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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31. 사제서품 50주년 기념(1979년 9월 23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2-18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31

사제서품 50주년 기념(1979년 9월 23일)


 

내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께 몇 마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이 아름다운 미사전례 집전에 즈음하여 이런 훌륭한 행사(사제직 서품 50주년 기념식)가 있도록 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제 사제직 서품 50주년 기념식을 에콘(Ecône)의 심장부인 미사 제대에서 조심스럽게 기념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제 서품 50주년에 즈음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분들이신 성 니콜라스 두 샤르돈네(St. Nicholas du Chardonnet)의 사랑하는 성직자들께서 저를 초대해주시고 이 자리를 마련하셨는데 이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함께 모였고, 미국, 유럽전역에서 등지에서 참으로 많은 분들이 다양한 곳에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회합, 이 모임, 이 전례미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가톨릭의 성직과 가톨릭의 미사의 믿음을 갖는 데에 대해서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신 이유는 가톨릭교회와 천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보물, 가장 숭고한 선물에 대한 당신의 애착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진정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신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늘날 모든 곳으로부터 오신 사랑하는 성직자들에 의해 죄가 둘러싸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주일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왔었을 텐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 교구에서 거룩한 미사를 드릴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이 반 세기를 흘러오는 동안 증인이었던 몇몇 장면들을 추적해보고 싶은데 이는 우리 생활에서, 주교의 생활에서, 교회의 생활에서 지탱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미사의 중요성을 더 보여주고자 합니다.
 

제가 젊은 신학생일 때 산타 치아라(Santa Chiara)라는 로마에 있는 프랑스 신학교에서 사제들은 미사전례 의식에 대해 애착을 가져야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저는 미사전례를 관리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오툉(Autun)의 주교였던 몬시뇰 르브링(Lebrune)에 의하여 이 성무(聖務)를 맡게 되었습니다. 안셀(Ancel)은 여전히 리용의 보좌 주교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례에 관한 지식이 탁월한 것으로 유명한 해기 신부(Fr. Haegy)님의 지도 아래에서 제가 미사전례를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대(祭臺)를 준비하는 것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미사 전례를 준비하는 것을 사랑했고, 큰 미사전례가 우리 제대에서 있게 될 때 전날 밤은 축일의 정신으로 우리는 흠뻑 젖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신학생으로서, 제대를 사랑해야 된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대에서 세수식(洗手式)하는 동안 암송하는 구절입니다: “천주님, 저는 당신의 집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거주하시는 영광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로마 교황들의 회칙(回勅)에 관한 것을 로마에 있는 프랑스 신학교에서 당시의 사건 흐름을 명백히 볼 수 있도록 가르치시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르 프록 신부(Fr. Le Floch)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1929년 9월 21일에 릴(Lill)에 있는 드 루 르 로얄(de la rue Royale) 성심교회에서 리에나르 대주교(Archbishop Liénart)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저는 2년 후 곧 떠났고 그 후 가봉(Gabon)에서 일하던 형과 합류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미사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저는 우리가 이미 이룬 연구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무엇이 우리 신앙의 위대한 신비가 무엇인지, 그러나 저는 아직은 미사의 전체적인 가치와 효용 그리고 깊이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특히 가봉에서 매일, 매년 이것을 배웠는데, 그곳에서 13년을 보냈고, 처음에는 신학교에서 그리고 원주민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오지(奧地)에서 보냈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본 것은 – 예, 그렇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 거룩한 미사가 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 몇몇 교리 교사의 성스러운 영혼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세의 은총과 거룩한 미사에서 조력과 성체성사에 의하여 바뀐 이교도의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이 영혼들은 십자가의 희생의 신비와 그들 자신들을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그 사람 이름들을 불러 볼 수 있습니다: Paul Ossima de Ndjolé, Eugene Ndonc de Lambaréné, Marcel Mable de Donguila, 그리고 저는 세네갈(Senegal)에 있었던 사람들 이름을 호명하고자 합니다, 세네갈에서 회계주임인 Mr. Forster씨는 섬세하고 정직함과 청렴함 때문에 그의 동료들과 심지어 무슬림들에 의해서도 주요한 회계처리를 맡기로 선택 받았습니다. 이러한 미사의 은총으로 인하 생긴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미사에서 훌륭한 열정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을 돕고 그들 자신들의 빛과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이러한 은총으로 인해 변화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계산에 넣지 않은 단지 몇몇 사람들일뿐입니다.

