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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님의 무한한 자비- 성신강림 후 제 21주일(2015-10-1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25





성신강림 후 제21주일(2015-10-18)

천주님의 무한한 자비  바로가기 미사사진


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에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2015년 10월 18일 성신강림 후  제21주일입니다.

 

“천국은 마치 한 임금이 그 종에게 헴을 받으려함과 같으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비유에 따라서 천주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자비하심에 대해  같이 묵상합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주님께서 비유 하시는가? 비유의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특히 우리는 비유에 따르면 어떤 입장에 있느냐? 우리는 주님에게 어떤 자비를 받는가를 묵상합시다. 마지막에 우리 결심을 생각하고 주님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묵상합시다.
 
하나는 오늘 비유는 횟수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성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쭤 봤습니다. “주여! 내 형제가 나에게 득죄하는 것을 나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되리이까? 일곱 번하면 되오리까?” 성 베드로는 '일곱 번 하면  관대하고  괜찮지 않을까? 다른 사람은 세 번 정도 하는데 또한 칠은 완전한 숫자이니 일곱번 하면 최고한 용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에게 말씀하되 “나 너에게 일곱 번이라 말하지 아니하고,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 하노라” 교부에 따르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은 즉 무한히, 한도 없이, 항상, 끝없이, 언제나 용서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계속, 항상'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를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로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얼마나 자비하신가, 우리를 얼마나 용서하시는가를 보이면서 똑같이 하라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쉽게 당신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제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자비하신가?' 입니다. 우리는 같이 임금의 착하심과 그 임금이 어떻게 종을 용서 하는가를 봅시다. 비유에 따르면 스승, 가장, 임금은 다 천주입니다. 종, 아들들, 신하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천주로부터 수많은, 무한한 성총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재능도 받고 축성도 받고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것을 받은 우리는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준 것을 다 갚으라, 보고해라. 너희는 자기 의무에 얼마나 충실했느냐?" 하고 물을 때가 올 겁입니다. 이것은 죽을 때요. 최후의 심판 때  우리는 다 보고해야 합니다.


비유를 본다면 헴을 받으려 할 때 왕께 만금 빚을 가진 종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만금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명령하고 ‘몸과 아내와 자식과 가진바 모든 것을 팔아서 갚게 해라.’ 했습니다.


만금이라는 것은 번역으로 일 만 달란트이며 1달란트는 사람이 1년간 열심히 일하고  얻을 수 있는 몫입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있는 돈이 1금, 1달란트이고 만금이라면 1만년 동안에 열심히 노예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 만금을 갚아야 하지만 집, 아내, 자식 가지 것을 다 팔아도 만금을 만들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도 하나씩 하나씩 대죄를 쌓아간다면 무한한 빚이 됩니다. 대죄 하나라도 주님께 갚을 수 없습니다. 대죄 하나라도 있으면 1만금, 1만 달란트 보다 큰 채무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갚을 수 없습니다.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만이 채무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사악을 본다면 누가 갚을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종이 말합니다. 이 종은 그래도 주님의 자비하신 것을 잘 알고, 주님의 착함을 믿었습니다. 주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 부탁합니다. "잠깐 기다립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조금 참아주십시오." 그러나 어떻게 열심히 해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갚을 테니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그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임금은 그 종이 자기를 신뢰하고 자비함을 믿고 그렇게 구하기 때문에 '알았다며  불쌍히 여기시고 빚을 다 탕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천주의 사랑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를 용서하고, 항상 긍련히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용서하십니다. 그냥 용서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당신 아들의 성혈을 다 뿌리시고, 당신의 몸을 영성체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맨손이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자비하심을 믿고 주님 앞에 가서 "주님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 라고 합시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바리사이의 기도처럼 '주님나는 1주일 동안 단식하고 십일조를 다하고 나쁜 사람이 아니고 착한일 하고 있으니 네게 감사하나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천주여, 나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죄인 여인을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을 생각합시다. 그 여인은 남편이 있었지만 떠나서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를 바꾸고 또 바꾸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고 "남편을 불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말하길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잘 말했다. 너는 남편이 없다. 너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는 다섯 번째 남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인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무라지 않고 부드럽게 사마리아 여인이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좋은 방법으로 뉘우치도록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도중에 잡아서 "모세 법에 따르면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죄가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항상 자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도 하셨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자  그 아버지는 "아들아 어서 오라. 반지를 끼라. 새 옷을 입으라. 새신을 신으라." 하면서 야단을 치지 않고 모든 좋은 것을 주면서 용서 하였습니다.


종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부활 후 나타나셔서 '너희는 왜 나를 배신했느냐.'라고 나무라지  않고 자비하셨습니다.


이토록 자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믿고 우리가 얼마나 큰 죄를 범해도 다시 예수 성심께 갑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불쌍한 상태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죄를 범하게 됐는가도 잘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수고하는 자와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내 멍에를 매며 또 내 마음이 양선하고 겸손함을 내게 배우라. 이에 너희 영혼에 평안함을 얻으리라. 대개 멍에는 내 짐은 가벼우니라." 최후의 만찬 때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진짓 포도나무요, 내 성부는 포도 농부시니 너희는 내게 머물러라 대개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함 일새라."


우리는 주님의 자비하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모든 은혜, 자비를 천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떤 결심을 세워야 합니까? 하나는 만약에 우리가 죄를 범한다면, 우리가 약하다면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을 믿고 예수성심께로 갑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면 할수록 더 우리에게 자비하십니다. 우리가 불쌍하면 할수록 더 자비하십니다.


둘째는 이렇게 공로를 없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매일 매일 예수님을 배신하고 만금 빚을 더욱 더 만드는 우리를 항상 용서하시고 더욱더 큰 성총을 베푸시는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생각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심의 환희의 신비, 고통신비, 영광의 신비의 묵주기도를 자주 묵상합시다. 특히 묵주기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자비하신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월 달은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고 예수님께 우리가 받은 자비를 묵상합시다.
 
마지막에 아버지 성부로부터 다 용서받고 무한한 자비를 받은 우리는 이웃사람에 형제 친구들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이웃사람을 애긍합시다. "애긍하는 자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애긍함을 받을 것이요." 


“천국은 마치 한 임금이 그 종에게 헴을 받으려 함과 같으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