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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교황 바오로 6세 알현(1976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0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교황 바오로 6세 알현(1976년) 
( June 18, 2018. By fsspx.news)


처와 상태


2018년 5월 16일 출간된 몬시뇰 사피엔자의 책과 더불어 우리는 1976년 9월 11일 카스텔 간돌포에서 있었던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교황 바오로 6세 사이의 유명한 알현을 재구성할 두 출처를 갖고 있다.


첫 번째 출처는 르페브르 대주교 자신이 1976년 9월 12일과 18일에 에콘의 신학생들에게 즉시 말했던 이야기다. 이 기록들은 티시에 드 말르레 주교가 저술한 권위있는 전기의 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 출처는 지금까지 봉인되어 있던 것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회의록이다. 알현 때 대화들은 국무장관 대리 베넬리 추기경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타이핑된 8페이지 분량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두 대담은 즉각적이었던 반면, 회의 직후 신학생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알현의 모든 순간에 대한 세부 사항은 제공하지 않았다.


베넬리 추기경이 작성한 말한 그대로의 기술은 사실에 기반한 사적 알현의 기록으로 교황과 그의 협력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며 우선한다. 저자는 세심하게 대화의 시작과(10:27) 끝을(11:05) 기록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서론적 비난


두 출처가 기록하는 대로 회의의 시작은 성비오10세회(SSPX)의 창립자에 대한 분명한 비난이었다. 대주교는 나중에 그의 신학생들에게 교황님의 책망을 “폭풍”이라고 정리했다: “대주교님은 나를 현대주의자이며 개신교인으로 단죄했소. 이는 참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베넬리 추기경의 문자적 기록은 이 규탄이 얼마나 강했는가 보여준다: 바오로 6세는 말했다. “나는 내 앞에 형제요, 아들이며, 친구를 찾고 싶습니다.” 그는 계속했다. “불행하게도, 대주교님이 취한 입장은 반-교황적입니다…. 말, 행동, 그리고 일반적인 태도 모든 면에서 지나칩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계속하셨다.


“여기서 위태로운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교황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앙의 최고 보증인인 교황이 신앙에 불충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아마 역사상 처음일 것입니다. 당신은 교황이 신앙이 없으며, 믿지도 않고, 현대주의자라는 등으로 전 세계에 말했습니다! 물론 나 자신은 겸손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를 끔찍한 상황에 두었습니다. 당신은 극도로 심각한 행동들을 전 세계의 눈앞에서 저질렀소.”


르페브르 대주교의 답변: 교회가 처한 상황에 찢겨버린 한 주교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의 몇몇 말이나 글이 적절치 못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대답했다. 그는 결코 교황의 인격을 공격하려던 의도가 아니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공의회 이후부터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사태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변화에 우리는 신앙을 잃을 위험에 처하든지 불순명의 인상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대주교는 덧붙였다. “저는 두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양심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인 주교가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전통수호) 운동을 시작한 이는 제가 아니라 상처를 받고 어떤 상황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신자들입니다. 저는 ‘전통주의자들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저는 벌어진 일에 상처받고 공의회 이전에 하던 것과 같이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주교입니다. 저는 정확하게 공의회 이전에 했던 대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한순간에 갑자기 성교회의 건전한 전통에 순명하는 사제들을 양성한다고 해서 단죄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황님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계속 설명하기를 허락하시며 듣기를 원했다.

르페브르 대주교: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은 제 2차 바티칸 세계 공의회 이후 전례, 종교자유, 사제 양성, 교회와 가톨릭 국가의 정부 간의 관계, 가톨릭과 개신교단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경향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촉진된 모든 일들이 어떻게 교회의 건전한 전통을 지키면서 가능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단체들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제게 그들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논쟁들과 중상모략과는 관계없이 르페브르 대주교는 대중매체에 의해 그의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개혁들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 조치들은 바오로 6세 교황이 친히 받아들이고 명하기로 4개월 전 추기경들에게 말했던 개혁들이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 개혁들의 뒷면에는, 위기에 처한 신앙이 있었다. 9월 11일 알현의 보고서는 분명하게 언급한다: 튈의 은퇴 주교(르페브르)는 산란해진 채 설명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저는 신앙에 따라, 신앙 안에서 사제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저는 신학생들 앞에서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상황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도복에 충실한 수도자들은 단죄받고 주교로부터 버려졌습니다. 반면 세속적으로 살면서 세속의 사람들처럼 행동한 이들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


교황은 교회의 현재 유효한 법인 공의회와 전통에 어긋나는 어떤 남용을 제거하기 위해 강하게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응했다.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전통에 대한 교회의 존중을 확인하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답하고자”하는 교황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책망했다. 교황님은 계속했다.