 

저는 이런 이교도(異敎徒) 마을이 가톨릭 마을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말씀드리건대, 단지 그냥 변한 것뿐만 아니라, 영신적으로, 초자연적으로, 또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변해졌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교도들이었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에서 일해야 하는 희생을 치르고도, 특히 결혼생활에서 의무가 있음에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이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 영향 아래에서 조금 바뀌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모든 마을들이 그들을 방문해야 할 신부님들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오, 전교자(傳敎者)들의 방문이 부족할 정도니! 그들은 그들의 죄를 고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거룩한 미사에서 돕는 것을 조급히 기다렸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영혼들은 또한 천주님께 그들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수녀, 사제, 수사들이 되어 천주께 그들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거룩한 미사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든 것들이 일어났습니까? 이 변화의 심오한 동기는 바로 희생이라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연구해 봐야 됩니다.


희생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인 및 가톨릭적인 개념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삶은 희생 없이 보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께서 기꺼이 그분의 몸을 우리들에게 주셨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네 십자가를 지고 가라. 그리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나를 따르라.” 그리고 천주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자신의 성혈을 흘리신다는 죽음의 예표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성자(聖子)의 가련한 창조물들인 우리 죄인들이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뒤따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뒤따라 어찌 감히 우리 주님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문명의 전체 신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문명의 뿌리가 있습니다.: 혹자의 삶에서, 일상에서의 희생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 또는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서, 악으로서 고통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아파하는 것,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거룩한 미사에서 돕는 것에서, 이것이 갈보리(Calvary) 산상에서의 우리 주님의 고난의 지속입니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고통은 기쁨과 보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통들은 만약 우리 주님의 고통과 결합된다면, 만약 모든 치명자들의 고통과 결합된다면, 모든 가톨릭신자들의 고통과 결합된다면,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충실한 신자의 고통과 결합된다면, 만약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결합된다면, 그들은 비로소 형언할 수 없는 보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물, 그리고 우리 자신의 구원과 여타 영혼들의 회두를 위한 대단한 능력의 성취가 될 것입니다, 많은 거룩한 영혼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가까이 하기 위해 고통 받길 원합니다. 거기에 그리스도 문명이 있습니다.


의로움을 위해 고통 받는 자들은 복되도다.
가난한 자는 복되도다. 온유한 자는 복되도다.
자비로운 자는 복되도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십자가의 가르침입니다; 이제서야 최근에 이교도들의 국가 깊숙이 침투한 이 그리스도 문명이 저들을 변화시켰고, 그들이 원하도록, 그래서 국가의 가톨릭 수반을 선출하도록 했습니다. 저자신이 알았고 이러한 가톨릭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도왔습니다. 저들 가톨릭 사람들은 가톨릭 지도자를 선출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정부와 그들의 영토의 모든 그들의 법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법과 십계명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만약 프랑스가 가톨릭인이 되라고 선포했다면, 가톨릭 힘의 역할이 진정으로 실현했었더라면, 프랑스는 이들 식민지에서 새로 세워진 신앙을 유지했었을 겁니다. 프랑스가 그렇게 했었더라면, 프랑스의 영토는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에 의하여 위협받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아프리카는 오늘날과 같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잘못은 아프리카 사람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식민지 권력자들의 잘못인데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 문명을 어떻게 뿌리내려야 할지를, 그리스도 문명을 어떻게 이용할지 모르는 데 있었습니다. 적절한 이해를 갖게 되었더라면, 공산주의를 배제하고 아프리카인들이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도록 돕게 함으로써 이러한 국가 가운데에서 형제적인 영향을 실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통해 뒤돌아본다면, 우리는 즉시 제가 말하는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이후에 첫 세기에서 우리 국가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원죄 안에서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 선조들도 역시 회두를 했습니다, 우리의 왕들도 역시 회두를 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그 왕들은 자기나라를 세계에 걸쳐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기나라를 복종시켰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모 마리아께서 자기 나라의 여왕이 되어야 한다고 소망했습니다.


