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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를 변호함 4) ‘르페브르 사건’에 접근하는 잘못된 방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30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를 변호함

 

4) ‘르페브르 사건’에 접근하는 잘못된 방법

 

 르페브르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접근하는 것 중 르페브르 대주교가 행한 주교성성에서 찾는 것은  가장 잘못된 방법이다. 그 성성은 사실상, 르페브르 대주교가 이전에 최고 검사성성에 상세하게 제시한 교리상의 질문에서 끝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르페브르 사건’은 무엇보다도 교리의 치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그 접근이 공정하다 한다면, 교회 법규의 차원에서는 접근할 문제가 결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검사성성 사이에 교환된 문서들을 통독하면 명백해질 것인 바, 미카엘 데이비스의 ‘마르셀 르페브르를 위한 변론 – Apologia pro Marcel Lefebvre’ Vol. 1,2,3 (The Angelus Press)와 레네 신부의 ‘르페브르 대주교와 바티칸 –Archbishop Lefebvre and the Vatican’ (ed. The Angelus Press)의 저서에 완전히 실려 있다.

 

교리에 대한 질문

 

 르페브르 대주교는 근본적으로 교리상의 질문을 제기한다: 2차 바티칸의 주제 및 그 여파는 교회의 치교권이 기존의 교리를 비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그는 양심상 공의회를 받아드릴 수도 없거니와 교회가 나아가는 새로운 궤도 위에 자신을 일치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당신에게 여기에 동봉 문서를 냅니다.” 그는 1978년 2월 26일에 세퍼 추기경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우리의 말로나 행실로써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필요 및 그 결과로써 교황청에서 취하는 새롭고도 비정상적인 방향에 관하여 일단 보류시킬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게 된 것은, 교회의 그르칠 수 없는 교리 및 베드로의 후계자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 결과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싶습니다.” (Apologia, Vol.2.) 이상 인용된 책의 117쪽에서 182쪽까지 복사되어 부착된 문서들은 (세퍼 추기경은 그것을 ‘긴 주제-문헌’이라고 부른다) Novus Ordo Missae(새 양식의 미사)와 종교의 자유에 관한 공의회의 발표로 인해 우선적으로 교회 안에서 발생된 근원적 변화에 대한 증거를 충분히 제공한다.

 

은밀히 분열하는 비정상적인 행동

 

르페브로 대주교가 잘못됐는가? 그렇다면 교황청이 취하는 입장이 ‘새로운’것도 아니고 ‘비정상’적이지도 않다는 것. 어떤 근원적이지도 않다는 것, 그러나 2차 바티칸 때까지 교회가 추종한 대열을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가 증거로 제시한 근거들이 반박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아주 공정하게 그리고 다른 어느 것보다도 먼저 접근해야 하는 의문은, 교회가 나아가는 새 코스와 교회에서 항상 믿고 가르치고 실천해온 것 사이의 괴리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눈에 띈 것은 낯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검사성성이다. 검사성성은 “protestas suprema jurisdictionis”를 가진 교황청의 권위로서 ‘르페브르 사건’을 르페브르 대주교의 교리상의 논쟁에 계속 전가시키면서 교리상의 질문을 완강하게 회피한다. “non solum in rebus quae ad fidem et mores sed etiam in its quae ad disciplinam et regimen (세퍼 추기경이 이탤릭체로 쓴 마지막 말 ) per totum orbem diffusae pertinent” (conc. Vat.I, Const. ‘Pastor Aeternus,“ D5 304): 그는 신앙과 윤리상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규율과 통치에 관한 것들에 있어서도 교회 전체에 대하여 완전하고도 최고의 지배권을 가진다. 마치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리가 아니라 교회의 규율과 통치를 포함하는 문제를 일으킨 것과 같이!

 

 결론: “공의회에 대한 승복과 공의회 이후 바오로 6세의 개혁에 대한 그대의 진술 –전체적인 행동방식, 특히 불법적인 사제서품 수여로 인해,- 신앙에 대한 교리를 위한 성성 (The sacred (sic)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은 각하 (즉, 르페브르 대주교)가 심각한 불순종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며 전체적인 설명 및 행동은 바로 그 논리로써 분열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Apologia. Vol. 2 p.114). 날짜는 1978년 1월 28일이며, 신앙교리성성(그 동안, 그 자체를 다시 “신성한”이라고까지 부른)을 지지하고,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미 비밀히 (물론, 성성에 알려진 비밀) 갈라진다.