“우리는 첫 번째로 그런 과도한 것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가장 단호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치료책은 교회의 권위를 거역하는 데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그대에게 여러 번 적어 보냈지만 대주교님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의 반항적 반응과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동기가 된 막강한 어려움을 설명함으로써 이 생각을 구조화하려 했다. 그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여 도입된 가장 중요한 새로움인 종교 자유 주제를 꺼냈다. “우리가 공의회 문헌에서 읽는 내용은 전임 교황님들의 모든 말씀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6세는 세부사항까지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이 주제를 알현에서 다룰 수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대화자의 혼란에 주목하며 덧붙였다. “내가 대주교님께 염려하는 점은 혼돈입니다. 이것이 공의회에 대한 대주교님의 태도입니다.”


다시 한 번, 교황은 신앙과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일과 연관된 교의적(敎義的) 문제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반항적이고 불순명적으로 간주되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태도에 주목하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르페브르 대주교는 1975년 6월 29일 바오로 6세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덜 권위있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니케아 공의회보다 중요하다”고 써 보냈던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복종하지 않고 있었다.


이어지는 대화는 가장 크게 깨우침을 준다.


르페브르 대주교: “저는 공의회를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몇몇의 실행들을 거스를 뿐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 “공의회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대주교님은 모든 문헌들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그렇다면 우리는 공의회가 말하는 것과 교황님의 전임 교황님들께서 말씀하셨던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 “내가 말했듯이, 나는 당신의 혼란에 주목했습니다.”


분명히 합의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 대화는 심각하게 그의 동기를 설명하고자 하는 고위성직자와 깊숙한 논의는 배제하면서 그를 책망하는 교황성하 사이의 불통의 대화였다. 이것은 르페브르 대주교를 행동하게 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유였다.


복종에 대한 요청과 제안


에콘(Econe)의 주교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를 알현하며 교회의 상황에 상처받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이익이라도 구해주고자 뒷문을 찾았다.


“성하(聖下)께 간청이 있습니다. 주교들에게 신자들이 성당에서 공의회 이전에 하던 것처럼 기도 할 수 있도록 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허용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바오로 6세는 완고해졌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의 독립적인 행동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대인논증 방식으로 주장했다.

“공의회는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인정합니다. 저희는 이 원칙이 저희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성하께서 그리하신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성소(聖召)가 증가할 것입니다. 사제성소에 이끌리는 이들은 참된 신심으로 양성되기를 희망합니다. 교황 성하께서 오늘날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산란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쥐고 계십니다. 저는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도회성성에서 나온 누군가가 제 신학교를 감찰할 수 있으며 저는 더 이상 강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 안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신학생들을 그들이 일하게 될 교구에 배치하게끔 다른 주교님들과 합의할 수 있습니다. 성하께서 원하신다면 신학교를 위한 위원회가 아담(Adam) 주교의 승인 하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결론은 그의 발언으로 집약된다. “개인적으로 저는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와 고통받는 신자들을 충족시킬 해결책을 찾아야만 합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분명하게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어려움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서도 떨어져 전통이 교회 안에서 제 권리를 회복하며 신학교가 정규화되는 데 필요하다면 한 걸음 물러설 준비도 되어있었다. 하지만 바오로 6세 교황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어떤 손짓도 하지 않은 채 완전한 복종, 무조건 항복을 원했다.


교황께서는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아담 주교의 말을 되풀이하며 체계 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권고했다. 아담 주교는 스위스 주교회의의 명의로 교황께 르페브르 대주교의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우리에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어떻게 스스로 친교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소?”


