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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15. 미사의 희생제사와 그리스도의 사제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30




 미사의 희생제사와 그리스도의 사제직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의 모국어로 말할 수 없음이 유감스럽습니다만, 그러나 여러분은 저와 함께 있는 이곳 신학생 통역가가 있고 그 통역자는 저를 위해 통역을 잘해주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슈타인하르트 (Dr. Steinhart) 박사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분은 이 순례를 조직하는데 친절한 많은 도움을 주셨고, 아울러 저를 따뜻하게 받아주신 존경하는 신부님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행복했어야 했지만, 천주께서는 우리가 복된 성사 안에서 천주님을 경배하도록 우리의 이 작은 희생을 요청하셨습니다. 우리가 온 마음과 모든 영신과 온 힘을 다하여 천주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요청해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의 마음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이 있다한다면, 그것은 바로 천주께 대한 경배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이 시간, 경배의 이 시간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사랑하고 호주의 심장인 순례의 이 장소(Mariazell, 호주 국립 성지)에서,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의 모든 적,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약속한 이 신앙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찢고자 원하는 그 적을 반대하신, 신앙의 모범이요, 가톨릭신자와 함께 생활하신 탁월하신 민첸티 추기경 (Cardinal Mindszenty)께서 최근에 묻힌 순례의 이 장소에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민첸티 추기경의 중재를 통하여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청원해야 하니, 우리 마음과 영혼 안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달라고, 가톨릭교회의 신경 (信經)과 가톨릭 사제직에 우리가 더 애착하는 사람들 속에 진정으로 남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제1로, 특히 영원한 사제의 모친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멜기세덱의 사제직을 따라 영원하신 사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 생애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제헌하는, 십자가를 제헌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도다. Consummatum est.” 내가 나의 일을 다 했도다. 나는 내 소망을 알았으니,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그 목적을 수행했도다. 즉, 세상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천주께 내 희생을 드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 외엔 다른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모님 마음에는 예수 이름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외엔 다른 이름이 쓰인 것이 없습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모든 곳에서 주님을 동반합니다. 심지어 십자가 희생에서도 계십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 위 희생에서, 갈보리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보다 더 큰 소망이  없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면 성모님은 그곳에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사랑하는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이것이 항상,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역시 우리도 우리 주님의 희생 안에서, 우리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에 일치시키고 참여하려는 이 소망을 가져야 하니,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주님과 함께 희생제물로서, 주님의 희생 안에서 우리 자신을 주님과 일치하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가톨릭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다가가도록 하시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수난, 공동구속자이신 성모님은 우리 각자를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든 피조물을 초청하여 당신의 손으로 우리를 잡고 갈보리로 인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우리가 참여하게 하시는 분은 성모님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성모님은 우리 죄의 구속을 위해 우리가 당신의 아들 천주성자의 공로 안에 참여하게 하시나요? 사제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희생에 참여하길 바라고, 우리가 그분의 공로를 받고, 사제들에 의해 지속되는 주님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 영혼이 죄에서 씻길 원하십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떼에,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Hoc facite in meam commemorationem” 즉, 식사를 반복하여 나의 희생을 기념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 이르시길, "Facite"- 이 희생을 거행하라 하셨습니다. 이 희생을 다시 생성하라 하라, 나의 희생을 계속 재현하라 하셨습니다. "Hoc facite in meam commemorationem.“
 

이것이 항상 가르쳐온 가톨릭 교리와 개신교 교리 사이의 전체적인 차이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Hoc facite"-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를 알고자 하질 않고 오직 "나를 기념하라 - in meam commemorationem." 이렇게만 말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계속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종도들과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가르치시니, 우리는 반드시 미사의 거룩한 희생을 제헌하기 위해 사제와 함께 제대(祭臺)로 가야하고, 또한 사제의 입으로 인해 우리 주께서 진정으로 제대에 오심을, 희생제물로서 성체 안에 실제현존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Hoc facite." 말씀하신 것은 종도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의 성체 안에 있는 심오한 믿음을 갖도록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요청해야 합니다.


교회는 제대의 희생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건설된 아름다운 교회들을 보세요. 얼마 전에 존경하올 애봇 (Abbot) 신부님이 제게 말씀하시길, 이 교회 또는 본래 교회는 19세기 초기에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세대들이 마리아젤 교회 (Church of Mariazell) 로 와서 기도하고 사제가 드리는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제헌했던가요! 제대는 교회의 생명이요, 미사의 거룩한 희생이 이루어지는 곳이 제대입니다.