 

 그러나 미묘한 문제가 있다. 분열을 순종의 차원에서 논하는데, 말하자면, 우선 규율상의 차원에서인 것이다. 그런데 르페브르 대주교는 일차적으로 교리의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가 만일 교리상으로 잘못됐다면 – 그러나 그것은 그의 추론을 반박함으로써 증명되어야 한다 – 그 때는 종파 분립론자가 아닌 이단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종파 분립론자이기 전에 이단자이다. 교리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동안 그가 “종파 분립론자”라고 발표하는 것은 – 사실 이루어 질 것인 바 – 교리적 차원에서는 르페브르 대주교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교회의 암흑시대의 신학자들이 그야말로 진짜 “열교인”인 “불법적인 분리”와는 조심스럽게 구별하는, 교황으로부터의 “합법적인 분리” 중 하나에 떨어지는 것이므로, 그의 불순종 또한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if. Dictionnaire de Theologie Catholique, under “Schism,” t. 12 col. 1302 ). 신앙의 흠 없는 상태가 사실상의 파괴 상태에 있을 때, 교황에 대한 어떤 “순종”도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순종의 목적에 관한 한 무조건의 순종은 천주께만 기인한다: 그 방식에 관한 한 무조건의 순종은, 즉 “맹목적인 순종은 천주께만 그리고 그르칠 수 없는 치교권에 기인한다. 그 밖의 것에 관해서는, 무류성 외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교회는 당신의 대리자에 대한 맹종을 가톨릭의 신자들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호노리우스 1세, 요한 22세,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에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는, 신자들이 오직 부조리하기만 한 신앙을 거스르는 죄가 되게 하는 구속력을 지니지 못하도록 말이다.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 전통의 치교권

 

 1981년 2월 19일에, 세퍼 추기경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로마 교황이 주교좌의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 아닐 때라도, 로마 교황의 사실상의 치교권에 대해서 및 로마 교황과 일치하는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놓는 신앙과 윤리의 문제에 있어서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지와 지성으로 종교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Apologia, Vol.3, Pg.293).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로마 교황이 “주교좌에 의거해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맹목적이어야 할 의무가 없고, 따라서 일반 주교들의 경우처럼 사실상의 치교권이라고 하는 상태보다 더 하위이며,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되도록 의도하셨던 바: 말하자면 “전통적”이며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것이다. “전통의 것”은 보증된 천주의 계시를 지키고 선언하고 설명하고 방어하도록 정해진 것이므로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미 보증된 것에 다른 어떤 진리를 덧붙여서도 안되고 덧붙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위 새로운 교리라고 하는 것은, 이미 전부터 무언(無言) 중에 믿어지고 있으며 성성 혹은 성전 (전통) 안에 실질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if. I. Salaverri, S.J. . “De Ecclesia Christ 3 n, 507 in ”Sacrae Theologiae Summa,” B.A.C. . Madird ). 무류가 아닌 (단순한 권위) 치교권이 “전통적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낸 것” 이것이 불행에 닥칠 때는 언제나 더 이상 “의지와 지성으로 종교적인 순종을 해야 할” 의무가 결코 없게 된다. 따라서 르페브르 대주교에게는 증빙서류를 제시하여 어느 공의회의 주제 및 교회가 새로 나아가는 방향이 전통적인 치교권에 대립된다는 것을 공공연히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세퍼 추기경에게는, 최고 검사성성의 장관으로서 오로지 제기된 대로의 의문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의무만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들을 위해 하찮은 것이 아니라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평범하고 단순하게 “의지와 지성으로 종교적인 순종”을 하도록 상기시키는 것은, “대주교가 주교좌의 의거하여 말하는 것이 아닐 때조차 로마 주교의 사실상의 치교권”을 지나치게 편들어, 반대로 교황이 주교좌에 의거하여 말하고 있을 때 교황의 무류의 치교권으로 인해 맹종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에 해당된다.

