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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를 변호함 - 1)르페브르 사건은 없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09


 아래의 글,'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를 변호함'은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 그리고 바티칸과의 싸움을 모두 다루고 있는 글로써, 네 가지 논설(소개문을 포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네가지 논설은 1) “르페브르 사건은 없다”, 2) “만일 한 가지 명을 범한다면, 곧 법률의 전부를 거스려 범죄 하는 것이다”, 3) “가톨릭 생활의 오아시스”, 그리고 4) “르페브르 사건에 접근하는 잘못된 방법”이며, 4회에 걸쳐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부제는 읽기 쉽도록 역자가 삽입했습니다. 필자들은 에두아르두스, 라파엘, 파울리누스와 힐라리오인이며, 자필로 모두 서명하였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를 변호함


희망 혹은 질책에 대한 근거


 1989년 9월 21일, 르페브르 대주교 각하께서는 60년 동안의 사제직을 완수하였다. 그는 1960년까지 아프리카의 소수도원에서 여러 해를 보냈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전교자로서, 다음에는 다카르(세네갈)의 교황대사이면서 주교로서, 그 후 다시 불어권 아프리카에서 교황의 파견위원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의 사도적 활동은 다카르의 대주교로서 로마에 불어권 아프리카에서의 가톨릭 교계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1962년 르페브르 대주교 각하께서 당신이 성성한 아프리카 주교에게 다카르의 주교좌를 넘길 때, 그의 전교 사업이 끝난 것 같았다. 사실은 새 전교활동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960년에 이미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위한 활동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960년에 이미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위한 중앙 준비 위원회라는 기구: 그를 어떤 사건 -“르페브르 사건” 으로 몰아넣을 움직임을 막 시작하는 기구를 조직한다. 가톨릭의 교회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계속 말할 수 있으므로 정말로 그러하며, 르페브르 대주교는 공의회의 “정신”( 자유주의-에큐메니칼)이 가져온 교회의 방향 전환과 2차 바티칸의 어떤 주제에 대하여도 “안 된다”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가톨릭 진리의 유토피아보다도 비가톨릭에 가까운 마리땡의 유토피아를 열렬히 찬양하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지니는 숭고한 존엄성의 위치에서, 신현대주의자들이 가톨릭교회를 파괴시키는 것을 앞장서서 행하는 교황 바오로 6세에게 그는 “안 된다”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교황은 교회의 주요 부서를 신현대주의자들에게 맡겨서 자신이 죽은 후에도 그들이 우월한 위치를 계속 확보토록 할 것이다.


 바오로 6세가 발생시켜서 이렇듯 통탄할 정도로 교회가 자멸한 것에 데 대하여 그 요인을 진단하여 개선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 요인과 책임자들을 최고 검사성성(신앙, 도덕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의 기관)에 지적하기를 거듭하고 또 거듭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교회가 복구되도록 준비하는 동안 이 위기의 시기에 지치지 않고 영혼들을 도와 일할 것이다. 그가 하는 새 전교 사업은 그에게 칭송도 승진도 가져다주지 않을뿐더러 교회법상으로 계속해서 비난만을 받게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그가 흠 없는 신앙을 유지시키기 위한 착한 싸움을 못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1967년에 그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교회의 파괴자들에게, 천주님과 신자와 영원한 교회에 속해 있어야만 하는 것을 넘겨줘서 그들의 양심이 안일하게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티칸과 우리의 입장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외면적인 것일 뿐이며, 항상 그래 왔듯이 교회가 환호성을 올릴 때가 올 것이다. . .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영원성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조금 전에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안 된다.' - 르페브르 대주교와 요셉 한의 대담: No - Talks of joseph Hann with Archbishop Lefebvre.” ed. Stoch Paris)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지고 있는 동안, 르페브르 대주교는 신학교를 세우고 그 안에서 가톨릭의 교회를 위한 가톨릭의 사제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현대주의의 로마가, 르페브르 대주교가 여러 해 동안 흠 없는 신앙을 위해 싸우고 있는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대의 암흑의 시기에, 대주교는 자신의 주교 행정의 능력을 힘닿는 데까지 밀고 나아갈 것이다. 그는 - 자신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리고 비상 상태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그러면서도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를 위해” - 가톨릭의 신앙을 흠 없게 보존하고 있는 네 명의 주교들에게 성직 서품이라는 최고 권한을 전수해 줌으로써 이를 행할 것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전 생애의 업적은, 교회의 불변의 진리에 대한 사랑의 행위와 교회 안에서의 신앙의 행위인데, 그것은 잠시 동안은 실추될 지도 모르지만, 구원하도록 맡겨진 영혼이 하나라도 있는 한 결단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모두가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논의의 요점: 희망에 대한 근거 혹은 질책에 대한 근거가 되는 이유이다.


