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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3. 성체성사는 십계명과 모든 성사의 총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08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3.

성체성사는 십계명과 모든 성사의 총합(1977-9-3)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시다



친애하는 신부님. 신부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님들 앞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있는 가운데 거룩한 미사를 처음 봉헌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신부님과 옆에 있는 것, 그리고 말을 전하게 됨은 나의 기쁨이고 미래의 종도직에 에 대한 기도, 또한 신부님이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자하는 선의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우리는 특히 성비오10세 교황께 기도하고자 하니, 오늘은 그분의 축일이요, 신부님이 공부하고 형성의 토대를 일구어주신 분입니다. 그 교황님께 청하여 종도직에 대한 열정을 주십사하고, 그분과 같은 성인다운 사제직을 이루게끔 도와 달라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 히러리(Hilary)의 도시, 성 라데곤(Radegonde)의 도시, 그리고 위대한 추기경이신 피에(Pie) 도시인 바로 이곳에서 옳게 서 있기에 퐈티에(Poitiers) 도시의 이들 모든 보호자들에게 청하여 오셔서 도와달라고, 그리하여 그분들의 모범을 따르도록, 이 어려운 시기에 가톨릭 신앙이 위기에 처한 이시기에 그분들이 행하신 것처럼 신앙을 수호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부님은 세상에서 편하고 안락한 삶을 탐낼 수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의학을 공부했었기에 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용기를 가졌고, 이러한 시대에 조차 와서 청하여 에콘(Ecône)에서 사제가 되고자 했습니다. 신부님은 성전을 그곳에서 찾았기에, 그 가톨릭 전통이 신앙에 호응됨을 알았습니다. 이는 신부님을 경하할만한 용기의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역 신문에 실린 퐈티에의 주교 로지에(Rozier)의 편지 발간에서 나오는 그 비난에 대해 몇 마디 답변을 하고 싶습니다. 아! 논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그 편지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그저 침묵을 지켜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그 의문에 대답하는 것이 여기 있는 여러분을 정당화하는 것은 좋겠구나하고 보여 집니다. 질문에 응하려고 소명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명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순명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왜 불순명할 수밖에 없느냐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한 불순명의 방법을 선택했다면 참된 순명의 방법을 선택했음을 진심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분명한 순명의 길을 아마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불순명의 길을 택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혁신을 추종하는 이들은 성전에 의해, 모든 교황에 의해, 모든 공의회가 우리를 가르쳤던 것들과 반대되는 새로운 원리에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불순명의 방법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당국을 따르면서 모든 성전(聖傳)에 불순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어져 오는 성전은 분명히 우리의 순명을 표시입니다. Jesus Christus heri, hodie et in saecula,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같으시도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를 순명하면서 어제의 그리스도는 따르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니, 그러면 내일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교황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제의 교황을 따르고, 결과적으로 오늘의 교황에게도 순명하고 내일의 교황에게도 순명합니다. 왜냐하면 교황들이 (옛 전통의 교리와는) 다른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요, 교황들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하는 바, 어제의 모든 교황에게 충직하면서, 어제의 모든 공의회에 충실하면서 오늘의 교황에게도, 오늘의 공의회에 그리고 내일의 공의회와 교황에게도 충직합니다. 섭리의 신비에 의해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면 우리는 분명히 불순명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불순명하는 것이 아니라 순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순명하는가요? 우리의 전통교리를 믿으면서 항상 똑같은 신경(Credo), 똑같은 십계명, 똑같은 미사, 똑같은 성사, 똑같은 기도를 하면서 입니다. 천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순명하는 것이지 불순명이 아닌 것입니다.


반면에, 요즈음 새로운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연구해보면 같은 신앙, 같은 신경, 같은 십계명, 같은 성사, 같은 천주성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즈음 교리공부만을 살펴봐도 깨달기 충분합니다. 우리가 순명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저들의 요즈음 연설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저들이 (진리를 수호했던) 교황들, 공의회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며 불순명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신경을 변경시킬 권리가 없기 때문이며, 저들은 요즈음 천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고, 원죄를 부정하며, 성모님도 항상 동정이 아니었다고 ... 등등을 말합니다.


