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르페브르

Home > 마르셀 르페브르 > 라이브러리

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9. 천주님 부재에 직면하여(1949.02.02-다카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5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9. 천주님 부재(不在)에 직면하여(1949.02.02-다카르)


 헝가리, 루마니아, 시베리아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사건에 직면하고 보니, 저러한 근본 원인은 천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대한 불경과 증오가 있기 때문이니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심히 낙담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말과 행동으로 천주님을 따르고 헌신을 보여주며 저들의 친구를 따른 모든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대량학살 당하고 국외추방 된다는 소식이 날이면 날마다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민첸티 추기경(Cardinal Mindszenty)의 투옥, 그분이 감당해야했던 재판과 포학한 대우, 그리고 재판의 평결, 특히 수천 명에 대한 끔찍한 사례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며 공개적으로 보호된 문명에 대한 고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품격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인간성을 거스르는 저러한 죄악에 직면하게 될 때 냉담한 채 남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Prophet Isaias)를 통하여 천주님은 우리에게 이르시길, “이런 것이 내가 좋아하는 재계(齋戒)이며, 사람이 제 넋을 괴롭히는 날이뇨. 제 머리를 갈대처럼 꾸부리고, 부대(삼베옷)와 재를 깔고 눕는 것을, 이것을 네가 재계라. 또 야훼께서 은총을 베푸시는 날이라 부르느뇨. 주님 야훼의 계시 말씀이로다. 내가 좋아하는 재계는 불의하게 졸라맨 포승을 끄름, 멍에의 매듭을 풀음, 또 압제받는 자들을 자유의 몸으로 내보냄과 모든 멍에를 네가 벗겨내 버림 이것이 아니뇨. 굶주린 자에게 너희 빵을 나눠줌과 너의 골육지친을 못 본채하지 않음 이것이 아니뇨.”(이사야 58:5-7)


 만약 우리가 이웃의 고통을 멀리하고,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에게 이웃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 부족한 것 아닙니까? 이러한 악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을 할 수 있는가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나에게 있어서 모든 성직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헝가리 교회에서 부닥친 이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교황 성하게 우리의 슬픔을 알려드렸고, 그분께 우리의 충심과 존경어린 애정을 확인시켜드리며 그리고 이러한 슬픔을 온 교회와 교회 존경하는 지도자들에게 전하는 바입니다.


 천주께 대한 불경스런 증오의 폭발에 직면하여 그리고 인간 속의 지극히 신성한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을 마주 하면서 과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반드시 치열하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천주님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해 복수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보속의 생활로써 천주 부재(不在)라는 죄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에서 가정생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세우도록 온 힘을 바쳐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런 유사한 재앙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더럽혀진 천주님의 명예를 복수함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사제들을 위하여, 여러분의 관심에 위탁된 신자들을 위하여 한 가지가 모든 것 위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천신들이 두려움으로 경외했던 천주님의 성명(聖名)을 수호하기 위해 열정에 있어서 자기 이웃을 능가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천신 미카엘의 기준보다 더 높이 올라가서 “누가 천주와 같은 자 있는가?‘ 라 외치며 전쟁의 깃발을 올려야 하고 천주님의 성명(聖名)을 주창(主唱)하고 사랑하며, 이를 전하려는 강력하고도 확고한 결심으로 천주님의 존엄을 모욕하는 이들과 싸워야합니다.


 여러분의 흠숭으로 인하여 천주께 찬미를 돌려드리십시오. 왜냐하면 흠숭은 인간이 최고로 존엄하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종교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흠숭이 단지 외적인 행위이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 모든 가정, 모든 사회가 이러한 방법으로 창조주를 경외해야 하는 간단한 정의입니다. 그러나 흠숭행위를 외적인 행동으로 기꺼이 수행하려는 우리들은 내적인 경배 행위로 이를 추가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때가 오고 또 지금 당하였으매, 이에 참으로 흠숭하는 자들이 영신과 진리로써 성부를 흠숭하리니, 대저 성부 이렇게 흠숭하는 자들을 원하심이요, 천주는 신이시니, 천주를 흠숭하는 자도 마땅히 영신과 진리로써 흠숭할지니라.”(요왕4;23-24)라고 하셨습니다.


 더욱 적절하게 헌신이라 부른 이 내적인 경배는 지속적인 기도 상태에서 우리 영혼을 지키고, 성 토마스는 이것을 “모든 선의 저자이신 천주님 앞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천주님 앞에서의 복종의 자세“ 라 부릅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생활이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존재, 그리고 드리는 생활, 활동과 직업 모두를 천주께 드리는 깊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합니다.”오 천주성신이여, 그 얼마나 선하시고 감미로운지, 오주여 모든 사물에 계신 분이시여!“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께 실제적 형편에서 교회를 방문하고 당분간 그곳에서 기회를 가져보라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비입니다. 성인다운 메르치에르 추기경(Cardinal Mercier)은 항상 말씀하시길, 매일 5분간 성신의 가호를 위해 신실함과 신뢰로서 기도하고, 그리고 성신의 은총으로 채워지길 원하는 사람 누구든지 실제적으로 구령을 확신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묵상과 침묵의 오아시스 안에서, 복된 성사 앞에서 우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기도를 하는 것이 그 얼마나 쉬운 것인가요?