우리는 행동에 있어서 심오한 신앙을 가져야 하니, 이 신앙은 사제의 입으로 인해 제대 위에서 일어납니다. 사제가 축성경을 염할 때, 십자가 위에 계신 것처럼 우리 주님은 당신의 희생 제사를 제헌하기 위해 제대 위로 돌아오시는데, 이는 우리의 죄를 사(赦)하기 위하여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사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고, 이것이 종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대의 희생이 진정한 희생이며, 십자가의 희생은 피 흘림이 있는 희생이며 미사의 희생은 피 흘림이 없는 희생이기 때문에 제대의 희생과 십자가의 희생과 오직 이 점에서만 다르다는 것을 교리문답 때에 배웠습니다. 이 점이 십자가의 희생과 제대의 희생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희생을 존경합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모든 곳이 이 제대 위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작은 제대 위에, 미사희생이라는 이 엄청난 현실에 모여져 있습니다. 그곳에 희생이 있다면, 희생제물 또한 그곳에 있습니다. 희생제물이 없다면 희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친히 희생 하는 가운데 제헌하시기 때문에 그곳에 계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미사의 희생제사가 단지 기념하는 식사, 최후의 만찬 때에 우리 주님이 행하시는 것을 단지 기억하는 것이다 말하지 맙시다. 이 모든 것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고, 우리 주님께서 행한 것과는 반대되며,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사제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사제란 기념의 식사를 주관하는 회장(會長)이 아닙니다. 사제는 식사 테이블에서 주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는 희생 제사를 거행하는 사람입니다. 현존하시는, 진정으로 제대 위에 계시는, 제대의 희생 제물 위에 내려오시도록 원인을 일으키는 자가 사제입니다. 그래서 사제의 위엄, 희생제물을 제헌할 특성이 필요한 사제, 항상 (영원히) 이 희생제물을 제헌하도록 영혼 안에 표시될 필요가 있는 사제의 위엄을 봅니다. 사제는 반드시 동정을 지켜야 하며 독신을 준수해야 하니, 왜냐하면 사제에게는 이런 점이 특이한 일, 천주님을 천국에서 이 지상으로 내려오시게 하시는, 사제의 말로, 사제의 입술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내려오시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왜 사제가 동정이어야 하며 왜 결혼해서는 안 되고, 왜 동정 마리아처럼 동정을 지켜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독신이어야 하니, 종도직의 염려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서가 아닙니다.


미사성제의 전체적 장엄함은 미사가 갈보리 희생제사와 같은 진정한 희생이라는 바로 그 사실로부터 분명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 선조들이 항상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교회가 믿고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의 극히 적은 것으로 인해 이 신앙으로부터 변화 줄 수 없습니다. 만약 변화를 준다면, 만약 그 신앙의 표현을 바꾸면, 만약에 우리가 성체를 나눠주는 중이다, 성체식사를 하는 중이다. 우리는 식사를 하는 중이다 말한다면 우리는 개신교인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전체적인 현실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진리를 내려놓고 있습니다. 만약 미사의 희생제사가 없다면 더 이상 가톨릭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희생 제사를 제헌하기 위한 특성을 지닌 사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톨릭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건축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체식사가 아닙니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이니, 이 신앙으로 인하여 우리 주님의 희생 제사를 위해, 희생제사가 제대 위에서 계속 지속되게끔, 우리가 영성체에 참여하는 가운데,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리는 가운데 천주님의 희생제물의 현존이 지속되도록, 이러한 훌륭한 바실리카 성당들이 세계 전역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미사희생제사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사제직의 실체입니다.


이는 또한 사제직 덕분에 신자들이 희생제가 제헌되는 곳인 천주 제대에 대해 크나 큰 존경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이 참으로, 실제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현존하시는 곳인 성체께 대한 이러한 큰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존경심을 가져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득한 존경심만을 가지고 성체를 경배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세월동안 교회의 관습은 성체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어왔습니다. 거룩한 성체를 받기위해서는 바닥에 부복 (仆伏) 해야지 서서 성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과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합니까? 천국의 구름을 타고 우리를 심판하러 오실 분은 바로 그분 아닌가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웅장함과 장엄함 앞에서 두려움과 경탄의 마음으로 땅 바닥에 엎드린 타보 산 (Thabor)의 종도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심의 결핍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커다란 부끄러움이 아닐까요? 이러한 경배의 정신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을 위해, 우리 죄로 인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분에 대한 심오한 존경심의 정신으로 우리 마음과 영혼 안에서 마음가짐을 다지도록 합시다.