일부는 영국의 왕인 에드워드 성인, 프랑스의 왕 루이 성인, 신성 로마 제국의 헨리 성인,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성인 그리고 그리스도교화를 도운 우리 가톨릭 국가의 수뇌들의 모든 성인들의 감탄할만한 저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미사에서 그들이 행한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프랑스의 왕 루이 성인은 매일 2번의 미사를 드렸습니다. 만약 루이 성인이 여행하다가 미사를 알리는 교회 종이 울림을 들었다면, 그 성인은 그 순간 말에서 내려 무릎 꿇어 기적이 일어나는 그 미사에 경배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참된 가톨릭 문명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실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요!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역사, 특히 프랑스의 역사에서 일어난 그리스도 문명의 이러한 모습 후에 우리가 언급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최근 사건,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중요한 사건은 바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아마도 미사에서 일어나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교회의 적들에게 선언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그래서 십자가의 기억을 상기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탄 자신이 쫓겨난 것은 바로 이 십자가에 의해서 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매번 미사 때마다, 참됨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자신이 엄청 떨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주제에 관하여 쓰인 시가 한 때 있습니다.  잘 알려진 개신교파들에서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게서 행해지는 신성 모독적인 미사를 행하는 교회의 적들은 한 대의 미사, 한 대의 참된 가톨릭 미사에서 행해지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듣기로는, 폴란드의 공산당은 그들의 종교 감찰단을 통하여 새미사는 따로 제쳐놓고 옛 전통 미사를 행하는 폴란드의 여러 사제들을 감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옛 미사, 전통 미사, 모든 시대의 미사를 제헌하는 사제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를 방문하는 외국인 한 사제가 자유라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그가 좋아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하려는 하는지는 모르지만, 성전(聖傳)에 뿌리를 둔 전통 미사를 지키려는 폴란드의 사제들은 박해를 받고 있다 라고 믿습니다.

 

저는 최근에 민첸스키 추기경(Card. Wyszynski)에 이름으로 1963년 6월에 우리에게 전해진 평화 운동이라는 문서를 읽었습니다. 이 문서는 우리에게 일컫기를:


여러분들은 생각건대 우리가 자유를 갖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갖고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 운동을 하고 있는 사제들은 공산주의자 정부의 친구들이고, 이들이 해외로 이러한 사상들을 전파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전파자들입니다. 이는 심지어 진보적인 프랑스 신문사에서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가 없습니다.

 

빈첸스키 추기경님이 자세한 사항을 알려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말씀하시기를, 공산주의에 의하여 조직화된 젊은이들의 그러한 조직에서, 아이들이 낚시 줄에 얽매인 채로 매 주일마다 미사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추기경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젊은이들이 미사에 가는가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제들에 의해 조직화된 성소(聖所)가 헬리콥터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왜? 왜 아이들이 미사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감시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왜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미사란 절대적으로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음을 알고 그러니, 그와 달리 미사 가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요? 공산주의에 있어서, 공산당과 모든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그와 반면에 미사는 천주님을 위해서 행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절대적으로 같은 것은 아니지요?

 

천주님을 위한 모든 것! 이것이 가톨릭 미사이며, 사탄의 프로그램인 공산당의 프로그램에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가 시험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우리 삶에서, 우리 지상적 생활에서 어려움들로 에워싸진 것을 잘 압니다. 우리 모두는 왜 우리가 고통 받고, 왜 이런 시련들과 슬픔들, 왜 이러한 가톨릭신자들이 그들의 침대에서 아파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 반응: 제대에서 계신 우리 주님의 고통과 내 고통을 결합하는 것, 그리고 구원의 사업에 참여하는 행동을 통해서 일치하는 것, 자신의 공로 및 천국에서 기쁨을 누리는 다른 영혼들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스며든 교회의 적들, 그리고 그들의 첫 목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가톨릭 미사를 파괴하고 부수는 것이 공의회 기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영국 가톨릭 신자인 마이클 데이비즈(Michael Davies)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2차 바티칸 공의회 에서의 개혁된 전례(새미사)가 영국 개신교 탄생에서 크랜머(Cranmer) 지도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과 참으로 밀접히 유사한지를 증명하는 탁월한 책을 남겼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또한 루터에 의해 만들어진 그 전례의 변혁의 역사를 읽는다면, 모든 선한 가톨릭에게는 새미사에서의 그 나타난 모습, 이제 막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똑같은 과정이 루터의 미사 개정과 똑같이 정확하게 새미사로 이전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통한 죄에 속죄, 그리고 희생이 미사의 특성인데 이런 것들이 새미사에서는 제거된 것입니다. 저들은 미사를 단순한 회중의 모임, 사제가 단지 주관하는 모임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미사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더 이상 대승리가 아닌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희생 제사가 더 이상 대승리가 아니게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단지 그들의 생활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그들은 단지 돈, 부, 쾌락, 위안, 그리고 이 세상의 쉬운 방법들만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만약에 이런 방법에 있어서 우리가 미사의 커다란 신비를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해야 할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생각건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군입니다.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의 의해 뒷받침된 십자군 운동,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에 의하여 지지받는 십자군, 천하무적의 반석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 십자군, 성총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근원, 이것이 바로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입니다.