 

궁지에 몰린 최고 검사성성

 

 문제의 실상은 “사람의 지위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는”(마태오 22,16) 주님과 같이 진실을 말하는 그것인데, 르페브르 대주교는 신앙교리성성이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규정지었다: 교리의 차원에서 2차 바티칸 때까지 교회의 교리이던 것을 따르는 르페브르 대주교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신앙교리성성이 교회의 과거 전체를 이단이라고 비난해야 하는 바, 사실은 교회가 새로이 나아가는 방향과 과거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교회가 새 궤도를 취하는 것을 바랬거나 적어도 좋아했던 바오로 6세를 비난해야 한다. 이렇듯 매우 심각한 곤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고검사성성은 교리상의 의무는 모두 무시해 버리고 “르페브르 사건”을 단지 규율상의 사건으로만 취급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현대주의자들의 방식

 

 만일 르페브르 대주교가 잘못됐다면 그가 갈라진다고 발표되기 이전에 이단이라고 발표되어야 하는 바, 논리적인 순서를 바꿔서 파문형을 선고한 후에 겨우 르페브르 대주교의 이단적 주장에 대해 지극히 애매한 언급이 있으리라. 어떤 관점에서? 아주 확실한 전통의 관점에서! 이를 주의하라! 왜냐하면 끼워 넣을 수도 없는 2차 바티칸의 주제를 전통 안에 끼워 넣어서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리의 차원에서 잘못됐노라고 할 수 있다면 전통에의 전체적인 관점도 마찬가지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항상 지켜온 것을 전통의 관점이 그대로 지키는 한, 그리고 트렌트 공의회와 1차 바티칸이 명시했던 그대로를 지키는 한 르페브르 대주교가 옳고 현대주의자들이 점령한 로마는 틀릴 것이다. 결국 현대주의자들이 자신의 입으로 그들의 새 것과 전통과의 대립성을 고백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의회 동안에 현대주의자들이 쫓았고 바오로 6세의 신학자인 몬시뇰 콜롬보가 완전하게 기획한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라면 르페브르 대주교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이제 주교의 행정참여를 바꾸자 몬시뇰 콜롬보가 말했다 “나중에 우리는 그것을 합리화 시킬 만한 근거를 찾아낼 것이다.” 현대주의자들의 이런 방식으로 인해 르페브르 대주교는 단지 그가 교리상으로 이견을 제기했다 해서 1978년부터 계속 은연중에 갈라지는 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고 역시 조만간에 자신을 이단자라고 발표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훗날에 그런 발표를 합리화 시킬 근거를 찾아내는 단 하나의 단서가 되는 교리상의 이견을 제기했기 때문에 갈라져 나가는 자 이단자가 된 것이다.
 
올리브 가지 (평화 화해의 표상)
 
 요 몇 년 동안 르페브르 대주교는 교리의 문제에 관하여 고집스럽게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청취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끈기 있게 계속해 오고 있었다. 마침내 1987년 7월 8일 대주교는 세퍼 추기경의 후계자인 랏징거 추기경에게 문제를 적절히 마무리 짓기를 주장하는 편지를 쓴다.

 

 “추기경 예하, 전통을 실행하는 것은 고무돼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는 것인데도 응답이 없는 채로 있는 요구를 계속해서 거의 20년이나 주장한 후에 의심할 것 없이 이것은 천주님 및 교회의 역사 앞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호소입니다. 교황과 그리고 당신은 과거의 교회 및 그 치교권과 완전히 분리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치교권은 만일 보증된 신앙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즉 전통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는 가톨릭이라 불리우기에 충분치 못합니다. 과거에 뿌리를 두지 않은 그리고 더욱 나쁘게는 영원한 치교권에 반대되는 새 치교권은 이단이 아니면 오직 갈라져 나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전통을 끈덕지게 파괴시키려는 의지는 자살 하려는 의지이며 참되고 충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오직 그 한가지로 인해 교회의 생존 및 영혼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만 필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르페브르 대주교와 바티칸, p24)

 