교황 바오로 6세는 단단히 못을 박았다. “당신은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썼소. 나는 현대주의자 교황이오. 나는 세계공의회를 실현시킴으로써, 교회를 배신한 자요. 당신은 분명히 만일 그러하다면 나는 사임하고 당신을 불러들여 내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교회를 지도하게 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소!”


새롭게 몰아치려는 폭풍 앞에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명확한 사실을 놓고 논의하고자 했다. “교회의 위기가 눈앞에 있습니다.” 바오로 6세가 끼어들며 말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깊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주교님은 공공연한 불순명과 교황에 대한 반항으로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만남은 다시 격해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섬김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이 정당하게 판단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불평했다.

르페브르: “교회법이 당신을 단죄합니다.”  교황은 즉시 응수했다.

바오로 6세 교황: “대주교님은 자신이 교회에 일으킨 추문과 해악을 인지하고 있습니까? 알지 못합니까? 천주 앞에 이런 식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양심을 성찰하고 천주 앞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물어보십시오.”


보고에 따르면, 르페브르 대주교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우호적인 표시를 취해주십사 다시금 요청하며 대답했다. 그는 과거에 해오던 것을 했을 때 올 이익들에 기반하여 주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운동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저는 제 신학교에 영원히 갇혀 있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는 에콘에서 행하고 있는 탁월한 일과 참된 사제성소 양성에 관하여 말씀드렸다.

“사람들은 성 비오 10세회 사제들에게 접촉하고 (덕성이) 고양(高揚)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 감각을 지닌 젊은 남자들입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모든 곳에서 존경받았습니다. 다른 사제들은 더 이상 성직자의 복장을 입지 않고, 고해를 듣지 않으며,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선택했습니다. 성비오10세회 사제들인 이들이 우리가 원하던 사제들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다시 한 번 교회가 고통받는 악을 일으키는 위기를 말하고자 했다. 다원주의 논증이 실패했기 때문에 대주교는 교황님께 전례가 얼마나 방종한 창작의 대상이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성하께서는 프랑스에서 적어도 14개의 전문(Canon)이 감사기도(Eucharist prayer)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교황님은 즉시 응답했다. “아닙니다. 14개가 아닙니다. 아마 100개쯤…!” 교황님은 스스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대주교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남용들이 있지만 공의회는 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규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듯이, 나는 교정(矯正)이 필요한 곳을 교정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의회덕에 강한 영적 쇄신이 청년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신자들, 사제들, 주교들의 책임감이 증진되고 있다는 징표를 인정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르페브르 대주교는 긍정적 측면들이 있을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있었다. 르페브르: “저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교회를 세우는 데 협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식으로는 교회를 세우는 데 돕는 게 아닙니다.”


바오로 6세 교황: “대주교님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정면으로 교회와 교황과 공의회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공의회를 판단할 권한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공의회의 대부분은 대주교님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교황님은 알현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알현의 종료


바오로 6세 교황님은 겸손하게 르페브르 대주교의 질책을 받아들이며 그에게 혹독했다고 말했다. 교황님은 생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그것을 묵상하고 심판대를 염두에 두고 싶다고 했다. 교황님은 르페브르 대주교를 크게 치하하며 덧붙였다. “나는 대주교님의 공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의회에서 우리는 많은 부분에 동의했습니다….” “맞습니다.” 대주교가 응답했다.


응당 그러하듯, 마지막으로 성하의 말씀이 있었다. “내가 대주교님이 이교(열교)의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은 이해할 것입니다. 대주교님이 ‘개인적’이라고 여기는 이유일지라도 말입니다. 최근 발언들과 행동들을 돌아보겠다는 공적인 선언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온 세계가 대주교님이 교회를 분열시키거나 해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교황님은 ‘천주경’, ‘성모경’ 그리고 ‘임하소서 성신이여’를 함께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는 기도와 숙고 안에서 일치를 찾아야 합니다.”


