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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8. 교회 최악의 원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27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8. 교회 최악의 원수


르페브르 대주교는 언제나처럼 순직하고 솔직한 태도로, ‘자유주의 -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째서 천주님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어째서 천주님의 원수인 동시에 교회의 원수가 되는지를 풀어 설명해 주신다.



자유주의, 이는 말 그대로 자유주의다. 교회 내부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어서 2세기에 걸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 혁명을 좇아 혁명의 원칙에 찬성하여 교회의 원수와 결합하려 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런 타협을 거부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고해 주시기를 “무릇 나와 한가지로 아니하는 자는 나를 거스림이요”라고 하신 연고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군림을 찬성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원수를 반대하는 것인즉, 다른 방식이란 있을 수 없다. 타협하는 방식을 보면, 전자에 해당되는 집단은 우리 주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2차 바티칸이 있을 때까지 역대 교황들은 그런 생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었다.


예수 그리스도 홀로 천주님이신 동시에 왕이시다


주님은 우리 왕이신 동시에 천주님이시다. 따라서 당신께서는 사사롭게는 각 개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우리 가족 우리 마을, 그리고 우리 국가에 대해서도 대주재자로 군림하셔야 마땅하다. 하여간에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당신이 직접 우리 심판관으로 오시리라. 구름을 타고 심판하러 오시는 날, 온 인류ㅡ불교도, 회교도를 막론하고 모든 이가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지니. 사실을 보더라도 다른 잡신은 없으니, 영복경 “예수 그리스도여, 대저 너 홀로 거룩하시고 너 홀로 지극히 높으신 자시니이다(글로리아: 투 솔루스 쌍투스, 투 솔루스 알티씨무스 예수 크리스테ㅡGloria: Tu solus sanctus, Tu solus Altissimus Jesu Christe)"라는 찬미를 받으셔야 할 이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 우리를 구하시려고 당신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오기까지 하지 않으셨느냐 말이다. 하늘과 땅을 총망라하여 군림하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니, 우리가 죽으면 그분을 뵈올 것이다.


가톨릭 신자의 분열


진짜 분열, 이미 프로테스탄트로써 시작된 분열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공공연해졌다. 지식 계급 전체가 정말로 악마적인 음모로 무장한 채,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면 당신 왕국에 맞서는 동시에 우리 주님을 거슬러 들고 일어난 것도 그래서이다.


저들은 그 무엇보다도, 성당이나 성물실에서 당신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그 밖의 곳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법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우리 주님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어디서도 우리 주님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들은 다름과 같이 말한다, “그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워 불교 신자들을 거스른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 어째서 어디에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갖다 붙이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 주님에게는 어디서든지 군림하실 권한이 있으시니, 당신이 주인이신 가톨릭 국가에서는 더욱 당연하게 군림하실 권한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또 외교인들을 애써 회두케 하여, 가능한 한 방방곡곡에 주님이 군림하실 수 있게 함과 더불어 주님을 아직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당신의 신하로 삼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천당의 시민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혁명이 있고 나서부터는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 가족 및 본당 교구에서 주께 영광을 드리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밖의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이들과, 반대로 어디서든지 주님이 군림하셔야 한다고 하는 이들로 갈라져 왔다. 첫 번째 경우는 사회에서 더 이상 우리 주님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시키려는 뜻으로 믿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데,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원하는 것을 믿지 않으면 자유롭지 못한 법이다.


우리 주님이 다음과 같이 잘 말씀해 주셨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죄로 판단함을 받으리라.” 물론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를 지닌 자가 스스로 불순종하여 천주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ㄱ되면 윤리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꼴이니,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 영광을 드림과 동시에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할지니.


역대 교황들은 자유주의자들을 견책했었다


저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제멋대로 생각해도 좋다는 식으로, 자유라는 것에 찬성함으로 해서 자유주의자라고 불리어 온 자들이다. 그러나 역대 교황들은 늘 명쾌하게 단언하기를,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란 오직 하나밖에 없고 착하게 사는 자유가 그것이라고 함으로써, 그 같은 자유주의를 질타해 왔다. 사람으로서 불순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할 권한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종교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들을 회두케 하고 애써 인도하여 그들도 우리 주님, 장차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이신 참 천주께 순종하게 해야 한다.