공의회가 끝난 이후인 10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관찰해야 하고, 우리 눈을 감을 수가 없고, 우리 시대의 슬픈 현실에 대해 눈을 감을 수가 없으니.... 사제들 스스로가 사제직에 대한 저들의 신앙을 상실했을 때, 미사의 희생제사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제가 사제직을 버렸을 때 신학교는 텅 빕니다. 왜? 왜 더 이상의 성소 (聖召)가 없나요? 그것은 사람들이 미사의 희생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제직을 정의(定義) 할 수 없습니다. 미사의 희생제사가 잘 정의될 때, 알려지게 될 때, 교회가 항상 가르쳐왔던 것이 받아드려질 때, 성소의 수는 많아집니다.


내 신학교에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만을 재확인한 것 외엔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이 진리는 교회가 항상 확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젊은이들이 제대와 미사의 희생제에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우리 주님의 관리자로서 제대위로 올라가고, 우리 주님께서 제헌하신 희생제물을 바치기 위해 제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이 얼마나 특별한 은총입니까? 이보다 더 아름답고 이 지상에서 이보다 더 멋진 것은 없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제대 위에 올라가며, 세상을 떠나 제대위에 올라가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소가 나갈 이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점이 신학교가 텅 비고 있는 이유입니다. 신앙에 대한 진정한 관념으로 돌아와야 하니, 그래야 성소가 있게 됩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이러한 신앙의 관념을 포기한다면, (바티칸공의회 이후) 지난 수십 년간 보여준 교회의 같은 발자취를 밟고 있다면 모든 신학교들은 판매용으로 나오게 될 것이고 모든 수도단체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수도회 남녀에게 있어서 무엇이 장엄하고 아름다움입니까?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제대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도원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의도, -“나는 나 자신을 우리 주님과 함께 희생제물로서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드린다. 나의 온 생애는 주님과 함께 드리는 것이다.”- 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수도회 생활은 더 이상 합당한 의미를 잃는 것입니다. 그런 점으로 인해 더 이상의 성소(聖召)가 없습니다. 이러한 희생의 정신, 제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희생을 바치고 일치하는 생활을 할 때, 성소가 다시 번성할 것이고 많아질 것입니다. 성소가 있고, 젊은이들이 헌신할 욕망이 있고... 우리 시대에 (우리 신학교에서) 격년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수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일들, 참된 일이 주어지게 합시다. 그것은 교회가 항상 주었던 것이고 그러면 성소는 다시 한 번 번성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에콘에 있는 우리 신학교가 왜 성소로 가득 차는지, 왜 이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오는지, 그리고 와서 가톨릭교회의 일을 계속하는 것 외엔 그 어느 다른 동기는 없다는 점을 저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길 몹시 바라는 바입니다. 개신교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개신교인이 되려는 것을 거부하고, 현대주의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가톨릭 진리에 반대되는 일을 하려는 진보주의자가 되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수세기동안 교황들에 의해 견책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거부합니다! 가톨릭 신자로 남고자 합니다. 가톨릭 신학교를 원하고 가톨릭 사제를 원합니다. 그 외엔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고 가톨릭 신학교를 세우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젊은이들을 다른 신학교로 보내면 이들은 가톨릭 신앙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고, 신앙뿐만 아니라 (가톨릭) 도덕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천주님의 섭리 아래 깊은 신앙을 유지하려 합니다. 천주님은 자기의 교회를 버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사제를 세우신 것처럼 주님은 가톨릭 사제들을 원하십니다. 교황 성하는 가톨릭 사제들을 원하지 않을 수 없고, 교회 또한 가톨릭 사제들을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는 교황성하와 그리고 교회에 일치되어 진정으로 남아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20세기 동안 원했던 것을 교황도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종파로, 교회분열로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교황성하와 가톨릭교회에 우리만큼 더 일치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톨릭 사제직을 보호해달라고 이 사제직이 지속될 수 있게 해달라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청원해야 합니다. 사제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수많은 성소의 은총과 교회에 대한 애착이 주어지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교황 성하를 위해 묵주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학교들이 재개되는 것은 가톨릭 사제들을 양성하는 진정한 집이 될 것입니다. 수도회의 남녀들은 다시금 진리의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또한 수도회의 일원들은 다시 번성할 것이며, 20세기 동안 가르쳐졌던 신앙, 전통신앙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기도 기간에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청하야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여러분은 사제들, 많은 사제들, 거룩한 사제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고 마리아젤 성모 (Our Lady of Mariazell) 주변에 모여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천주여, 우리가 사제들, 거룩한 사제들을 갖는 은총을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Douglas Laudenschlager 번역. 19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