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성체성사와 십자가의 열매/The Eucharist & the Fruits of the Cros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1

 


성체성사와 십자가의 열매 -성 목요일(2013-03-28)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성 삼일 간 묵상의 시작이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와 사제직를 세우신 날이며, 우리 주님이 수난을 받는 시작일입니다. 제가 지난 번 방문한 그 이후, 성 교회는 새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했습니다. 그 분의 첫 소박한 모습은 매우 좋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세속을 시인하는 것이요, … 우리가 십자가 없이 세상을 살아갔을 때, 십자가 없이 일을 도모했을 때,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주장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며, 세속적인 사람에 속하게 되며, 우리가 비록, 주교, 사제. 추기경, 교황일지라도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정말로 반가운 내용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는 그 곳에는 아주 많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적들” 가운데, “아주 소수의 그리스도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그들에 대해 말씀하시길  ”그들은 배(腹)를 신(神)같이 위하고 – 자기 배만 채우고 - 그들의 최후는 멸망이로다. 수치스런 얼을 자랑으로 여기며 지상의 것 만을 탐하느니라.”(필립피 3:19)

 

그러나 새 교황의 전례는 불행하게도 천주 흠숭(欽崇)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의 부족을 드러냈는데 이 경외심 부족은 전형적인 현대 전례의 모습입니다. 교황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성 교회에서 조차, 그리스도 십자가의 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십자가를 사랑합니까? 우리 주님께 드리는 작은 어떤 일을 할 때, 작은 고통을 희생으로써 기꺼이 바칩니까? 작은 일 뿐만 아니라, 큰 일도 희생으로 바칩니까?

 

욥 성인께서 하신 것처럼, 천주님의 손에서 나오는 일을 받아드립니까? 악마가 모든 재산을 빼앗고 해치려는 허락을 받았을 때, 심지어 열 명의 자녀들을 죽이고자 했을 때, 욥 성인은 말씀하시길 “주시는 이도 주님이시오, 뺏는 이도 주님이시라.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욥1:21) 성서가 모든 이 같은 해악을 끼치는 악마를 묘사할 때 “주께서 뺏는다”라고 욥 성인께서  말씀하신 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욥 성인이 악마를 능가하는 것, 즉, 천주님의 허락을 보는 것이요, 천주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좋으신 주님께서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을 제외하고,  주께서는 악마가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 성인은 천주님 손길에서 나오는 이 모든 시련들을 받아드렸습니다. 천주께서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하시며,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이 고통으로부터 선을 끌어내지 않고는 이러한 고통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성인과 같은 신뢰를 가지고 고통을 받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고통을 받아드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함께 하고 일치 시켜야 합니다. 구원의 신비라는 핵심을 여기서 다루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성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시길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위하여 죽으셨음은 이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 더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만인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고자 하심이었도다.“(코린도  후서 5:15) 그리고 티모디인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티모디 전서2:6)  히브리인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히브리서 2:9)

 

그러나 모든 이들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수 십 번 우리를 상기시키듯이, 우리 주님께서 친히 자주 경고하셨듯이 어떤 이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을 위해 죽으셨는데 왜 실제적으로는 일부만이 천국에 가는 걸까요? 그 분의 죽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에, 우리는 반드시 그 분의 희생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세례에 대해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성사의 목적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저의 죽음 안에 받은 바, (영)세로 말미암아 저와 함께 묻혔노라. 대저 이는 그리스도 성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도 또한 (재생하여)새 영을 가지고 거닐으시길 위함이니라.“(로마 6:4) 그래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게 합니다. 그리고 성 바오로께서 로마인들에게 좀 더 말씀하시길”의자(義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 “(로마 8:16-17) 여기서 핵심이 되는 말씀은 “주님과 함께”인데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성 주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따르기 위함이요, 그 분의 부활에 공유하길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함이니, 성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질지니라.“(필립피 2:5) 그리고 “정신”은 성 바오로께서 권면하신 영혼의 축적물입니다.