그런 자유주의 물결은 급기야, 사제였던 라므네(Lamminais)와 같은 가톨릭인에 의해 발전되어, 교회 내부에서의 분열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비오 9세, 레오 13세, 성 비오 10세, 비오 11세 및 비오 12세와 같은 역대 교황들은 항상, 그런 자유주의자들이 인간, 가족, 그리고 국가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킨다 하여 교회 최악의 원수라고 질책한 바 있다.


우리 주님이 학교, 병원, 법정 혹은 정부에 더 이상 계시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공식 석상에서 밀려나면서부터 사방팔방으로 배교 및 무신론 천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디에서건 주님을 볼 수 없게 되자, 주님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습성이 생긴 까닭에 그런 건망증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가정에 침투해 들어왔다.


예컨대 현재 주님의 십자고상을 발견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호텔이 어디 있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십자고상이 붙어 있는 레스토랑 혹은 근사한 성모님 상본이 걸려 있는 호텔방이라곤 오스트리아에서 꼭 한 군데 볼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풍습이 끝나버린 지 이미 오래다. 전에는 십자고상이 없는 집이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에는 훌륭한 가톨릭 신자조차 그리스도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두려워하여 자기 집에 십자고상 하나 걸어두는 것마저 꺼린다. 이는 조금씩 우리 주님에게서 멀어짐에 따라 귀착되는 곳이 어디인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내부의 원수


성 비오 10세께서는 세기 초에 말씀하시기를, 교회의 원수가 이제는 외부에만 있지 않고  내부에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 주님의 공식적인 군림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신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으니, 성 비오 10세는 주님을 거부하고 배교함으로써 현대 세계에 순응하려 했던 신학교의 현대주의자 교수들이 악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신학생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된 다음에 악한 교리를 퍼뜨리는 식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원한 바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 꼭 성 비오 10세께서 우려하시던 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과연 성 비오 10세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나 할까. 주교들은 성 비오 10세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현대식 관념을 신학교 내부에 그리고는 성직자 안에, 급기야는 모든 곳에 살그머니 도입시켰다. 저들은 자유라는 미명하에 우리 주님에 대해 거론하는 것조차 중단했다. 이것이 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1926년, 60년도 더 전에 나는, 세속주의에 호의적인 사제들을 질타하면서 싸웠던 비오 11세가 재위하던 시기에 로마의 신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 해에 로마에서는 두 가지 소책자, 루셀(Roussel) 신부가 쓴 『자유주의와 가톨릭시즘』 및 필리페(Philippe) 신부가 쓴 『만국의 왕, 그리스도』가 원인이 되어 발화된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공개 토론회가 1주일 동안 있었다.


다음은 그 중 첫 번째 책에서 발췌한 머리말이다. “우리는, 천주 성자이면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위에, 크고 작은 국가 위에 그리고 사회 전체의 질서 위에 군림하시기를 원하는 즉, 이번 주에 우리를 서로 일치케 하는 위대한 사상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상은 1926년의 일이었으니 타당 그 자체인즉,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군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군림에는 교활성, 고집, 그리고 영향에 있어서 현대의 자유주의보다 더 가공할 상대가 없다고 했다.