 ‘불순명하는’ 주교의 오랜 이후의 편에서 관해 그런 궁극점에 이르기까지 만일 대주교가 진정으로 불순명한다고 여긴다면 적합한 기준으로써 대답하는 것이 검사성성에 타당하리라. 반대로 로마로부터는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물은 비둘기가 온다. 대답하는 방식에 있어서 랏징거 추기경은 “르페브르 사건”에 대한 일련의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현실적인 차원에서만 제시하여 교리상의 의문에 대해서는 또 다시 회피하는 것이었다. 실상을 말하자면 다른 문제들 중에서 그는 르페브르 대주교가 세운 사제직에 대한 사랑에 합당한 분명히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카리스마를 인식하기를 제안하므로 랏징거 추기경에게는 교리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교리상의 문제라면 무엇이든지 무시하면서 내미는 손의 이러한 예기치 않은 술책은 공식적인 의견 앞에서 입장을 바꾸는 것을 겨냥하는 것이 분명하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편지에서 언급하는 비상사태가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적 차원에서는 관대한 로마의 제안은 우선 교리상의 차원에서는 대주교에게 거꾸로 미래의 분멸에 대한 책임을 털어 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협상하기를 거부하든지 그러하다. 이는 예견하기 쉬운 가능성이다. 사실은 계속되는 협상이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항상 해결되지 않는 교리상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현실적 차원에서 어떤 협상을 이루기 위한 매개 변수가 된다.

 

나는 그들이 타당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논 추기경이 방문한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1987년 12월 13일의 강론에서 르페브르 대주교가 묻는다. “말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저항과 사람들의 마음 및 정신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보존시키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을 인식하여 가톨릭의 신앙을 보존 하도록 우리를 도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다. 나는 그들이 타당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결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현재 전체적으로 현대화 되었고 현대주의의 교회 위에서 무겁게 내리누르는 이론으로 오염되어서 우리가 그들 및 공의회의 정신 쪽으로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 그들이 모든 수단을 다 한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Fideliter 1988년 1월-2월)

 

 협상이 취하는 코스와 가뇽 추기경의 분명한 발표는 로마가 요구하는 타협이란 것과 분명히 일치하며 이런 이유로 교리상의 문제가 타결되지 않는 한 어떤 타협도 불가능 할 것이다.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

 

 협상이 실패했던 한 때 랏징거 추기경은 이탈리아 TV 방송에서 르페브르 대주교의 역할에 대해 충격적인 불신을 말했었다. 아니다. 그것은 명쾌하고도 타당한 불신이다. 교회에서 공동체의 단일성은 신앙의 단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cf. Leo 13 "Satis Cognitum) 신앙에서 단일성을 이루지 못하면 전체적으로건 부분적으로건 공동체에서도 단일성을 이루지 못한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다음 9월에 에콘의 신학생들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다른 손에 파괴시키는 일을 하고자 망치를 쥐고 있는 교회의 파괴자들과 협력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무엇을 따르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로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를 바라든지, 아니면 파괴시키기를 바라든지이다. 만일 우리가 파괴자들의 편에 선다면, 만일 우리가 그들의 권위에 의존한다면,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명백히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우리도 역시 그들이 교회를 파괴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 모두가 해결된다고 말할 수 없다.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르페브르 대주교의 계속되는 희생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암시하면서 대주교는 계속 말한다. “우리는 미묘하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 속에 그토록 오래 동안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 지친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래도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가 아니고 신앙, 전통 교회의 지속성과 성장이므로 우리는 지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권위가 신앙을 지키고 있지 못할 때 (그리고 신앙을 파괴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을 때) 나는 싸우는데 지쳤고 이제는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한다. 라고 말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비상사태
 
  “누구에게나 확연히 드러난 교회의 불행은 이제부터는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항상 쫓았던 과거의 궤도로 교회를 되돌려 놓지 않는 한 오직 악화되기만 할 뿐입니다.” 라고 1978년 2월 26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세퍼 추기경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사건들이 그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이제 로마와의 협상의 결렬은 교회 내의 위기를 비교적 짧은 기간에 해결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모두 꺾어 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과거에서처럼 앞으로도 계속하는 것이다 교회의 지배계층에서 필요한 궤도수정을 할 때까지 비상사태에 처한 영혼들을 키우면서 말이다.