1) '르페브르 사건'은 없다


자체를 무시한 '사건'


 정확하게 살펴보면, '르페브르의 경우'와 같은 그런 일이 없다. 실제로, 황당무계한 “그리스도인의 일치” 아니 전 인류의 일치라는 것 때문에 진리를 희생시켜서 교회 역사상 전례 없이 교리를 뒤엎어 버리고 교회 규율과 전례를 파괴시키게 만든 교황의 사건을 의미하는 “바오로 6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을 때는 “르페브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파괴가 없었다면, 르페브르 대주교는 결코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많은 이보다 더 거룩하고 열렬한, 그토록 많은 다른 이와 같이 가톨릭의 한 주교로서 다른 상황에서라면 항상 그래 왔듯이 교황에게 완전히 순명하면서 주교직에 있는 그의 동료들과 같은 대열에 있었을 것이다.


 그가 주교직에 있은 지난 여러 해 동안, 바오로 6세는 교회의 “자멸”, 천주님의 교회로 들어오는 “사탄의 입김”, 베드로의 범선을 위협하는 “대혼란”을 공공연하게 슬퍼하였다. 한 편 바오로 6세는 도끼로 내려치는 것과 같은 최초의 일격으로 자신이 교회의 자멸에 참여했다는 것, 자신이 사탄의 입김을 향해 교회을 창문을 열었다는 것, 베드로의 돛배를 자신의 손으로 조종하여 태풍의 눈 (대혼란의 한가운데)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극히 조심하였다. 


어떤 식으로 보든지 간에 공의회 및 공의회 이후로 조종한 현대주의자들이 바오로 6세의지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며, 그것이 르페브르 대주교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건”이 되게 한 베드로의 돛배를 위협하는 “자멸”, “사탄의 입김”, “대혼란”이라는 것 역시 여전히 사실인 채로 남아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이 행한 역할에 있어서 “사건”이 될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분명이 확언할 수 있다. 그는 의무로서 교회가 자멸로 향해 가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일이라도 기여하게 되는 것과 사탄의 입김이 들어오게끔 가장 작은 틈이라도 열어주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며 사목상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가 일부라도 대혼란에서 멀어지게 활동했을 뿐이다.


 그는 릴(Lille)에서 단순하면서도 단호하게 유명한 강론을 하였다: “나는 30년의 사제생활 동안에 주교직, 아프리카에서의 교황대리, 공의회를 위한 중앙 준비 위원회의 일원, 교황성좌에서의 보좌 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로마가 나의 사업과 그 사업이 교회의 유용한 정도 및 영혼에 유익을 끼치는 데 유용한 정도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를 증명하도록 하기 위해 내가 더 요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점에서 30년 동안 해 온 것과 별다르지 않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인 지금, 나는 갑자기 ”a divinis"(성무정지)를 정지당했고, 곧 - 교회 밖으로 쫓겨나고 거절당하는 - 파문을 당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늘은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아시리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30년 동안 했던 것 역시 ‘성무정지’를 정지당할 만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이와 반대로, 현대의 신학교에서 현대의 신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처럼 그 때에 내가 신학생들을 양성했었다면 나는 파문당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내가 오늘날 가르치고 있는 현대의 가톨릭 교리를 가르쳤었다면 나는 이단이라고 일컬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와 같이 미사성제를 드렸었다면 나는 이단이라는 혐의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밖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무엇인가가 변했다. . ."