원수를 지적했는데, 그 원수란 다름 아닌 사상의 자유를 원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각자에게는 자기 사상에 대한 권리가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인정해 주고 나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 보이는 일을 함으로써 이웃을 거스를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고들 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어느 누구에게도 주님에 대관절 말할 권한이 없다고 할 것은 불을 보든 훤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 닥치는 경우, 전교자가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더 이상 거론할 수 없다면, 전교자가 있을 필요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가당치도 않은즉, 95%가 가톨릭 신자인 국가에서도 5%가 프로테스탄트, 유데아인, 불교도, 혹은 회교도라는 이유로 주님에 대해 거론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식이다. 가톨릭 학교에 유데아인 한 명, 하나 혹은 두 명의 회교도 아니면 프로테스탄트가 있다 하여 십자고상을 내려버리고, 더 이상 우리 주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급우 앞에서는 기도도 하지 않는데, 바로 비가톨릭인들을 당황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결국 겨우 둘 혹은 세 명만 주님을 찬성하지 않아도 주님이 존재하실 권한이 없다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유주의의 근원, 자유주의의 주요한 표시는 무엇이며, 그것이 논리적으로 발전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어떻게 제한하고 반박해야 할까?


루셀 신부의 책이 다루는 의문들, 즉 현대의 오류들에 관하여 현재의 것까지 훑어 볼 수 있게 하려고 모든 신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에서, 답이 들어 있는 용어는 다음의 것들이다. 교황들의 경고 있었음에도, 주교 및 사제들이 전혀 듣지 않는 바람에 자유주의 - 속인주의, 세속화 및 우리주님께 대하여 공식적으로 복종하지 않음 등 - 가 널리 퍼지고 말았다.


로마에서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저 공개 토론회가 있었을 적에 편집된 두 번째 소책자는 구세주 회원인 필리페 신부의 의한 「만국의 왕, 그리스도」라는 표제로 알려진 사회 질서에 있어서 천주님의 권리에 관한 가톨리시즘이다. 다음이 서언의 일부다.


“1926년 초에 로마교황 연맹에 의해 편성된 가톨릭 주간에 즈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라는 사실 및 본질을 드러내는 교리문답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털어 놓았다. 이 책자로써 대중에게 장차 전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 바로 그런 소망에 부응하는 것이다. 혹자는 오로지 양심의 빛만을 따른다는 구실로 자유로운 성향을 충족시켜야 한답시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습관을 키웠다. 그럼으로써 진리의 권리가 짓밟히고 만다. 우리 교리문답은 신앙의 행위, 위대하신 권위로 말미암는 천주님 및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의 행위를 요구한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인간, 사회, 국가끼리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서 천주님 및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해 있음을 알아야 할지니. 따라서 다들 부복하여 천주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관점과 같은 관점으로 다른 이의 영혼과 한 마음으로 신경(크레도-Credo)을 반복하여 되뇌어야 한다. 천주님이 우리 일에 강복해 주셨음으로 해서 6개월이 채 못됐는데도 1차 편집본을 발행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그것을 평가한 데 대해 감사드리는 바이다.”


프리메이슨 조합


1926년에 벌써 사제들은, 침범하고 있는 배교에 맞서 싸움과 동시에 우리 주님을 굳게 지키고자 하여 모든 단체의 세속화 및 속인화에 저항하는 상태였다. 레오 13세는 회칙 후마눔 제누스(Humanum Genus)에서 기술하기를, 프리메이슨의 목표는 특히 단체의 탈(脫)그리스도화인즉, 모든 곳에서 우리 주님을 쫓아내려 한다고 했다. 역대 교황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것이 발전하여 드디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모두 완성되었다.


공의회의 준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역시 교회 내적인 분열이 있었다. 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누구도 주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한편으로 모든 종교 및 사고 체계의 자유를 원했던 자유주의자들은 공의회를 준비하던 시초부터 바로 추기경들과 자신들 사이에 반대파를 만들어 놓았다.


교황은 공의회를 열기에 앞서 ‘공의회를 위한 중앙 준비 위원회’라는 위원회를 설립했으니, 나도 그 구성원 중 하나였다. 준비 위원회는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열렸으며 70명의 추기경, 20명의 대주교 및 주교로 구성되어 있었고 거기서 나는 프랑스어권 서부 아프리카의 대주교 및 주교총회의 의장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틈틈이 교황 요한 23세가 우리 회합을 관장하러 왔다.