해명들과 차이들


베넬리 추기경의 보고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설명과 주요 대목에서는 일치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몇몇은 지엽적인 사항들이다. 그때 막 지역 주교의 전면적인 박해를 받고 있던 교육에 종사하는 팡주의 예수 성명의 도미니코 수녀원을 방문했던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곳에서 수도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박해받은 사람들과 가장 불미스럽게 이탈하고도 격려 받은 이들에 대한 처우의 차이점을 언급하면서 분명히 그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옷을 입은 수녀들은 받아들여졌지만 제가 이틀 전에 본 평신도로 환원된 수녀들에게 주교는 다섯 차례나 수도복을 벗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비슷하게도, 영원한 교리와 서품 때 미사에 충실한 사제들은 거리로 내쫓겼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사제같지 않은 이들은 받아들여졌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에 따르면 그는 분명하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2개 문헌, 「인간존엄성」(Dignitatis Humanae: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과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에 서명을 거부했다. 교황님이 그에게 왜 종교 자유에 대한 교리를 공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따르지 않는지 물었을 때, 르페브르 대주교는 역대 교황님들을 인용했다. “이것(종교자유에 관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등의 교황님들이 말씀하신 것과 모순됩니다.” 교황께서 끼어들며, “그건 미뤄둡시다! 우리는 신학 논쟁을 하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르페브르 대주교는 속으로 생각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베넬리 추기경의 보고서는 바오로 6세 교황이 르페브르 대주교가 신학생들에게 에콘에서 서명하게 한다며 날카롭게 비난했던 “교황을 반대하는 맹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알현 다음날 대화의 일부로서 르페브르 대주교가 말했던 내용이 남아있다.


바오로 6세 교황: “대주교님은 공의회를 거스를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교회에 말썽쟁이일 뿐이오. 당신이 교회를 파괴했소. 대주교님이 그리스도인들을 교황과 공의회를 거스르도록 선동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양심이 그대를 단죄하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르페브르 대주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 “당신은 무책임하군요.”

르페브르 대주교: “저는 교회(사명)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 “그건 사실이 아니오. 당신은 교황을 거스르는 사제들을 만들고 있소. 당신은 그들에게 교황을 거스르는 맹세에 서명하게 했소.”

르페브르 대주교: “제가 무얼 한다고요?” (이 증거없는 혐의를 듣자마자 두 손을 머리에 댔다) 나는 그 자세로 말씀드렸다. “공경하올 교황성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그들을 교황을 거스르는 맹세에 서명하게 했다고요!? 제게 그 ‘맹세’의 사본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르페브르 대주교는 매우 놀랐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비요 추기경 – 아마도 이 사람일 것이다 – 의 말을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바오로 6세 교황: “당신은 교황을 단죄했소! 내게 어떤 명령을 하겠소? 내가 무엇을 할까요? 당장 사임하고 대주교님이 내 자리를 대신하게 할까요?”

르페브르 대주교: “아! (머리를 두 손에 대며) 공경하올 교황성하, 그리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성하께서 해결책을 쥐고 계십니다. 주교님들에게 오직 한 가지면 됩니다: ‘전통, 미사, 성사 그리고 영원한 교리를 지키는 신자들의 단체를 이해로써 환영하고, 흠숭의 공간을 제공하라.’ 이 단체들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하께서는 그들 안에서 성소자들을 찾으실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은 교회 안에서 최고가 될 것입니다. 주교님들도 이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 신학교를 유지하게 해 주십시오. 제게 이 전통의 실험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결론 : 오늘날의 교훈


"1976년의 무더위" 속의 극적인 날들은 역사상 매우 시사적인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를 휩쓸었던 혁명의 바람을 거스른 르페브르 대주교의 심각한 고발을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가톨릭 미사와 개신교의 예배를 혼합시키려는 전례적인 개혁, 도처의 에큐메니즘, 가장 믿기 힘든 실험들, 인원수와 성소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킨 사제 생활과 수도회들의 세속적 적응,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비정통적 교리들, 모든 영역에서의 남용들: 교회의 상황은 빠르게 나빠졌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대응, 교회가 언제나 해 오던 것에 충실한 그의 사제 양성, 미래를 준비하고 전통의 기반 위에 세움으로써 교회를 섬기려는 그의 지향, 오류들에 대한 그의 강한 반대는 분명하게 이해되지 못했다.


분명하고도 진정 역설적인 사실은 여기저기서 대화하던 바오로 6세가 가장 엄격한 복종과 순명을 명령했던 반면 대화를 제안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이는 르페브르 대주교라는 점이다.