의문의 핵심


 “우리는, ‘너희는 단독으로 고립 돼있다’ 라는 말을 듣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의 전 과거, 수백위의 교황,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하신 모든 성인 성녀 및 모든 이가 다 우리 편이다 . . . 우리는 두려울 것이 조금도 없으며, 우리 나름대로의 것이 아닌 반석위에 세워져 있다. 만일 그것이 우리 나름대로의 것이라면 두려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그것은 내가 될 것이며 내 생각일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꾸며낸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새로이 도입시킨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는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대주교께서는 1988년 9월~!! 자신의 신학생들에게 자신을 두고 무성하게 난무하는 전체적인 의문을 핵심을 지적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 내에 무엇인가를 새로이 도입시킨 사람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아니다. 그의 수도원에서 봉헌하는 전례는 로마 교회의 전통적인 전례이다. 그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학은 “새 신학자들”이 멸시하는 뜻으로 “로마 신학” 이라고 부르는 신학이다. 그의 신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영적 가르침은, 교회 내에서 영적 생활에 있어서의 위대한 사부들이 확립시킨 초대 교회의 규범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세우거나 주도하는 서품식은 경륜 깊은 교회가 이루하거나 승인한 규범을 따르고 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어떤 사사로운 생각 내지는 판가름할 필요가 있는 새 것을 품고 있지 않다: 그는 전적으로 교회의 치교권에 바탕으로 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행하는 모두는 그것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게 하는 교회의 과거 전체를 품고 있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 로랭의 성 빈센트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 교회와 더불어 르페브르 대주교를 받아들이며 르페브르 대주교를 따르기 위해 교회를 버리지 않고 있다( Commonitorium #17 ).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돔 제랄드에게 말하기를, “르페브르 대주교나 카스트로 드메이어 주교들이 르페브르 대주교이고 카스트로 드 메이어 주교라서 그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리에게는 영원불변한 신앙의 사자(使者)로서 그 신앙을 계속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따르고 있다. 그들이 신앙을 버린다면, 그 때는 우리가 그들을 버릴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저들은 교회 내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도입시키고, 새 것을 만들어내고, 사사로운 생각을 시작하거나 강요하는 개혁자이기까지 한데, 저들은 가능한 한, 이러한 새로운 것들이, 교회가 항상 믿고 가르쳐 온 모든 것과 보조를 같이 하므로 틀림없이 교회 내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실제로는 그에 반대되는 것을 반대되지 않은 것으로 합리화시키기까지 한다.


‘바오로 6세 사건’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사건”으로서의 사실을 모르는 청중 및 독자들에게 지적을 당하는 한편, 진짜 사건: 지울롯티가 말한 대로 그 프로그램이 “현대의 것을 그리스도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현대화시키는” (바빌론 유수의 소동 - Dust of Exile, 1928 ) 수법으로 요약할 수 있는 교황의 사건을 돌이켜 가리킨다. 이는 이미 교황 비오 10세께서 ‘모든 이단을 종합한 것이고 무신론에로 향하는 직접적인 길’이라고 비난한 현대주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황 비오 10세는 ‘Pascendi’에서 기술하였다, “현대주의의 신조가,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무신론과 종교 전체를 파괴시키는 쪽으로 이끄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프로테스탄트의 오류가 이 길을 따라 첫걸음을 디뎠었고, 현대주의에 의해 이루어졌었으며, 단시간 내에 무신론이 그 뒤를 따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현대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공의회 이후의 통탄할 만한 실례가 있어서 성인 주교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를 입증한다.


 반면에 바오로 6세는 자신의 유토피아로 인해 눈이 멀게 되어서 교회 내에서 자신의 최고 권위를 현대주의를 그대로 따르는데 팔아넘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련의 “순종시키기 위한 질서”를 교회의 이름으로 강요하고, 그것이 실제로는 교회로 인한 신앙인 교회의 신앙과 함께 영혼들을 내적으로 약화시키거나 파괴시킨다.