이제, 그곳이 전쟁터와 같았음을 말해야겠다.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자유주의자인가 아니면 자유주의를 견책한 역대 교황들과 일치하는 참된 가톨릭인들인가? 한편, 전자는 교회가 자유, 사회에 대해 중립을 지킴에 따라 공식 생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을 공공연하게 발표하기를 원했다. 다른 편에서는 확연하게 그에 반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가톨릭인들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 회교도, 불교도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들에게 충격을 주지 말아야 한답시고 가톨릭 정부를 확보할 권한을 거부당할 것이다? 게다가 그 여타의 종교인들에게 잘못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공식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그들과 똑같이 할 것인가?


예를 들어, 프로테스탄트 정부는 공식적으로 프로테스탄트다. 보(Vaud) 주(州) 종교임을 자기네 헌법에 명시했다. 이는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덴마크에서도 마찬가지 인즉, 거기서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가 정부에 의해 인정되는 오직 하나의 종교라고 공식 발표한다.


가톨릭 정부에 대한 억압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우리 가톨릭 정부를 확보할 권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발레(Valais) 주는 90%가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지금 로마에서 사안을 주도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공의회에서 승리하자, 베르네(Berne)의 눈치오(Nuncio)가 중재하여 아담(Adam) 주교(나의 절친한 친구로서 아주 잘 알고 있던)에게 요청하기를, 발레의 가톨릭 정부에 종지부를 찍으라고 했다. 발레 헌법은 이미, 가톨릭이야말로 정부에 의해 인정된 오직 하나의 종교라고 선언한 상태로 간단히 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레의 왕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에 완전히 호의적인 아담 주교, 한마디로 공의회가 열리는 동안에 우리 주님의 사회적 왕권을 지키고자 하여 열심히 싸웠던 그는, 발레 정부가 헌법을 바꿔서 공식적으로 중립이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신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내가 그것에 대해 물은즉, 눈치오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함에 따라 베르네로 그를 찾아갔더니 그는 자기가 그렇게 요청하는 서한을 자세하게 썼노라고 확인해 주었다. “당신은 발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군림하시지 못하게 요청한 것이 부끄럽지도 않나요?” “오, 그렇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주셔야 합니다. 더 이상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걸요.” “그렇다면 당신은 보드주나 덴마크의 프로테스탄트들더러 프로테스탄트티즘을 공식 종교로 인정하기를 그만 두라고 요청할 셈이란 말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가톨릭 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국가가 단 1개국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인가요?” “아,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비오 11세께서 상기시키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부 및 국가 위에 군림하셔야 한다고 한, 저위대한 회칙 쿠아스 프리마스(Quas Primas)는 어떻게 하고요?” “오, 교황은 이제 그렇게 쓰지 않을 것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그렇게 쓰지 않을 거라고 치자! 그 회칙은 1925년에 모든 주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왕권에 관한 교리를 상기시키려고 쓴 것인데, 지금은 주교들이 그와 정반대로 하는 모양이라니!


게다가 불행하게도 되어 가는 것이 그 모양인 것으로 미루어 발레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제는 가톨릭 정부가 아니다. 거기서 교회는 발레에서 조직할 권리가 있는 여느 타종교처럼, 여타의 사사로운 모임에 해당되는 권한만 있으면 감지덕지한다는 식이 되고 말았다.


자유주의자들의 대변자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을까? 언젠가 오타비아니(Ottaviani) 추기경과 베아(Bea) 추기경이 매우 귀중한 두 기획물을 가져 왔었다. 그 두 가지 기획물이란 교회의 두 가지 요새, 하나는 프랑스 혁명, 다른 하나는 가톨릭의 성전(聖傳)을 상징한다. 전자는 자유주의자인 베아 추기경에 의한 것이었고, 후자는 위원회의 장관인 오타비아니 추기경에 의한 것이었다.