 

 윤리신학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1. 물질적인 상태의 도움이 필요한 육체뿐 아니라 영적인 상태의 도움이 필요한 영혼에도 비상사태가 있을 수 있다... 2. 그런 경우 심각한 비상사태에 있는 영혼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 (즉, 비상사태란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을 빼앗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아주 불편한 때라도 만일 의무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생명이라는 값을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if Roberti Palazzine “윤리신학사전 -Dictionary of Moral Theology” ed Studium, Rome under necessity) 비상사태에 있는 영혼들을 도우러 가는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미 그것이 무효일 정도로 이치에 닿지도 않는 "adivinis"(성무) 금지를 초래하였다. 주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후의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가 로마 및 교황제도에 대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똑같은 사랑으로써 그리고 내부로부터 가톨릭교회를 파멸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에나 저항하는 똑같은 사랑으로써, 그리고 내부로부터 가톨릭교회를 파멸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에나 저항하는 똑같은 정신 안에서 그의 사업을 수행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자체로써 주교성성의 권한을 이양시키는 것이다. (지배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의 이양시키는 권한 밖에서는 효력이 없다.) 이를 행하기 위해 르페브르 대주교는 현재 주교성성을 시행하는 권한을 제한하는 법규를 어겨야 하는 것임에도 윤리신학은 영혼의 비상사태가 육신의 비상사태보다도 훨씬 더 법을 따라야 하는 것에서 면제된다는 것도 역시 가르친다. 
                                   
 이는, 특별한 문제를 위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런 상황 때문에 법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중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천주의 절대법 혹은 인간의 법인 자연법의 규정이다 - 이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행동을 금하므로 자연법상 금지의 예외로써 법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중지되는 것이다. (cf. op. cit. 필요와 중지의 이유 하에서-under 'necessity' and excusing cause)

 

 포이티에의 위대한 성 비오 추기경이 말했다. 신법을 무너뜨리는 고로 법규상의 규준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극단적인 경우들이 있다. 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신법이 자연법으로 인해 가려지는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보증이시다 - 아주 평범한 사건인 사건들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 나귀나 흑 소가 우물에 빠지면 파공날에라도 즉시 꺼내지 아니 하겠느냐’? (루까 14. 5)라고 하셨다. 자, 만일 법이 그런 이유로 무너진다면, 위기에 처해 있는 아브라함의 딸의 생명을 즉시 구하지 않을 경우에 지극한 위험 중에서 전 인류의 공동 모친 그리스도의 배우자 천주님의 교회의 도움에 달아드는 것 외에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아브라함의 후손를 마땅히 그 결박한 것을 풀어줄 것이 아니냐. (루까 13. 16) (성녀 에밀리아나의 유해를 모시는 강론 1895년 11월 8일 Works Vol. 3 p.504).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의 신앙과 용기와 같은 상식이 권하는 바에 따라서” (같은 강론) 앞서 말한 주교성성으로써 전진한 것이다.

 

 1년도 더 지난 오늘날 그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반하는 새로운 위계질서를 지닌 새 교회를 세우지 않았음이 명백해 보인다. 그는 단지 교회 역사상 이렇듯 매우 심각한 상황이 지나갈 때까지 비상사태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가톨릭교회에 적합한 구원의 수단을 확보했을 뿐이다. 위기가 끝나면 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그의 지향의 정당성에 따라 정의가 이루어지리라. 그러나 1년 전에 ‘갈라져 나가는 자’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기에 주교성성은 르페브르 대주교의 시행을 비밀스럽게 갈라져 나가는 자가 되게 하였다. 그가 여러 해 동안 제기해 온 교리상의 질문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문제를 최고 검사성성이 해결하지 않았으므로 거기서부터 영혼들을 위한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한 비상사태가 생겨난 것이다. 항상 잘못 접근하는 르페브르 사건은 공식적으로 더더욱 그릇된 결말이 난 것이다.
        
 출처 “The Angelus" Vol.13. No.1에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