“천주의 형체 안에 계신 저는 천주와 더불어 같으심을 이기적으로 확보하여야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자 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낮추셨느니라. 또한 겉으로는 사람과 같이 보이시고,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 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 상에 죽기까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당신을 낮추셨느니라).“(필립피2:6-8)

 

우리 주님은 반란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반란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께서는 지극히 부당한 판결 조차 도 승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장상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설령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장상에게 복종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반란을 선동하는 자들만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 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겸손과 순명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러므로 천주 저를 높이시며 모든 이름 위에 초월한 이름을 저에게 주사“(필립피2:9). 진실로 “대저 천주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심일새니라.“(베드로 전서 5:5) 그리고 말씀하시길 “천주의 은혜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받는)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 6:23)


이 성 주간 동안, 저는 여러분에게 네 복음서에 각각 나오는 수난에 관한 성경구절을 조심스럽게 읽어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바입니다. 마테오, 마가, 루까에서의 부활에 대한 마지막 장, 그리고 수난에 대한 이전의 두 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성 요한에 있어 부활에 대한 끝머리 부분의 두 장, 수난에 관한 그 이전의 두 장에 관련이 있으니 이것은 단지 묵상이 아니라, 자기 반성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모습, 주님 몸에 난 상처의 외관을 사랑스런 모습으로 바라본 것 뿐만 아니라 주님의 영혼 내부를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중요시하며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그 분의 생각은 무엇이며, 그 분의 느낌은 무엇이고,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지극히 매서운 고통을 받아드리고 감내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성 어거스틴께서 수난 기간 몇 칠 전의 성무일도 조과(朝課) 강론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받으시는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신 것이 아니고, 당신의 온 몸을 그들에게 주시면서 그 분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관심을 갖으셨으니, 이는 그들의 구원 때문이라: ”성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대개 저들이 그 행하는 바를 알지 못함이니라.“(루까23:34)


우리가 알도록 하시는 데: “그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으심이니라.“(갈라디아 2:22) 천주 성자 뿐만 아니라 성부께서도 또한 그러하시니, “당신 친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 주신 자시니,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않으시리요?“(로마 8:32) 또한 성신께서도 친히 보편적 사랑의 정신이시니, 성신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는(신경)"보편적 사랑의 정신 그 자체이십니다.


왜 주님께서 고통을 받으셔야 했나요? 이는 우리의 죄가 처벌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며, 우리 죄를 그 분께서 친히 속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깊이 천주님께 상처가 되었는 지 가르쳐줍니다. 그 분이 무한한 행복이기에 그 분 안에서가 아니라, 죄로 몹시 상처받으신 우리를 위한 그 분 사랑 안에서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고자 원하심이니, 우리가 거룩한 삶 속에서 살아계신 천주님을 모시기 위함입니다. 죄악을 혐오하도록 합시다. 어떠한 비용을 치룰지라도 죄악을 피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께서 오늘날 받고 있는, 고마워하지 않는 모든 것을 인하여 그 분을 위로하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끕시다.


그 어느 누구도 성모님만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에 깊이 침투한 이는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주님의 고통에 더 “함께 동참한 사람”은 없으며, 지금 성모님은 주님의 영광 속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십자가 아래에 제일 먼저 계셨고, 예수께 가장 가까이 계시고, 그 분의 희생에 밀착해 있고, 주님이 주시는 고통과 함께 하는 성모님만큼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서 계신 분은 없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님은 수난의 십자가 아래에 계신 연민의 성모님께 위대한 봉헌을 하셨습니다. 대주교께서는 성모님을 우리 수녀회의 후원자로 정하셨고, 주께서 십자가 상에서 몸을 바치시듯 성모님께서 우리 사제직의 모후(母后)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모님은 또한 최후의 만찬 직전, 그날 사제 서품을 받은 성 요한의, 새로운 사제의 모후이십니다. 연민의 성모께서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풍성한 열매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합시다.