    

여러분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콘(Ecône)의 신학교, 미국, 그리고 독일에 있는 젊은 신학생들은 왜 그들이 신학교에 들어온 것일까요? 거룩한 미사 때문에, 은총의 근원인 모든 시대의 거룩한 미사 때문에, 성신의 근원이요 그리스도 문명의 원천인 미사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불변성의 이와 같은 관념에 분명하게 바탕을 두고 있는 십자군, 희생 제사의 십자군, 이런 것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문명을 재창출하기 위해서 교회가 바라는 바처럼 그리스도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른 바 교회가 이때까지 해왔던 것이고, 같은 원리를 가지고, 미사의 희생 제사를 가지고, 같은 성사(聖事)와 같은 교의(敎義)와 같은 성경을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 왕국을 다시 세워야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이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나의 피의 열매를 잃지 않도록 하라, 내 갈보리의 십자가를 버리지 마라, 나의 희생을 저버리지 마라.”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성모 마리아는 여러분에게 또한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상태로 성모님의 성심이 칼에 찔린 성모님은 그와 동시에 천주 성자의 희생에 성모님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기쁨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여러분에게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라. 가톨릭인이 되어야한다.”


모든 이와 같은 세속적인 생각에 의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이 시대의 조류(潮流)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 세상에 죄는 우리를 죄를 짓게 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국을 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 십자가 안에서, 그 분의 십자가 안에서, 그 분의 희생 속에서 주님을 모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건물에 있는 여러 젊은이들에게 부탁하노니, 우리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이와 같은 일들을 그들에게 설명하도록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간택이 될 수 있을 까는 모르지만 그들이 성소(聖召)를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그들이 사제가 되고 수도사와 수녀가 되고 또는 혼배성사에 의하여 결혼할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혼인의 위대성을 이해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스스로가 혼인에 대해서 가치가 있도록, 그것은 바로 순결과 정결,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시키도록 합시다. 세상을 집어삼키는 모든 종류의 열정에 의해 그들이 휩쓸려 나가지 않도록 하게 합시다. 진정한 이상의 열망을 불어 넣는 젊은이들의 십자가 길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 가족을 위해 십자군이 됩시다. 여기 게 계시는 여러분의 그리스도 가족들은 예수님의 가슴의 성체에 그리고 마리아의 순결한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에 여러분 자신들을 봉헌합니다. 오, 가족 안에서 함께 기도합시다! 저는 여러분께서 이미 그렇게 하신 가운데 있는 많은 자들을 압니다, 그러나 아마 열정으로 그렇게 하는 더 많은 여러분들이 항상 계실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진정으로 우리 가정 안에서 통치하시도록 하십시오!

 

