 너무나도 잘 안다. 민중(여론)은 주님을 환호해 맞이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분을 정죄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성지주일부터 성금요일까지 생긴 일이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그대 하는 일에 대해 마음속에서 무언가 꾸짖고 있다고 느끼지 않소? 그대는 교회 안에서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소. 양심이 그렇게 일러주지 않나요?” 내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교황 성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꾸짖는 것이 있었다면,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당장 그만두었을 것이다.


  교황 바오로 2세는 나를 반대하는 뜻을 갖는 제재 조치를 승인하지도 않았고 파기하지도 않았다. 1971년 11월, 교황과의 공식 회견에서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교황은 전례에 있어서 선택의 자유, 즉 내가 처음부터 요구했던 것을 행하도록 허용하여 교회에서 행하는 다른 모든 시도 가운데 ‘성전(聖傳)을 시도하게’ 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모든 게 청산되면 이미 그 때가 된 상태일 것인데, 미사를 불법화하는 일이 없어지면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직 중이던 세퍼(Seper) 추기경은 그 반갑지 않은 위험성을 알고 말하길, “하오나 교황 성하, 그들은 이 미사를 깃발로 삼을 것입니다”라고 그가 소리친 것이다. 잠시 동안 올라갔던 무거운 커튼이 도로 드리워졌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