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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23. 건설과 파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20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23. 건설과  파괴

23. Building Up Verses Pulling Down.

 


  공의회 개혁 때문에 무성했던 반발이 20년이 지나면서 조금 가라앉자, 거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이전의 종교를 묻어 버리고 그것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새 것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그것은 현대주의자에 의한 한판의 도박이었다. 저들은 소란이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으니, 초창기에는 오히려 자신만만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없어졌다. 당연히 영적인 분야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의 양보가 있었으나, 그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제는 새 종교의 사제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신자들은 수계범절에서 멀어져갔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고자 하던 교회는 정말로 곤궁해져서, 광고의 힘을 빌어서 겨우 겨우 교무금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부동산을 싼값에 팔아 넘겨야 했다.


  그 와중에 성전(聖傳)을 충실하게 지키는 신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 국가 특히 프랑스, 스위스, 미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 모여들었다.


  새 미사를 고안해 낸 몬시뇰 아니발레 부그니니(Mgr. Annibale Bugnini)는 자기가 죽은 후에 출판된 서적(주: La Riforma Liturgica: Edizioni Liturgiche Rome)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걸친 저항, 즉 끊임없이 자라고 조직화되면서 이에 따른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저항이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진보주의 경향의 언론인들이 때때로 장담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전통주의’ 운동은 서서히 줄어들기는 커녕 나날이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성 니콜라 두 샤르도네 성당(St. Nicholas-du-Chardonnet)의 미사에 참례하는 많은 사람 그리고 많은 미사, 많은 성체강복 또는 많은 아름다운 예절과 같은 것이 그 어디에 있는가? 전 세계 성 비오 10세회에는 70여채 되는 주택이 있는데, 각 주택에는 최소한 사제1명이 상주하고 있고 브뤼셀에 있는 것과 같은 성당 및 최근 런던에서 구입한 성당도 있으며, 마르세이유에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성당이 있고, 학교도 있고, 신학교도 4개교나 된다.


  깔멜회 수도원도 벌써 개원해서 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 15년 전 또는 그 이전에 조직된 남자 수도원이나 여자 수도원이나 본래의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곳은 성소자(聖召者)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가옥을 계속 확장시키고 또한 건물도 더 지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얼마니 풍성한지 놀라울 지경인데, 프랑스에서 특히 그렇다.


  수도원은 매력의 중심지로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신자들도 무리를 지어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되었으며, 미혹당한 후 유감에 빠지게 하는 쾌락과 여러 가지 형태의 일탈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젊은이들은 수도원에 와서야 다마스고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발견한다(주: 성 바오로께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러 다마스고로 가는 길에 놀라운 경험 후 회두하여 종도가 되셨음, 신약성서 종도행전 9장) 르 바루(Le Barroux), 플라니수르오자랭(Flavigny-sur-Ozerain), 라 헤야옥스봉솜므(La Haye-aux-Bonshommes), 알레스의 베네딕또회(Benedictines of Ales), 팡쥬(Fanjeaux), 브리뇰(Brignolles), 뽕뜨갈(Pontcallec) 수녀회 그리고 르크르와 신부(Father Lecareux)회의 공동체 같은 곳들이 진정으로 참된 가톨릭 신앙을 보존하고 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장소의 목록이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면, 여러 곳에서 당신이 친히 세우신 교회를 강복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손길이 느껴진다. 멕시코에서는 평범한 신자들이 이른바 해방신학이라는 것으로써 세뇌당하여 성당(聖像)을 버리려 하면서 “일하는 자는 조각상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라고 하던 개혁 성직자를 교회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멕시코의 정치적 환경 때문에 우리가 소수도원을 개원하지 못하게 되어 미국 접경 근처의 엘 파소(El Paso)를 거점으로 만들어 충직한 사제들이 순회하고 있다. 크리스테로스(Cristeros)의 자손들은 사제들을 따뜻하게 환영하기도 하고 자기 교회를 제공한다.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곳에서 나는 2,500명에게 견진성사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 자녀를 거느리고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들에게로 모여들고 있다. 1982년에는 미국에 있는 우리 신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에 걸쳐 양성된 최초의 사제 3명에게 신품성사를 주었다. 전통을 지키는 단체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현대화된 교구는 쇠퇴하고 있다. 신식에 물들지 않았던 아일랜드는 1980년부터 (이차 바티칸 공의회)변혁에 동참하여, 제대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리거나 건축자재로 재활용했다. 그 가운데서도 더블린(Dublin)과 벨파스트(Belfast)에서는 전통을 지키는 무리가 형성되었다. 앞서 언급한 브라질의 캄포스(Campos) 교구에서는 5,000명 내지 10,000명의 신자들이 거리마다 행렬을 지어 소리를 외치면서, 새 주교가 본당에서 쫓아낸 사제를 도우러 뛰어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올바른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증거가 있으니, 바로 그 열매로조차 나무를 알아보는 법. 자유주의 성직자 - 루이 베이요가 말했듯이, ‘자유주의자보다 더 분파론자는 없기’ 때문이다 - 에게 핍박을 당하면서도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이루어낸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나쁜 의미로 이해되는 ‘전통주의자’라는 용어에 얽매이지 말라.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어쩌면 군더더기일지 모르겠으나, 전통주의자가 아니면 가톨릭인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저작물로써 교회가 곧 성전(聖傳)임을 자세하게 풀어 설명했다고 본다. 우리는 성전을 지키는 자들인 것이다. 저들은 또 ‘완벽주의’가 어쩌니 한다. (전통에 입각한)완전한 교리, 완전한 교리문답, 완전한 그리스도교적 도덕률, 완전한 미사성제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우리는 완전주의자다. 또 그 말뜻대로의 완전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가톨릭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대신할 주교가 없으니 내가 하는 일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들 한다. 내가 확신하지만, 그 정반대다. 그런 이유로서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겠지만, 주님은 좋으신 분이시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 신학생에게 신품성사를 베풀어 줄 주교가 세상에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것임을 안다.


  잠시 동안은 주께서 침묵하시겠지만, 때가 되면 그런 주교 중에서 한 두 명이 분발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성신께로부터 받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천주님의 것이면 친히 인도하시어 교회를 위해 쓰시리라. 우리 주께서 약속해 주시기를, 지옥의 문도 감히 교회를 처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내가 이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주장하는 이유, 내가 주장하는 뜻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은가?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진정한 이유다. 내가 죽게 되어 우리 주께서 “주교직에 있으면서 그대가 한 일이 무엇이며, 주교직과 사제직의 성총을 받으면서 그대가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나를 문초하실 때, 당신 입에서 '그대는 정녕 다른 이들을 도와 교회를 파괴시키는 데 동참했음이 틀림없도다.' 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