저들은 천주십계와 인권을 서로 바꿀 권리가 없습니다. 요즈음은 오직 인권에 대해서만 말을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사람은 천주님의 십계명 안에서 있어야 한다는 의무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리에 있는 십계명을 인권선언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합니다. 천주님의 계명은 애착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계명은 가족이 사라짐을 막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신앙의 총합이며, 살아있는 교리인 거룩한 미사성제가 그 본질을 상실하고 있고 혼란스럽고 애매한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개신교인들도, 가톨릭인들도 이를 말합니다. 이에 관련하여 모든 새미사가 무효이다 라고 말한 적이 없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결코 따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제가 믿기로는 새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인즉, 왜냐하면 새미사는 더 이상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개신교의 관심 사항이 새미사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모든 성사 역시 성사의 본질이 사라졌고 종교 대중 집회에로의 초청과 비슷해졌습니다. 이런 것은 성사가 아닙니다. 성사는 우리에게 은총을 주고 죄를 없애줍니다. 성사는 천주님의 생명, 초자연적인 생명을 줍니다. 우리는 그저 순수 자연의, 순수 인간, 사제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미사성제를 지킵니다. 이 전통 미사를 지켜야 하니, 이는 살아있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인쇄된 교리만이, 사라질 수 있는 종이, 생명력 없는 종에 쓰인 교리만이 아닙니다. 이 신경은 말하자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 영혼의 구원의 ‘노래’인 필수적으로 역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 우리의 구속자이신, 우리를 위해 성혈을 흘리고자 사람이 되신 우리 구세주이신 그분을, 그분의 교회를 낳게 하여 사제직을 갖게 함으로써 구속 사업이 지속되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 영혼이 성세와 모든 성사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 안에서 목욕하도록,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본성, 인성과 천주성 안에 참여하도록, 또한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가족 안으로 영원히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도록 천주님에 대한 찬미가를 부르고 부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요, 우리의 신앙입니다. 만약 미사가 주님의 구속의 표시인, 주님 십자가의 계속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그분의 구원의 현실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닙니다. 만약 미사가 그저 식사에 불과하다면, 만약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제헌경의 식사 중에 단지 발음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성체를 나누는 것은... 더 이상 미사는 우리의 희생제사가 아닙니다. 만약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가 아니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하고 그분의 성혈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분의 성혈을 주시기 위해 이 지상에 오셨고,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분의 생명을 나누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창조된 것이고, 우리에게 성혈을 주시는 것은 거룩한 미사성제입니다. 이 현실은 모든 현실에서 지속되며 우리 주님은 그분의 성혈, 그분의 영혼, 그리고 그분의 천주성 안에 참으로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제직을 제정하셨고,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사제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사제를 양성하려는 이유입니다. 모든 위대함, 사제직의 숭고함, 사제직의 아름다움은 거룩한 미사를 제헌하는 것, 제헌경의 구원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지속하면서, 성세를 통하여 영혼들에게 주님의 성혈을 흘리시면서, 제대에 내려오실 때, 성체와 보속의 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니, 오, 사제직의 아름다움이여, 그 위대함이여!! 우리가, 어느 인간도 가치가 없는 기운데 오는 위대함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원하셨습니다.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숭고한지를!!