기도하고 찬양하며 보속을 행하라


 이번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금요일이 다시 시작되면서 교황성하께서는 우리에게 1년간 소재(금육禁肉)를 요청하셨습니다. 신앙의 정신으로 이 가벼운 보속을 받아드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여분이 있다면 자선행위도 하고 희생을 바치도록 합시다. 평화가 상대적이긴 해도 이러한 평화 가운데 어떠한 번성이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실제보다 더 뚜렷한 이 번영은 즐거움과 기쁨을 쉽게 접하게 되고, 슬프게도 열정의 만족감이 옵니다. 거기서부터 천주님을 잊어버리는, 그리고 천주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데에는 오직 쉽게 취하는 짧은 단계가 있습니다. 덕행과 자선의 손에 있는 물질적 부는 커다란 공로의 원천이지만, 감각의 노예가 된 영혼은 이러한 부로 인하여 음란과 방탕하고 영적인 암흑으로 이끌립니다. 이 세상 우리 주변에서 이 모든 증거와 이 파괴적인 권고를 따르는 이들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참회와 보속의 시절에, 모든 축제와 사회적 모임에서 절제와 신중함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합시다. 성 베드로는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있을지어다. 대저 이는 너희의 원수 마귀가 마치 포효하는 사지와 같이 잡아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님이니라.”(베르로 전5:8) 절제는 다른 덕행을 얻기 위한 선행조건이며, 이 덕행을 무시하는 것은 세속적인 재물에 애착을, 그리고 천주에 관한 마음의 인식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보속을 행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즐거움을 맛보도록 준비시키니, 이는 천주께서 이 보속의 날을 부활의 축제에 이끌어냄으로써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들어야 할 사순절 강론에서 유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속함으로써 천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지극히 혐오감을 보이는, 신을 믿지 아니하고 독성죄를 짓는 이들에게 천주님의 자비를 불러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왕권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주님의 사랑을 끌어드리면서 기도와 보속을 하기 위해서는, 세속사회와 가정에서 주님의 왕권을 세우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추가해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을 보고, 그러한 질병이 어느 특정한 국가에 널리 퍼져있는 있음을 아는 상식적이고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러한 재앙의 원천이 천주님에 대한 무지와 공식적인 부인에 있고, 심지어 흔히 가정에 조차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교황성하께서 최근에 오직 이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일단 천주께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 천주님에 관한 일에 있어서 멸시가 있고, 영성의 고결함이 벗겨진 사람은 덕행, 애덕, 망덕 그리고 내적 삶에서 보여준 모든 아름다움을 억압하고, 심지어 이를 파괴시키는 물질의 노예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그 어느 세속 사회도 천주님을 추방함으로써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신성한 원리는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그리고 유익한 법령으로 사람의 행동을 규제할 때, 덕행을 향한 질서 잡힌 관습에서 이 관습들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홀로 시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정당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로마의 가장 위대한 웅변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 교황 성하, 도시를 방어하는 방책을 쌓는 것보다는 종교(신앙)의 힘을 강화하여서 도시를 확실히 방어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 종교가 언급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과 (가톨릭)교리일 경우, 이것은 무한한 진실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정부의 고삐를 쥐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러면 이러한 진리를 인식하고 교회는 모든 곳에서 교회가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고, 그리하여 모든 장애에서 벗어난 자유를 교회는 교리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도록,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교육과 덕행을 형성하게 하고, 가정의 신성한 가치를 재 확신하며, 교회의 영향력이 모든 인간 생활을 관통할 수 있게 합시다.


 세속사회는 이 유익한 과정에서 오는 두려움을 전혀 가지지 않을 것이고, 그와 반면에, 커다란 유익을 거둘 것이니, 왜냐하면 정의와 평등으로 지배되는 사회적 관계와, 필요함에 있어서 부족한 여건이 개선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요구됨을 맞추기 위해 수정되고, 형제애적인 사랑 안에서 최종적으로 불일치가 조용해지고 영적인 평화를 누리며, 보다 나은 시대가 모든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쁘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열정적 소망이며, 우리의 열렬한 기도의 목표입니다.


 교황 성하의 뜻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뜨거운 소망이 되어야 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진지하게 찾아야 하며, 주님의 왕국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이를 확신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와 가정이 위대해지도록 헌신하고, 그러함에 따라 민족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모든 종교를 억압해서 일어나는 소름끼치는 악의 위험이 줄어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께 기도하라고 간청합니다. 가족으로서 자녀와 함께 기도하시고, 교회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규칙적으로 기도하세요. 보속의 생활을 하도록 탄원합니다. 그리고 천주님의 왕국이 도래하도록 여러분의 열정에 의지합니다. 천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빕니다.


 비록 무신론과 천주께 대한 증오가 우리 세기(世紀)를 더럽히는 괴악스런 죄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끔찍한 징벌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새로운 계약의 성작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혈은 정결의 샘이며, 이러한 역겨운 죄악을 씻어버리고 죄에 대한 용서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를 없애 버리고 교회에 멋진 승리를 준비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묵상하면서, 금년 수난 주일에 여러분과 모든 사제들이 두 번째 미사, 죄의 용서를 청하는 봉헌미사를 드리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됨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시의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몸(교회)인 성직자들과 묶어주는 결속이 되기에, 신자들은 항상 교회와 함께 항상 슬픔과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러분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중 많은 이가 가능한 한 제대(祭臺)에 모이도록 합시다. 그들이 대의(大義)의 중요성과 엄중함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그들을 불러내어 저들의 기도와 탄원을 크나큰 충정으로 천주께 드리도록 합시다.


우리가 부탁하고자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크나큰 충정으로 하시리라는 것을, 그리고 천주께 기도와 탄원을 드림으로 모든 불행이 바뀌고, 천국의 자비가 오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되어 평화를 찾는 모든 이의 소망을 기쁘게 충족하리라 의심하지 않는 바입니다.


(역자 주: 이 강론에서 언급되는 교황성하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인 비오 12세를 의미합니다)


http://www.sspxasia.com/Documents/Archbishop-Lefebvre/Confronting_Godlessnes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