십자가의 열매는 거룩한 성체입니다. 가장 극심한 수난에서 나오는 가장 달콤한 열매입니다. 어느 종교에도 이와 유사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은 천주께서 의도하신 것과 동등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어왔던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친밀하게 천주님과 이곳에서 일치되도록 실현하는 것이 천주님의 방식인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바로 십자가 희생의 열매요, 희생 미사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 분은 ‘천주님의 어린 양’이시고 세상으로부터 죄를 지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한 성체, 십자가의 열매, 생명의 나무 안에 계신 주님을 묵상하도록 합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하리니, 대저 내 살은 진짓 먹을 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게 거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요왕6:55-57)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


 

The Eucharist & the Fruits of the Cross


My dear Brethren,
Today is the beginning of the Sacred Triduum, the day of the institution of the Most Holy Eucharist and of the Holy Priesthood, the beginning of the Passion of Our Lord.


Since my last visit, the Church now has a new pope, Pope Francis. His first homily was quite good: “When we do not profess Jesus Christ, we profess the worldliness of the devil, a demonic worldliness...  When we journey without the Cross, when we build without the Cross, when we profess Christ without the Cross, we are not disciples of the Lord, we are worldly: we may be bishops, priests, cardinals, popes, but not disciples of the Lord.” These words are indeed most welcome: we need to hear such words today, where so few lovers of the Cross of Christ are among many “enemies of the Cross of Christ”. St Paul says of them: “their god is their belly; their end is destruction; and their glory is in their shame; who mind earthly things” (Phil. 3:19). But the new Pope’s liturgies unfortunately lack of esteem for the beauty of the Divine Worship; that lack of esteem is typical of modern clergy. Let us pray for him.


Unfortunately even in the Church today, there are many enemies of the Cross of Christ. Are we lovers of the Cross? Do we welcome the sacrifices, the little sufferings as an occasion of something to offer to Our Lord? And not only the little sufferings,  but even sometimes the big ones? Do we accept them from God’s hands, as the holy man Job did? Remember when the devil had asked permission to hurt him in all his possession, even going so far as to kill his ten children, Job said: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th taken away: as it hath pleased the Lord so is it done: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Job 1:21). It is amazing to see Job saying that “the Lord hath taken away” when the Scripture had just described the devil causing all this damage. The reason is that Job sees beyond the devil, he sees the Divine Permission, and knows that the devil can do nothing without God’s permission, and that God does not permit the devil to do any harm except so that He – the Good Lord – may draw good out of that evil. So Job received these sufferings from the hands of God. And this is the way we should always receive them, with the same confidence that God is in full control, God knows our sufferings, and He will not allow such suffering without drawing good out of it.


Moreover we should not only accept our sufferings, but unite them with Christ’s offering, with Christ’s sacrifice. We touch here there very heart of the mystery of Redemption. Christ died for all, St Paul says: “Christ died for all, so that they also who live, may not now live to themselves, but unto him who died for them, and rose again” (2 Cor. 5:15). And he says the same to Timothy (1 Tim. 2:6) and to the Hebrews (Heb. 2:9). Yet not every man will go to Heaven: some will go to Hell, as the Scriptures remind us many times, and Our Lord Himself warned us very often. Why is this, that Christ having died for all, not all actually go to Heaven? Because for His death to benefit us, we must be united with His Sacrifice: this is the purpose of the Sacraments, as St Paul says about Baptism: “For we are buried together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that as Christ is risen from the dead by the glory of the Father, so we also may walk in newness of life” (Rom. 6:4). Thus Baptism conforms us to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And St Paul says a little further to the Romans: “we are the sons of God. And if sons, heirs also; heirs indeed of God, and joint heirs with Christ: yet so, if we suffer with him, that we may be also glorified with him” (Rom. 8:16-17). The key word here is “with Him”: this is the whole Christian life, “with Christ”.