그리고 우리의 젊은 사제들은 이 점을 이해했습니다. 그 점을 여러분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생활을 통하여 그들은 미사성제를 사랑했습니다. 천주님이 이 지상에서 저들에게 오랜 수명을 주신다 하더라도 그 사제들은 결코 미사의 신비를 꿰뚫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사제들은 미사를 사랑합니다. 제가 생각건대 사제들은 이해했으며 미사가 생명의 원천이 되는 태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제생활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사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이고 우리 주님이 안 계시는 동안... 단지 저들이 친교를 위해서, 빵을 쪼개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즈음 새미사에서는 은총이 없기에... 단지 면병에 불과하고 인간 사이에 있는 사랑의 표시요, 상징에 불과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통미사성제에 애착을 갖는 것입니다. 미사성제는 십계명의 표현입니다. 천주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십계명은 무엇이란 말인가요?? 미사성제에서의 희생에서 보여 지는 것보다 그 어디에 이러한 사랑이 실현되고 있는가요? 천주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모든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이 희생보다 인간을 위한 더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의 행위가 어디에 있는가요?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그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십계명은 미사 안에서 실현됩니다. 인간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천주님의 가장 위대한 행위, 우리가 천주님으로부터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미사에 십계명이 들어있습니다. 미사에 살아있는 교리가 있습니다. 모든 성사가 성체로부터 성사의 광휘(光輝)를 받습니다. 분명히 모든 성사는 성체성사의 위성(衛星)과 같습니다. 성세성사로부터 종부성사에 이르기까지 성사들은 성체성사를 단지 반영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모든 은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사와 희생은 미사 안에서 친밀하게 일치됩니다. 성사로부터 희생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트리덴텐 공의회 교리는 이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사의 희생에는 두 개의 위대한 현실이 있습니다: 희생과 희생의 열매인 희생으로부터 나오는 성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이요 그래서 우리가 전통미사성제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것입니다. 예전보다 더 잘 이해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 전통미사와 희생이 실현되는 현실을 수호해야하는 지를. 미사는 교회의 생명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우리 존재의 근거는 미사 안에서 우리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 현대주의자들이 미사의 본질을 뺏으려한다면, 이러한 미사의 희생으로부터 우리를 빼앗아가려한다면 우리는 외쳐야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우리한테서 미사의 거룩한 희생을 분리시키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견고하게 미사의 희생 제사를 지키고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성하께서 이 전통 미사를 금지하고 있지 않음을, 그리고 그 누구도 모든 시대의 이 전통 미사제헌을 금지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비오 5세 성인 교황께서는 이 전통 미사를 숭고하고도 분명한 방법으로, 장래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누구도 이 미사성제를 금지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게다가 사제가 이 전통 미사를 제헌한다는 이유로 인하여 그 사제가 받게 될지 모르는 모든 파문이나 모든 성무정지, 모든 처벌은 전적으로 무효이며 실효성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하더라도 분명한 양심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분명히 불순명하는 거라면, 우리가 실제적으로는 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설명하는 것이 옳은 것이니, 왜냐하면 교회를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불순명은 십계명이 있어야 할 위치에 인권선언을 하고 있는 자들, 종도신경을 변경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새로운 신앙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개혁가들과 완전한 교류를 하지 못함에 대해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참으로, 무한히 유감스럽습니다. 바로 당장 몬시뇰 로지에(Msgr. Rozier)에게로 가서 그와 완전한 교류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이는 나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몬시뇰 로지에르는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이 전통 미사를 비난합니다. 불가능 한 거예요. 이 전통 미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시대의 교회와 더 이상 교류하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미사를 위해, 그리고 이 미사에 의해서 서품된 주교와 사제들이 20년, 30년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미사를 제헌했던 이들이 완강한 증오로써 전통 미사를 박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로부터 우리를 쫓아내고자 추적하고, 우리로 하여금 (교회는 미사를 드릴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라 말하는데) 미사를 성전(聖殿)이 아닌 야외에서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단이나, 종교분열주의자라 한다면 몬시뇰 로지에(Msgr. Rozier)는 우리가 미사 드리도록 우리에게 교회를 어찌 주었으며,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이는 믿음을 초월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교회와 교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는 교회는 단지 이단자나 종교분열주의자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톨릭교회와 교류하고 있음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난하는 저들의 태도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지난 2천 년간 믿어왔던 것을 믿으면서, 행해왔던 것을 우리가 그저 그대로 지속하여 행하고 있을 때, 우리는 가톨릭교회밖에 있을 수 없음을, 우리가 옳다는 것을 저들은 완벽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다면, 이 문장을 반복해야하고 계속해서 반복해야 합니다: Jesus Christus heri, hodie et in saecula. 내가 만약 어제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다면, 나는 오늘과 내일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없다면, 내일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과거의 신앙과 같고 미래의 신앙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신앙과 함께하지 않으면 현재의 신앙이나 미래의 신앙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바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비용을 치루더라도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이것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의 수호성인이신 퐈티에(Poitiers) 성인들께 청하노니, 특히 여기 모인 사제들을 위해, 새로운 사제들을 위해 청합시다. 힐러리 성인과 십자가를 지극히 사랑했던 라데군다 성인(St. Radegunda)에게도 청합시다. 이분은 프랑스 이 땅에 최초의 참 십자가 유물을 가져오신 성녀요, 미사의 희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세기 (19세기) 동안에 가톨릭신앙을 탁월하게 수호하신 피에 추기경(Cardinal Pie)께 요청합시다. 증오와 원한 없이 싸우고자 하는 은총을 주시도록 이들 퐈티에(Poitiers) 수호자들에게 요청합시다.


자기들의 이웃에 대해 논쟁하려하고, 훼방하며, 불공정하게 대하려는 자들 가운데 우리가 있지 않도록 합시다. 온 마음을 다하여 저들을 사랑해야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지키도록 합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키도록 합시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 이것을 요청합시다. 오직 성모님께서 천주성자의 천주성에 대한 완전한 신앙을 가질 수 있고 모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제사에 계셨습니다. 성모님이 지녔던 그 신앙을 주님께 청합시다. 아멘.


서품 받은 신부님의 첫 미사에(프랑스 퐈티에, 1977년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