그건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라고 르페브르 대주교는 1977년 6월 6일에 있은 로마 협의회에서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사실이다: 그것은 가톨릭의 교회가 아니다. 자녀들, 성직자들, 바로 베드로의 후계자들의 결함은 사실상 어떤 면으로건 불변하는 교회의 원칙에 돌릴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결함이므로, 죄인들을 품고 있을 때조차도 교회는 항상 거룩하다. 베드로의 후계자에게까지도 남아있는 자유의지의 불완전성은 교황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르지아 교황의 교황 직위를 깨달은 까제탄은 “Persona Papae potest renuere subess officio Papae" 라고 기술하였다( 2a 2ae, q39, al, n6에서 )


 교황의 불완전성이 윤리성에 관련될 때, 교회는 벌써 무서운 시험을 겪게 된다. 그래서 교황의 임무의 본 목적과는 달리 , 교황이라는 인물이 “우리와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의향을 가지고 개종시키지 않아도 그들을 가톨릭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교황 고유의 권한을 악용하여 신앙을 불순하게 하는 개혁으로 나아갈 때, 교회의 원수들이 아르키메데스의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해결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인 참된 교회를 힘들이지 않고 파괴시키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디딤돌이 있어온 것이다: 그럼으로써 교회가 천주 및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에게서 비롯한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자멸되게 되는 것이다.


 1988년 9월에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의 신학생들에게 “2차 바티칸은 시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열매이고 결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공의회는 시작이다: 자유주의적인 개혁; 교회 내의 혁명에 대한 책임이 교회의 머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을 때에는 교회가 책임을 지므로, 공의회가 적어도 교회법 제정에 관한 한 악의 세력을 10배로 강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가견적(可見的) 최고 권위의 이름으로 교회 내에서 강제로 이루어지는 일탈에 대해 얼마나 내구력이 있는지를 측정할 시점에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불충실이 머리로부터의 구성원: 주교, 사제, 그리고 신자들에게로 하향하면서 확산되기 때문이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오류 및 비윤리성이라는 독극물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충실하게 남아있는 가톨릭의 신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폐허의 목록을 만드는 것일 뿐이다.


깨진 거울




 이렇듯 통탄할 만한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동정 성모님의 라 살레뜨 메시지를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주님의 백성의 우두머리 및 지도자들은 기도와 보속을 소홀히 해 왔고, 악마가 그들의 마음을 뒤덮어 버렸다: 그들은 태고 때부터의 원수인 악마가 꼬리로서 쓰러뜨려 파멸케 할(묵시록의) 떨어지는 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버릴 것이며 참된 종교를 버릴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수는 엄청 날 것이다. . . 교회는 무서운 위기를 겪을 것이다. 천주님께 대한 거룩한 신앙이 잊혀지고, 각자가 자신의 규준이  되고자 추구할 것이며, 그 동료에게는 상사이고자 할 것이다. 교회는 쇠퇴하게 될 것이다.”


 이 메시지는 파티마의 제 3 비밀과 같은 문제를 다루었는데, 로마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성성은 그것이 교회의 권위에 대한 비판에 이르자 그 자리에서 거의 곧 바로 더 이상 그것을 공표하거나 누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동정 성모님의 메시지가, 교회가 메시지를 인정하도록 한 것과 같이, 신빙성 있는 보증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 계급의 구성원들은 필요한 약을 강구하는 대신 얼굴에 치명적인 조짐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해주는 거울을 산산히 박살내 버리는 병자와도 같이 행동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논리상, 초자연적으로 제시된 치료 방법이 채택되지 않았으므로, 라 살레뜨에서 동정 성모님께서 진단하신 신앙의 위기는 우두머리에서부터 천주님의 백성에게로 확산되었고, 그것은 오늘날 교회의 성직자들이 스스로 및 다른 이들을 멸망시킨 그 가톨릭의 세계에서 급속히 만연하는 대혼란인 바, 성직자 자신뿐 아니라 구원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영혼들을 쓰러뜨리면서 멸망을 향해 급히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안 된다. 우리는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외형적인 조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라 살레뜨에서 그리고 파티마에서 동정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징벌이 이미 우리 위에 있다. “진리의 기둥이면서 기초”인 교회를 먹구름이 덮고 있으며, 영혼들은 어둠속을 더듬으며 길을 찾고 있다: 개인과 사회는 타락에서 타락으로,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다.