문서에서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 말했으니 말하자면, 가톨릭 국가 안에 다른 종교들이 있는 경우, 죄나 혹은 오류를 몽땅 없애지는 못하는 일이므로 그냥 참아 견디는 것과 같이 다른 종교를 참기는 할망정, 저들에게도 성 교회에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봐 준다고 해서, 그것이 악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자신의 문서, 교회가 항상 가르쳐 온 교리를 다시 채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문서를 공의회를 위한 중앙 준비위원회에 제출할 때가 오자, 베아 추기경은 자기가 그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두 추기경이 서로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시실리 출신의 루피니(Ruffini) 추기경이 나서서 그 자그마한 스캔들을 중지시키려 했다. 그는 상급 권위자, 말하자면 그 특별한날에 개회를 관장하지 않았던 교황으로 하여금 그 위문을 조회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베아 추기경은 “아니되오, 나는 투표로써 누가 내 의견에 찬성하는지 그리고 누가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생각에 찬성하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투표를 진행시켰다. 70명의 추기경, 주교,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네 명의 수도회 장상들이 약 반반씩 나뉘었다. 실제로 라틴계 출신,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그리고 남아메리카계의 추기경들은 오타비아니 추기경을 찬성했다. 그 밖에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추기경들은 베아 추기경의 편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교회 교리의 기본이 되는 주제,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하여 분열된 교회 앞에 있음을 발견한 셈이었다. 이제 마지막 개회가 남았다. 우리는 벌써 70명의 추기경중 반 정도가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종교적 관용에 호의적이고 나머지 반 정도가 프랑스 혁명 및 인권 선언에 의존하는 베아 추기경의 종교의 자유에 호의적인 상황이니 공의회가 어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어쨌든 공의회에서 그런 전쟁도 치렀고, 자유주의자들이 그날을 변경시켰다는 것은 누군가라도 두말없이 인정할 것이다. 얼마나 스캔들인가! 가톨릭 정통보다도 프랑스 혁명의 계통을 더 따르는 그 새로운 종교, 모든 종교를 똑같은 발판 위에 두는 그 유명한 에큐메니즘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래서이다. 이제 여러분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의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흘러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가운데서도 격렬한 반대가 몇 번 있었음에도, 교황이 실제로는 자유의 편을 듦에 따라 자유주의자들이 로마에서 입지를 굳힌 까닭에 아직까지도 점령하고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시고드(Sigaud) 대주교, 데 카스트로 마이어(de Castro Mayer) 주교 및 공의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더불어 나는 자유편을 드는 파벌과 항상 반대였다.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이 폐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주님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군림하셔야 한다는 원칙 위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는가. “네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또한 이루어지이다.” 그렇다, 우리 주님의 뜻이 우리 가족에서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이루어지이다! 그런데도 우리 당국이 1926년에 교회 최악의 원수로 규정한 바 있는 바로 그 자유주의가 지금 로마에서 군림하고 있으니, 교회의 붕괴를 돕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파괴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가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의 모든 교황들에 일치함에 반하여, 베아 추기경의 문서를 보면 역대 교황들에 대한 언급이 혹시 있나하고 찾아볼진대 눈곱만큼도 없다. 그의 문서는 늘 새 것이라 해서 질책 당한 상태였으므로 교황의 말이라면 인용하려 해봤자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소책자에는 교황들, 공의회들, 교회의 전체 교리에 대하여 언급한 본문에 할당된 페이지보다 참고문헌에 할당된 페이지가 더 많았다. 종교적 관용은 전통과 더불어 아직 진행 중이다.


교회의 신앙은 항상 진리를 강론하는 것인 까닭에 그리고 다른 것이란 도무지 강론할 수 없음으로 해서 오류를 참아 견디는 한편으로, 전교 사업에 몰두하여 오류를 정복함과 동시에 영혼들에게 진리를 회복시켜 주려고 교회는 분투하고 노력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인간에게는 진리를 취하건 오류를 취하건 그 권리가 대등하게 있다거나, 가톨릭 신자가 도리 권리와 불교 신자가 도리 권리가 동시에 있다고도 하지 않았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가톨릭 종교는 더 이상 오직 하나인 참된 종교가 아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본질을 깨뜨리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인즉, 우리는 공의회에서 그런 전투를 치르며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다.