베넬리 추기경의 원고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바오로 6세 교황님이 르페브르 대주교가 신학생들에게 하도록 했을 것으로 확신했던 맹세에 관한 이야기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티시에 드 말르레 주교는 말했다. “이 맹세는 물론이고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교황님이 대주교님에 대한 중상모략을 들어왔음이 교황 바오로 6세가 느낀 개인적인 모욕감을 설명해 줍니다.” 이것은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이 왜 스스로 잔소리를 들으면 다시 제자리로 오게 될 야망과 앙심에 휘둘린 반항적이고 선동적인 주교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설명한다. 보고된 바와 같이 회의는 그의 분노가 결국 식었다는 점과 신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순명의 행위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볼 수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사람보다 천주님께 순종해야 하지 않는가? (종도행전 5:29)


돌아보자면, 바오로 6세 교황이 성 비오 5세의 미사(전통미사)를 금하는 언급은 1976년 추기경 회의에서 표현되었고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전통 예식의 로마 미사 경본은 결코 폐지된 적이 없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의 별 소용없는 또 다른 측면은 그의 전임자들처럼 교황 바오로 6세는 오직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사업에 관해서, 그리고 그것을 과시하는 이야기만 했다. 마치 교회가 가르치고 전할 2천년의 지혜, 교리, 그리고 교도권의 가르침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충성스럽게 전통의 실험을 시도하기 위해서, 성 비오 10세회(SSPX)를 도구로 사용하여 교회를 확립하는 것, 그것이 베드로의 후계자에 대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진정한 제안이었다. 억압하거나 혁명과 합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위자들 (전 세계의 주교들)에게 이것이 교회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임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알현으로 말하자면 결론은 없었다. 교황께서는 르페브르 대주교가 공개적으로 그의 입장을 철회하기를 기대했고, 에콘의 주교는 교황께 대한 불순명과 신앙, 미사와 성사들에 충실해야 할 의무 사이에서 상처받은 가톨릭 신자들을 향한 손길을 희망했다.


결론없는 알현


긴장은 완화되었다. 1976년 9월 14일, 프랑스의 텔레비전에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교황님께 말씀드렸다.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었고 얼음은 깨졌습니다. … 이는 말하자면 첫 번째 협상의 대화였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징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다른 실험들이 허용되는 것처럼 우리도 허용되는 것을요…. 교황님께서는 제게 이 문제를 성청에서 상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앞으로도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니겠지만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갈라놓았던 모든 시험 끝에 우리는 아마 48시간 이내에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교(열교schism)의 의혹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속하고 있을 뿐입니다교황님께서 이전 교황님들과 여전히 일치하고 계신 이상, 우리는 완전한 일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들로 들어갈 때, 우리는 이 변화들이 참으로 전통을 지키는 것인지 식별해야 합니다.”


9월 16일, 성 비오 10세회의 장상은 교황 성하께 알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는 일치되어 있습니다. - 교회를 해체시키는 모든 남용들의 종식을 보고자하는 강한 열망입니다. 교회가 참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가 얼마나 교황 성하의 권위아래 성하께 협력하기를 염원하고 있는지요!”


10월 11일 바오로 6세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며 그를 “반역자”라며 비난했다. 교회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프랑스인 주교의 강한 열망에 주목하며 교황은 태도의 변화 없이 그를 강하게 매질했다.


바오로 6세 교황: “당신은 마치 교계의 일치를 거슬러 물의를 일으키는 당신의 말과 표현들을 잊은 듯 말하는군요. - 당신이 절대로 철회하지 않았던 그 말과 표현들 말입니다. 당신은 심지어 성무 정지의 원인에 대해서도 회개를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성청의 권위를 받아들인다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당신 문제의 근본입니다 – 정당한 권위가 정지할 것을 명한 당신의 개인적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요 노선은 그 앞으로도 수년 동안 계속되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미사를 수호하고 신앙을 위해 싸우며 가톨릭 사제직을 지키는 사제양성을 고수하는 동안, 교계 권위는 “보류도 없고 무조건적인 순명의 진정한 (위계상의) 교계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일치, 맞다. 하지만 진리 안에서의 일치가 더 중요하다.


크리스티앙 투베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