나는 여러분께 자녀들이 여러분의 가족에 들어가려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리시기를 빕니다. 선한 천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주실 수 있는 것 중에서 많은 아이들을 갖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대가족은 가톨릭교회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대가족들이 교회의 번창과 기쁨이던 것이고 모든 캐나다에서, 모든 네덜란드에서, 모든 스위스에서, 모든 프랑스에서 그래왔습니다. 천국을 위해 선택받은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빌건대 그러므로 천주님의 선물들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가정을 파괴하는, 건강을 망치는, 가정을 망치는, 이혼을 조장하는 언어도단의 구호(口號) 같은 것들을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사는 이 퇴보하고 있는 교회 상황에서, 고난의 시간에서 가능할 때마다 본래 상태의 영토로 되돌리길 기원합니다. 그 땅은 건강합니다; 그 땅은 어떤 이에게 천주님을 알도록 가르칩니다; 그 땅은 어떤 이에게 천주님을 끌어 당깁니다; 그것은 과격한 성미와 성격을 진정시키고 아이들이 일하도록 권장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십시오. 만약 학교들이 여러분의 아이들을 오염시킨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염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입니까? 학교에서 이러한 혐오스러운 성적(性的) 관습을 가르치는 자들에게요? 이른바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학교는 수녀들에 의해 운영이 되는데, 그곳에서는 그들이 그저 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나요? 실제에 있어서는, 저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가장 연약한 어린이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참고 있습니까?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불쌍하게 만들기 보다는 – 세상이 소유한 이러한 분명한 학문으로부터 아이들이 제거되고 – 저들이 훌륭한 아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자녀들은, 저들의 거룩한 종교를 사랑해야 되고, 기도를 사랑해야 하고, 일하는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좋은 천주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또한 가족들의 가장을 위한 십자군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가정의 머리이고, 나라에 있어서 엄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의하여 침략 받게 놔둘 그럴 권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참된 가톨릭 신자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가톨릭 신앙을 가진 시장(市長)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선거할 때에 싸워야합니다. 가톨릭의 대리자가 되기 위해선, 그래서 프랑스가 마침내 다시 가톨릭 문명을 회복해야 됩니다. 그것은 단지 정책이 아니라, 훌륭한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고, 성인들에 의하여 수행된 것과 같은 그런 운동이며, 아틸라(Attila)를 반대했던 교황들이 수행한 일이고 클로비스(Clovis)를 회두시킨 성 레미(St. Remy)가 수행한 일이며 개신교로부터 프랑스를 구조한 잔 다르크(Joan of Arc)가 수행한 일입니다. 만약에 잔 다르크가 프랑스에서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우리가 개신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가톨릭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잔 다르크를 일으켜 세워서 17년 동안 영국으로부터 프랑스를 구출했습니다. 이것 역시, 정치적인 운동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정책이 것이 우리가 원하는 정책입니다. 바로 몇 달 전 여러분들은 크리스도 빈칫, 크리스도 렌냣, 크리스도 임페랏(Christus vincit, Christus regnat, Christus imperat) 이라는 찬미가를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찬미가는 오로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 자신이 모임을 조직하고, 프랑스가 다시 그리스도 문명이 되도록,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오도록, 그런 목표를 가지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말하길, 미사에 거룩한 희생 제사에서 나오는 은총은 은총이 아니고, 천주께서는 진정한 천주가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서정시나 찬미가에 불과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실현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반드시 전능하신 우리 주의 은총 안에서 자신감을 가져야합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이 은총이 효과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에서도 잘 은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의 가장으로서 이와 같은 현실을 깨달을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다가올 세대를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친애하는 여러분,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신 성직자 여러분,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이 십자군을 펼치기 위해서 심오한 사제 연합을 반드시 만들어야합니다. 우리 주 예수의 통치를 위해서 이 십자군을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거룩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천주님과 분명함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서 행동하는 이 거룩함, 이 은총, 여러분께서 드릴 수 있는 거룩한 미사에 의해서, 그리고 성체성사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은총, 여러분 홀로 봉헌할 수 있는 은총을 쫓아야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님들, 저는 나의 언약을 읽는 것을 통해서 끝마치고자 합니다, 언약은 매우 심오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언약이 우리 주님의 언약의 메아리가 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Novi et aeterni testamenti’는 성혈의 축성할 때에서의 이러한 말들을 암송하는 성직자입니다. Hic est enim calix Sanguinis mei: novi et aeterni testamenti.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전통은, 이것은 예수의 희생, 예수의 성혈,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 문명의 발효, 그리고 모든 그것은 구원을 위해선 필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다음처럼 말하고자 합니다. 가장 복되신 삼위일체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헌신을 위하여, 교회의 사랑을 위하여, 교황께 대한 사랑을 위하여, 주교와 성직자와 모든 믿음의 사랑을 위하여,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언약을 간직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간직하십시오! 모든 미사 시간에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문명이 다시 번영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문명이 아니라 천국인 가톨릭 도시에 인도하는 문명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톨릭 도시는 천국의 가톨릭 도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지킴으로써, 이러한 미사의 희생 제사를 지킴으로써, 예전에 죽은 자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베풀어진 이러한 미사는 종도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진 이 미사입니다.


잠시 후 제가 사제서품 당시 성작을 올릴 때의 한 말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제가 나의 사제서품 당시에 어떻게 말하는 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똑같은 성작 위에 50년 전에 제가 말했던 말 그 위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말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전임자들, 교황들, 주교들, 그리고 우리의 교사가 되었던 사제들이 우리를 가르쳤던 것과 같이 똑같은 축성경(祝聖經)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고, 영혼들이 천국에 계신 좋으신 모친의 중재를 통하여 영혼들이 구원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