중립의 결과


가톨릭교회가 오직 하나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예컨대 발레의 경우와 같이, 그로 인한 결과가 중차대하다. 전에는 종교가 정부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종교에 복종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정부가 종교의 주인으로 자리 매김을 한 상태다. 전에는 가톨릭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오직 하나의 종교라고 확언하여 우리 주님이 군림하시게 하였으므로, 정부는 무엇이건 자기 좋을 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중립이 된 바람에 특정 종파가 취임하지 못하게 정부가 방해하여 발레의 경우처럼 되도록 작용하고 있어서, 종교란 그저 주인과 같이 지배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정부에 속한 사사로운 모임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필경에는 불교 사원이나 회교 사원을 세울 허가를 받을 게 뻔하다.


정부가 가톨릭이었을 때는 그런 다른 종교를 위해 공식적인 사원을 세우겠다고 하면 못하게 했었다. 사사로이 실천하는 것은 그냥 참아 주었지만, 그리스도인을 그릇된 종교로 이끄는 저들 사원을 허용하는 스캔들을 피했던 것이다. 시민의 신앙을 보호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른 종교의 도덕률은 교회의 도덕률과는 반대이므로, 필연적으로 다음의 부도덕성ㅡ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 이혼 및 그리스도인의 혼배를 거슬러 행동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티즘, 불교 신앙… 등 이런 것들은 부도덕한 종교인즉, 그들의 부도덕성이 결국에는 가톨릭 신자 사이에도 침투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가톨릭 국가가 그것들을 금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콜롬비아, 브라질, 칠레, 기타 등등과 같이 가톨릭교회만을 인정하던 모든 국가에서 이제는 로마가 나서서 주선해 주는 까닭에 모든 종교를 위한 자유를 허락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북미의 상당한 자금 원조를 받는 정당의 침범이었다. 원래 가톨릭 국가는 그런 정당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여 자기 시민의 신앙을 보호했었다. 그러다가 정부의 종교가 없게 되자, 교회가 먼저 나서서 모든 종교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고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교 자신이 남아메리카에 가서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발표하게 됐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침입들 - 통일원리 운동, 예수 재림론자, 여호와의 증인 - 을 겪고 있다.


혹자는 1968년 이후, 그러니까 공의회를 따르는 정당으로 전향한 남아메리카의 6천만 가톨릭 신자들 중 신앙이 달라진 이들, 4천만에 대해 말한다! 베아 추기경의 입장으로 말미암은 끔찍한 결과, 수백만 명이 가톨릭 신자가 되는 동시에 수백만 명이 배교하는 것을 보라. 게다가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점점 더 회교, 다른 종파 혹은 프리메이슨의 롯찌로 전향하는 것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이 어디서든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것은 전반적인 배교로, 우리가 저항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인데도 로마 당국은 우리더러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내가 로마에 있는 저들과 논의하던 당시 저들은 나더러 베아 추기경처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못합니다, 나의 신앙은 역대 교황에 충실한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그것이지, 항상 질책 당한 그런 새로운 교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반대편의 뜻, 그것이 우리가 저들과 함께 일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들이 프로테스탄티즘에 융합되어서 경배, 성사, 교리문답, 기타 등등…을 변화시킨 결과 중의 하나가 미사인데, 그 무엇보다도 미사에 관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입장의 근거


진정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다. 성 바오로께서 “오포르텟 일룸 레그나레(Oportetillum regnare)ㅡ우리 주께서 다스릴지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저들은 ‘아니다’라고 하고 우리는 역대 교황들의 편에 서서 ‘맞다’라고 한다. 우리 주님은 일찍이 역대 교황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으니, 가정 안에 감추인 채로 계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전교자들, 그토록 많은 이가 대량으로 학살당한 것이 무엇 때문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이신 참 천주님이시라고 강론하고 설파하여 외교인들도 회두했으면 하고 소망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자, 그들은 치명자들이 사라지기를 원했지만, 그분들은 자기 목숨을 내놓으시면서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강론하는 일을 계속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