So the great effort of all this holy week is to conform ourselves with the death of Christ, so as to deserve to share in His Resurrection, as St Paul says: “For let this mind be in you,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Phil. 2:5); and what “mind”, what disposition of soul does St Paul recommend: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But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servant, being made in the likeness of men, and in habit found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ecoming obedient unto death, even to the death of the cross.” (Phil. 2:6-8). Our Lord is not a rebel; Our Lord does not promote rebellion; Our Lord even submitted to most unjust judges. How much more ought we to obey our good superiors, even if they are imperfect and make some mistakes! Those who preach rebellion do not preach Our Lord Jesus Christ crucified!


And what are the fruit of this humility and obedience? “For which cause God also hath exalted him, and hath given him a name which is above all names” (Phil. 2:9). Truly “God resists the proud, but to the humble He gives His grace” (1st Peter 5:5), and “the grace of God is everlasting life” (Rom. 6:23)!


During this Holy Week, I strongly recommend you to read carefully the passages on the Passion in each of the four Gospels: the last chapter of Matthew Mark and Luke are on the Resurrection, and the two previous ones are on the Passion; for St John he has two chapters at the end on the Resurrection, and the previous two are on the Passion. This should be done not just as a meditation, but as a contemplation: a loving look at Our Lord Jesus Christ, a loving look not only on the outside (what He suffered in His body), but most importantly a loving look inside His Soul: what were His thoughts? What were His feelings? What were His great love, for which sake He accepted and offered so much sufferings?


St Augustine told us, a few days ago in the sermon at Matins, that during His Passion, Our Lord did not pay attention so much to those by whom He was suffering, but to those for whom His was suffering, offering His whole self for them, for their salvation: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Lk. 23:34).


And St Paul let us discover these thoughts of Christ during His Passion: “And I live, now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at I live now in the flesh: I live in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delivered himself for me” (Gal. 2:20). Not only did the Son love us, the Father too: “He that spared not even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up for us all, how hath he not also, with him, given us all things?” (Rom. 8:32). And the Holy Ghost is himself that common Spirit of Love “that proceedeth from the Father and the Son” (Credo).

But why did He have to suffer? Because our sins de served punishment, and He took our sins upon Himself to expiate for them. This teaches how deeply our sins hurt God, not in himself since He is infinitely happy, but in his love for us, who are so damaged by sin. So Our Lord Jesus Christ wanted to deliver us from our sins, so that we may serve the living God in holiness of life. Let us learn there to detest sin, to avoid it at all cost, and to love Christ crucified, to console Him of all the ingratitude He receives today, and to draw many souls to Him.


No one has penetrated into the soul of Our Lord Jesus Christ as much as the Blessed Virgin Mary; no one was more “one with Him” in His Sufferings, and is now one with Him in His glory; no one is better placed that She is to lead us to the foot of the Cross, where she is first, close to Jesus, close to His Sacrifice, to His Offering, nay, one with His Offering.


Archbishop Lefebvre had a great devotion to Our Lady of Compassion, at the foot of the Cross; he chose her to be the patron of our Sisters. He showed to us that She is the Mother of the High Priest, Christ offering Himself on the Cross; she is also the mother of the new priest, St John, just ordained the day before during the Last Supper. May Our Lady of Compassion help us to enter into this mystery of the sufferings of Christ, so as to receive the full fruits of His Passion, death and Resurrection.


The fruit of the Cross is the Holy Eucharist: most sweet fruit of the most bitter passion. Nowhere is there found any religion that has anything similar: what men have invented cannot equal what God has designed! This is God’s way to realise already here a union with Him more intimate than anything we would have dreamed of. And that fruit is the fruit of the Sacrifice of the Cross, of the Sacrifice of the Mass: He is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s of the world”. Let us love to contemplate Our Lord in the Holy Eucharist, the fruit of the Cross, the Tree of Life. “He that eateth my flesh, and drinketh my blood, hath everlasting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in the last day. For my flesh is meat indeed: and my blood is drink indeed. He that eateth my flesh, and drinketh my blood, abideth in me, and I in him” (Jn. 6:55-57). Amen.
Fr. F. Laisney