보편화된 배교


 요즈음의 가톨릭 신앙은, 이라고 리이게 대학에서 벨기아의 철학자이면서 교수인 마누엘 드코르트가 1971년에 기술하였다. “보편화된 배교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건전한 초자연적 기초 조직의 흩어진 집단 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그들마저 조만간의 위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타락 상태를 겪을 위험에 처할 차례가 되었다(R. Valneve의 ”배교자 떼이야르 - Teilhard the Apostate"의 서문, Rome )


 정확히 말해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영혼들에게 이러한 위기를 경고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나 해서, 자신이 “사건”이 되어야 했음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그는 엘리야와 함께 “나만이 홀로 주님의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떨어져 있도다.” 라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1978년 4월 13일, 그는 세퍼 추기경에서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경애하올 추기경 예하, 나는 당신이 내 태도의 정확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기란 가톨릭의 교회와 교황에 극히 충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가톨릭 신자와 많은 사제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입니다. . . 우리는 자유주의의 에큐메니스트가 됨으로써 우리 주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대의명분 및 교회의 대의명분을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톨릭으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검사성성.” ed. Volpe, Rome, pp. 97 ss.)


 사실은, 세퍼 추기경이 르페브르 대주교의 태도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세퍼 추기경은, 교회를 세우도록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의 영향력을 가지고 교회가 자멸하도록 돕는 바오로 6세를 포함하여 다른 많은 이들처럼, 저항할 용기를 낼 수 없었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다른 이들이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내심 생각만 하고 애쓴 것을 혼자서만 말하게 된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가 “사건”이 된 것이다.


 교황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교회가 자멸하게 되는 것에 대항하여 걸맞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르페브르 대주교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누가?” 그는 위에서 말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교회 안에서 이 그릇된 에큐메니즘의 선동자입니까? 누가 책임져야 할 사람 아니면 사람들입니까?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천주께서 그들의 정체를 아십니다. 한 편 우리는 교회의 비난을 포함하는 성무 집행 정지처분으로 괴로움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천주의 은총 및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가톨릭의 신앙 안에서 머무를 것이며 교회의 파멸에 동참하지 않고자 하는 바입니다” (같은 서한)


작은 무리


 바오로 6세가 서거하기 며칠 전, 쟝 기통이 ‘교회 내에서 생각하는 비가톨릭의 세력을 모으는 데 몰두한’ 바오로 6세에게 밝혔을 때 말했다. “한 작은 무리(성비오10세회)가 일을 수행하지만 그것은 미소한 것에 틀림없습니다.” ("30일 - 30 Days", 1986년 11월)


 다음이 전체적으로 가톨릭의 사고방식이다: 교회는 흠이 없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위기, 가장 어두운 쇠퇴의 시기이기까지 한 때에 교회의 신앙이 온전하도록 보존하는 ‘잔류자’인 한 ‘작은 무리’가 있다. 천주께서만이 이 무리의 숫자를 정확히 아시며, 마찬가지로 천주께서만이 이 작은 무리에서부터 언제나 교회가 다시 아름답게 꽃피게 될지를 아신가. 그러나 바오로 6세에게 자신을 내보인 이 ‘작은 무리’의 일파를 바오로 6세는 무자비하게 박해했던 바, 이는 단순히 그 작은 무리가 바오로 6세의 자유주의 - 현대주의 - 에큐메니즘이라는 괴물과도 같은 생각을 따르지 않는데다가, 만약 바오로 6세가 가톨릭 사제직을 복구시키는 - 교회의 필요한 유일한 개혁을 복 돋웠다면 자신이 슬퍼한 교회의 자멸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에콘의 신학교로서 드러내 보이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이다. 


2) “만일 한 가지 명을 범한다면 곧 법률의 전부를 거스려 범죄 하는 것이다”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